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Essay

전차의 꿈

원평재 2010. 3. 9. 22:36

 

 

한동안 "2-28 민주 운동" 등등의 행사를 좇아다니느라고 고국 방문 친구와의 서울 산책

후반부를 마치지 못하였다.

서울 살면서도 별로 눈여겨 보지 못했던 곳을 오랜만에 돌아온 친구와 함께 걷는 일은

즐겁고도 가슴 아렸다.

아마도 만남의 본질, 다시 헤어진다는 느낌, 그리고 이미 놓쳐버린 저 과거의 흔적에 대한

애석함, 그런 것의 복합 감정이었으리라.

내 친구는 약업에 종사하는 자연과학도인데도 감성이 넘쳐흘렀다.

3년전, <약방집 예배당>을 기획하여 선조의 생애를 문학으로 형상화한 것은 그의 그런 심성,

심상의 작은 일단일 따름이리라.

그가 쓴 에세이, "난 아직도 전차의 꿈을 꾼다"라는 담백한 글은 인문학을 전공하여

항상 문필을 쥐고 산다는 내 생각이 참으로 하찮은 자의 타성에 불과함을 깨닫게 한다.

사진과 함께 아래에 많이 생략하여 올려본다.

 

   

     

 

  

 

 

 

 

 

난 아직도 전차의 꿈을 꾼다.

 

나는 오랜 세월동안 가끔 그것도 자주 종로4가에서 명륜동과 혜화동을 지나는 전차의 꿈을

꾸어왔다.

4월의 그 길은 창경원 앞에 벚꽃이 만개해서 그 앞을 지나면 아주 유쾌한 봄 향기가

나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내가 어릴 때 자란 대구는 전차가 없었다.

부산으로 내려가면 전차를 볼 수 있었지만 좀 흉물스러웠다.

서울로 올라가면 '땡땡'거리는 전차가 항상 나를 반기는 듯 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같은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전차의 정취를 느끼고 싶어 수차례

갈아타기도 했다.

 

전차는 옛날부터 우리에게 내려오는 끈적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고 구한말1899년부터

내려와서 서민들의 애환을 그려내기도 했다.

배추 단을 인 아낙네들이 타기도 했고 닭장수가 닭을 여러 마리 잡아서 자루에 넣어서

싣고 다니는 구경도 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외갓집 먼 친척인 전차 운전수 아저씨가 우리 집에 내려왔을

적에는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물어본 적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 서울에 왔을 때는 전차 앞쪽에 큰 운전대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돌려

브레이크를 잡거나 움직였고 나중에 신형전차가 나와서 앞에 운전수가 손을 움직여

급정거하는 전차가 있는 것도 보았다.

 

참 신기한 것은 화신 앞 네거리에서 서대문 쪽으로 가는 노선과 남대문 쪽으로 가는

노선 두개가 있었는데 어떻게 그 노선이 바뀌어 가는지 참 궁금했었다.

한번은 그곳에 내려서 유심히 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또 재미있는 것은 뒤쪽에 전차 조수가 앉아서 전차 도르래를 맞추느라 정신없이

힘들게 줄을 맞추어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밤에는 전차와 전기선이 마주치는 곳에서

불꽃이 튀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중략>

 

그래서 나는 외국에 나가서 시간이 있을 때는 지금도 꼭 전차를 타고 지난 시절

서울에서의 향취를 느껴 보기도 한다.

헬싱키에서도, 세인트 피터스부르그, 프라하, 바르셀로나, 샌프란시스코.....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로 유명한 뉴올리언스에서도 전차를 탔었다.

 

에스페란토어의 선구자이신 시인 정사섭씨가 이용했을 파리의 전차는 그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된 지가 오래 되었다.

 

뮌헨에서는 전차를 타면서 작가 전혜린 씨를 생각하면서 새벽전차를 타기도 했었다.

 

왜 내가 전차를 이렇게 좋아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선로와 선로의 그 조그만 틈바구니와 전차바퀴가 부딪혀 나는 그 쇳소리가 듣기 좋았다.

지금은 서울의 어느 곳에서도 이 아련한 꿈에 젖어있는 전차를 볼 수가 없는 것이

섭섭하다...

 

하지만 우리들의 마음 한 켠 그곳에는 왠지 아련한 꿈으로 남아있다.

추억으로 좀 남겨 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지금도 창경원 앞을 달리는 전차의 꿈을 꾸고 있다.....

 

<후략>

   

 

  

 

  

  

 

   

  

  

 

  

 

뒤에 보이는 구조물은 일제 강점기 때에 굴을 파서 대피호로 만들었다는 곳이다.

얼마전 일간지에도 보도되었던 곳이라 한 컷하였다.

  

  

서울을 둘러싸는 산성 성벽이 복구되어서 보기에 좋았다---.

 

  

 

이곳은 <이화여고> 앞이다.

<이화고녀>로 통하는 골목에 이제는 <이화 여자 외국어 고교>도 생겼으니

유수같이 흐르는 세월이 속절없다.

 

  <피츠버그에서 보았던 앤디 워홀이 이곳에서 숨결을 고르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장하다>

 

 

 

  지금은 뉴욕에서 와병 중이신 천경자 선생의 붓길도 이곳에서 강렬하니 자랑스럽다.

 

 

  

  

 

  

있음과 없음의 골목길도 재현해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친구는 벌써 LA로 떠나갔고 오늘 저녁은 춘설이 난분분한 가운데 대학로의 병원을 찾았다.

어떤 분에게 별리의 정표를 하기 위하여서였다.

심장이 약했던 분이어서 그런 쪽으로 생각했는데 신종 플루 예방 주사의 후유증이었다고 한다.

북악을 바라보는 그쪽에서는 함박눈이 펄펄 내렸는데 강을 건너오니 질척이는 진눈까비가 되어있었다. 

친구와 거닐 때 찍어두었던 무인의 동상을 외경하며 눈비 내리는 저녁을 마감하고싶다.

 

 

 Domenico Zipoli (1688 - 1726)
Elevazione for Solo Oboe, Solo Cello, Strings and Organ
(arr. V. Hunt)    08'20
 
 

오보에와 첼로, 오르간과 현을위한 아다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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