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의 사계

여름나기

원평재 2010. 6. 7. 07:34

드디어 여름이 왔다.

여름을 일컬어 "태양신 아폴로의 계절"이며 "다이나믹함의 상징 그 자체"라고들

하지만 내게는 견디기 힘든 계절을 호도하는 말 같기만하다.

아폴로의 아래에서 내 그림자도 그늘도 없는 시각에 서보면 땀은 비오듯하고

숨이 막히는듯, 젊어서는 몰랐던 신체상의 부작용까지도 여름 더위와 함께 슬슬

찾아온다.

 

생각해보니 집안 내력이 더위에는 약했던 모양이다.

전에보면 삼복더위와 함께 선대어른들이 분지인 고향 땅을 한동안 떠나서

해인사 숲 속의 계곡으로 두어달 이상을 들어가셨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그 번거로운

행차를 좀체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집안이 좀 넉넉해진 후의 이야기이다.

 

세월이 한참 흐른 나중의 일로는, 자수성가하다시피 한 막내 동생이 미시간에서

중견 의사가 되어 시냇물이 마당으로 흐르는 시원한 저택을 마련하고나서 어른을

모셨으나 오래 계시지 않고 한두해 지난 어떤 여름철에 귀국을 하셨다.

경위는 잘 모르겠으나 하여튼 더위 속에서 귀국 행사는 이루어졌는데

돈도 꽤 쓰고 애도 많이 쓴 아우 내외는 끝내 칭찬을 받지 못하였다.

부지런하지 못하고 더위도 잘 타는 나는 항상 집안 대소사의 언저리만 기웃거린 탓에

그런 상태 혹은 사태를 상대적으로 관망할 수 있었다. 

다만 관망할 수 있었기에 막내 아우 내외의 일에 본인들 말고 가장 억울해 한 것은

나였던 것 같다.

 

대소가에서 색갈이나 스토리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누구나 겪어본 쓰잘데 없는 드라마

한 토막을 펴다보니 내가 이제 아폴로에게 백기를 들 그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깜박하였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건망증이라면 예찬할만도하지 않을까. 

 

더위와의 집안 내력을 익히 아는 나로서는 이제 합천 해인사는 지구 온난화와 더불어

아열대 북상 위도 아래로 삼켜져버렸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일찍부터 멀찍이 횡성, 평창,

주문진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았으나 별반 인연이 닿지 않았다.

생각같아서는 연변대학에 객원교수로 가있던 시절 눈독을 들인 연길이나 도문 쪽이

피서로는 그만이다 싶었으나 어쩌다보니 이제는 미국 동부, 혹은 서부 쪽에서 대안을

찾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싶다.

 

아들 내외가 뉴욕-뉴저지에 자리를 잡은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어서 일단 방향을 그리로

잡고 있는데 딸네가 또 피츠버그로 오게 되어서 지금은 우선 정착 단계에 있는 그네들에게

미력이나마 도와주고 있는 셈이다.

쇠락한 철강 도시의 이미지로만 파악하였던 이곳 피츠버그는 그 사이에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일곱번째인가, 하여간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으로 부활되어 있었다.

내륙이지만 위도 탓인가 고도 탓인가, 오하이오 강과 앨리게니 산맥 덕분인가

이삼일에 한번씩 쏟아지는 소나기성 폭우와 더불어 여름 한 철 보내기가 여간

청량스럽지가 않다.

 

외손녀들은 어제 방학이 되어서 다음주 부터는 다시 여름 캠프를 가게 되어있다.

워낙 많이 주는 상장도 한장씩 받아왔으니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기쁨을 감출 필요는

없으리라.

방학 이틀 전에는 PTA에서 주관하는 야외 디너파티도 있었다.

그래봐야 별 대단한 것은 아니고 또 아이들과 부모들을 모아놓고 무슨 거창한 훈시와

천편일률적인 게임을 반듯이 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놀다가 알아서 귀가하는

완전 자율 학습이었다.

넓은 풀장도 개방형이었다.

 

딸네가 사는 단지 내에도 풀장이 있어서 자주 들락거린다.

백인들은 해가 쨍쨍날 때 온몸을 태우며 널부러져 책을 읽는데, 나는 그 시간이면

옆에 있는 Gym으로 가서 에어컨의 힘으로 가벼운 운동을 하며 해가 중천에서 넘어가는

때를 기다린다.

책과 긴팔 스웨터도 갖고 가서 에어컨 아래에서 빈둥거린다.

때가 오지 않으랴.

나같이 게으른 자에게도 때는 온다.

황혼이 가까워오면 수영장 한편으로는 그늘이 생긴다.

그러면 그곳에서 뜨거운 햇살로 석고대죄 모양을하던 동네 사람들은 "그늘을 피하여"

건너편 뙤약빛이 아직 남은 곳으로 대 이동을하고 그 빈자리에 나는 안주한다.

 

태양아래에서 몸을 굽던 사람들은 이 한심하고 수상한 사내를 주시한다.

이쯤되면 아무리 리포터를 자치하더라도 카메라를 들이댈 염치가 없다.

 

아래에 늘어놓은 사진들은 대략 그런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아, 맨 아래쪽 사진들은 이 마을에서 발견해낸 산행 오솔길에 널부러진 오래된 나무들과

권토중래하는 모양들을 찍은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피츠버그 메트로폴리탄 에어리어의 오하이오 타운쉽인데

외손녀들이 다니는 학교는 Avonworth 학군의 같은 이름 초등학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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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단지 내의 작은 풀장입니다.

그래도 길이는 환산해보니 25미터 짜리입니다 

 

 

 건너편 Gym에서는 제법 운동을 할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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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들도 잘 들어가 보지 못하였다는 산록으로 등산로가 있어서

일단 개척해 보았습니다.

세갈레 길이 있습니다.

 

 

 

  

 

 

 방학이 되자 큰 손녀가 그동안 써두었던 시로 시집(?)을 냈답니다.

물론 아이들 작난 수준이지만

couplet(대구), haiku(하이쿠), cinquain(오행단시), Limerick(오행속요) 등으로 형식을

연습해보는 방식이 시선을 끕니다.

아, 우리나라에서도 시조와 전통 운문의 여러 형식으로 아이들을 훈련시키고

있으리라 짐작합니다만---.

 

 

 

 

 

 

 

 

여름과 태양이 역시 주요 시제(詩)라서 웃습니다. 

 

<오늘의 리포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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