미니멀 팩션 스토리

풍차간 소식

원평재 2011. 2. 13. 09:58

어떤 엄숙한 모임이든 그 백미는 사실 뒷풀이가 아니던가.
제주도에서 열린 어떤 협의회의 끝마무리 역시 만찬 후의
격식없는 술자리였다.
뜻맞는 몇 사람이 손에 손을 잡고 라운지로 진출하여 맥주를 시켰다.

놀랍게도 스테이지에서는 모찰트와 비제와 브람스의 실내악이 흐르기
시작했는데 4명으로 구성된 백인 실내악단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디서 온 예술가들이오?"
누가 진심으로 존경어린 질문을 웨이트레스에게 던졌다.
"러시아에서 왔다는데 최일류급이라고 하던데요."

얼마전에 온 손님들 중에 모스크바 예술원에 유학한 사람이 있었는데
저 사람들이 그 곳의 교수들이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섬에서 얼마를 받기에?"
누가 또 물었지만 그건 이 한국 아가씨가 할 수 있는 대답의 영역은
아니었다.
다음날 지배인의 말을 들으면 먹고자고 65만원이라고 했다.
뉴욕의 클래식 연주홀이 요즈음 풍성해졌다는 소리가 실감이 났다.
유태인이 지나가고 아시아계가 대를 이은 자리를 이제는 동유럽의
가난한 일류들이 채우고 있다더니---.

클라리넷은 이마가 벗겨진 남자가 맡았고 첼리스트는 아주 키큰
여자, 바리얼린과 피아노는 아담한 여자들 차지였다.
클라리네티스트와 첼리스트는 부부이고 바이얼리니스트는 이혼녀,
피아니스트는 노처녀인 모양이었다.

키큰 첼리스트는 곡이 끝날때마다 일어나서 나의 박수에 유의하였다.
아니 정직하게 말라자면 내가 앉은 쪽에 유의하엿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 테이블로 초대하고 싶었으나 그건 이 곳의
금지된 장난 아니 금지된 규율이었다.

바아가 10시에 문을 닫아서 우리는 바닷가에 있는 풍차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풍차는 도합 세대가 돌아가고 있었는데 암스텔담에 관광용으로 남겨둔
풍자가 세대였던 생각이 났다.
창밖으로 보이는 밤바다의 인광과 함께 사실은 바람이 아니라
동력으로 돌아가는 풍차의 날개짓은 깊은 로망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
하였으나,
짐짓 난쟁이로 몸을 낮춘 우리에게 백설공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바닷가로 갔으면 인어는 있었을텐데 그러기에는 날이 너무 추웠다.
그리고 요즈음은 인어와 선녀들도 모두 노래방 도우미로 서울 출장을
갔다던가---.

풍차를 보니 알퐁스 도데의 풍차간 소식이 생각난다고 누가 말했다.
"아니오. 돈키호테와 산초 판차 생각이 나외다"
이건 정치학하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투우사 관련으로 옮아갔고 누가 재담을 풀었다.
투우장 옆에 그날 죽은 황소의 우랑우심탕을 잘 끓이는 레스토랑이
있었단다.
하루는 조그마한 물건으로된 스튜가 나와서 이게 뭐냐고 손님이
소리쳤다.
"아, 오늘은 투우사가 죽었어요."
웨이터의 태연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지퍼밖으로는 끈이 나와있고 뒷 포켓에는 스푼
이 삐죽이 나와있는 것이 아닌가.
설명인즉, 손님들이 스푼을 자주 떨어뜨려서 아예 넣고 다니다가
보충해 준다는 것이다.
"그럼 지퍼의 끈은?"
"모두 위생 관념 때문이죠. 화장실에 갔을 때 손으로 터취하기가
뭣해서 끈으로 꺼내는 것이죠."
"그럼 넣을 때는?"
"아, 스푼으로 밀어넣지요."
녀석이 그것도 모르겠느냐는듯이 자랑스레 말하더라는 것이다.

"키스 어브 파이어"등의 칵테일에 성이차지 않아서 우리는
"비바리 칵테일"을 만들어 먹기로 하였다.
먼저 제주 소주인 "한라산"과 맥주를 주문하였다.
얼음이 나와야함은 물론이었다.
그리고 레몬을 시켰다.
맥주잔에 얼음을 넉넉하게 넣고 한라산을 소주잔으로 한잔 붓고
나머지 부분을 맥주로 채웠다.

"앗차, 고추를 빠트렸네, 큰걸로 손님 수만큼 가져와요."
제조상궁이 소리쳤다.
큰 고추는 말하자면 칵테일 쉐이커였다.
큼직한 놈으로 슬슬저어가며 칵테일을 마시니 남극대륙에서 만년전
얼음으로 칵테일한 술보다 맛이 좋았다.
"고추에 묻은 술을 빨아먹어 보세요."
제조상궁이 또 소리쳤다.
그 맛은 더 좋았다.
"앗, 매워!"
누가 고추를 씹은 모양인지 고추가 씹힌 모양인지 제조상궁의 손이

슬며시 상 밑에서 상위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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