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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좌담회에 붙여서

원평재 2020. 5. 25. 10:49

 

 

 

(국제문예) 노벨문학상 좌담회에 붙여서

 

노벨상, 특히 노벨문학상에 대한 우리의 염원은 간절한 바가 있다. 이웃한 일본과 중국이 벌써 복수의 수상자를 내어서 아시아인으로는 인도의 타고르를 포함하면 네 명이나 되었는데 고유한 문자와 유구한 문화전통을 가진 나라로서 최근에는 경제적으로도 OECD의 반열에 든 위상을 생각할 때 당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노벨 문학상에 근접하지 못한 원인은 오직 번역작업이 미흡하여서라고 간단명료하게 치부하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 높은 목소리의 발화자들은 사실 일 년에 문학단행본을 한권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출판계의 빅 데이터가 나타내주는 지수이다.

그러나 번역문제만 아니라면 우리가 꼭 노벨문학상을 탈 여건을 구비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분석해 보아야만 한다. 우리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위해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의 개략적 조건들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작가에 대한 국민적 공감의 문제일 것이다. 우리처럼 작가에 대한 호, 불호가 극단적인 분위기에서는 장애가 아닐 수 없다. 또 하나는 작가가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유지해야 된다는 점이다. 이는 인권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작가의 현실참여와는 다른 개념이다. 과도한 민족주의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자기 관리를 잘 해서 사이버공간에 비난이 없어야 한다. 최근 국민적 여망을 받았던 분들이 미투 운동이나 표절문제로 구설에 오른 점은 한탄스럽다. 여기에 더하여 민족의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춘 인문학적 대가들이 작가로서 나라에 버티고 있는가 하는 점도 들어간다. 사실 창의적인 사람들이 기초과학을 버리고 의학계로만 진출하고, 인문학을 버리고 법학이나 경상계로 인생의 목표를 바꾸는 한국적현실에서 노벨상 전반에 대한 국가적 열망이란 난센스가 아니겠는가.

지난 35년간 제가 읽은 한국 소설 중에는 퓰리처상이나 부커상 후보에 오를 만한 책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시도 마찬가지로, 위트브레드 문학상 후보에 오를 만한 시집 또한 많았다고 할 수 없지요.”(케빈 오록 경희대 명예교수) “제일 중요한 것은 작품이 돼야 한다. 그냥 보여주는 것은 문학이 아니다. 한국 문학작품에는 다큐멘터리 성 작품이 너무 많다. 생활을 보여주는 드라마와 비슷하다. 문학은 현실을 뛰어넘는 픽션이어야 된다.” (서강대 명예교수 안선재) , 외국인 학자들의 술회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냉정한 자아성찰과 국민적 기초체력을 갖춘 다음에 번역이라든지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기술적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사실 번역의 문제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번역의 기술적 영역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적 여건이 문화적으로 모두 무르익은 풍토에서 나오는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2명이나 배출한 일본은 1945년부터 무려 2만 여 종의 문학작품을 번역해 외국에 소개했는데 비해, 한국은 2001년에 겨우 한국문학번역원이 설립되어 그 궤도를 정립하고 있는 수준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1968년 노벨상 수상 기자회견에서 이 상의 절반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Edward Seidensticker)의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덴스티커는 설국(雪國)을 영어로 소개한 번역가이자 작가다. 많은 사람들이 사이덴스티커의 설국번역본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원문보다 훌륭하다고 말할 정도였고, 그 덕분에 일본어로만 작품을 쓴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전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한강이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았을 때에 그 영문번역이 원문과 다르다고 일자일언까지 문법을 들이대며 공격을 한 영문학자들의 분위기로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출범한지 얼마 안 되지만 한국문학번역원부설 번역전문도서관에서는 20196월 기준으로 우리문학을 지금까지 무려 46개의 언어로 번역하였다. 그 중 가장 많이 번역된 언어는 영어로 총 1458종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의 순서였다.

한편 아시아 출판사에서 기획한 한국 대표 작가의 단편 한 편을 영어로 번역해 한국어 원문과 함께 싣는 시리즈,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110>도 완간되었다. 이 시리즈는, 한국 대표 작가 110명의 대표 단편 소설을 선정해 영어로 번역, 한국어 원문과 함께 싣고 작품에 대한 해설과 비평까지 수록하고 있다. 이 시리즈에는 데이비드 매켄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장, 브루스 풀턴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교수 등이 기획 및 번역자로 참여하였다. 번역작업에서 내국인 보다 현지인 번역자를 키우고 특히 1.5세대 교민자녀들을 초빙하여 국내에서 전문 번역자로 양성하는 방법을 강구해야할 당위성을 엿본다. 이 시리즈는 아마존을 통하여서 1000권 이상을 우선 판매하였는데 앞으로 유통부분도 우리문학의 세계화를 위하여 크게 신경을 쓸 일이다. 최근 국제 펜 한국본부 손해일 이사장이 야심차게 설립한 문학번역원(원장 정정호 중앙대 명예교수)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런데 문학작품은 번역을 잘 하느냐의 여부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을 출판하여 독자층을 형성하는 단계가 최종의 목표단계이다. 앞서 아마존으로 1000여권의 번역 작품이 판매되었다지만 사실상 미미한 수준일 따름이다. 외국의 유명 출판사에서 출판이 되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가 쉬운데 지금까지는 그런 시도가 별로 성공한 적이 없다. 현상타개책으로 외국 현지 법인을 설립, 출판사를 만드는 방법도 고려할만한데 아직 시원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세계화 일반화의 전략에 너무 몰입하여 차별적 방향성을 잃을 수도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자 발표 때 선정 이유로 인류의 보편성을 지역 민족의 특수성을 통해 들여다봤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일본 그림을 연상시킨다. 그림 속의 아름답고 열렬한 사랑과 표정의 상징들은 인류의 생명이 결합되는 것을 나타낸다.”(가와바타 야스나리·1968) “보편적 타당성과 언어적 독창성으로 중국 소설과 드라마의 새 길을 열었다”(가오싱젠·2000) “고향 이스탄불의 우울한 영혼을 추적하면서 문화의 충돌과 교차에 대한 새 상징을 발견해냈다.”(오르한 파무크·2006) 등이 그러하다. 더구나 최근에는 2015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나(산문;체르노빌의 목소리), 2016년 밥 딜런(가수)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순수문학을 전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도 수상했다. 즉 인접 분야에서 경계를 넘은 문학적 활동으로 세계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도 포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보면 한국 문학이 노벨문학상과 거리가 멀 이유가 없을 듯하다. 한국 작가들은 지난 세기 식민지, 남북분단과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등 세계 인류가 겪었을 보편적 고뇌와 갈등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했고 이를 형상화한 작품도 없을 리 없다. 폴란드 작가들이 네 차례 받은 이유도 강대국 지배, 세계대전과 유대인 문제, 사회주의 등을 다양하게 경험한 덕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오늘날 노벨문학상을 두고 다양한 국면에서 진지하고도 냉철하게 성찰하는 국내문단의 움직임으로 볼 때 우리의 염원이 머지않은 장래에 성취되리라는 기대와 가능성을 예감한다. 결론을 예감으로만 채우기에는 부족감이 따라서 최근 번역되어 해외의 주목을 받는 희망의 별들을 여기에 적시하며 소론을 마친다. 우선 이문열, 이청준, 황석영 등의 기성작가와 김영하, 신경숙, 한강 작가의 단행본을 들 수 있으며 더 뉴요커에서는 편혜영 작가의 발췌본을 실었고 마노아에는 한국시인 44인의 작품 180편이 수록되어 해외에 이름을 알렸다. 가디언 지에도 고은, 김기택, 문태준, 유안진, 이성복, 최승자 등의 시가 9회에 걸쳐 게재된바 있다. 누가 언제 저 월계관을 쓸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