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논 팩션) 제49호 경매 품목 (The Crying of Lot 49)

원평재 2007. 9. 22.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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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경매시장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호당 얼마"로 화가의 재능과 작품 가치가 재단되던 시절이 서서히 물러가는

시대적 트렌드에는 큰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번에 350억원 이상이 거래되는 현상은

이상 과열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긴 제가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요.

별로 관계가 없기로는 '세계 다이어먼드 시장'의 흐름을 특별히 주목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니까요.

다만 '글깜'으로는 한번 걸러볼 제재인가 합니다.

 

먼저 미국 소설가, 토마스 핀천의 '제49호 경매 품목" 혹은 "제49호 품목의 경매"

(The Crying of Lot 49) 라는 작품을 짧게 소개하며 글을 풀어봅니다.

 

뉴욕에 사는 '이디파 마스'라는 이름의 이지적 부인이 처녀 시절의 애인이자 대부호,

'피어스 인버라리티'라는 사람의 유산 담당 변호사로 부터 LA로 급히 와 달라는

연락을 받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알고보니 그녀의 옛 애인이 죽으면서 남긴 엄청난 액수의 유산을 처리하는

과정의 집행인의 한 사람으로 고인에 의해 미리 위촉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부호의 재산은 대부분 사회 환원이 되도록 유언 되어 있었는데 그 청산과

집행에 그녀가 초대된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의 동의를 얻고 LA로 향합니다.

 

              며칠 전, K-옥션이 열렸습니다. 사진은 라운지에서의 시작 전 환담 모습.

 

이야기의 내용을 거두절미하면,

그 수많은 유산 품목의 정리, 경매, 기금 마련의 과정에서 문득 '제49호 경매 품목'이

'이디파 마스'의 의식계에 계속 걸리적거리는 것입니다.

그 품목은 '스탬프 컬렉션' 앨범이었는데 당연히 값을 따지기 힘든 희귀 우표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런 진품(珍品)들보다 그녀의 관심을 더욱 강렬하게 이끈 것은

이 세상에서 한번도 통용된 바가 없었던 어떤 우표였습니다.

'약음기가 달린 나팔' 도안이 우편 시스템의 문장(紋章)으로 새겨진 그 우표는

우리가 사는 이 대명천지에서는 결코 쓰이지 않았던 우표였습니다.

 

이야기는 빠르고 혹은 느리게 진전되지만, 어쨌든 이 우표는 중세로 부터

지속되어 내려온 어떤 비밀 결사 속에서 통용되어 우편 제도의 구체적

실체였습니다.

우리가 유일 정전(正典-canon)으로만 알고 살아온 이 대명천지 세상의 이면에는

알고보니 이렇게 거대한 또하나, 어둠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정전의 파괴, 주변부의 등장---, 바로 포스트 모던한 현상을 여기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미녀와 야수'라는 작품처럼, 뉴욕의 거미줄 같은 지하철 속에 또 하나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식의 팬터지 이야기들 및 SF 소설과도 이 작품은 일부 궤를 같이

하지만 현대의 고전 반열에 오른지는 이미 오래됩니다.

 

자, 이제 내일이면 이 많은 유산 품목들의 경매가 본격 시작될 즈음에 우리는

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디파 마스에게는 그 며칠 전 이 비밀결사로 부터 은밀한 연락이

있었습니다.

유산 경매장에서 자기들이 그 스탬프 컬렉션을 꼭 확보해야겠다는 의사 타진

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사전 서면 응찰인 셈입니다.

이디파도 원래 그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시도하였지만 번번히 실패한 바가

있었습니다.

비밀 결사의 조직 유지를 위하여 그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디파가 오랜 비밀의 문을 두드리고 싶어 안달하는 현상에 대하여 작가는

많은 부분을 독자의 판단이나 파악에 맡기고 있습니다.

옛 애인의 일대기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그 진정한 모습을 파악해 보고자 하는

이디파 마스의 열정은 현상 타개를 위하여 담당 변호사와 잠자리도 함께 하는

모험을 마다하지 않지만 실마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 정말 경매일은 내일로 닥아왔습니다.

과연 그 비밀 결사로 부터는 공식 서면이든, 대리인이든, 직접 당사자이든

그 누군가가 와서 응찰을 할 것인가,

아니면 결국 나타나지 않을 것인가,

아니, 이 모든 일들은 단순한 하나의 가상 현실이나 몽환불과한 것인가.

 

독자인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런 작품이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보다 근원적인 의문으로 이 작품을 들여다 볼 수도 있습니다.

  

 

 

 위의 두 그림에서는 시각을 옮기는 데 따라서 여인이 옷을 벗은 모습으로도

보입니다.

 

서론이 본론 보다 길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결혼 시즌, 가을이 왔습니다.

지난 주말에도 혼사가 여럿 있었습니다.

도산 대로에 있는 P라는 호텔에서 또 밥을 먹고 나오는데,

아니지요, 결혼식에 또 참석하고 나오는데, 로비 라운지의 벽면들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제일 먼저 '앤디 워홀'의 그림 연작이 보이는데 오리지널이었습니다.

오지호며 이대원, 아 제 친구이며 '이까소'라고 별호하는 '이강소'의 추상화까지

그 옆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득 이 호텔의 주인이 서울 옥션과 관련이 깊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나오셨군요. 비 오는 휴일날 거동하신 김에 K-옥션에 한번 들러볼까요.

그 화랑 대표가 차 한잔은 대접할 것입니다."

그림에 조예가 깊은 제 지인 한사람도 결혼식에 나왔다가 반갑게 제 소매를

끌었습니다.

결혼식장에서의 우연한 만남이었습니다.

가을 장마가 꽤 성가셨지만 제 딜레탄트 기질에 두말없이 즐겨 따라갔습니다.

차를 타기 전에 제 지인이 연락을 놓았더니 K-Auction의 김 사장이 직접 나와서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K-Auction 입구 비집어 보기

 

 이곳은 K-Auction의 사진 갤러리 입니다.

오늘날, '사진은 그림처럼, 그림은 사진처럼' 만드는 경향성도 감지 됩니다.

 

지하층에서 4층까지 가을 옥션에 나온 '물건'들을 김 사장이 모두 설명해

주었습니다.

9월 18일-19일 이틀 동안에 진행될 경매품들의 추정가는 350억 이상이라고

합니다.

"대단하군요."

"제 재산이 아니고 모두 위탁품인데요, 뭘---."

"하하하."

 아무튼 내용들이 좋았습니다.

이번 옥션에는 일본의 '마이니찌 갈라리'와 합동으로 이벤트를 열어서 내용이

더 풍부해졌답니다.

 

 

 

 

                                     (Fin de Siecle Man; 백남준)

 

 

 

시간을 내어 천천히 오르내리며 감상을 해보니 수많은 작품들이 진실로 경이적

인 분위기를 자아내었습니다.

그림 투어의 끝에서는 자연스레 이틀 후 열리는 K-Auction에도 자리 예약을 해

두었습니다.

'패들(paddle)'도 하나 준비해 놓겠다고 하였습니다.

1년에 10만원쯤 회비를 내고 멤버쉽이 있어야 하는 제 지인의 자격이었습니다.

4층, 메인 옥션장이라 그러하였고 2층에는 당일날 신청하여 화상을 통한

간접 현장 참여도 가능하답니다.

돈을 내고 좋은 그림을 사겠다는 데에 무슨 제약이 있겠습니까---.

 

옥션 당일에도 비가 뿌렸습니다.

그러나 압구정동, K-옥션 앞은 사람들로 긴 줄이 이어졌습니다.

 

 

 

 

  

 

리셉션 장에서 우선 파이와 프룻 칵테일로 배를 채우고 커피도 뜨겁게 한잔

한 다음, 표를 내고 4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패들(paddle)도 물론 하나 받았습니다.

4층 경매장은 에어컨 냉방으로 처음 추웠으나 이윽고 열기로 가득하였습니다.

몇천만원에서 십수억하는 '물건'들이 기막힌 경쟁 속에 팔려나갔습니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추정가 9억-10억에서 시작하여 15억에 주인을 바꿉니다.

 

 

 

 제 친구 '이강소'의 추상화도 몇천만원에서 시작하여 일억을 바라보며 낙찰이

되었습니다.

'앤디 워홀'은 십억대에 시작하여 몇억이 더 얹혀서 팔려갔습니다.

박수근의 작품은 십오억에 간단히 주인을 바꾸었습니다.

제 관심은 '제49호 경매 품목'입니다.

 

 

                박수근의 두사람은 7억 7천에 나와서 7억 9천에 나갔지요, 아마---.

 

 

 

                                 박수근의 목련은 14억에 나와서 15억에 낙찰---.

 

 

                       천경자 화백의 제49호 경매 품목입니다. 

  

 

 

                    9억에서 시작하여 11억 5천에 나갔습니다.

 

 

                 이숙자 화백의 보리밭 연작 중의 하나입니다.

 

                                  이강소의 작품 중의 하나

 

토마스 핀천의 소설 제목, "The Crying of Lot 49"에서 crying은 49호 품목을

부른다는 뜻입니다.

값을 부르는 '호가'라는 뜻도 되지만 그 품목을 경매한다는, 즉 순서를 외친다는

뜻도 되겠지요. 

하긴 그게 그거군요. 

어제의 'Lot 49'은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었습니다.

얼마더라, 아 11억 5천에 나갔다고 했지요---.

공방이 치열했으면 했는데 그냥 10억에 나와서 몇번의 호가 끝에 1억 5천이

금방 더 붙어서 나가더군요.

 

 

이날 K-옥션에서는 1부가 끝나고 요미우리 갈라리에서 2부를 진행하였습니다.

국내 화가들의 작품을 주로 취급했지만 세계적인 작가들, 예컨데 피카소, 미로,

위뜨릴로, 르노와르의 비싸지 않은 판화와 에칭등이 등장하였습니다.

우리처럼 가벼운 주머니를 노린 셈이랄까, 아니 보편적 즐거움을 채워주기 위한

배려인지---.

갈피를 잡기는 좀 힘들었습니다.

 

이럴때는 한번 만용을 부려보는 것도 좋은데, 

제가 패들을 들어올릴 기회를 놓친 것이 좀 아쉬웠습니다.

호안 미로와 마크 샤갈과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중에는 석판화와 에칭,

에칭과 아쿠아틴트 처리 작품으로 100만원 내외 짜리가 몇 작품 되었기

때문입니다.

 

 

 

 

 맨 앞 좌석에서 이 패들을 들지 못한 아쉬움이---.

 

 

                      중간에 나오기가 아쉬워서---.

 

아무래도 옥션에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탓이 컸겠지만 문득 장사하는 내

친구가 피카소의 판화를 점빵(가게)에도 걸어놓고 '주상복합 아파트' 주방에도

또하나 걸어놓고,

"진짜야! 진짜야!" 하던 모습이 어른거린 탓도 컸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리 그래도 농담인줄 알았는데 안주인이 나중에

"정말로 진짜에요" 그러는 것입니다.

 

 

 

                                                         호안 미로의 판화

 

                                               

                                               마크 샤갈의 판화

 

                                                     피카소의 에칭

 

 

 

 

 

 

정말로 진짜, 응찰을 못한 이유는 그보다 더 큰 데에 있었습니다.

매너 모드로 해둔 휴대폰이 계속 떨면서 연락을 해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가까운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문상'이라는 표현 이상의 것이 합당한 대학 병원 쪽으로 빨리 가야했던 것입니다.

낙찰을 하고 계약서를 쓰고 카드로 계약금을 내고 딜리버리 택배 주소---,

그럴 겨를이 어디 있으며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돌아가신 분은 매우 역동적인 삶을 사셨던 분입니다.

많은 자녀들이 지구촌에서 활약하다가 부음을 받고 달려오는 중이고---,

며칠전에 왔다간 외국인 사위는 아마도 또 오기는 힘든 경우이겠고---.

 

경매장의 열기 보다 더한 열기가 생전에 그분의 주위에는 항상 맴돌고

있었지요.

 

대학 병원 빈소에서 그 분은 이제 스틸 사진으로 잔잔히 웃고 계셨습니다.

 

(끝)

 

                                     요미우리 갈라리 사람들의 경매 모습

 

 '논 팩션'이라는 장르를 붙여보았습니다.

'논 픽션'이 있듯이 '논 팩션'이라는 성격의 글쓰기도 있지 않을는지요---.

존재의 의미를 이항대립적 요소로 명증해 봅니다만---.

 

오늘 오후부터 한 주간 동안 인도를 다녀오겠습니다.

아직 인도를 한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여행 인프라가 중국 수준은 되리라고 짐작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라

아직 매우 열악한 상태라고 합니다.

마음이 쓰입니다.

어쨌든 명상의 폭과 깊이가 조금이나마 확장되길 기대합니다.

 

여행 계획 덕택에 림스키 코르사코프인도의 노래를 오랜만에 생각해

냈습니다.

 

한가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대원 화백의 유화 작품

 

 

 

 

 

 

 

             김형근의 '행연'은 4천만원에 나와서 1억 천만원까지 극적으로 올라갔습니다.

  

 

 

 

  

 제 49호 경매 물품입니다.

9억에 나와서 11억 5천에 낙찰된 천경자 화백의 작품. 가격의 추이를 담았습니다^^.

 

 이숙자 교수는 보리밭 연작을 많이 시도하셨지요---. 여인의 벗은 모습이 저기 보리밭에 있는

구도도 인상적이었고---. 지금 대학에서는 은퇴하셨지요?

 

                                      내 친구, 이강소 화백의 작품---.

 

 배준성 화백의 '화가의 옷'입니다. 여기에서는 여인이 벗은 모습입니다. 2600만원에 낙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