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 기행

허드슨 강 양안에 내린 눈

원평재 2005. 12. 6. 02:27

 

 

3001

 

 

 

 

           (타운 하우스에서 허드슨 강을 건너다 본 맨해튼)

 

 

자고 일어났더니 창밖에 하얀 눈이 보였다.

5 센티미터 정도는 되지않을까---.

중서부 내륙과 북동부 지역에는 첫눈 내린지가 꽤 되었지만 내가 있는

허드슨 강의 양안, 맨해튼과 뉴저지 쪽은 이번이 처음인듯 싶다.

추수 감사절날, 내가 잠시 여행을 했을 때, 눈발이 휘날리기도 했으나

초설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고 들었다.

 

아, 마침내 허드슨 강 양안에도 첫눈이 내린 것이다.

수술 후의 회복기를 보내는 내 눈앞에 전개된 흰눈은 서설(瑞雪)이기에

필요 충분하였다.

 

 

 

                   (조명 쇼우로 유명한 5번가의 빌딩)

 

 

 

어제 저녁에는 눈이 오려고 그랬는지 저녁 날씨가 포근하였다.

오랜만에 건강에도 자신이 생겨서 아이들과 맨해튼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러 나갔으나 뉴욕 인근으로부터 관광객, 쇼핑객들이 대형 리무진으로

대량 몰려들어서 차분한 구경은 다음으로 미루고 서둘러 들어왔는데,

오늘 아침은 이렇게 서설이 천지를 뒤덮고 있었다.

 

 

흰 눈에도 인간은 양면가치를 부여하여왔다.

서설(瑞雪)로 보는 가치관은 너무 보편적이어서 여기에서 다시 다룰 일은

아니다.

그러나 원시 시대 이래, 인간은 닥아오는 겨울의 전령인 흰눈,

모든 수확물을 뒤덮고 감추고 멸실 시키는 눈 발을 곱게 인식할 수만은

없었다.

이 폭군이자 파괴자의 내습으로 인간은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러한 공포 정서는 집단 무의식으로 우리의 심리 내면에 저장되어

대를 이어, 혹은 격세 유전으로 뇌리에 녹아 흘러내렸다.

 

 

 

(아들네의 타운 하우스 정원에서---, 건너편 아파트에는 제가 지내고

있습니다.)

 

 

 

 

 

 

       (정원이 허드슨 강물에 접해있어서 한 풍경, 한 경치합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더불리너즈"는 단편 모음집이지만 하나의 주제와

배경을 일관되게 갖고 있어서 장편소설로 읽힌다.

여러 주인공들이 각 단편마다 점철, 명멸하지만 이 모든 주인공 중에서도

변치않는 존재가 "더불린"이라는 도시 자체이기에 이 작품은 장편으로

판명된다.

 

마비와 불활성과 나태와 자기 학대와 근친 시셈 등등의 주제가 일관되게

작품의 저변에 녹아있음도 장편의 요소로 깊게 작용한다.

이런 주제는 아일랜드의 비극이었고 어쩌면 우리의 모습과도 소스라치게

비근하지 않은가---.

 

단편의 타이틀 중에는 "죽은자들(The Dead)이라는 작품도 보인다.

이야기를 거두절미하면 연말 크리스마스 축제를 위하여 도회의 지식인

가브리엘은 아름다운 아내 크레타와 고향을 찾는다.

디너 파티와 춤 마당은 오랜만의 해후를 채색하는 표면적 형상이라면

그 퍼포먼스 속에서 가시돋힌 대화가 오고감은 바로 아일랜드의 병적인

전통이자 이 작품의 일관된 주제에 다름아니다.

 

잠든 아내의 얼굴을 내려다 보며 그는 미안한 감정을 갖는다.

성공적 삶이라는 표상 속에서 그는 얼마나 많은 비리와 타락과 일탈을

감행해 왔던가.

정말 남녀 관계만 하더라도 그는 말할 수 없이 아내를 배신하며 살아

왔다.

 

그가 아내의 얼굴을 보며 특히 남녀간의 관계에 대하여 참회를 하고

있을 때에 아내가 눈을 뜬다.

밖에서는 사락사락 흰눈이 내리며 천지를 덮고 있었다.

아내가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 고백할 게 있어요. 제가 처녀 시절에 저를 짝사랑한 동네

청년이 있었지요. 우리가 이사를 가던날 빗속에서 그는 멀리 우리를

좇아왔고 나중에 들이니 그로 인하여 폐렴에 걸려 죽었다고 했어요.

이날 이때까지 저는 그 청년의 모습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어요.

죄송해요---."

 

그랬다.

가브리엘이 세상 속에서 말도 못할 타락을 경험하고 있을 때에

집안의 아내는 죽은 청년을 가슴에 품고 다른 삶을 살아온 것이다.

 

창 밖에서 내리는 눈은 이제 온 아일랜드를 하얗게 덮을 것이다.

만물을 하얗게 덮으며 일체를 다른 세계로 전환 시키는 이 눈의

현존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존재는 바로 무서운 폭력, 죽음의 다른 모습이 아닌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엄청난 눈의 존재도 시간이 지나면

물이라는 존재로 변모할 것이다.

눈은 비로 치환될 것이다.

물은 만물 소생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조이스의 더불린 사람들이 온갖 마비와 불활성의 병폐 속에서도

다시 재생과 생명 부활의 메시지로 읽히는 것은 이런 만고의 원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친구가 사는 동네의 크리스마스 정원 꾸미기 경염---.)

 

 

이날 오후에는 가까이 사는 친구가 주말을 맞아 찾아왔다.

우리는 초설 속에서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경염을 펼치는

정원들을 구경하며 멀리 웨인까지 진출하였다가 돌아왔다.

정말 크리스마스를 넘길 때 쯤이면 각 지역별로 가장 잘 꾸민

정원들의 경염대회도 열린다고 한다.

내일이나 모레, 원기가 소생하면 맨해튼으로 진출하여 그곳

야경도 담아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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