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태산은 태산이다

원평재 2015. 4. 25. 10:38

 

 

 

 

 

 

 

언제부터인가 "태산"을 "야산" 쯤으로 여겨왔다.

아마도 중국 문학을 하는 동료 교수가 일찌기 태산을 다녀와서 그런 이미지를

심어주었던 탓인가 싶다.

이후 태산에 대한 편견은 마치 윌렴 서머셋 모옴이 폴랜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근거도 없이

"황색 도시"라고 여겼듯이 내 마음에 고정관념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황색도시라는 편견은 그의 자전적 글 "서밍 업"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또한 조셉 콘래드가 그의 중편 "어둠의 속"에서 벨기에의 수도 브륏셀을 회색으로 잘못 

인식했던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었달까.

(물론 콘래드의 이 편견에는 나름의 의미가 좀 있지만).

 

아무튼 이번에 태산을 오르면서 "태산=야산"이라는 편견은 산산조각이 났다.

태산은 정말 태산같이 큰 무더기였다.

위 사진에서 보듯 올라가기에는 무척 힘이 들었다.

 

하지만 무슨 신비로움이랄까 전율을 주지는 않았다.

상상력을 유발하는 황산의 경개, 장엄한 장가계의 천문산 같은 감동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산이 중국사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이 나라의 중원지대에

이만한 산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태산은 태안 시에 소속된다.

태안시의 거리 모습

산둥성의 태산(泰山, Taishan)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중국 표현으로는

世界複合遺産)에 1987년 지정되었다.

태산의 높이는 1545미터인데, 

예로부터 동악(東岳), 태악(太岳), 대종(岱宗), 대산(岱山)이라 호칭되었고,

춘추시대(BC722~BC481)부터 태산이란 이름으로 정착했다.

오악독존의 태산은 오랜 시간동안 중국민들의 정신적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오악은 동악 태산(1,545m), 서악 화산(2,160m), 남악 형산(1,265m),

북악 항산(2,052m), 중악 숭산(1,512m)을 말한다고~.

산동성 중부의 태안, 제남, 역성, 창청 4개 시현에 걸쳐 있는 태산은

총면적이 426㎢에 이르며, 동서 30㎞, 남북 40여㎞에 달하는 위용을 자랑한다.

중국의 제왕들은 태산에 올라 봉선제사를 지내야만 진정한 제왕으로 간주되었다.

제왕이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태평하고 번영한 것으로 간주되어서 태평문 등의

이름도 산간 절집에 세워져있다.

 

태산 정상 "옥황정" 위에는 역대 제왕이 봉선하던 고등봉대(古登封臺)가 지금도 남아있다.

위 사진의 왼쪽편에 보인다.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제를 비롯해 한 무제, 후한 광무제, 당 고종, 당 현종,

송 진종, 송 휘종, 원 쿠빌라이, 청 강희제, 청 건륭제 등이 태산에 올라 봉선의식을

거행하였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전후 중국정부는 태산의 등반 조건도 까다롭게 하여서

산의 바로 아래 케이블 카(삭도) 타는 곳 까지는 반드시 공해없는 전기차로 올라가게하였다.

조손 간에 연을 올리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전기차에서 내려 케이블 카를 타러가는 길도 벅차고 힘이든다.

케이블 카를 타는 곳까지의 긴 평지 길도 만만치 않다.

또한 케이블 카를 내려서 태산의 정상, 옥황정까지 올라가는 길은 더욱 가팔라서 많이들

중도 포기하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중간에 포기하다니, 어불성설이다.

밑에서부터 걸어서 올라오는 중국인들도 많이 보게 되는데 배달겨레의 자존심이 중도포기를

허락할 수 없었다~!

 

 

 

중국의 힘인가 싶다.

 

 

 

케이블 카 타는 곳의 관리 요원. 여성 산악 레인저스 같다.

 

 

 

케이블 카를 내려서 다시 걸어올라가는 긴 행렬.  곧 힘든 계단이 속속 나타난다.

 

 

인파, 또 인파 (인해 전술이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홍콩이나 상해 등에서 보는 절집 행사를 연상하면 틀립없다.

산정으로 가는 포터의 모양이 이채롭다.

 

라면으로 요기를 하는 중국의 젊은이들~

 

우리는 남천문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고~

                   

 

 

 

 

 

 

 

이 "번제 의식"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확인하지 못하였고~

바위에 글을 새겨넣는 못난 짓들이 눈쌀을 찌프리게 하는데

저기 바위의 황금 글자들은 당 나라 때 현종의 짓이라고 한다.

 

우리 말과 일본 말로 설명을 하고있어서 반분은 풀렸다.

 

옥황정으로 바로 올라가는 길이라는 안내표지가 피로를 풀고 힘을 솟게 한다.

 

옥황정 앞의 고뇌?

오르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런가

 

드디어 정상, 옥황정에 올랐다.

저기 왼쪽에 "고등봉대"의 "古" 자가 보인다.

 

 

이제 내려오는 길에서야 절집들의 지붕도 눈에 들어온다

 

 

우리를 실어갈 전기차도 보인다.

태산이라는 표지가 붙은 모자를 사서 썼다.

쟈격증인가? 함께 웃었다~~~.

태안을 떠나서 이제 공부가의 마을이 있는 곡부로 와서 여장을 풀었다.

"유붕이자원방래하니 불역낙호"아

공자가 주유천하한 그림이 새겨져있습니다.

공자님의 마을이 틀림없습니다.

 

 ♥이경희 연주♥

 


San Franci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