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원평재 2009. 9. 17. 08:54

 

 

친구 하나를 또 먼저 떠나보내었다. 

영면한 곳은 수유리 4-19 묘역이었다.

그곳이 대한민국 명당의 반열에 들어있고

특히 친구의 자리는 그중에서도 안산이 마주하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하나

사자후를 토하던 그의 음성 이제 들을길 없으니 수유리의 정적이 아득하기만 하다.

 

그는 4-19의 진원인 <대구 2-28 의거>의 주동 인물 중의 하나였고

1960년 2월 28일,

그가 고등학교 교복을 단정히 입고서 교정의 운동장에서

선언문을 사자후로 토하던 사진은 그때 이래로 불의에 항거하는

스튜던트 파워의 표상으로 짐짓 객관화 된다.

 

하지만 그가 진정 사람들의 가슴에 알알이 박힌건 사자후 보다 더 뜨거운

그의 인정머리였다.

평생 교수로 지내면서 그는 항상 자신을 불쏘시개로 하여 주위를

돌보고 살폈다.

자녀들이 모두 "풀 스칼라쉽"으로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 학비를 어찌 감당했으랴 싶은게 그의 현실이었다.

 

평생 부산 대학교의 교수 생활로 시종했으나 그는 경향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지인과 동지와 추종자와 제자들을 거느렸다.

 

이제 북악 명산들을 베개 삼아 아직은 아까운 나이에 벌써 자는듯 누웠는가

도무지 믿어지지 않거늘---.

 

그 아쉬운 사자후는 상기도 밖으로는 산천을 타고

안으로는 그대의 서책과 연구서에 생생하게 살아남아서 년년세세

더욱 쩌렁쩌렁 울려퍼지리라---.

 

그를 아직 가을 햇살 따가운 오정나절에 떠나보내고난 저녁에

김광섭의 절창, "저녁에"를 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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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저녁에'

 

 

 

 수화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상주의 인사말이 심금을 울렸다.

"아버지는 평생 2-28과 함께 사셨습니다.

깊은 이해를 못한 것은 물론이고, 한때는 거역스럽기도 했는데

이제야, 이제야, 그 뜻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다음 세대가 갖는 윗 세대에 대한 진솔한 고백을 들으며

우리도 순정한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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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잉태하고 있는 인간의 삶 그것처럼 어둠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저녁은 정다운「너하나 나하나」의 관계를 탄생시키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그것들의 사라짐을 예고하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저녁은 밤이 되고 새벽이 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시간이기 때문이다.


저녁의 시간이 빛과 어둠으로 다시 분리될 때 나와 별은 사라진다.

이것이 슬프고 아름다운 별의 패러독스이다.

 

우리는 윤회의 길고긴 시간의 순환 속에서 다시 만나는 또하나의 저녁을 기다린다.
가슴 속에 그렇게도 오래오래 남아있는「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마지막 그 시구가 가슴을 친다.

 

 <이어령 교수의 글에서 첨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