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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인사를 신비의 산정에서

원평재 2016. 1. 1. 06:28

 

 

 

 

 



 

일월성신의 운행을 관찰하고 동지와 하지의 태양을 관할(?)하는 석조 구조물을 갖춘 신비의

도시 마추피추, 온갖 상상과 억측과 이설과 야설의 대상인 공중부양 도시 마추피추, 

그 존재의 의미(레종데트르)를 태양 숭배와 제천(祭天) 의식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잉카의 지배계급은 민중들을 태양의 자손이라고 치켜세운다. 그리고 지배계급은 자신들이

태양과 소통하는 대행자의 역할을 신탁으로 받았다고 강변한다.

해의 길이가 점점 짧아져서 최단으로 줄어들었을 때(그 때가 동지), 그들은 제식을 차려서 

해가 길어지기를 기원한다.

과연, 해는 제사장들의 기원으로 다시 길어진다---. 

 

지배계급은 그들의 지배체제와 시스템을 유지할 목적으로 마추피추라는 거대한 제단을

마련하고 유지 보수 개축하면서 천년만년의 영화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과 화포를

갖고 거기 더하여 유행성 질병을 지닌 외부의 침략자들로부터 그들은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쇄국하면 결과는 처참할 뿐이다.

오얀따이땀보에서 기차를 타고 마침내 마추피추의 산 아래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지그재그로 달리는 작은 승합차를 타고 산중턱까지 올라가서 다시 마추피추 정상으로

걸어올라간다.

마추피추는 정확한 발음이 "마추삑추"라고 한다.

감동이 너무 커서 일단 길 건너편 포토 포인트에서 사진부터 한 컷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으니 비슷한 구도의 그림이 나왔으나 이 보다

더 좋은 각도나 방법이 있을리 없다.

아, 마추피추(Machu Picchu)~!

꾸스코 시에서 우루밤바 강을 따라 북서쪽으로 114km 내려 간 지점에 강 수면으로 부터는

400m 높이, 해발 2,280m, 면적 1만3천 km² 크기의 잉카 유적으로, 아직까지 해명되지 않은

많은 수수께기를 지닌 대상, 마추피추!

원래의 뜻은 이곳 케추아족 언어로 "늙은 산"이란 뜻이라고 한다는데 오래된 산이란 뜻이

잘못 전달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마추피추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어서 지금 무어라 설명을 덧부칠

재간은 없다.

잃어버린 도시, 구름 속의 신비체, 허공 중의 왕궁, 공중 부양 도시 등으로 표현을 한다면

일단 틀림은 없다. 하지만 정복자 삐사로의 추격을 피하여 잉카의 왕이 이 도시를 비밀리에

순식간에 만들고 수만명의 잉카족들이 숨어서 생활하였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닌가 싶다.

우선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아도 이곳에 수만명이 머물 형편이 되지 않는다.

인골과 짐승의 뼈가 많이 출토되었으나 인골의 경우 800여명의 젊은 여성으로 추정되는

흔적만 있고 남성의 뼈는 출토되지 않았다---.

이곳은 필요할 때에만 집중적으로 사용된 대형의 제단에 다름아니었을 것이다.

1911년 미국의 역사학자인 하이럼 빙엄이 청년 시절 처음으로 이곳을 발견한 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잉카 이전의 유물도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운이 좋았는지 안목이

좋았는지 삽시간에 전설 속의 이 마을을 찾아냈고 유물 발굴도 순식간이었다.

이 지역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자연 유산이 되었고 아울러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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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1.

 

이곳에서도 꾸스코에서 본 뛰어난 석조술을 목격한다. 다만 일시에 모두 일군 것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보완하고 보강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여러 세기에 걸쳐 축조된 신전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물론  저 아래 꾸스코를 장악한 통치자에 의하여 생활의 터전을 바닥에 깔고

태양 신에게 의식을 올리는 터전으로 유지해온~~~.

사진설명  2

지진에도 끄떡없이 버티어 온 이 석조물이 기울어지기 시작한건 마추픽추에 관광 사업이 불붙기

시작한 다음의 일이라고 한다.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차량들이 지반을 흔든 탓이라고---.

이곳의 공무원들도 다 알고 있지만 휴식년 같은건 수입 때문에 어림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사진설명 3

내려다 보이는 저 구조물은 하지와 동지의 햇살을 이용한 제식의 장소인듯,

태양을 우러르게 하면서 통치자는 계급과 질서를 유지하였다.

 

사진설명 4

신전의 로비에 해당되는 이곳은 제사장들이 제례와 의식의 준비를 하던 곳이다.

저 벽감이 처음에는 제복이나 제기를 두는 장소로 해석 되기도 했으나 잉카인들이 키가 크지

않은데 그렇게 불편한 높이에 그런 마련을 했을리 없었을 것이다.

저 공간의 용도는 아마도 얼굴을 묻고 경전을 외우면 공명작용으로 머리 통이 울림과 함께

최면 상태에 들어갔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사진설명 5

 

저 다락 농법은 단순히 식량을 자급하기 위한 수단이었기 보다는

일종의 심신 단련의 방식은 아니었을까

사진 설명 6

이들은 또 천문과 지리에도 밝아서 지구 자장을 이용한 에너지 충전 장치도 마련하였다.

기, 혹은 끼를 받고 있는 남녀들~~~.

사진설명 7

 

태양의 후손답게 동지가 지나면서 햇살이 다시 살아나는 궤적을 돌 신전에 장치하여

민심을 잡고 통치에 임하였다.

사진 설명 8 

 

안데스 산의 모형으로 떠다놓고 이곳에서도 제사장들이 제식을 올린곳이라고.

 

사진 설명 9

 

 

마추피추 성채는 귀족과 평민 계층이 따로 구역을 정하여 살았다. 이곳은 평민의 거소였다.

불편하게도 이층 구조를 한 모양으로 보아서 나온 추측이다.


사진설명 10.

 

감옥의 일부라고 주장되던 곳인데 아마도 장례 의식의 집전 장소가 아니었던가 재 해석이

시도되고 있다. 하여간 거석을 파서 각종의 의식에 맞게 만든 모습이 대단하다.

사진설명 11

잉카의 후예들이 동족(?)에게 호감을 보인다. 수학여행 온 여학생들과 금방 마음으로 통했다.

사진설명 12

콘도르는 잉카인들이 숭배한 대상이자 일치이기도 하였다.

사진설명 13

석양이 가까워온다. 이제 다음 기행지로 떠나야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