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팩션 스토리

만우절 저녁의 변주곡

원평재 2011. 2. 13. 10:46

흘러간 산업계의 스타들끼리의 상설 모임에
어느듯 나도 자리를 자주하게 되었다.

연고를 따져보면 A상선의 B사장이 교양서적 출판사를 여러해 전에
취미로 운영할 때 그 운영을 내가 맡으며 사장이란 직함을 얻은적이
있었는데,
산업계 스타들과의 친분은 그 때 닦은 것이고,
명색이 전직 사장이니 같은 자리에 앉을 자격도 있다는 것이다.

전에는 1분기에 한번도 모두 모이기가 어려웠으나 흘러간 스타들이
점점 백수계의 원로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 이제는 월례행사가
정착되는 분위기였다.

"봄날은 가는구나" 하면서 4월 모임을 잡은 것은 하필 만우절인
목요일이었다.
식목일 연휴는 피하자는 계산이었겠지만---.

장소는 좋은 곳을 돌아가면서 섭렵하는 정신에 따라서 이번은 Z호텔
34층에 있는 멤버스 클럽이었는데 이름이 "실크 로드"였다.
프라이빗 룸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그 곳 멤버들은 툭 터진 공간에서
주로 꼬냑을 음미하고 더러는 위스키도 마시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룸을 하나 차지하였는데 다른데와는 달리 그게 되레
조금 촌스러웠다.
우리는 왜 방으로 밀려들었을까?

내가 생각해보니 그놈의 나이 때문이었다.
넓은데서 노는 젊고 돈 많은 녀석들은 벌써 허우대와 신장이 달랐고
큰 제스추어는 물론이고 손가락의 움직임까지도 쉰세대와는
다른듯 했다.

보리밥 먹고 죽을 고생해서 큰 돈 좀 만저보는 늙은이들이야
그런저런 모양새에 도무지 대적이 되지않으니
당연히 밀폐된 방으로 기어들어가야지---.

세상 참 많이 달라졌구나.
프라이빗 룸 예약이 권위와 특권의 기표이자 기의인줄로만
알았더니---.

그래도 이 곳이 늙은이들에게 다목적의 인정은 베푸는건가.
접대하는 아가씨들이 문을 반쯤 열어놓고
스커트가 툭 터져서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는 필리핀 여가수의
생음악, 아니 생다리를
방안에서나마 겨우 감상케 해주었다.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 보려고 앉은 나의 초저녁 명당 자리는
그러므로 시간이 깊어가면서 이코노미 석이 되었고
글쟁이라고 나에게 야경 조망이 좋다고 그 자리를 굳이 내 준
어떤 전직 회장의 자리는 마침내 신 명당, 혹은 프레스티지
클래스로 격상되고야 말았다.

남성들의 "시선"이라는 문제를 페미니스트들이 새로운 화두로
채택한 연고를 알만했다.

낮은 스테이지에서 노랑물을 들인 머리칼 때문인지 서양여자
되다만듯한 여가수는 "When I Dream"을 구성지게 불러서
원래의 가수 캐롤 키드를 전율케하더니
종내는 피아노를 껴안고 신음하면서 온갖 교태까지 부렸다.

아, 그런데 그녀는 갑자기 어디에서 일본 우산을 갖고 나오더니
푸치니 작, "나비 부인"의 아리아 "어떤 게인날"을 흐느끼며
부르는 것이 아닌다.

얼마나 슬프면 이제 그녀의 몸과 피아노의 건반은 동일 평면,
동일 차원으로 병렬되어서 결국 속살이 거의 다 드러나게 되었다.
누가 룸으로 들어오랴---.

프랑스 요리를 전문으로하는 집이어서 들어올 때부터 음식 고를
때에는 한 난리를 치룰거라고 각오는 이미 했지만
이 집의 카르테는 번호도 매겨져 있지 않아서 어려운 프랑스
발음을 직접 해야될 판이었다.

"그러지 말고 실버벨이라고, 이 집 디너 스페셜 코스 요리가 있는데
그 식단에다가 식성대로 빼거나 바꾸거나 하지"
이날의 스폰서가 경륜에서 나온 제안을 기분 상하지 않게 내놨다.
돈쓰고 욕먹는 바보도 있지만 센스가 돋보이게 그는 호스트하였다.

나는 웨이터의 권유대로 스프 메뉴만 치즈 토핑을 한 것으로 바꾸었다.
"차이가 얼마요?"
얻어먹지만 값은 알아야 고마움의 척도를 정할 것 아닌가---.
"추가 되는건 8000원 밖에 안됩니다."
특 갈비탕 값이구나---.

하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와인 리스트에서였다.
요즘은 캘리포니아 산, 특히 나파 벨리의 와인이 고급으로 취급
받는 줄은 들어알지만 하여간 시키는 것을 겻눈질 했더니
15만원 짜리였다.
와인 이름은 Napa Valley Cabernet Sauvignon이었다.

우리는 "오늘의 사회자" 제도를 두고 매번 돌아가면서 작은 세미나를
주제하였는데,
물론 회원 중에서 당일의 발제자도 미리 선정해 두었다.
오늘은 좀 깐깐하면서 사교력이 부족한 C 사장이 세미나를 주제하는
"오늘의 사회자" 차례였다.

밥 맛에는 별로 도움이 되는 타입이 아니었다.
발제자로는 D그룹의 사장단을 거친 Y 였고 나와는 학교는 모두
달랐으나 친분이 두터웠다.

"Y 사장! 이제 터놓고 말합시다. 당신있던 D그룹의 N회장이 왜
망했다고 보시오?"
글쎄 자기는 별로 터놓지 않을 것 같이 보이는 이 다부지고 고집센
인상의 C 사장이, D 그룹에서 사장까지 지낸 Y사장에게 진행자의
자격으로 물었다.
캐롤 키드가 달콤하게 호소하고 나비부인이 청아하게 흐느끼는
어떤 게인날 저녁,
그의 질문은 갑작스런 천둥 번개처럼 협박같이 들렸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복잡하고 복합적이겠지만, 한 두가지만
열거해 보자면---"
D그룹의 사장이었던 사람으로서 망한 회사의 1급 비밀을 터뜨려서
살신성인하며, 분위기를 살리려는가---.
그건 아닐 것이고 신문에난 정도로 범주를 정했겠지.
하여간 내가 촌탁할 성질이나 분야는 아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IMF 때에 우선 미국으로 부터 큰걸로 하나는
쓸어뜨려야 된다는 강한 주문이 들어왔는데 여기에 그 회사가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왜 하필이면?

"우리 자체 경제연구소가 유명하잖소. 그곳에서 회장과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여 1500억 달러를 우리 경제가 긴축하여 감내하면 IMF는
문제 없다고 국가 최고위층에 진언을 햇어요.
그러자 당시의 경제팀들, 예컨데 G,B,J등이 노여움을 표한거죠.
국책은행의 융자가 없으면 피가 돌지않고 멈추는데 그들의 노여움을
탄 그룹이 견뎌낼 재간이 있나요.
폴랜드 자동차 회사를 1억 5000만 달러에 거져 줏다시피하고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중앙아시아를 아우르는 자동차 공장을 다
만들었는데 모두 물거품이 되었지요."

폴랜드 쪽은 물론 인수 직후에 10억달러를 유럽은행에서 기채하여
추가 투자를 하긴했지만 아무튼 연산 150만대까지 내다 보는 대단한
계획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저들이 공급과잉에 시달리는데 K회장이
너무 나이브하게 남의 돈으로 밀어부친건 아닐까---.
누가 이의를 달았다.

그가 조금 양보를 하였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지나친 온정주의 때문도 있을겁니다."
S그룹이 피도 눈물도 없는 실적주의라면 여기는 2000만 달러를 축낸
현지 사장도 건재할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냉혹한 승패의 세계에서는 문제가 아닐 수 없겠다.

"구정권의 정치자금 배달 사고와도 관련이 있다던데요?"
누가 또 물었다.
그는 절래절래 손을 흔들었다.
자기가 아는한 그럴리는 없단다.

"청문회는 이만 하지요"
내가 긴급동의 형식으로 분위기를 아우르고자하였다.

C사장이 항상 문제였다. 과거의 진실을 신문같은데에 발표된
내용 말고,
일종의 인사이드 스토리로 알아내서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조그마한 자료라도 남기게 되었으면 하는 우리 회의 성격이
매번 주로 C 사장 때문에 때아닌 청문회로 경직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순간 우당탕하는 소리가 나고 나비부인이 찢어지는
비명을 바깥에서 지르며 넘어졌다.
피아노 주변으로 선혈이 낭자하였다.
그 뒤로는 칼을 든 동남아 청년이 자신을 호세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이 가수가 배신을 하고 저 피아니스트 산체스하고
놀아났으므로 죽여야겠다는 것이다.

만당하신 신사숙녀 여러분들이 평결을 내려달라며 그는
울부짖었다.
C사장의 어디에 그런 민첩성이 있었던가.
그는 당장에 밀실의 문을 닫으라고 종업원에게 소리지르더니
자신이 직접 문을 닫으려고 하엿다.
그러니까 우리방에서 서브하던 아가씨가 죽어라고 문을 못닫게
하였다.

C사장은 마침내 역정을 내며 여자 종업원을 꾸짖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약간 어두웠던 조명이 다시 환하게 켜지며
방금 있었던 일은 한갓 만우절의 해프닝이엇다는 설명이 나왔다.

딱하게 된 C 사장이 이번에는 지배인을 불러라 어쩌구 하면서
난동에 가까운 항의를 했으나,
어쨋든 라텍스를 이용하여 피가 방울져 하얀 피아노 위에서
구르도록까지한 만우절 쇼는 완벽했다.

"핼로우윈 데이 때도 멤버님들의 주문으로 쇼를 연출했었지요.
이번에도 멤버님들 께는 모두 알렸는데요. 어쨌건 죄송합니다."
고객은 왕이었지만 우리는 바깥에서 재미를 본 다른 젊은 왕들과
아름다운 왕비들에게 체면이 말이아니게 되었다.

세상사, 만우절에 이런 해프닝도 한번 못해보면 무슨 사는 맛이랴.

일어서기 전에 문을 걸어놓고 우리는 정리를 했다.
학교가 각각인 사람들이 자기들의 "홈 페이지"나 "인터넷 카페"에
오늘의 세미나 내용을 어느 수준까지 공개해서 올리느냐는 것이다.

오늘의 발제자 Y사장이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모두 그대로 올려도 됩니다. 우리 신문에는 안난 경우라도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 같은데에는 이미 샅샅이 다 분석이 되었고
심지어 경제지가 아니고 외교 국방 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즈"에도
국가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요인으로서의 경제 쇼군에 대한
분석이 다 끝나고 보도 되었죠.
눈을 가린다고 하늘이 가려집니까?
다음 모임에는 우리 본격적으로 여자 이야기도 하고서 각자의
인터넷에 자랑스레 올립시다."

우리가 살아온 나날들이 끊임없이 죄를 지은 궤적에 다름아니라는
우울한 생각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독치 못하고 살아가던 어느날 저녁,
오랫만에 "옳소"하고 소리 지르고 싶은 충동이 생긴 현장이었다.

다만 때는 바야흐로 만우절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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