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 기행

필라델피아/앤드루 와이어드

원평재 2008. 7. 7. 00:20

 필라델피아라고 하면 '리버티 벨', '애미쉬 마을', '롱우드 가든' '리들리 파크' 등을

우선 떠올리게 되고 그런 곳은 내 친구의 안내로 여러차례 다닌 바가 있다.

하지만 화가 앤드류 와이어드(Andrew Wyeth)도 이 곳 사람인 줄은 미쳐 몰랐었다.

20세기 초반이면 미국의 농장지대도 지금과 달리 어려움과 황량함, 좌절과 우수가

깃든 땅이었다.

일러스트 화가인 아버지로 부터 그림 수업을 받은 앤드루는 이러한 이웃 풍경을

템페라와 수채화 기법으로 그려내었다.

최초로 세상사람들의 관심을 끈 작품, <크리스티나의 세계>도 허룸한 농장을 향하여

수척하고 병약한 손을 뻗치고 있는 이웃의 노인 여성, 크리스티나의 모습이었다.

전반적인 색조도 황량한 갈색이며 농가와 정미소도 풍요롭지 않아서 어쩌면

크리스티나의 좌절된 희망을 통하여서 우울한 당대의 시대정신을 대변하고

문명 고발적 분위기도 전하는 것 같다.

 

 

앤드류 와이어드 WYETH, Andrew
크리스티나의 세계 Christina's World
1948
템페라 Tempera
32 1/4 x 47 3/4 in.
뉴욕 현대미술관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이어서 그는 이웃 농장에 사는 평범한 부인, 헬가(Helga)를 16년 간이나

아무도 몰래 모델로 삼아 연작의 그림을 그렸다.

놀랍게도 그 대부분은 극세밀 누드화였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모델의 얼굴에서 묻어나는 평화로움이었다.

긴장의 그림자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이 친숙감, 평온한 모습은

때로 두사람간의 관계에 대한 뒷말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림의 관람자

에게는 각박한 세파에서 잠시나마 피난할 수 있는 절묘한 순간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이 그림들이 오래 공개되지 않고 두 사람만의 비밀로 지켜져 내려온 그

기간만큼 두 사람에게는 행복한 시절이 연장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나의 서툰 딜레탄트 해설을 듣더니 필라델피아의 내 친구는 헬가의

마음 자세가 잘 나타난게 아니라 화가의 기법이 빼어난 증거라고 하였다.

나는 다시 반박하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는 헬가의 편이었다. 

 

 

Andrew Newell Wyeth (1917∼ ) 펜실베이니아주 채즈퍼드(Chadds Ford) 출생.

극사실주의에 의한 인물화·풍경화로 광범위한 인기를 얻었다.

1948년 《크리스티나의 세계》로 유명해졌다.

<템페라>와 <드라이브러시>에 의한 철저한 사실(寫實)을 일관하여 추구하고 있는데,

미국의 벽촌을 무대로 전개되는 인간의 삶과 죽음의 드라마가 이 화가의 주제이다.

1986년에는 1970∼85년에 걸친 한 여성을 대상으로 제작한 <헬가> 시리즈를 발표하여

화제를 일으켰다. 

채즈퍼드에 와이어스미술관이라 할 수 있는 브랜디와인 리버 미술관이 있다.

 

  Andrew Wyeth의 Helga 시리즈

한 여인의 모습을 와이어드는 16년동안 240여점으로 재현해냈다.
모델이 된 여인은, 독일에서 망명온 같은 동네에 사는 헬가 테스토르프(Helga Testorf). 
그녀와의 비밀스런 작업은 1971년부터 1985년동안 그녀의 나이 38세에서 53세까지---.
화가는 말한다.
"헬가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믿지못할 만큼의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 저 여인은 내게 온 
나만의 예술적 기회였다."라고.

하지만 그의 그림은 애초의 의도를 떠나서 센세이셔널리즘을 일으켰고

그의 동네로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왔다.

아무튼 이런 시선과 사태에 역겨움을 느낀 동네사람들은 그의 생가에 사람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았고, 화가와 그 누드 모델인 '헬가(Helga)'를 다른 곳에서

살도록 했다고 한다.

 아무튼 골프를 끝내고 나서 나와 필라델피아 친구는 이런 복잡한 사연은 전혀

모르고 그저 단순하게 앤드루 와이어드의 생가를 찾아나섰다.

여러해 전부터 내 친구 동네의 어지간한 명소는 다 돌아다녔으나 이 화가의

유적지를 알지 못했던 것은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이런 동네 인심 때문이

아니었는가 싶다.

 

하여간 해가 지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을 우리는 열심히 쫓아다녔으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였다.

그러나 다음을 기약할 자료는 많이 모을 수 있었다.

반성을 해보자면 구글에서 아래의 지도를 대충 만들어갖고 자신만만하게 떠난게

오산이었던 것같다.

 

 지금은 뉴저지로 돌아와 있지만 다시 네브라스카를 가기로 작정이

되었으므로 조금 더 나은 자료와 함께 앤디 와이어드의 족적을 다시한번

시간을 내어서 찾아보려고 한다.

오늘은 그 실패했던 날의 오후를 재현하여 기록해 본다.

 

 

 우선 골프장에서 그 자동차 충돌 화재사건으로 시간을 빼았긴듯 싶다.

멀리서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느라고 귀중한 시간을 좀 빼았겼다.

   망원으로 잡아보니 어떤 사람 하나도 불 구경을 하고있다.

운전자였는지도 모르겠다.

 위기를 느꼈는지 피하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이 빠져나가는 광경을 찍는데 펑펑하는 굉음이 세번씩이나 울렸다.

별일은 없었으리라고 믿는다.

 

 브랜디와인 주립공원까지 찾았으나 채드 포드에 너무 집착하는 바람에 길을 놓쳤다.

 이 허름한 길가 집으로 들어가니 흑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앤드류 와이어드는 잘 몰랐지만 친절하게도 주립공원의 레인저를 휴대폰으로

불러서 안내해 주도록 했다.

 

 

 레인저는 친절했으나 그도 화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다만 이 찝차가 방금 출고되어서 이 표지도 방금 달고 나왔다고 자랑하였다.

 

 와이어드가 그린 농장들도 이런 모습들이었다.

 

 

 

 터널 아래 이쯤까지는 레인저의 설명대로였으나 이 다음부터 길이 어긋나고 말았다.

해가지기 시작하여서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하였다.

 

아래 사진들은 돌아오는 날의 필라델피아 스케치입니다.

도심의 풍경들입니다.

  

 

 

 

 '리버티 벨' 근처의 미국 건국 초기의 역사적 유적지에는 항상 관광객이 붐빕니다.

  

 

 

 벤자민 프랭클린 다리를 건너 뉴욕으로 돌아옵니다.

 간 큰 여자? 

 

 

 1달러 짜리 또다른 종류의 버스

 

 

 

 경기가 작년 반도 안된다지만 역시 독립기념일 연휴의 고속도로는 붐볐습니다.

  

 

 가든 스테이트란 뉴저지입니다. '웁브리지'도 보이고 뉴저지 집이 가까워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