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리야, 옛땅! 연변과 만주 벌판

고백의 끝 부분 원본(성원에 힘입어)

원평재 2005. 4. 11. 20:33

바람찬 거리에는 평일 낮인데도 손님보다 많은

장사꾼들이 세상에서 이 곳에 없는 물건은 없다는 듯이

득시글거렸고 구매력은 모르겠으되 할 일이 있는 듯,  혹은

없는 듯한 구경꾼들의 엄청난 존재로 보아서 이 곳이

만만한 시장 통은 결코 아님을 실증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장이 워낙 크고 생소해서 그런가 지난번에

눈 여겨 두며 책도 싸게 사들였던 헌책방 난전이 있던

골목이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조선 말 됩니까?"
내가 장바구니를 든 중년의 부인에게 말을 부쳤다.
"말하시오."
원 참,  무뚝뚝하기는---.
"여기서 제일 붐 비는 골목이 어딥니까?"
"복잡한데 말이오? 여기루 꼿꼿이 가다가 왼손 편으로

틀으시오."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고 이 여인은 말의 끝에 가서는

마침내 미소마저 지어주며 이 수염 나는 자리에서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동포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복잡한 거리 한켠에는 과연 그 헌책 난전이 있었는데

헌 책이 더 보충되었는지 풍성했고 구경꾼들도 더

늘어난 것 같았다.
나는 서울 식으로 무심을 가장하고 이것저것 책들을

뒤적였다.

 

 

지난번만큼 가슴을 뛰게 하는 책자는 이제 없었으나

적당한 사냥감들이 몇  점 눈에 찍혔다.

여덟  권 정도를 수집하여 주인을 보니 지난번

사람이 아니라 좀 약게 보이는 얼굴이었다.
역시 필담으로 23원을 내라고 하는데 원래(?)데로라면

20원 미만일 듯하다.

깍지 않고 선뜻 100원짜리를 내미니 근처의 난전상들과

협조를 해도 거스름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할 수 없이 내가 밥 먹고 돈을 바꾸어 온다는 시늉을 하니

아주 반가워한다.

 

나는 인근에서 밥집을 찾아보았다.

사실 지난번에는 "랭면 집"을 찾아 들어갔다가 좀 낭패를

보았다.

옥수수 가루 "보통 랭면"이 6원인데 엽차를 따로 주지

않는거다.

중국의 차 인심이 대단한데 랭면 집은 물냉면에다가

육수는 아낌없이 한 사발이나 부어주면서 물은 광천수를

3원에 사 먹던가 12원짜리 "천진 맥주(碑酒)"나 연변에서

나오는 "빙천 맥주"를 6원에 사 마시라는 것이다.

둘러보니 모두 낮부터 맥주를 두어 병씩 들이키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오기로 찬 육수만 들이키고 나온 기억이 난다.

중국에서 유럽식을 만났으니 차이나는 역시 차이가 많이

나는 모양이다.

지난번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려고 근처의 다른 곳을

둘러보니 거기가 바로 누각이 있는 시장통 입구,

개장국 집이 즐비한 곳이 아닌가.

 

 


큰 규모의 개장국 집 앞에는 호객 하는 청년들이 서울의

기사식당 앞 같았고, 과연 자가용 족들이 줄줄이 차를

대고 있었다.
에라, 나도 이 "국자가"(연변이 작은 마을이었을 때의

옛 이름)의 바람 부는 거리에서 이미 "리발점 사태" 이래

비린 냄새가 풀풀 풍기는 마당에 물불을 가릴 때냐.
지난번 이 곳에 있는 교수 한 분이 "보신탕은 드시냐?"고

했을 때 정중히 사절했던 생각을 죄송하게 반추하며

나는 그중 가장 큰 개장국 집으로 발을 옮겼다.

 

"이거?"
혼자냐는 물음이었다.
"그래, 혼자 왔네." 나의 큰 목소리.
아래층은 이미 손님이 꽉찼고 나는 이층으로 안내되었다.
이층에도 개장을 끓여먹는 남녀 손님이 그득하였다.

어쩌면 여자 손님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이거, 일인분. 얼마요?"
"고기하고 국물하고 밥하고 십원임다. 끓여먹어도 그냥

먹어도 일인 분에는 십원임다."
"하나 주시오."
"술은 참이슬로 함까?"
"또 뭐가 있소?"
"연변걸로 녀(여)자 표 고량주가 좋슴다. 요즘 테레비에도

나옴다."
"얼마요?"
"참이슬은 30원이고 녀짜 표는 10원임다."
"연변걸로 주시오. 마시다 남는 건 갖고 가도 되지요?"
"일없어요."
개장국 한그릇과 고량주 반병을 비우고 남은 건 들고다니는

가방에 넣고 나오니 이제 국자가의 휘몰아치는 바람에도

심신은 평강하였다.

 

개고기 맛이라---.
십여년전에 백두산을 가느라 연길에서 하루 밤을 묵었을

때만 하여도 다 쓸어져가는 식당의 옥호에 "단고기"라는

표현이 많았는데 남쪽의 영향인가, 이제는 아주 완곡한

표현도 접고 그냥 개고기 집이라서

"개고기" 맛이라는걸 쓰기가 무안스러워 그냥 슬쩍

넘어가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있다.

이 곳에서의 그 맛이란 아무튼 놀라운 미각의 세계였다.

 

그러고 보면 구육(狗肉)이라는 것이 보통의 개에서 나오는

고기는 아닌 듯 싶다.

종류가 다른 식용의 어떤 동물이 아닐까.
견(犬)자 돌림과는 관계가 없는, 그러니까 우리의 "해피"나

"주리"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쇠고기나 돼지 고기, 양고기, 닭 고기, 토끼 고기, 개구리나

달팽이 고기, 캥거루나 오소리, 호랑이, 상어, 고래 고기 

같은 건 아닐까---. 

쥐포도 먹고 닭발, 닭 똥집, 소창, 대창, 막창에 염통구이,

간, 쓸게, 제비 집, 곰 발바닥, 소 골, 원숭이 생골,

아니 이런 물귀신 작전이 아니라 사실 구육은 견육과

다르지 않겠는지---.

 


헌책방 난전에 도달하니 이웃한 난전 상인들까지 합세하여

나를 환영해 주었다.
그 사이에 맘씨 좋은 원래의 중국인 주인도 나와 있었다.

내가 23원을 주면서 거기 펼쳐져 있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황색 주간지, 얇은 도색지를 하나 끼워 넣었지만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지를 흘낏 보니 "숙질 간에 한 여자를 두고 살아---,

돈 문제로 재판정에---,"

이런 엽기적인 제목이 보였다.

"료녕성"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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