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도미니카에서 온 소식

원평재 2010. 6. 15. 11:43

 

 멀리 아프리카 남단 남아공에서 굿뉴스-빅뉴스가 날아오던날

서인도 제도의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도 결코 적거나 작지않은 뉴스가 내게

날아왔다.

<세계한인 작가 연합>의 도미니카 지부장이자 그곳 문학 동호회 회장인 경명애 수필가

(미국명 Myoung Crumrine)로 부터 그곳에서 개최되었던  '제1회 글쓰기

공모전'의 시상식 소식과 아울러 창간 책자가 배달 되었기 때문이었다.

 

경명애 수필가는 계간 <문학과 의식>에서 등단한 분인데 그때 내가 심사위원장을 맡고

심사평도 쓴 인연으로 이번 청소년 글쓰기 공모전의 준비에서 부터 심사에 이르기 까지

자문을 하며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해 온 터였다.

 

많지않은 교민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문학 컨테스트가 과연 가능할까 싶은

회의와 주저를 극복하고 마침내 큰 일을 해낸 쾌거를 다시한번 축하하고 싶다.

 

경명애 수필가의 우리말 사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처음에는

그곳 한글 학교의 교사로 봉사를 하다가 마침내 교장의 자리에까지 올라서

끊임없이 큰 역할을 해낸 분이라서 여러모로 감동이 크다. 

 

아래에 시상식 사진과 책자, 심사평, 대상 수상자의 작품을 함께 올려본다.

계간 <문학과 의식>에서는 가을호에 이와 관련하여 특집도 기획하고 있다.

<세계 한인 작가 연합>은 <문학과 의식>에서 후원하는 국제적 단체이다.

   

  

 

 

 

 

 

 

 

 

 

  

 

 심사평

 

총평

 

계간 문예지, <문학과 의식>을 통하여 등단을 하였고 “세계 한인 작가 연합” 도미니카 지부장을

맡고 계신 경명애 작가로부터 도미니카 한인 청소년 글쓰기 대회 공모전의 심사와 심사평을

이 메일로 부탁 받고서 기쁘게 승낙을 하면서도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해외에서 청소년들이 우리말을 잊지 않고, 또 잊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생각과 사고의 지평을

넓히도록 처음 개최한 이 행사는 가슴이 벅차도록 감동을 주면서도 또 한편 과연 그 먼 곳에서

과연 좋은 글이 나오겠는가하는 염려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탁받은 대로 웹사이트에 응모한 글들을 읽으면서 그러한 염려는 전혀 기우였으며

너무나 훌륭한 내용들이 생각보다 정확한 우리말로 표현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기쁨과 감동이

마음속에 가득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또 다른 염려와 걱정이 생겼다.

글짓기 대회도 다른 행사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작품을 가려 뽑는 대회인 만큼 뽑힌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혹시라도 이번에 뽑히지 않은 사람들이 그로인하여

낙심을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뽑히지 않은 작품들이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이 모두

훌륭한데 혹시 이번 대회를 통하여서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줄어들면 큰일이라는 근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모쪼록 절대로 그런 절대평가가 아니라 모두 훌륭한 글이었으나 이번에는 나보다 조금 더

명확한 표현을 한 작품이 걸러져 나왔다고 생각하고 그 작품들을 자신의 글쓰기에 참고로

한다면 이번 행사의 의의는 더욱 빛나리라고 믿는다.

 

 

주제를 “내가 만난 세상”이라고 정한 주최 측의 지혜로운 선택에도 박수를 보낸다.

청소년들은 모국에 있을 경우에도 성장을 통하여 세상과 끊임없이 대면하면서 자신의

시야를 넓히는데, 하물며 지구의 반대편까지 와서 하루아침에 달라진 세상을 바라보며

성숙해나가는 모습을 스스로 한번 정리해 보면 그들뿐 아니라 기성세대의 어른들

모두에게도 크게 유익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용을 담는 그릇인 글쓰기 자체에도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예컨대 맞춤법과 띄어쓰기, 어휘의 선택 등이 그러하다. 영어의 철자가 틀리면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우리말이 틀리는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를 자주 본다.

요즘은 PC의 자판을 두드리면 워드체커가 있어서 이 모든 것을 바루어준다.

참고할 일이고 기억할 일이다.

또한 어휘를 늘리고 넓히기 바란다.

어휘의 실력은 우리의 사고와 심지어 기억력도 늘려준다고 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수준보다 너무 높은 언어를 구사하면 진실성을 의심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나 글쓰기에서 조심할 일이다. 이번 응모작에서도 그런 의혹을 일부 받았음을 미리

밝혀둔다.

 

이제 작품마다 짧게 촌평을 나누고자 한다.

 

먼저 중등부부터 언급하면, 신윤철 군의 글이 눈에 띈다.

어린 학생이 갑자기 모든 상황이 바뀐 도미니카에 와서 당혹하는 모습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모든 낯선 것들로부터 받은 놀라움은 그러나 우리나라 자동차와 가전제품들을 보면서

자신감으로 바뀌고, 이 나라와 우리의 다른 점이 바로 이 나라의 부족함이라는 오만 함도

느껴진다.

그러나 우연히 어둠 속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운전하던 어머니가 불편해하시던 모습을

보면서 세상을 보는 자기 자신의 방식에 문제점이 있다는 자각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깨달음이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다.

글쓰기의 궁극적 목적은 자신의 느낌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공감을 얻는 일이다.

그때 글쓴이의 발언이 자신의 수준을 너무 뛰어넘으면 읽는 이는 거부 반응을 느끼고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역겨워한다.

신윤철 군은 이러한 점이 없이 솔직담백한 글, 또한 짜임새 있는 글로서 훌륭하게 자신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조성연 양의 글도 7학년 학생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인간관계를 통하여 성장통을

겪은 이야기가 잘 표현되어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경이감, 통하지 않는 말의 장애, 그리고 마침내 우정을 통한 극복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긴 시간의 흐름을 타고도 지루하지 않게 전개되어 나아갔다.

 

 

안수아 양은 도미니카에서의 지금의 생활을, 떠나오던 때의 한국의 사정과 비교하면서 담담하게

심경을 정리해 놓았다.

사건 사고로 얼룩지던 오래 전의 내나라, 그 복잡한 나라에서 자신도 자기를 잘 가누지 못하여

비틀대던 사춘기의 초입, 많은 좌절과 방황을 겪다가 마침내 새로운 나라, 신천지로 와서야

진정한 나의 존재와 내 나라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지내는 또래의 많은

친구들에게도 큰 위안과 방향 제시가 되리라고 본다.

특히 부모와도 떨어져서 이역만리에서 고생하며 마침내 참다운 자아를 발견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박건후 군은 글쓰기 방식을 아주 특이한 포맷으로 잡았다.

지금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다시 떠나온 고국으로 잠시 되돌아 왔을 때의 이야기로 세상을

보는 눈을 표현해냈다.

떠날 때의 고국이나 8년을 생활한 도미니카에서의 경험들은 청소년에게 참으로 고된 시련과

고뇌를 강요했을 것이다.

박 군은 이 어려운 시절을 육상부 출전이라고 하는 관문으로 “통과의례”를 마친다.

통과의례라는 말이 조금 어려워서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이해가 되겠지만 하여간 인간사회에서는

성숙의 단계마다 거쳐야하는 어려운 관문이 있는데 그때 힘든 과정을 거치면 다음 단계로

당당하게 진입을 한다는 뜻이다.

박 군의 글이 진솔한 것은 육상부 출전에서 다른 팀들을 제치고 일등을 했다는 식의 영웅적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겨우 꼴찌를 면한 기록이라는 체험이 타인들에게 설득력과 공감을 일으키며 그 정도의 성적으로도

좌절하지 않고 즐겁게 한때를 지냈다는 말이 그의 앞날을 더욱 든든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고등부 학생들의 세상 보는 모습은 보다 원숙한 모양으로 전달되어온다.

이휘정 양은 인류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모바일 폰으로 세상을

내다보는 청소년의 호기심과 아울러 그 나이의 고민과 각오를 그려냈다.

물론 대부분의 다른 작품들도 세상과 대면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냈는데 이 양은 그런 방식에

대한 서술은 과감히 피하고 간접 대면을 통한 세상 보기를 아주 훌륭하게 그려내었다.

앞으로도 이런 발상의 전환이랄까, 시점의 변화를 통하여서 글을 쓴다면 독자들의 관심을

단숨에 끌어낼 수가 있으리라고 본다.

젊은 날의 고뇌하는 모습도 생생하게 잘 그려내었다.

 

 

유진희 양의 글은 아주 잘 짜여지고 잘 빚어놓은 전형적인 르포 형식이었다.

긴 글이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고 아울러 호기심을 끝까지 끌고 가는 능력이 높이 평가될

만하다.

물론 바로 인접한 나라, 아이티 공화국의 지진 참사라고 하는 대단한 주제가 훌륭한 글쓰기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유 양은 옆 나라에 지진이 나지 않았더라면 또 다른 지진에 버금가는 주제로 독자들을

이끌고 갔으리라는 짐작도 해본다.

다만 다소 아쉬운 것은 너무나 잘 짜여지고 완벽한 글쓰기를 추구한 나머지 청소년이 범할 수

있는 다소의 실수, 모자람 같은 것이 부족하여 오히려 설득력이나 공감대가 덜하게 되었다는

평가를 한다면 너무 과한 주문이 될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저널리즘 부분에 관심을 갖고 르포 문학, 기행 문학 같은 것을 전공이 아니더라도

계속 추구해볼 바가 아닌가 한다.

다만 글의 내용 중에 구체적인 인명과 직함을 언급한 것은 르포 문학적인 기록으로는

정확하겠지만 여기에서는 보편적 글쓰기를 지향하는 행사이고 방향인 만큼 적절한 수준에서

심사평자가 일부 생략해 놓았음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정다영 양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만난 세상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양의 둘레 사정이 우선 운명적 조건이기도 했겠지만, 글의 흐름을 보면 본인의 개성과

시각도 다소 우수어린 편이라고 느껴진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무조건 세상을 희희낙락한 시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인류사의 진정한 발전은 이렇게 삶의 본질과 어두움을 명상한 지적 소수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양의 글이 더욱 좋은 것은 그의 끝부분에 이런 인간의 한계상황 속에서도 “행복하기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라는 적극적인 삶의 철학을 이끌어낸 자세라고 하겠다.

 

 

정다혜 양도 앞서 말한 정다영 양과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다.

이름도 비슷하고 세상을 보는 눈도 비슷한 면이 있어서 혹시 자매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 보지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런 생각은 글의 평가와는 무관하지만 두 사람의 관념의 세계가 이 나이의 청소년들 보다는 훨씬

더 진지하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세상의 표면적인 밝은 면만 보면서 우리가 살아갈 것이 아니라 특히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 뒷면의 그늘도 음미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글의 끝부분에서 역시 새로운 희망과 적극적인 개척의지를 보여준 것도 가슴 든든하게 여겨진다.

 

 

김지영 양은 훌륭한 영문으로 세상을 보는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였다.

도미니카의 공용어가 스페인어이니까 김 양은 우리말과 더불어 3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젊은이로 성장해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이번 글짓기 대회가 한글로만 국한되어있지 않기에 영어로 된 훌륭한 에세이도 당연히 심사의

대상에 든다.

다만 앞으로는 우리말 글짓기와 영어, 그리고 스페인어 글짓기 등으로 다양하게 나누어 글을

모으고 다양하게 심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도미니카에 있는 교민들의 숫자를 생각해보면 현실적으로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김양의 글은 세상을 보는 일반적 시각과 아울러 멀고먼 나라에 와서 느낀 다양한 경험, 특별히

아이티 공화국의 지진 참사에 직접 달려가서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쳤던 일 등이 잘 그려져

있다.

앞으로 더욱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갖고서 정진하기 바란다.

또한 영문에 못지않게 한글 글쓰기에도 더욱 힘써 주기 바란다.

 

 

박지영 양은 8년간의 외국 생활 끝에 잠시 귀국하여 “멘토 수련회”에 참가했던 체험을

기록하였다.

오랜 외국 생활 끝에도 이렇게 훌륭한 모국어를 구사하여 생각을 정리한 점이 놀랍다.

본인의 말처럼 2-3년 정도 외국 생활을 하고도 우리말을 잘 못하는 참가자들도 눈에

뜨이는데 이보다 더 오래 외국에 있었던 박 양의 모국어 실력은 깊은 감동을 준다.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다양한 심리변화까지 놓치지 않고 잘 관찰하여

표현한 점도 훌륭하다.

글쓰기의 본질에는 이렇게 사람의 내면을 잘 그리는 것이 매우 중요한 뜻을 갖는다.

앞으로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마지않는다.

 

 

대학생 부에는 김찬희 양의 작품만 출품되었다.

교민들의 인구 구성비를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32년 만에 처음 개최한 글짓기 대회였으니 현재와 같은 호응만으로도 성공적이라고 자부할

만하다.

하지만 다음해부터는 대학생부에도 더 많은 작품이 응모되기를 바란다.

또한 이번처럼 영문뿐만 아니라 우리말로 된 글짓기 작품도 나왔으면 좋겠다.

 

김찬희 양의 영어 글은 수려하다.

문장력 뿐만 아니라 내용의 전개도 훌륭하다.

글의 앞부분에서는 김 양이 어릴 때 처음으로 자연현상에 접하며 갖는 호기심과 탐구적 자세를

회상하며 세상 보는 일반론을 내 놓았다.

그런가하면 그때 목격한 쌍둥이 빌딩의 무너져 내리는 광경에서 세상에 대한 “Why"라고 하는

의문이 샘솟듯 한다.

인간관계에 대한 첫 번째 경험은 대략 가족관계에서 비롯한다.

형제자매간의 갈등과 조정의 기억도 글 속에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리고 고국을 떠나 이방으로 와서 겪는 문화 충격과 인종이 다른 친구들과의 갈등과 교류와

화합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글의 결론 부분에서는 다시 내면세계로 성찰의 시각을 돌려서 조부모와 부모가 소유한

가치관에 대한 이해와 감사를 표시하고 앞으로 이 세상사에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들겠다는

각오를 나타내고 있다.

다시한번 우리말 글쓰기에도 더욱 적극적인 도전을 해주기 바라며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이상 고국을 떠나 머나먼 이국땅에 정착하면서 느끼고 체험한 청소년들의 다양하고 훌륭한

글들을 음미하여 보았다.

 

글짓기 대회의 성격상 다음과 같이 대상과 부문별 우수상을 결정하였다.

 

 

대상은 유진희 양의 ‘내가 만난 작은 섬, Haiti"

중등부 우수상은 신윤철 군의 “내가 만난 세상”

고등부 우수상은 이휘정 군의 “내가 만난 세상”

특별상에 김지영 양의 영문 에세이

대학부 우수상은 김찬희 양의 영문 에세이

 

유진희 (고등부)

 

 

내가 만난 작은 섬 ‘Haiti’

 

 

카리브해에 위치한 도미니카 공화국의 옆 마을 아이티. 라틴아메리카의 공화국들 중 유일하게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며

최초로 독립한 흑인 공화국이자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이후 두 번째로 독립한 나라지만, 잇따른 독재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중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바로 이 나라 아이티에서 얼마 전 세계를 뒤흔든 강진이 발생하였다.

지난 2010년 1월 12일, 아이티 공화국의 수도 포르토프랭스는 강도 7의 강진에 의해 초토화되었다.

이번 지진으로 무려 아이티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30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

아이티는 아프리카의 빈민국보다도 더 큰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나라이다.

먹을 것이 부족하여 일명 '진흙쿠키'를 만들어 먹는 나라. 그 곳이 바로 아이티였다.

아이티에 지진이 났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아이티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내가 돕고 싶다고 해서 학생의 신분으로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른들조차도 생명의 위험을 동반한

봉사활동에 쉽게 나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아이티를 위하여 기도를 하면서 보내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 일까.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선교사로 종사하고 있는 이모께서 1월 25일 아이티 히마니 근처 국경에 있는 병원으로 수송되어 온 환자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하는데 같이 가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신 것이었다.

이에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바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이번 아이티 지진 사태를 돕고 싶은 나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 드렸다.

이렇게 소중한 기회가 주어진 이상, 내 작은 손길이 도움이 된다면 아이티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음날, 국경까지 가는데 5시간 이상 걸린다고 하여 새벽부터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였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정말

오랜 시간 앉아 있다 보니 허리도 아프고 졸리기도 하였지만, 마음만큼은 즐거웠다.

 

아이티 국경에 도착하여서, 이제 시작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려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일을

시작하였다.

그곳을 둘러봤을 땐, 생각보다는 환자들이 얼마 없고 많이 호전된 것 같아 안심 이였고, 또 그곳엔 여러 나라 봉사자들,

의료팀들 등 많은 사람들이 아이티를 위하여 돕고 있었는데 그 분들 사이에서 나도 한 몫 할 수 있겠구나! 라는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환자들에게 먹을 것들을 나눠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텐트 안에 있는 몇몇 환자들에게 과자들을

나누어 주니 우리들의 할 일이 끝났다는 것이었다.

기대로 가득 차있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고 난 곧 할말을 잃었다.

아무리 조그마한 일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고 온 곳이었지만,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돕고 싶은 마음은 이렇게 간절한데 과자 몇 봉지로 끝이라니! 아이티 국경까지 오는 간은 5시간 이상이었고, 봉사는

단 십 분도 안 되어 끝나버린 것이다.

설마 이렇게 아쉽게 다시 집으로 가야 하는 건가라고 실망을 하고 있을 때 선교사인 이모부께서 온 김에 여기서 아이티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밖에 안 되니 아이티를 둘러보고 가자고 제안 하셨다.

난 이모부의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이티를 갈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안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회가 된다면 아이티를 보고 올 수 있게 해달라고 전날 밤

기도를 열심히 했었기 때문이다.

난 정말 이 기쁜 마음을 폴짝폴짝 뛰면서 표현하고 싶었지만, 같이 온 청소년들은 못 가는 입장이었고, 그들에게 혼자 가는

미안한 마음에 그저 조용히 인사를 하고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티로 가는 차안에서, 기대감에 부풀어 창밖을 내다보는 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 아이티의 상황은 어떨까. 아이티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해주고 도우러 왔을까.

나는 가서 어떤 봉사를 할 수 있을까. 수만 가지의 기대와 걱정이 오가면서 마음이 복잡해지려는 찰나, 창 밖 너머의 철로문과

상점들, 그리고 슬픈 눈빛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자 내가 드디어 아이티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마음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끌어 올라, 벅차고, 두렵고, 설렜다.

나의 마음은 아이티에게 말하고 있었다.

‘안녕 아이티야. 내가 왔어. 온 마음을 다해, 너와, 나를 나누고 돌아갈게.’

 

아이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아직까지도 이렇게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나라가 있었구나라고 깨달았다.

우리들은 항상 먹고, 자고, 입을 옷 의식주에 대한 걱정은 하고 살지 않는다.

그렇기에 남을 돕기 보단 내가 먼저 잘 살아야 한다는 이기적인 생각에 우리들은 주변은 살피지 않은 채 언제나

자기 자신의 앞가림하기에 바빴다.

나는 여태까지 무엇을 하고 살아 온 것 일까. 왜 하필 이 어려운 나라에 지진이 났을까. 나에 대한 실망감과 죄책감,

그리고 제일 어려운 나라에서 가장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빼앗긴 희망에 대한 속상함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아이티에 들어서면서, 내가 탄 차 오른쪽 바로 옆은 바닷물로 꽉 차있었고, 왼쪽엔 큰 산들이 있었다.

지진으로 인하여 강물이 계속 차오르고 있어서, 산에 있는 바위들을 깎아 물이 도로로 넘치지 않게 막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강물이 차있는 곳도 원래부터 물이 있었던 곳이 아니라 국경 사무실 같은 여러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지진으로

인하여 물이 차올라 이런 건물들은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이 물속에 잠겼다고 한다.

나는 도로 바로 옆에서 강물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기도 했지만, 물이 계속 차오르고 있다는 얘기에

걱정이 앞섰다.

 

아이티의 집들과 시장 그리고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다른 나라에 와있구나 라는 걸 세삼 느끼며 그 사람들의 문화를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티의 포르토프랭스를 빛나게 하는 화려함의 대명사 바로 ‘땁땁’이다.

대표적인 교통수단으로 ‘땁땁’이는 일종의 버스인데 차이점은 노선을 알리는 번호가 없다는 것이다.

땁땁이는 아이티 현지어인 끄레올어로 'Tap,Tap' 인데 영어로 번역하자면 'Very Quickly'의 뜻을 가지고 있다.

'목적지로 빠르게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버스정류장이 큰 의미가 없을 무렵, 지나가는 차를 멈추게 하기 위해 "STOP! STOP!"을 외쳤고 그 발음이 사람들의 귀에

"땁땁"이로 들려 이런 이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알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소박해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이티를 화려하게 만들어 주었던 ‘땁땁’이가 오늘만큼은 포르토프랭스를 더 슬픈 도시로

만들어 주었다.

울고 싶지만 웃고 있다는 실연의 고백처럼 이들의 삶은 가난과 질병, 고통을 화려한 버스로 가리고 있을 것이다.

 

아이티를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숙소(사랑의 집-고아원)에 도착하였다.

그곳에 살고 있는 아이티아이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 아이들은 한국말도 잘 알아듣고 말도 잘했다.

난 너무 신기해 계속 말도 걸고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 아이들은 ‘누나’ ‘언니’ 하면서 손을 잡고 집안도 일일이 구경시켜주며,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으면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정말 너무나도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 재미있게 놀고 있을 때, 우리 차 뒤에서 잘 따라오고

있을 줄만 알았던 쌀, 물, 과자 등 의료물품과 여러 식료품을 싣고 오던 짐차가 도미니카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족은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트럭을 타고 짐차를 찾으러 다시 밖으로 나갔다.

길거리에 너무 먼지가 많아 마스크 없이는 숨쉬기가 너무 어려웠다. 다행히 트럭을 찾았고, 우리는 밤늦게 그 짐들을

다른 숙소에 내리는 작업을 마친 후에야 숙소로 돌아와 쉴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너무나도 피곤해서 몸의 몸무게가 두 배가 늘어난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씻기도 귀찮고, 너무나도 배고프고 그냥 누워 자고만 싶었다. 그런데 마음속은 뭔가 꽉 찬 기분이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한다는 것이 힘들지만 즐겁다는 걸 느끼게 해준 날이었다.

나를 아이티까지 올 수 있게 해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했고, 고생 아닌 고생을 하면서 많은 교훈을 얻어 조금 더

성숙해 질 수 있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했다.

 

원래의 계획은 전날 밤 도미니카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어떨 결에 아이티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가자라고

계획이 변경 되었다.

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여진으로 인한 두려움으로 밖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비록 이곳이 잠자리도 불편하고 옷도 가져오지 않아 준비가 안 된 상태였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저녁을 먹자마자 바로 꿈나라로 빠졌는데 중간 중간 모기 때문에 달콤한 잠을 자긴 무리였다. 얼굴과 손을 제외한 몸은

옷과 이불로 감싸 완전무장을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이곳에 모기는 도미니카모기와 달리 크고 힘이 세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기들도 너무 많아서 모기 밥이 되지는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5시에 기상을 하고 간단히 빵으로 식사를 해결한 후, 의료팀들은 약품들을 가지고 봉고로 떠났고,

우리들은 미니트럭에 올라타고 구호품을 전달하러 900명 정도 모여있는 소나프랑카 공장으로 떠났다.

그곳으로 가서 다시 짐을 옮겨 내리고, 그곳에 일하는 직원들과 인사를 하며 공장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난 어린아이 마냥 큰 공장을 구경하면서 ‘우와!’ 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하였고, 그 곳 사람들을 위해서 간단히 예배를

드렸다.

찬양을 하면서 나는 아이티 사람들의 찬양에 감동을 받았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울려 퍼질 때의 그 짜릿함이란. 그 감동은 내 온몸에서 반응했다.

온 몸에서 소름이 돋으며 나의 동공을 커지게 만든 주인공들. 바로 ’아이티 사람들’ 이였다.

그 사람들도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았고, 나 또한 그들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칠 때 마다 난 그저 웃어주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난 지금 당신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힘내세요!’ 라고 난 눈빛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라면으로 식사를 해결하였다.

봉사 하면서 느낀 또 하나, 식사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소중함. 라면이든 빵이든 우리에겐 별거 아닌 거지만 이 나라

사람들에겐 소중한 식량들이기 때문에 평상시와 다르게 식사기도를 할 때 제가 또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지금 제가 라면을 먹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감사기도를 드렸다.

점심 먹은 후에 3시간 정도 휴식시간을 가졌다.

난 새벽 일찍 일어난 탓에 피곤해서 낮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이상하게 잠이 오질 않았다.

뜬 눈으로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에게 언제 또 이런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니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나를 위해서’ ‘나보단 남을 위해’ 라는 마음으로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라고

결심했다.

 

편안한 휴식시간이 끝나고, 오후 2시 30분에 병원으로 출발하여 병원마당에서 환자들을 위한 위로콘서트가 열렸다.

먼저 사랑의 집 어린이들과 우리가족이 4곡을 부르고 다음 대통령 궁 악단 10명이 연주를 하고, 이모부의 우렁찬 찬양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려대의료팀 14명이 “사랑으로” 를 부르며 무대를 장식하였다.

비록 큰 무대도 아니었고, 완벽한 무대도 아니었지만 환자들이 너무 좋아하고 아픔을 잊은 채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가 그들의 아픔을 다 치료해 줄 수는 없지만, 우리들의 목소리를 듣고 조금이나마 마음의 치료가 되었다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숙소까지는 버스가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에 중간에 내려서 걸어갔다.

안 좋은 공기 때문에 마스크를 하고 고아원 아이들과 손을 잡고 웃으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며 갔다.

걸어갈 때마다 바로 옆에서 무너진 집들을 보았는데 지진으로 인해 무너진 건물들을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있다는 것이 그저 놀랍고, 몇 분 안 되는 짧지만 강한 지진으로 인해 집들이 이렇게 무너져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는 사

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항상 뉴스와 인터넷 기사들로만 접했던 지진현장을 직접체험 하고 도우면서,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아이티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도미니카 집으로 떠나기 전 지진이 가장 심한 지역을 돌아보고 가기로 했다.

막상 사랑의 집 아이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오늘이 지나고 나면 앞으로 다시 보기 힘들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차에 타기 전, ‘또 와요?’ ‘다시 와요?’ ‘안 와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너무 피곤해 아이티에 있는 동안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한 후회만 남았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마지막으로 지진이

가장 심한 다른 지역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무너진 많은 건물들, 가라앉은 대통령 궁, 집이 없어 천막으로만 생활하고 있는 천막 난민 촌 사람들, 쓰레기와 소변냄새,

수 많은 상인들. 도미니카에서는 더운 날씨로 인해 길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란 찾기 힘든 풍경인데 이곳은 길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마지막으로 대통령 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이곳에서의 추억을 마무리 지으며 다시 도미니카로 가는 발걸음을 옮겼다.

 

택시를 타고 다시 히마니로 가서 그곳에서 도미니카까지 가는 소형버스를 타고 도미니카로 출발하였다.

가는 동안 수많은 검사가 있었다. 한번으로 끝나야 하는 여권검사가 수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검사 받다가 하루가 다 지나갈 것처럼 지루하게 느껴졌다. 검사를 하는 도중 여권을 안 가지고 탄 아이티 사람들 때문에

도미니카사람과 아이티 사람 사이에서 작은 말싸움도 일어났다.

일부 도미니카사람들은 아이티 사람이 자기네 나라보다 못사는 나라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하는 말들을 마구 퍼부었다.

난 버스기사에게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손님을 태우기 전에 여권을 미리 검사했더라면 시간도 아끼고 싸움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드디어 도미니카에 도착했을 때, 아이티에서 보낸 시간은 2박3일 이였지만 꼭 몇 주간은 아이티를 갔다 온 기분이 들었고,

도미니카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일단 무사히 아무 일없이 아이티를 잘 다녀올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렸고, 나 또한 아이티를 다녀온 게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봉사의 맛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혼자만 잘나고 잘살아서 뭐하겠는가. 세상에 서로 도우면서 서로 잘사는

것보다 행복한 것이 있을까.

아이티에서 보낸 시간은 여태 동안 나만 생각해온 이기적인 나를 회개하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준 고귀한

시간들이었다.

 

“I am hungry, I need help” 아이티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글이다.

우리는 음식 걱정 따위 없이 잘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에겐 하루 생계가 위험하다.

이번 지진으로 인하여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아이티를 돕기 시작했지만, 꼭 지진이 아니더라도 아이티는 도움이 필요한

나라였다.

아이티뿐만 아니라, 지금 세계적으로 궁핍한 나라들이 많이 있다.

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준다면 배고픔으로 죽어가고 있는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도움이 아니라 조금의 관심이었다.

우리들의 관심과 사랑을 모아 한 생명뿐만 아니라 어려운 나라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난 이 자랑스러운 일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아이티는 결코 좋은 환경의 나라가 아니었다.

배고픔과 여러 가지 질병에 허덕여 죽어가는 사람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무더운 공기와 살인적인 햇볕. 군대처럼

떼로 몰려드는 모기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공격했고, 그 흔한 물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늘 목이 말라 있었다.

하지만, 아이티는 내가 보아왔던 그 어떤 곳보다도 따뜻하고, 행복하고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곳이었다.

나를 쫓는 아이들의 살가운 눈인사와 고개만 들면 언제라도 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림처럼 멋진 하늘을 볼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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