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신년 교례회의 프레타 포르테

원평재 2004. 1. 21. 12:39
젊을 때에는 새해의 각오가 대단했다.
지금은 전전긍긍일 뿐이다.
이곳 저곳에서 신년 교례회 초청장을 보내오는 숫자도 줄어드는듯 공연한 피해의식도 없지 않다.
오늘 코리아 뉴스 센터에서 열린 고향 신문 주최의 교례회는 세번씩이나 확인 전화가 왔었고, 
입구에서는 미리 준비된 명찰을 받게 되어서 즐거웠다.
식이 시작되자 단상에 오른 전직 대통령이면서 내 중등학교 선배의 눌변도 여전하였고 
현직 고향 시장의 웅변도 마음에 들었다.서울 시장도 고향은 경상도라서 
서울 시정과 고향 이야기를 섞어내는 것을 보면대권을 두고 신문쟁이들이 풀어대는 
"썰"이 황당한 이야기 만은 아닌가---.
아, 박근혜 의원은 나이가 들수록 더 예쁘고 매력적이네.
그래, 원래 키가 크지는 않았지.
이들과 악수할 때마다 파파라치들이 사진부터 찍고 내 명찰의 소속으로 "사진을보낼까요"한다. 
쇠파리들에게 거부의 몸짓을 하기도 바쁘다.
p 의원은 내 학군단 선배여서 반갑게 악수를 하는데 고향 모 구역 을구에서출마한다고 
얼굴이 찍힌 명함을 주며 주변인들에게 좀 알리라고 부탁한다.
"며칠 전 어떤 행사에서 그 구역 출신인 Y 의원을 만났는데요---? 불출마라고는합디다만---."
"그럼. 그 곳에 내가 출마할걸세. 지금은 내가 전국구이지만 말이야."
말이 빠르기로 유명한 경제 평론가 B씨는 이제 다리 힘이 몹시 빠지고 지쳐보였으며 
전 서울시장이었던 L씨도 상배하신 후로 몹시 나이가 들어 보였다.
"오늘 디너 파티는 신문사에서 주최하였지만 사실은 고향에 뿌리를 둔 K 그룹에서 
스폰서한 것이랍니다."
주최 신문사의 사회부장이 알려주었다. 
여기자였다.
내게 가끔 오는 원고 청탁을 마다하지 않았던 사이였다.
"그럼 K 글로벌의 여사장도 나왔겠네요?"
"아이구, 저길 좀 보세요."
과연 키와 덩지가 큰 삼남매가 넓은 홀의 중앙에 서있엇다.
오늘의 행사는 스탠딩 파티였다.
나는 홀의 입구 쪽으로 다시가서 우선 스카치 소다를 한잔 마셨다.
바텐더에게 조금 쎄게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이었다.
조금씩 흔들거리는 몸짓이 파티의 본질이 아니던가.
패션과 어패럴 사업을 조금 쎄게하다가 비즈니스 상으로는 상처가 좀 심한 
K 글로벌의 여사장에게 다가가서 우선 악수를 청하며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아이구, 이게 얼마만이세요. 김숙자의 오빠 아니세요? 고향 사람 다 만나네요! 
숙자, 그러니까 수지는 지금도 맨하탄에 있죠?"
"그럼요. DKNY의 디자이너로 오래 있다가 이번에 나러카, 그러니까 노티카로옮겼어요---."
"아, 그랬군요? DKNY가 좀 어려워졌잖아요?"
"그렇게 되었나봐요, 다나 캐런의 남편이 죽고나서 유통과 운영이 힘든가봐요. 
그걸 루이 뷔통이 인수했답니다. 브랜드는 그대로 살리면서---. 
그러자 DKNY 사람들이 대거 노티카로 옮겨갔나 봐요. 결국 숙자도 옮겼는데, 
내용은 스카웃된 셈이랍니다."
"미드 맨하튼에서 엎 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 그러니까 57번가와 센트럴파크 있는 곳이네요."
"네. 뉴저지 집에서는 조금 거리가 멀어졌답니다."
나와 누이는 떨어져 살았고 하는 일도 달랐지만 이제는 그 바닥의 생리도들은 풍월이 생겼다.
예컨데 사계절마다 내놓는 패션 디자인을 "컬렉션"이라고하는 이유도 나는 이제 안다.
계절마다 다음 계절을 위하여 디자이너들은 50에서 80에 이르는 종류의 디자인을 토해낸다. 
또한 이것들이 좀더 디벨럽 되어서 하여간 계절마다 120점 가량이 나오는데 이중에 
탈락품들이 생기니까 대체로 80점 쯤을 최종적으로 모아서 계절마다 제작해낸다.
그래서 컬렉션이다.
디자인 초기 단계에는 바이어들과 패션 관련 저널리스트. 회사내의 애널리스트등등이 
모인 가운데에서 프레전테이션을 한다. 
의견과 제안이 들어오고 큰 줄기의 방향이 정해진 가운데에서 디자인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어서 시작품이 나오고 각각의 제원은 컴퓨터에 입력되어서 하청회사가 있는 
세계 각국으로 웹사이트를 통하여 전달된다.
때맞추어 디자이너들은 직접 현지로 출장을 다니며 현지지도 및 초벌 검수를한다.
"수지가 노티카에서 다루게 된건 뭔데요?"
키큰 여사장이 부드럽게 물었다. 머리가 하얗게 다 세었다.
너무 머리를 썼나보다. 
그러나 미모는 여전히 출중하였다.
"전에는 니트를 하다가 이제는 트렌치 코트랑 정장으로 들어가서 함께 하나보데---."
"아이구, 승진이 빠르겠네요. 디렉터가 될려면 두개 이상을 해야거든요."
"그런가봐, 특히 패션쇼를 준비하게 되어서 기분이 좋은가봐요. 한 20에서50점 정도의 
컬렉션으로 하나보더군"
"그렇조. 보통 맨하튼에서는 브라이언트 파크에 거대한 텐트를 치고 일년에 두번하지요."
"나도 들은 풍월이 있네. 그래서 패션 쇼우 언더 더 텐트라고 하면 파리 패션쇼우, 
밀라노 패션 쇼우와 구별 되어서 맨하튼 행사인줄 안다면서요."
"그럼요, 시즌이 되면 메트로 채널이라고 케이믈 채널에서 계속 패션 쇼우만 중계를 하지요."
"사장께서도 그 쪽으로 다시 꿈을 펴 보시는게 어때요?"
"글쎄요---."K 그룹 여장부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인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칵테일 
테이블을 둘러싼 일단의 국회의원들과 지역구 위원장들이 시뻘겋게 잘 익은 얼굴을 하고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제기랄 여자들 때문에 못해 먹겠어."
"각 당이 모두 절반씩이나 여자들로 채우겠다네."
"두고 봐라, 여자들이 오히려 여자 후보에게 반란을 일으킬거다"
"맞다, 맞어요. 암탉이 울면---."
"집안이 흥해요."아까 사회부 여자 부장이 어느틈에 들어와서 높은 톤으로 말을 이었다.
잠시 침묵이 출렁이더니 이어 웃음이 터져나왔다.
"자 다같이 잔을 드시고 부라보!"
칼칼하게 여기자가 다시 외쳤다.
"잠깐"하고 내가 나섰다.
"지금까지는 남자들의 세계였으니까 브라보이지만 여자들의 세계는 브라바라고 해야지요, 
하지만 새해부터는 남녀 혼성의 시대이니까 브라비로 합시다, 자아, 브라비!"
"브라비!"
의원들은 쭈볏거렸으나 정작 크게 화답한 것은 K글로벌 여사장의 주위에 서있던 여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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