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2011 끝 달을 보내는 정경

원평재 2011. 12. 17. 21:47

송년의 달, 12월이 종종걸음치며 빠르게 지나간다.

여기저기 아쉬움 달래는 모임도 많다.

다만 덫에 걸린 야생동물의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아니었으면 싶다.

끝 달을 보내는 마음, 억지 여유라도 부려보고 싶다.

 

문단 송년회도 분주하다.

그런데에 쏠려다니기 보다 조용히 글밭이나 가꾸는 것이

글을 사랑하는 사람의 진정한 자세같기도 하지만

감성 예민한 이들 사이에 상호 연민으로 끼어드는 것도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일인가 싶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해묵은 자성의 질문,

바위같은 질문에 모래처럼 답해 본다....

 

"문학은 인간생활의 거울이다. 그 거울을 통하여 인간이 더듬은 과거를 알고
그 과거를 거울로 장만하여 미래를 내다 보는 것"

이런 모범답안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문학이 없는 동물들은 자기를 더듬어 볼 수도 없고 또 거울을 통해
미래를 예상할 수도 없다는...

자못 인간 중심의 주장이 거룩하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 사이에도 "고갈의 문학" 시대이거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석양에 비친 문단의 송년 모습 몇군데를 스케치하여 본다

한국 문인협회의 이전 기념식이 지난 12월 7일에 있었다.

대학로 예총회관을 떠나 목동 대한민국 예술인센터 10층 1017호로

이사를 한 날짜는 지난달 22일이었으나 정식 이전 기념식은

이 달 12월 7일 오후 두시부터 사물놀이패의 지신 밟기로 시작이 되었다.

창립 50주년 기념의 해에 때맞춰 이루어진 새 보금자리는 옹색했던 대학로

사무실에 비하자면 그나마 대궐이라고나 할까....

정종명 이사장의 기념사

전지명 대변인의 문학헌장 낭독

이광복 문협 상임이사의 경과 보고

축시 낭송

시 낭송, 낭독회가 열기를 띄었다.

시를 쓰는 친구 부부의 모습이 다정하였다.

사회를 맡은 차윤옥 편집국장

건배와 다과회

목동의 대한민국 예술인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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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의식 소설동인집이 나왔습니다.

문학과의식 출신 소설가 17명의 단편소설을 엄선하여 엮었습니다.

356면/신국판/12000원

문학과 의식 2011 소설 동인지 서문

 

누구라 문학의 종언을 선언했던 가.

소설 문학의 고갈을 누가 주창했단 말인가.

문학 장르 중에서 소설은 인류가 체험한 문학형식 중에서 가장 짧은 역사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야기 문학이 근대 리얼리즘 서사형태로 스스로를 옥죈 자업자득으로부터

족쇄를 푼다면 그 기원을 원시 수렵시대의 암각화 속 서사로 올라갈 수도 있고,

내려와서는 천적처럼 경계해 온 현대 영상 콘텐츠에서 긴 미래를 내다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문학의 고갈과 종언을 푸념한 것은 지난 세기 후반의 단발성 히스테리만은 아니었다.

문학통사로 고증해보면 잊을 만 할 때마다 대두 되었던 일종의 병리현상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현상은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아서 각 시대가 자기 채찍으로 여기는 순간

다시 긍정적 존재의 이유를 다해왔다.

근대 소설 문학의 개화를 산업사회의 대두와 맞물리게 인식하는 통념으로 보아도

불꽃처럼 타오른 19세기말의 사실주의적 자연주의 시대와 20세기 초반 모더니즘의

격랑 속에서 소설 장르는 여러 형태로 제창된 위기와 근심의 문학이었다.

사진술이 회화 예술에 위기와 기회를 줄 때 서사 쪽에서는 영화와 TV가 내러티브의

천적처럼 등장하고 우세하였다.

하지만 이럴 때에도 리얼리즘의 정수를 자처하는 소설 쪽에서는 의식의 흐름 등,

내면 독백 방식으로 물꼬를 틔었다.

그러나 이런 모색 즉 모더니즘의 주지주의 적 경향이 너무나 극성을 부려서 이야기는

사라지고 앙띠 로망등의 기법만이 실험실에서 난무하며 독자의 이반을 초래하였을

때에는 다시 플롯을 되찾아오는 노력, 예컨대 미국의 경우 유태계 문학 르네상스 등이

꽃을 피워서 떠나는 연인들을 다시 불러오기도 하였다.

 

세상은 복잡하게 되었다.

아니 항상 복잡하였다.

모더니즘이 후기 모더니즘에게 자리를 비우고도 그 경계의 모호성에서 주춤거리며

비평 문학 쪽에 원본 텍스트가 들어 설 땅을 다 빼앗길 즈음 소설 문학은 다시

위기론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지난 세기의 후반부와 세기말 그리고 새천년이 시작된 작금의 현상이다.

존 바스(John Barth)가 고갈의 문학을 주창하고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근대문학의 종언’을 주장하고 나섰다. 정말 문학의 위기에 대한 목소리는 꾸준했지만,

이처럼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으로 리얼리즘 문학, 곧 소설 문학을 주요 타깃으로 하여

‘죽음’을 이야기한 사람은 가리타니가 처음인가 한다.

그는 근대문학의 범위를 소설로 국한시킨다. 근대문학의 특징을 소설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 것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가 선언한 근대소설의 종언에는 아래와 같은 진단이 따른다.

첫째, 네이션(nation, 근대국가) 형성의 기반이었던 근대소설이 오늘날에는 그 기능을

할 수 없게 됐다.

둘째, 텔레비전, 비디오, 컴퓨터 영상, 음성의 디지털화 등 시청각 미디어가 대거

등장했다.

셋째, 자아의 관념이 ‘내부지향형’에서 ‘타인지향형’으로 변했다.

모두 경청할 만한 대목이다. 깊은 성찰도 필요하다.

 

하지만 계간 문예지 <<문학과 의식>>이 “의식 있는 문학운동”을 천명하며 고고의

소리와 함께 이 지상에 태어난 때는 바로 이러한 우려가 나라밖 문학인들의 고고한

근심으로 세상을 횡행할 바로 그 때였다.

겁도 없었다. 걱정을 내세우며 선각자를 자처하면 무엇 하나.

계간 <<문학과 의식>>이 쟁기와 보습으로 글밭을 일구어서 이랑에 씨앗을 뿌리고

마침내 가을걷이를 부지런하게 해 나온 지 어언 22년!

문학의 각 장르에서 문제작과 문제 작가를 배출해 낸 <<문학과 의식>>의 문학사에는

소설 장르라고 뒤질 리가 없고 나름의 특징도 동인들 사이에 교감이 되어 연면히

전통의 이름으로 지속된다.

 

물론 <<문학과 의식>> 동인들이 색조나 패션에서 동질적일 이유는 없다.

그러나 각양각색의 서사기법이 구사되는 속에서도 이야기를 중히 여기는 습관은

상존하며 아마도 소설 문학의 위기 탈출에 한줄기 서광이자 방향제시가 아닌가 한다.

팩트와 픽션을 섞어서 팩션 장르를 이 땅의 문단에 거의 처음으로 도입한 작가가

있는가하면 미니멀리즘, 내적독백, 해체 등의 메타 픽션을 실험하는 작가,

그런가하면 전통적 내러티브를 구사하는 동인들이 혼재한 가운데에서도 이야기를

잃지 않겠다는 묵언의 전통이 22년 동안 녹아있는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여기 묶어서 펴낸 17인의 각양각색이 고갈의 문학 시대에 새로운 변경 개척으로

마침내 옥토의 상징이 되었음을 천명하고 또한 자부한다.

 

문학과 의식 소설 동인지

편집위원 김유조 안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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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우 학맥으로 엮어진 문학회 경맥 문학회도 송년의 밤을 가졌다.

개인적으로는 회장의 짐도 벗는 날이어서 홀가분한 문학의 밤으로

뇌리에 남게 되었다.

마침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의 컨퍼런스 홀이 리모델링을 마친

첫번째 행사라서 더욱 의미가 컸다.

안동에서 올라오신 김원길 지례 촌장을 모시고~~~.

푸치니 홀의 전속 악단의 축하 재즈 연주

원로 문인들의 축시 낭송과 문학 강연이 이어졌다.

안동 지례촌이 소개된 미슐렝 책자

시인 김원길 촌장께서 소개하고 있다.

시인 회원들의 시 낭송

새 회장 전선봉 문인의 취임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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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재경 동기회의 재미있는 장면들

초대가수 조용(영?)의 열창

엘레지의 여왕 이(임?)미자 가수 출연

오성근 가수의 "있을 때 잘해"

김자옥 탤런트의 부군이라고 한다.

국민가수 나(너)훈아는 끝내 출연치 않았다.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Concerto for Violin & Oboe in C minor BWV 1060

바흐 - 바이올린과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 C minor BWV1060

violin, Kyung Wha Chung

oboe, Heinz Holliger

1. Allegro

2. Adagio

3. Allegro

오보에 협주곡과 바이올린 BWV 1060은 작곡연도가 불확실하다.

1920년대에 음악학자 막스 세이퍼트(Max Seiffert)는 BWV1060의 음역과

다른 음악적 요소를 분석했고, 이 작품이 처음에는 오보에와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었다고

추론했다; 세이퍼트는 그 곡이 오보에가 더 잘 편한 위치를 점할 수 있도록 d 단조로 조를

바꿨음을 보여주는 책을 출판했다. (브라이트코프<Breitkopf>의 한 출판사에서 발간한 1764년의

한 카탈로그에는 바흐의 오보에와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란 이름으로 리스트에 올렸다.

작품의 중요점을 언급하는 데는 실패하지만, 최소한 바흐가 어떤 곡을 바이올린이 들어간

곡으로 만들었다고 확인은 해준다) 학자들의 의견들은 다양하지만, 이 협주곡은 c 단조에 맞춰져

오보에와 바이올린으로 개작되어 여기 연주처럼 - 두 대의 바이올린으로 된 버전과

마찬가지로 존재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