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동 프로젝트가 끝나던 날, 괜찮은 집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질려는 찰나 어떤 끼있는 중년이 나이트 클럽을 가자고 긴급
동의 형식으로 제안하였다.
"성인 나이트 클럽이요?"
조금 젊은 축이 아는체 하였다.
"아니 딱히 그런 곳이 아니고---."
"그럼 캬바레 말이군요." 또 누가 한마디 거들었다.
"아이구, 요즈음 누가 캬바레라고 하나요. 제비집이 영어로
캬바레라는 버전이 한판 돌고부터는 그 말은 맛이 갔어요."
춤추러 가자고 했던 사람이 초장에 땀을 뻘뻘 흘리며 그로기 상태가
되어갔다.
"그럼 춤집이라고 하죠. 고전 무용하는 곳처럼 들리긴 해도---."
내 말에 그가 생기를 되찾았다.
"그래요, 춤집 좋네. 분위기도 살고. 사실 캬바레라는 말이 가슴
설레일 때에는 무학성 같은데가 좋았는데 지금은 강남의 신사동
네거리에 워낙 물좋은 데가 많아요. 그리로 갑시다."
"길동 네거리도 좋던데요."
조금 젊은 식구의 아쉬운듯한 주장이 계속되었다.
"아, 거긴 바가지요. 또 계속 몸을 휘둘러야 되고 여자들도 앉혀야
되고---."
과연 신사동 네거리에는 아담한 춤집이 추녀를 이어가며 네온 불빛
아래에서 조으는듯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실은 한 일년 전에 나도 이곳에 온 기억이 선명했다.
그만큼 감동을 받았던 곳이었다.
짐작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부킹"이라는 단어를 확실히 배운
곳도 이 곳이었다.
그때도 오늘처럼 춤을 못추는 처연한 신세였으나 술김이었을까,
분위기가 달랐나 웨이터들이 부킹을 해주는 데로 아무나 붙잡고
엉터리로 스텝을 밟았었다.
IMF의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환상 때문인가 플로어는 발 디딜틈이
없었고 양주도 어느 테이블에서나 몇순배 도는 분위기였다.
붐비는 시장 바닥이 익명성을 보장하여 마음 놓이듯 엉터리
춤추기에는 이런 난장판이 천금의 기회같았다.
그래도 엉터리 실력은 금방 들통이 나서 기피인물로 낙인이
찍힐려는 찰나, 손바닥이 따끈따끈한 여인이 뻣뻣이 내 앞에
자태를 나타내었었다.
가만히 보니 나와 같은 엉터리였다.
"양재동 엄마들인데 문화강좌에서 볼룸 댄스 배우고 오늘 처음
나왔어요. 엉터리입니다."
"미 투, 아니 미 쓰리"
나는 낡은 농담을 썼으나 철지난 버전에 죽어라고 웃어대는 상대의
모습이 신식이 아니어서 이래저래 다행스러웠다.
"오늘 아들이 군에 입대를 하여서 친구들이 위로겸 머리 올려준다고
해서요---."
이 아주머니가 말하자면 여러가지로 데뷰를 하는 날이었다.
두 엉터리 춤꾼들의 춤은 별 진전이 없었으나 붐비는 분위기에서
소외되지는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딱 1년만에 나는 같은 곳에 또 왔다.
그러나 술도 예전만 못하고 내 마음의 호연지기도 갑년을 의식하여서
인가(사실은 내년이지만 대다수 친구들이 금년이어서 빙의 현상,
홀림 현상이 일어났다), 처연한 심사를 초연한 자세인척 내숭을 떨
따름이었다.
또한 플로어나 테이블의 분위기랄까, 사람의 숫자도 형편없었다.
축구 때문인지 경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두가지 복합 요인인지---.
1년전이나 지금이나 나의 춤 실력은 맹물이고---.
여길 오자고 우긴 사람은 플로어에서 신바람이 났으나 함께온 다른
사람들은 그냥 우두커니 구경만 하고 있었다.
모두 이런 식의 카니발에는 문외한들이었다.
"부킹 하시죠?"
"양주 하시죠?"
웨이터들의 공세가 집요했지만 우리는 "맥주와 안주 기본"으로
버티었다.
"춤들을 못 추시면 댄서를 사시죠"
"얼마요?" 누가 물었다.
"현찰로는 7만원이고 카드로는 8만원입니다"
이때 바로 옆 좌석의 부인들 세명이서 우리들을 이끌었다.
"딱한 양반들이군요. 한번은 돌아야할 것 아닌가요. 나오세요."
내 앞에 선 부인은 씩씩하고 당당하였다.
"나는 일주일이면 두세번은 여기 와요. 한번 오면 세명 기본이
3만 9000원이지요. 한시간을 돌면 딱 萬步가 되어요. 운동 차원이라니
까요. 나는 햋볕에 얼굴 타면서 등산 다니는 여자들 바보라고 생각
해요. 이렇게 에어컨 나오는데에서 피부도 보호하면서 운동도 하고
재미도 있고---. 문화생활이쟎아요."
"네, 그렇군요."
나도 문화인다운 답변을 하였다.
"그런데 부군들께서는 부인들을 기다리지 않으시나요?"
내가 어울리지도 않는 질문을, 정말로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춤 안추고 뭘해요?"
템포 빠른 음악이 갑자기 나와서 내 딴은 몸을 흔들고 있는데 전혀
춤추는 자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가 봐도 내 모양이 그랬다.
내가 디스코 춤 비슷하게 몸을 흔들기 시작하자 부인이 빠르게
"자기 남편은---'하면서 설명을 시작했는데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잘 알아들었다는듯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고 부인은
자신의 말이 설득력이 있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또한 몸을 흔들었다.
테이블로 다시 돌아왔을 때 내가 일행에게 말했다.
"한심한 우리의 DNA는 어떻게 유지 되어서 예까지 왔을까?"
화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대답했다.
"아마도 절대군주, 예컨데 파라오 시대에는 우리는 전문직 중의
전문직에 속했을겁니다. 말하자면 미이라를 만드는 전문가들이지요.
미이라를 만들려면 먼저 제사장이 있어야하는데 제사장은 지금
플로어에서 춤 잘 추시는 저분이었을 것이고 김형은 손재주가
좋으시니까 배를 갈라 내장을 훌어냈을 것이며 저기 박형은 내장을
담는 그릇을 빚었을 겁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화공 쪽이니까
사체에 방부제나 발랐거나 잘해야 방부제 만드는 기술자였겠지요.
우리쯤 되면 마누라로 여자가 하나쯤은 배당되었을 겁니다."
"권력의 이동기에도 우리 전문직 DNA는 잘 빌붙었겠네."
누가 낄낄 자조했다.
'아니 춤 못춘다고 자조하진 맙시다. 원시 채집 경제 시대에는 잘
달리고 잘 뛰는 놈이 최고 권력, 수퍼 파워의 소유자였어요. 우리
축구선수들이 전에는 마라톤 연습하듯 운동장을 돌았는데 히딩크가
와서 20미터를 초 스피드로 달리고 5초 쉬고 다시 20미터--- 이렇게
조련했대요. 축구장에서 누가 마라톤 합니까. 알고 보니 컬럼버스의
계란이지요. 대중 매체가 권력이 되니 비틀즈는 작위도 받았어요.
안정환은 미스 코리아도 꿰어찾지요."
"어쨌거나 근대 시민 사회가 오고부터는 소시민도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먹게 되었으니 우리 같은 숙맥 DNA들은 살판 났었는데 다시
난혼상태가 슬슬 도래하면서 앞날이 걱정이네. F1 말이지."
누가 안주를 챙기면서 장기적인 우려를 표명했다.
"프로이트가 처음에는 본능을 풀어야 정신건강이 좋아진다는 점을
너무 부각시키다가 시민사회의 불온학자로 낙인 찍힐려는 찰나 억압
가설로 돌아버렸지. 본능의 억압이 창조의 원동력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원---."
다른 누군가가 혀를 찼다.
"어! 저 제사장 형님 봐!"
방부제 바르기 전문가가 플로어를 보며 소리쳤다.
잘나가던 제사장 형님이 식사 때의 전주가 과했는지 어떤 여자의
허리를 감아쥐었고 여자가 소릴 지르자 떡대 같은 청년이 제사장을
끌어 내려오고 있었다.
'파장이네. 망신 당하지나 않을까---"
모두들 가방을 거머쥐고 엉거주춤 일어서기 시작하였다.
하여간 이 스핑크스 신상 앞에서 어물거리다가는 신사동 파라오로
부터 무슨 망신을 당할는지 알 수 없었다.
만보(萬步) 아주머니들은 구경생겼다고 낄낄거렸다.
내몰리다시피한 입구에서 계산서를 보니 "기본"에서 맥주 두병이
추가 되어서 6만 9천원이었다.
10만원을 냈는데 웨이터 팁을 졸라대는 청년이 있어서 이만원을 더주고
가슴의 명찰을 보니 과연 "히딩크"였다.
이틀 후에는 반지의 제왕 안정환이 마침내 결승골을 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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