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게이의 날 (소설집)

갤러리 풍경

원평재 2010. 4. 11. 19:04

 

그녀는 고흐의 그림 앞에 섰다.

"큰 플라타나스 나무(1889년)"(The Large Plane Trees)라는 이름의 유화였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유화 이론과 실기 지도를 하는 그녀가 자기 클래스의 수강 회원들을

이끌고 아침 일찍 명화 탐방을 시작했을 때는 "미술관"이 한산한 편이었는데 시간이 가면서

사람들이 그녀의 앞으로 마구 불어났다.

일반 관람객들이 그녀의 맑은 음성과 특색 있게 간추린 설명에 자꾸 빨려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한양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기획전 "서구 미술; 인상파에서 아방가르드 까지"에서였다.

그녀는 음정을 한 옥타브 높여서 앞쪽에 서있는 관람객들에게 말했다.

"제 클래스의 유화반 회원들 말고는 저기 뒷쪽으로 가셔서 설명을 들어 주시겠어요?

미안하지만 이 설명회는 우리 문화 센터 회원들 몫으로 진행이 되고 있어서 수료식 앨범도

찍고 있고, 또 협찬사에서 PR과 CF 사진도 찍어야 하기에 그렇답니다.

뒤쪽이 싫으시다면 30분만 기다리셨다가 이 곳 화랑 전속의 도슨트가 이끄는 설명회에 참석

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림을 아는 사람들의 상식이 작용한 듯, 앞줄에서 그녀에게 빠짝 붙어있던 일반 관람객들이

아무 불평 없이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녀는 그런 사람들 속에 있는 멋진 청년의 모습을 아쉬운 듯 바라보았다.

그 청년 정도라면 배짱 좋게 백화점 문화 센터의 일행들과 함께 앞에 있는 것도 좋으련만

청년은 정직하게 사뭇 맨 뒤쪽으로 가버렸다.

다만 그 청년도 명화 못지않게 그녀의 얼굴이 중요하다는 듯 잘 생긴 자신의 이목구비를

그녀에게 넋 나간듯 집중시키는 표정이 역력하였으나 워낙 뒤쪽으로 물러난 탓에 그 잘난

얼굴이 못난이들 사이에서 드러났다 감추어졌다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청년은 이내 그 뒤쪽에 있는 로뎅의 작품, "청동시대" 옆, 관람객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공간에 자신도 작품인양 입상(立像)이 되어 우뚝 자리를 잡고는 다시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집중하였다.

청년의 키가 180센티미터는 넘을 성 싶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무심한척 바라보던

그녀의 다리 사이가 촉촉이 젖기 시작하였다.

그건---, 그러니까 그 "젖음 현상"은 서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그녀의 두 다리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 생리적 현상이 꼭 그 청년 때문만은 아니었다.

함께 그림을 그리는 남편이 갑자기 임포가 되면서 그 현상은 시작되었다.

대학생 때부터 도제관계인양 그녀를 여러 방식으로, 그러니까 체위와 손놀림을 포함하여,

강렬하게, 격하게 가르치고 달구어내고 담금질하고 또 벼루어 내어서 남녀 관계란 모두

이런 건가보다 그녀가 생각하며 살아온 10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작년 가을 어느 날 부터

그는 갑자기 임포 상태가 되었다.

 

 

처음에는 그런 현상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잘 알지 못하던 그녀는 남편의 상태가

그녀에게도 치명적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고는 늦게서야 쇼크 상태에 빠져들었다.

마음만 내키면 목이 마를 때 청량음료를 마시듯이 손을 뻗치면 잡히는 줄로 생각했던

아무것도 아닌 그 남녀 간의 일이 사실은 비범했던 일이었으며 그렇지 못한 남녀들이 이

세상에는 지천이라는 것을 그녀는 겨우 깨닫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깨달음이란 아무런 대책이 아니어서 사태는 심각했고 결국 속수무책이었다.

 

 

이렇게 설명하면 그녀가 마치 대단한 섹스 마니아로 조련된 듯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서

항상 피동적으로 그의 몸놀림에 따라다니다시피, 그러나 결코 싫증을 내지는 않는

수준이었는데, 그가 그렇게 갑자기 서리 맞은 폐원의 관상용 고추처럼 변질 되고부터 그녀의

몸속이 난리법석을 떨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녀는 처녀 시절에 자위도 거의, 아니 전혀 하지 않았다.

미술 대학을 지망하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학업과 실기 시험을 모두 해내야 하는 과정은 사실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형극의 길이었다.

형극의 길이라는 게 좀 과장된 표현 갖지만 사실은 그 보다 더 적절한 설명은 세상에 없는 듯

싶었다.

글쎄 음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이라면 혹시 동병상련으로 이해를 할 수 있을는지---.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 혹독한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최후의 승자가 된 양, 대학에 들어와 한동안 긴장으로부터

풀어져 늘어져 있을 때에 군대를 갖다온 복학생,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정말 천부적인 환쟁이였다.

대학 일학년 때에 대한민국 미술전에 입상을 하였고 나중에는 우수상 대열에도 여러 차례

넘나들었지만, 군대에서도 그는 솜씨를 인정받아서 육군 본부의 차트사 및 전문 도안사로

근무하였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군 복무 중에도 실력과 근무 태도로 인정을 받아서 인근 삼각지의 이류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로 간판을 그리느라 밤을 새웠다고 한다.

충무로에서 영화배우들의 얼굴에 "메이크업"인지 "분장 또랑"인지를 바르며 돈을 번 것은

제대 직후 복학을 하기 전 얼마동안이라는 소문도 돌았으나 그는 당시의 일을 고백하는

데에만은 인색하였다.

하여간 오일 페인팅이나 화장품이나 인쇄, 카피 계통과 관계가 있는 화공 약품을 아르바이트

삼아서 오래 다룬 것만은 사실이었다.

 

 

"미희야, 내가 너 찜했다."

그는 복학할 당시에도 온 몸에, 아니 입고 온 작업복 전부에 오일 페인팅을 잔뜩 묻히고서

그런 식으로 그녀에게 접근하였다.

미희는 그녀의 이름이었지만 정말 그녀는 아름다운 미희였다.

그는 그림에 쏟아 붓는 시간과 열정의 몇배를 더 들여서 처음에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접근

하였고, 나중에 몸으로 사랑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계속 또한 그러하였다.

그렇게 심신이 길들여진 그녀에게 남편의 임포 사태는 상상도 못했던, 그리고 감당해 낼 수

없는 쇼크였다.

그 사태를 남편의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는 식으로 걱정을 하던 초기 상태가 지나자 이제는

그녀 자신이 자기의 몸에 생긴 적신호--, 라기 보다 이상 신호, 혹은 전에 없던 이상 징후를

근심하게 되었으며 결국 그녀는 그 후 몇 달 사이에 몸에서 서서히 새로운 생리 현상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상 신호니 징후니 하는 것은 물론 그녀의 몸이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아니 생각만 좀 변해도

몸이 젖는 현상을 말한다.

물론 그녀가 남편이 임포에 빠진 이 난리 통에서 제 몫만 챙기고 고민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주변에서 누가 그런 내색이라도 보였다면 그녀는 목을 매고 죽어버리고 싶었을 정도로 억울해

하였을 것이다.

자신의 상태와는 전혀 별개로 오로지 남편의 건강과 관련하여 온통 이 병원 저 병원으로 함께

돌아다니지 않은 병원이 없을 정도로 그녀는 지극정성이었다.

정말 그런 방면이라면 무슨 이름난 병원 순례 리스트 같은 것이라도 만들라면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하여간 그런 복합 정밀 검진 과정에서 그나마 그의 몸에 다른 병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은 천만다행에 속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인간의 몸은 아이러니였다.

아니 무서웠다.

남편이 다른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올 때 쯤 부터 그녀의 몸에는 그 욕망의 젖음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항상 그렇지만은 않았다. 케이블 TV에서 잘 생긴 리처드 기어를 보았을 때---,

아무도 없는 석양의 유화 실기 실에서 실물 등신대의 데이비드 석고상을 바라보는 한가로운

시간에---,

혹은 인파 속에서 얼굴만 둥둥 떠가는 어떤 키 크고 잘 생긴 남자의 모습을 문득 보았을 때---,

바로 그러한 때에 그 젖음 현상은 초조롭게, 혹은 그 반대로 느슨한 일탈의 감미로운 감정과

함께 그녀를 찾아왔다.

아, 그리고 "한양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이 전람회가 열리던 첫날, 아니 그 전날 미리 혼자

와서 설명회 준비를 하느라 메모를 하며 고흐의 그림 앞에서 저 로뎅의 "청동시대"에 눈이

마주치던 순간---,

그 젖음 현상은 그녀의 몸에서 민망하지만 확실하게 또 일어났다.

 

 

이번 전람회에 맞추어서 그녀가 도슨트로 나선 설명회는 세 번으로 잡혀있었다.

문화 센터에서의 그녀의 유화 지도가 세 클라스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말하자면 이 시대, 사회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들의 유화 이론과 실기 분야에서는

명장(名匠)에 다름 아니었다.

수입도 괜찮았다.

그건 어쨌든, 오늘은 이번 설명회 행사의 끝 날이었는데, 로뎅의 청동 시대를 다시 마주하는 순간,

그녀의 몸 현상은 예외 없이 또다시 일어났고 거기에 더하여 잘 생긴 청년까지 나타나서 휘날레를

장식해 주는 꼴이 되고 있었다.

정말 이번 전람회는 대단하였다.

우선 전시 작품의 컬렉션이 좋았다. 클리블런드 미술관의 소장품 중에서도 인상주의로부터

초현실주의 까지를 적절하게 망라한 대표 작품들을 어느 쪽 큐레이터들이 선정했는지 그녀로서는

알 바가 아니었으나 하여간 선택의 안목이 높았다.

작품의 배열에도 한 치의 느슨함이 없었다. 인상파, 후기 인상파,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초현실

주의까지의 작품들을 시대별로 각각의 전시실에 나누어 배치하였으되 그 시대적 변천사의

중간 지대에 해당하는 그림들의 처리가 특히 인상적이고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 보통 하는대로 라면 편의상 어느 한쪽 편으로 시대구분을 소속시켜 몰아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에서는 새로운 경향성의 선도자이자 그 앞 시대의 마지막이 되는 역사적

미들 그라운드의 작가 작품들도 따로 떼어내어서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의 방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과정이라는 식으로 명확하게 토를 달아주었다.

아니 말이나 글로만 토를 단 것이 아니라 정말 전시장의 콤파트먼트를 넘어가는 부분에 얕은

문턱을 만들고 그 위치의 전후에 전시를 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그 역사성을 일깨워 준 점에

그녀는 감탄하였다.

설명회를 조직하여 관람객을 이끌고 나가야하는 도슨트의 입장에서는 특히 이 치밀한 배열

방식이 여간 편하지가 않았다.

미술사적인 배려가 흠씬 배인 이 배열 방식에는 한 가지 우연이 개입되어서 비밀리에 그녀의

의표를 찌르는 일이 일어났다.

바로 고흐의 플라타나스 그림을 등뒤로 하여 관람객들을 앞에 놓고 서면 바로 건너편에 로뎅의

"청동시대"가 눈에 바로 들어온다는 사실이었다.

등신대의 입상인 이 전신 나상을 그녀가 건너다 바라보면서 등 뒤에 걸린 빈센트 반 고흐의

큰 플라타너스 나무를 설명하면 그녀는 말할 수 없는 희열 속에서 자신의 몸이 정말로 흠씬 젖어

오르는, 오르가즘의 정점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아, 누가 이 지고의 순간을 다만 눈치라도 챌 수 있으랴---.

그녀는 작고 빨간 다이아먼드 무늬가 촘촘히 찍힌 자신의 팬티가 이미 흥건히 젖어 있음을

느꼈다.

그 팬티에 다이아몬드 무늬를 판화의 프린트 기법으로 찍어준 것은 남편의 솜씨였다.

아내, 미희가 도슨트로 설명을 해나갈 작품에 고흐의 "큰 플라타너스 나무"가 있는 것을 알게 된

남편이 그렇게 찍어준 것이었다.

 

 

"여보, 그 작품의 캔버스가 정신 병원의 침대 시트인줄 알지? 말기에 고흐가 요양했던 정신병원

말이야. 잘 들여다보면 병원 시트에 찍힌 다이아몬드 무늬가 아직도 보여.

내가 당신 팬티에 그 무늬를 프린트해 줄께."

"에이, 민망해. 당신 갑자기 왜 그래요?"

그녀는 차마 임포 이후에 성도착 증세까지 찾아왔느냐는 식으로 남편을 몰아세우지는 못했다.

"내가 요즈음 우울해. 섹슈얼 히포콘드리아, 육체적 임포 현상에 정신적 우울증이 겹쳤다는군.

유씨엘에이(UCLA)에서 수련의를 했다는 의사는 섹슈얼 하이포콘드리아라고 혀를 꼬부리고

버터 냄새를 풍기데---. 아무튼 나같이 젊은 놈이 육체적 임포 현상을 계속 겪으니 심리적으로도

성 도착증세 같은 걸로 발전하나봐---.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이 작업은 그런 때문이 아니고 당신이 나선 이번 행사를 기념하는

퍼포먼스같은거야---."

그는 그녀가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말도 술술 내뱉으며 다이아몬드 사방연속 무늬를 여러 장

갖다놓은 그녀의 작은 면 팬티에 찍고 있었다.

"날자, 날자꾸나!"

그녀가 외쳤다.

"웃자, 웃자꾸나!"

그가 화답하며 두 사람은 하이파이브로 손바닥을 마주쳤다.

어려울 때 그들이 하던 옛 습관이었다.

그런 중에도 그는 남은 한 손으로 다이아몬드 사방 무늬를 쉼 없이 찍어나갔다.

남편이 재빠른 손동작으로 다이아몬드 사방 무늬를 찍어나가던 모습과 고흐가 다이아몬드

무늬가 찍힌 시트 위에서 열심히 유화 물감을 펴나가는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 되어서 그녀는

잠시 이야기의 맥락을 놓칠 번 하였다.

당황하여 얼떨결에 바튼 기침을 몇 차례 하고 나서야 그녀는 낭랑한 목소리를 되찾았다.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동생 테오에게 내가 그릴 수 있는 가장 우수한 작품 계열로는 거의

마지막이 될 것같다 라고 편지에서 술회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의 마찌에르

(matiere), 그러니까 재질감, 소재감이 좌우에 있는 그의 다른 그림들 보다는 훨씬 얄팍하게

보이지는 않는지요?

네, 그렇습니다! 이 그림을 그릴 때 그는 정신병원 요양소에 있었지요. 캔버스를 구하기도 힘든

그의 생활 조건 속에서 가을 낙조의 햇살은 빛에 함몰되어 발광한 이 화가에게 결코 버릴 수

없는 치열한 한 순간이었어요. 빛의 순간을 포착해야하는 그의 미학적 욕망은 그로 하여금

얼른 병실의 침대 시트를 찢어서 캔버스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듭니다.

결국 침대 시트를 대용한 이 화폭은 캔버스 천 보다 물감을 빨아들이는 정도가 심해서 이렇게

유화의 질감을 얄팍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로뎅의 청동시대 앞에서 입상처럼 서있는 청년은 그녀의 속마음을 조금이라도 짐작이나 하는지

어떤지 그저 멀찍이에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 청아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혼자일까---?"

그는 실없이 자문하였다.

작은 얼굴에 순진한 미소까지 띈 그녀의 모습은 소녀 같았지만 무언가 욕망과 우수라는 상반된

느낌이 동반하여 서려있는 눈동자가 남녀간의 관계 같은 건 벌써 오래전에 터득하고 나서 이어

곧장 버렸다는 그런 복잡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는 이천원에 빌린 해설 헤드세트를 귀에서 떼어 포켓에 집어넣고 그녀의 육성 설명만 한 마디도

빼놓지 않겠다는 듯 경청하고 있었다.

오래지않아 그녀의 정말 청아하면서도 물 끼가 촉촉한 음성이 그의 페니스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그의 페니스는 별로 크지 않았다.

그저 로뎅이 조각한 "청동시대"에 붙은 그 생식기만한 정도로 그의 다리 사이에 붙어있었다.

"조금 작지 않을까?"

간혹 총각다운 염려가 공중탕 같은 데에서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으나 해부학적으로는 자신의

것이 오히려 큰 편이란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마주보는 상대의 생식기가 더 커 보인다는 진실도 해부학 레지던트인 그에게는 명약관화하였다.

천지창조에서의 아담의 그 크기를 생각해보면---, 그는 큰 편이라고 자신하였다.

예과 때에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하며 바티칸의 "코펠라 시스틴", 그러니까 "시스틴 성당"에서

들었던 설명이 생각났다.

"Micle was a scientist."

미켈란젤로는 과학자였으니까 그의 인체 분석은 정확히 정상 기준이었을 것이었다.

 

 

이곳 전람회장에서 멀지 않은 명문 "신일(信一) 의과 대학 병원"의 레지던트인 그는 어제부터

배당된 어떤 환자의 생체 세포 조직을 바수어 내면서 "옹코진", 그러니까 암 종의 흔적을 밤새

찾고 있었나 도무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살점을 바수며 온통 세포조직을 다 훑어보는 작업은 "데리션"이라고 하였고 "옹코진"은 암을

유발하는 요인이거나 그로 인한 흔적을 말하는 것이었다.

조직검사를 위하여 생체를 떼놓은 환자는 지금 다 죽어가는 상태라는 것이 어제 저녁 다섯시

정각에 "칼 퇴근"을 하며 그에게 남겨놓은 담당 과장의 말이었다.

그러니까 그에게 주어진 과제란 암 종의 유무와 종류를 반드시 찾아내어서 수술의 당위성과

그 방향을 제시해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주어진, 혹은 던져진 살점을 밤새 바수어내며 암의 유무와 그 진행 방향과 속도를

추적하다가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그는 아침 일찍 사우나 장으로 가서 몸을 좀 풀고는

이어 가까이에 있는 이 전람회장으로 어떻게 마음을 풀어볼 수는 없을까 하고 불쑥 찾아 온

것이었다.

늦게 출근하는 담당 과장이 행방불명된 자기의 목을 잘랐으면 좋겠다는 막가는 심정이 불끈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성형외과니 안과니 돈이 되는 전공으로 레지던트들은 모두 필사적

선택을 했고 그 해에 해부병리학을 전공으로 정한 사람은 전국에서 그를 포함하여 모두

열 손가락을 겨우 넘고 있었다.

그는 수줍음을 잘 타는 청년이었다.

내과를 하자니 환자와의 대면에 자신이 없었다.

칼잡이인 외과를 하기에는 용기랄까, 담력이 부족하였다.

산부인과를 하여서 여인들의 은밀한 곳을 들여다 볼 용기는 더욱 없었다.

그는 사람, 혹은 환자를 보기 보다는 사람의 몸속에 박힌 병원균의 근원이나 그 진도와 말없이

대면할 수 있는 해부학 쪽을 선택하였다.

살아있는 인체의 한 조각, 마침내 투병에 지친 발가벗은 여인의 사체, 갈 곳 없는 행려병자,

그리고 입성은 부유하지만 홀로 누워있는 의문의 검체와는 대면이 벅차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선택이 패자의 길은 아니었다.

병의 원인에 접근하는 자신의 집요한 연구자로서의 감성을 그는 스스로 사랑하였고 자부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이 방면의 연구자는 희소하였고 앞으로 생명과학 분야에서도 넓은 블루 오션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그는 직관하였다.

DNA나 엠브리오 관련, 그러니까 배아복제 연구와도 이웃 사촌 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낙원은 아직 그의 현주소가 아니었고 병의 진원을 찾지 못하는 나날들은 그를

조바심나게 하였으며, 그런 순간마다 그는 조금 정상이 아니라는 소리를 주위로부터 들었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그의 팬티는 이상한 흥분상태, 혹은 긴장상태에서 분출되는 정액으로

지저분하게 되었다.

지금 "청동시대"의 옆에 서있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페니스에서 무엇인가 조금 분비되는 순간을

맞고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실패한 삶과 훗날에야 성공한 작품 세계를 설명하며 그녀는 멀리 있는

그 청년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은 느낌이 들었다.

남편이 그녀와 섹스를 시작하던 초기에 보였던 설익은 표정---,

아직 행위가 시작되기도 전에 나타나던 그 진저리치는 표정이 그 청년의 우수어린 표정에

스쳐지나가는 것을 그녀가 보았다면 거리상으로는 불가능한 포착이었겠으나 전광석화처럼

그녀는 자기 몸의 세포들을 카메라의 줌처럼 하여서 모두 받아들였다.

결혼생활은 8년 정도였으나 그녀와 남편이 섹스를 시작한지는 10년도 더 되었다.

그녀는 신입생으로, 그는 복학생으로 두 사람은 화실에서, 들판에서, 또 그가 몰고 다닌 똥차의

시트를 더럽히면서 열심히 섹스를 하였다.

빈 강의실도 노렸으나 그런 행운은 오지 않았다.

그는 크고 긴 페니스를 그녀의 질 깊숙이 집어넣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며 사정을 하였다.

그녀는 그게 원래 그런 건가 보다 생각하며 힘겹게 그의 몸을 받아들였으나 큰 쾌감은 없었다.

그러나 그걸 또 거역할 만큼 싫거나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대안은 있었다.

두 사람이 일을 끝낸 다음에 혼자서 조용히, 그러니까 몰래 자위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정도로 발전한 것은 둘이 결혼을 한 이후의 일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 몸을 섞고 그녀에게는 오르가즘이라는 것이 오지 않았을 때에도 그녀는

대범하였다.

어찌 보면 경험 없는 처녀의 몸으로는 당연한 반응이기도 하였다. 소리치며 절정을 맞본 그는

일이 끝난 다음에는 과묵하였다.

결혼을 하고 환경이 나아지자 그녀도 섹스의 쾌감이라는 문제에 관심과 신경을 쓰기 시작

하였다.

그러나 자기만족을 달성하고나서는 침묵의 바다로 빠지는 남편을 붙들고 무어라 대책을

내놓으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매번 자신의 몸에 묻은 정액을 처리하느라고 이미 화장실로 사라진 후였다.

대책을 강구해야할 일은 오로지 그녀에게만 떠맡겨진 혼자만의 몫, 1인 대책 위원회의 과제일

따름이었다.

그녀는 그가 자리를 비우는 그 짧은 순간에 자위를 하였다.

클리토리스를 문지르면 쾌감은 머리 위쪽을 뚫고 천정으로 올라가서 마침내 지붕도 날려버린

다음 저 멀리 하늘로 사라지거나, 때로 그 쾌감을 억지로라도 조금 더 참고 있으면 오른 쪽

뇌에 쥐가 나는 순서로 돌입하였다.

그 순간 손톱 보다 작은 클리토리스는 주먹처럼 발기한 페니스 보다 더 거대한 형상과 질료로

그녀의 의식 계를 점령하였다. 죄의식이나 공포감, 수치감 등이 한동안 그녀를 지배하였으나

"킨제이 보고서"라는 책과 영화를 보고나서부터 그녀는 해방감을 느꼈다.

여성의 2/3 이상이 "질 쾌감"이 아니라 "클리토리스 쾌감"을 느낀다는 통계가 그녀를 자유케

한 것이었다.

 

 

"선생님, 다이아몬드 무늬가 어디 있어요?"

갑자기 묻는 날카로운 소리에 그녀는 털썩 주저앉을 번 하였다.

팬티 속의 다이아몬드 무늬를 들킨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정말 자위를 하다가 들킨 것처럼 혀를 차며 얼른 청아한 목소리의 상태로 돌아왔다.

"여러분, 여기 이 그림의 나무 밑둥 부분을 한번 잘 보세요. 병원 시트의 다이아몬드 흔적이

보인답니다. 재미있는 현상이지요---."

그녀의 말에 과연 앞줄의 몇 사람이 캔버스 가까이로 눈을 갖다 대었다.

"아, 보여요!"

"나노 미니" 수준의 정말로 짧은 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자가 소리쳤다.

아까 질문을 한 그 목소리였다.

그 나노 미니 처녀는 "나는 찾았네, 유레카~"하는 식으로 소리를 지르며 손가락으로

다이아몬드 자국들을 의기양양하게 가리켰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나노 스커트 처녀의 통통 튀는 발성이었다.

"아, 우리 모델 처녀."

아가씨라는 접미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봐서 미희는 항상 모델들에게 처녀, 혹은 레이디라는

말을 붙여 뒤 끝을 다듬었다.

유화 실기반의 모델은 문화 센터에서 모델 협회로 단체 섭외를 많이 했지만 더러는 이 나노

아가씨처럼 프리랜서로 개인적 신청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와줘서 고마워요. 이번 수료 반 회원들께서 초청하셨나 보네."

"네, 김미희 선생님, 저는 이번에 얼레나로 돌아가요."

일년 기한으로 우리말 공부를 겸해서 모국에 머문다는 아틀란타에서 온 그녀는 미국에서

사는 곳을 항상 "얼레나"라고 하였다.

미국 처녀라기 보다 우리나라에도 흔히 있는 이 시대의 젊은 처녀였다.

모델로 포즈를 취하는 긴 시간 내내 잘생긴 한국 청년이 창밖에서 기다려

주었다. 잘못 보았던가, 그 사이에 미남 청년은 하나가 아니었고 두세 명으로 얼굴을 달리하고

있었다.

나노 아가씨는 통통 튀는 목소리만큼 얼굴도 통통하여서 처음 목탄(木炭)을 쥐고 크로키에

나서는 수강생들에게 곡선을 부드럽게 끌고 가도록 하는 데에는 더없이 좋은 모델이었다.

모델 실기를 할 때면 미희는 꼭 "헨리 제임스"라는 작가의 "진짜"라는 단편 소설을 많이 변형하여

짧게 소개하였다.

귀족 부인을 그려내야 하는 화가가 막상 몰락한 귀족을 모델로 쓰고 보니 제대로 분위기를

살릴 수 없어서 가난한 청소부를 쓰게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결국 "심미적 진실"과 "현실계의 진실"은 다르다는 것,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자기가 만들고

허문다는 것, 모델은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제2의 자기 자신, 문자를 쓰자면

"알터 에고(alter ego)"라는 것, 그런 내용이었다.

그녀도 무슨 문학적이거나 철학적 내용을 담은 뜻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모델에

대하여 불평을 하는 수강생의 입을 막는 데에는 최고의 예방 접종이라는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박하기 그지없는 남편에게서 들은, 아니 배운 내용이었다.

 

 

"고마워요. 사진 찍고 하는 데에는 잘 나오시지들 않던데---."

"뭐가요---. 재미있잖아요. 참 저 곧 결혼해요."

"축하해요. 그 미남 청년과?"

그녀는 자칫했으면 "그 미남 청년들과---?" 라고 할 번 하였다.

"네. 호호호."

그녀가 신이 나서 자신 있게 답하고 웃음을 보탰다.

"어느 미남?"

끝내 주변에서 입방정이 나왔다. 사람들이 웃었다.

"저어기~. 오버 데어."

그녀가 조금 떨어져서 웃고 있는 어떤 청년을 가리켰다.

"어느 미남이라니요---? 유머러스워요, 아니 유머스러운가? 저스트 키딩!"

그녀의 말에 다시 웃음이 일었다.

"여기 회원님들이 웨딩 샤워 날짜를 잡아야겠네요. 다시한번 결혼을 축하하며 우리는 다음

그림으로 자리를 옮기지요. 아 참, 아이도 많이 나으세요. 호호호."

 

 

김미희 화가 부부는 10년 동안에 젊은 연인 사이에서 금슬 좋은 부부로 진화, 발전하면서

끊임없이 성생활을 가졌는데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일찍부터 연애질을 하더니 임신 중절을 잘못하여서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식으로 쑥덕거렸으나 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다.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야 없던 연애 초기에는 피임이니 뭐니 섯부른 지식과 기교를 부려본 적도

있었으나 나중에는 콘돔이니 배란 날짜고 뭐고 다 집어치웠으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들은 모두 한두 번 이상 사고를 쳤다고 우거지 상을 하던 그 사고가 두사람 에게 만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그걸 또 큰 다행으로 여겼다. 하지만 면사포를 쓰고 나서 돈도 좀 모으고 부터는

남들이 치는 사고가 그들에게는 갈망이 되었다.

결혼을 앞두고는 "날자 날자꾸나"하고 하이파이브를 한 다음에 서로 몸을 안기도 하였고

또 어떨 때는 "에라, 모르겠다, 아가야 나오너라 달마중 가자"라고 노래까지 하면서 자유로운

성생활을 가졌으나 아가는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결혼식을 올린 후부터는 때로 경건한 상태에서 부부관계를 맺기도 하였고 자위행위가 임신에

영향을 주는 건가하고 그걸 오래 삼가한 그녀의 말 못할 지극 정성도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진실로 타고난 환쟁이었다.

대학 재학 중에 이미 대한민국 미전에 입상과 우수상을 휩쓴 사연은 일간지에 특집으로 나온

적도 있었고 "월간 미술"같은 메이저 미술 잡지에도 심심하면 나오는 소재였다.

그는 돈을 일찍부터 벌어야할 팔자라서 미술학원을 차려놓고 입시생들을 끌어모으는 데에도

그런 경력은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또 타고난 선생, 베스트 티처이기도 하였다.

아울러 그녀도 그림 재주가 나쁘지 않았고 상냥한 데에다가 입담도 좋아서 몇 번의 대한민국

미술전 입상 경력 끝에 백화점 문화 센터 유화 부문의 유명 강사 생활을 잘 이끌어나갔다.

돈을 좀 벌자 두사람은 불임 클리닉을 찾아서 정밀 검사를 하였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과정충"

상태에다가 그나마 그 정충들의 운동이 시원치 않다는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과정충이란 정충이 과하게 적은 현상이었다.

결혼 전 총각 때는 물론이려니와 결혼 후 10년 동안에도 그는 꾸준히 스포츠 센터에 나간

사람이었다.

요즈음은 피트니스 센터니 뭐니 이름도 고상하게 진화했지만 그는 사실 동네 운동장에서 철봉도

하고 역기도 들어 올린 사람이었다.

아령과 곤봉은 혹시 붓을 놀리는 데에 지장이 될는지도 모른다고 피하였지만---.

그런 사람이었기에 처음 "과정충"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정충이 과다하다는 소리로 잘못

알아들었다.

그의 사정 액은 비교의 대상이 없어서 모르긴 하여도 그녀에게는 항상 과다하였다.

"난 몰라, 설거지는 당신이 다 해줘. 난 하나도 재미없는데 혼자만 다하고---."

관계를 끝낸 연인, 그리고 부부 사이에 이 보다 더한 표현이 나온들 누가 비속하다고 비아냥

거릴 것인가.

아무튼 그는 여자가 설거지를 걱정할 정도의 왕성한 사나이였다.

그런데 모르긴 하여도 화가로서는 드물게 역사(力士) 급인 그에게 과정충이라는 진단이

나왔으니 처음에는 "정말 세상에, 정충이 많아도 큰일이구나"하는 반응이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정액이 묽다고 할까, 정충이 없거나 부족하다니---.

과정충이란 정충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였다.

 

 

"하나님, 맙소사."

예수님이나 절대자를 들먹인 심정이 된 것은 겪지 못한 사람은 말을 할 수없는 정황이었다.

예수님을 찬양하는 전례음악(典禮音樂)이 다만 자신들의 오만한 희열을 위한 것인 줄 보통

때에는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었다.

공자님이 음악을 일컬어 말씀한 "예악(禮樂)의 근본"이라는 것도 사실은 통치의 한 수단을

제시한 폴리틱스, 정치학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불민한 화사(畵士)들이 알길 없었다.

그래서 김미희 부부도 섹스하고 사정하고 "아가야 나오너라 달마중가자"라고 섹스의

전례음악을 "입시울 가배얍게" 노래하였다.

그런데 그 풍부한 사정액 속에서 도대체 정충이라는 이름의 물건인지 생물인지가 몇 마리

되지도 않고 그나마 제대로 꼬무락 거리는 놈은 눈을 닦고 보아도 없다니 청천의 벽력이었고

세상의 불가사의였으며 진실로 진실로 하나님 맙소사였다.

"세상에! 이 흥건하고 걸죽한 진국 속에 건질만한 건더기가 그렇게 없다니---."

진단을 받고 와서 그는 안하던 술까지 하더니 땅을 치며 슬퍼하였다.

그리고 그 후부터 섹스는 휴면 상태였다. 섹스가 남녀 상열지사(相悅之事)이며 쾌락을 위한

행사인줄로만 알았던 그들에게 그게 그렇지 않은 거룩한 일이라는 통회(痛悔)와 자각의 순간이

이렇게 닥치다니---. 그녀도 때로 함께 울면서 그를 달래려고 하였다.

"여보, 당신 참 시시하네. 요즈음 인공수정 시술이 얼마나 발달했어요. 그리고 예술가가 뭐

그래요. 자식이 없으면 어때요. 백남준 선생이나 존 레논과 오노 요꼬 사이에 아이 있다는 이야기

못 들었네. 입양도 있고---. 우선 인공 수정부터 해봅시다."

"내가 아이 때문에 그러는줄 알어? 그게 아니라 이렇게 건강하고 이렇게 자신 있게 부부생활을

한 나에게 그런 무기질 사나이, 빈 껍데기, 쭉정이, 무정란 사내라는 판정이 나와서 그게

억울하다는 것이지!"

그는 사실 아내의 만족도와는 상관없이 부부관계에서도 무언가 자부심 같은 것, 수퍼맨이라는

자긍심 같은 것을 갖고 살아와서 그녀는 항상 귀여운 자부심이라고 놀리곤 했었다.

그런 자부심이 환상이었다는 데에 그의 아픔과 실망과 좌절이 있었다.

"이유가 뭡니까? 내가 왜 무정란 사나이란 말입니까?"

그가 불임 클리닉의 대가라는 의사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이유가 아니라, 원인이라고 해야겠지요. 우선 가계에 그런 짐작 가는 일이 없나요?"

"뭐요? 우리는 고모네 까지 보통 10남매를 키웠어요. 이 사람 쪽도 모두 다산 가족이구요!"

"아, 부인 쪽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로지 선생님께서---."

"오로지 나만 무정란이란 말이지요?"

"선생님은 무정란이 아니고 XY 염색체가 완전한 정상 남자분입니다. 불임치료를 합시다.

방법은 많아요. 현대 의학이 복제까지 하는 마당입니다."

"싫어요. 나는 그런 것 말고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내 이세를 만들어 내고야 말겠어요."

그의 눈에 마침내 눈물이 돌고 목소리가 떨렸다. 남들이 입선도 하지 못하던 나이에 국무총리

상을 따낸 청년 화가의 저 강고한 고집과 찬란한 집념의 또 다른 모습을 그녀는 다시 한번

차라리 황홀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끝내 그는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녀도 그를 잡고 울었다.

"낙담하지 마세요. 절대로. 선생님 같은 케이스가 너무 많아요, 요즈음 이게 다 환경 호르몬

탓인가 합니다. 그러니까 방법이 많이 나와 있어요. 자신있어요."

의사가 두 사람을 다독거렸다.

"저도 집히는 게 있어서 또 이렇게 슬픕니다. 집이 어려운 환쟁이라서 일찍부터 화공약품,

안료 이런 데에 투신하여 몸으로 때우며 돈을 번 이력이 깊어요. 그래서 화가 나고 슬프다는

것입니다."

그가 주먹을 부르르 떨며 눈물을 닦았다.

"개연성이 충분히 있군요---. 환경이 만든 재앙일 수 있지요. 그건 또 인간이 만든 재앙이구요.

자, 이제 불임클리닉에 오셨으니 클리닉을 하셔야지요."

의사가 어떤 결론 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싫어요. 싫습니다. 내 힘으로 해결 할 것입니다. 아니 안 되면 말구요."

그가 고집을 썼다.

"부인도 그러신가요?"

의사가 막말을 하는 그와는 말을 나누지 않겠다는 듯, 편안한 얼굴로 그녀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 태도가 너무나 교활하여서 그녀는 아무 대꾸 없이 그를 이끌고 병원을 나왔다.

하여간, 불임클리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이혼한 부모의 어머니 쪽에서 자랐다. 지금 이 시간에 태어난 아이들이라면 열 명 중

서너 명이 필경 그런 결손 가정에서 자라게 되리라는 예측 통계도 있지만 서른이 넘은 그의

세대에서 이혼 가정의 자녀란 아직 희귀 동물이었다.

빼어난 점도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신경이 쓰이는 사춘기에, 결딴이 난 그의 가정환경은

당연히 그를 주눅이 들게 하였다.

특히 두 가지가 그의 성장을 방해하였다. 같은 아파트 동네에 살면서 남의 냄새를 잘 맡는

하이에나 같은 학교 친구들의 준동과 또 하나는 같이 사는 어머니의 냄새 공세였다.

그녀는 향수는 물론이거니와 화장수를 바꾸었을 때 마다, 아니 일부러 그런 것들을 매번

바꾸어가며 그에게 맡아보라고 하였다.

공격 포인트는 그의 콧구멍이었지만 향수를 실어오는 공격의 무기랄까, 미사일의 발사대는

그녀의 젖가슴이었다.

 

 

"불쌍한 것, 그 때 네가 내 젖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컸어---."

그녀는 자신의 큰 젖가슴을 그의 코와 입 근방에 들이대며 눈물을 찔끔거렸다.

그녀가 새로운 향수를 맡아보라면서 그에게 달려들면 어렸을 적에는 큰 젖가슴 두개가 그의

머리통 위에서부터 아래로 하강하며 출렁거렸고, 그가 부쩍 부쩍 자라나자 풍만한 젖가슴과

젖꼭지는 그의 눈 아래에서 카오스 이론이 맞다는 듯 방향성 예측을 거부하며 아무렇게나

출렁거렸다.

젖 냄새와 저급한 향수가 뒤섞인 모성애의 거대한 본산을 바라보며 그는 끔찍하게도 살모의

흉계도 꾸민 적이 있었으나 다행하게 차령산맥과 노령산맥이 잇닿는 첩첩산중에 자리한

어떤 "대안 기숙학교"로 보내어지고부터는 안정을 찾았다.

부인과 아들을 버린 아버지의 "때늦은 선견지명" 덕분이었다.

학급 친구들이 떠안고 들어온 파괴된 가정의 가혹하고 처참한 "경우의 수" 속에서 위안을

받자마자 그는 성적을 뛰어나게 올렸고 의과대학으로 진학하여서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살아왔다.

이 나라의 풍속도대로 대학에 진학을 하면 모든 통과의례를 금방 다 마치면서 이윽고 완전한

성인이 되는 줄 그와 주변인들은 인식했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성장 통 같은 걸로 여겼던 지난 과정, 꿋꿋한 사나이가 되기 위하여서는 참으로 다행한

시련으로 여긴 과거, 그 상처는 내내 아물지 않고 그를 괴롭혔다.

특별히 남녀 간의 사이가 그러하였다.

그는 소개팅에서 만난 여학생을 두 번 이상 만나지 못하였다.

청순하거나 매혹적인 인상의 여학생들도 두 번째 만나고 보면 결점이 눈에 들어왔다.

외모가 그를 압도하면 얼른 고약한 그녀의 심성이 그의 뇌리에 걸려서 본색을 드러낸다는

식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의과대학을 다닌다고 세상을 너무 깔본다거나 터무니없이 여자를 밝힌다는

악성 소문도 만들었다.

결국 그는 항상 외톨이었다. 전자 현미경의 차가운 대물, 대안렌즈와 말없는 대면을 하는

해부병리학은 그에게 천직이었다.

 

 

"어디 브런치하는 데 갈까요?"

몇 백 년에 걸친 근대 서구 미술사가 종언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수료생들을 애써 떨구고 그녀가 청년을 익히 잘 아는 사촌 동생처럼 대하며 말을 걸었다.

애 띈 얼굴이지만 말과 태도에는 희미하나마 카리스마가 있었다.

"네, 터미널 근처에 브런치하는 좋은데가 많이 생겼어요. 아, 거기 있는 호텔 레스토랑으로

가요. 맨 날 병원으로 브런치 광고가 와요."

청년도 한두 살 손위 누나를 대하듯 얼른 그녀의 브런치 제안을 접수하였다.

"내가 차를 빼올께---. 닥터?"

"주차장으로 함께 가요."

"우리 혹시 아는 사이 아닐까?"

"하하하, 저도 누나 같은 생각이 드네요. 프리드만 인가 하는 사람이 ‘지구는 평평하다’ 라는

책을 냈던데, 아무튼 인터넷 때문에 우리가 모두 정치한 그물망 속에 들어 있어서 상호간에

소개가 필요 없나 봐요. 단일 평면에서 함께 살아온 듯한---, 제가 말이 많네요. 저는 원래

입에 군둥내 풍기며 사는데---."

"나와는 반대네. 나는 이거 그림 그린다는 사람이 어쩌다 아침부터 말로 시작해서 저녁까지

말을 계속하며 지내는 날이 많아요."

신일 의과대학 병원을 지나가며 그가 말했다.

"저기 의대 나와서 지금은 계속 수련의로 일해요."

"아, 이제 형평이 맞네. 나만 발가벗듯이 다 드러내 놓았는데, 나도 이제 꽃미남의 신분증명서를

겨우 다 들여다 본 기분이야."

"제 직업으로는 사람을 볼 때 벌써 옷은 보이지 않아요. 옷 속에 몸이 있고 몸속에 세포가

있다는 생각이지요."

"그럼 산부인과 전공?"

"에이, 옷은 여자만 입고 벗나요. 저는 해부 병리학이라고---."

"산부인과였으면 참 좋았을 것을---."

"왜요? 아, 불임? 죄송합니다."

"맞아요. 의사 앞에만 서면 우린 다 고백성사를 할 태세가 된다니까---. 호호호."

진동으로 해 둔 그의 휴대폰이 아까부터 계속 몸부림을 쳤다.

"받지 그래요?"

"도망 나왔어요. 도망자예요. 지금 이 순간은---. 제가 없어도 병원은 잘 돌아가니까

염려마세요. 신경 쓰이시면 배터리를 빼버릴 수도 있어요."

그들은 금방 외국 체인의 호텔 레스토랑에 도착하였다. 약속한 듯 배가 고팠던 두 사람은

투데이즈 스페셜로 브런치를 맛있게 먹었다. 어중간한 시간에 브런치라는 어중간한 음식을

먹으며 정오도 안 된 시각에 와인까지 곁들여 한잔 마시고나니 갑자기 일탈의 나른함이 두

사람 앞에 밀려왔다.

그 사이 밖으로는 소나기가 몰려오는 것이 대형 유리창으로 보였는데스테이지의 무명 가수는

조용한 사랑 노래를 메들리로 부르더니 순발력있게 "소낙비"로 레파토리를 바꾸었다.

힘찬 노래의 가사는 듣고 보니 사실 한을 품어내는 절규였다.

향기 좋은 커피를 후식으로 마시면서 두사람은 작은 사연에도 크게 감탄하며 노래 소리보다

한 음정 높여 열심히 대화를 나누었다.

식탁 화제는 웰빙으로 시작하였지만 결국 불임과 인공수정으로 귀착되었는데, 그녀는 섹스에

관한 것도 고백하듯이 감추지 않았다.

그녀의 팬티가 또 조금 젖었다.

그녀는 자신의 그런 현상도 고백하였다.

의사라곤 하지만 아직 총각이 무얼 알랴---, 성인 남녀들은 사람에 따라 그런 현상이 치열한

경우도 있단다.

그런가 하면 또 불감증이란 것도 세상에는 존재한단다.

영화나 TV 화면에 비치는 정사 장면의 극치감이 결코 과장만은 아니란다.

이 세상 모두에게 다 돌아가는 축복은 아닐지 몰라도---.

나도 그걸 놓치고 나서야 이제 겨우 갈망하게 되었어.

청년이여, 어른들 사이에는 그런 복합 현상들이 존재한단다. 몰랐지? 그런 생각들이 그녀의

심리기제 저변에는 깔려있었다.

 

 

"그거 모두 아름다운 현상입니다. 건강하다는 신호랍니다. 내분비 계통이 왕성해야 몸이

건강한 것이지요. 웻 버자이너(wet vagina), 여성 생식기의 젖음 현상, 그건 푸른 신호등

이랍니다. 젖다라는 말이 나쁜 표현도 아니구요. 포르노에서는 의태어, 의성어로 달리 자극적

표현들이 쓰이잖아요. 그런 건 비속어이고, 의학 교과서에서는 그런 현상을 정식으로

웻=젖는다 라고 적는답니다."

"아이구, 깜짝이야. 이래서 의사가 나쁘다는 거예요. 총각 남동생, 아니면 시동생 같은 청년이

알고 보니 중년의 누님 뺨치겠어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건 마음이지요. 마음이 인체의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그거야 헤드, 머리 속에 있겠지---."

"그건 근대 생물학적인 지식에 불과하지요. 저는 가슴, 하트에 마음이 있다고 믿어요.

마음 표시를 지금도 하트로 하잖아요. 아시다시피 중세의 서양 화공(畵工)들은 해부학의

달인들이었어요. 그런 그들도 마음은 가슴에 있다고 믿었지요.

저는 제 가슴이 맑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여기 머리, 대뇌의 주름진 잎새 어딘가에는 병이 들어있는 것 같아요.

여자를 두 번 이상 만나지 못하니깐요---. 한번 만난 여자의 약점을 이놈의 대뇌가 분석,

감지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가슴을 달구어줄 여인을 갈구하는데 말이지요---."

"내가 오늘 먼저 말을 건 것이나, 아침부터 서두르느라고 이렇게 지쳐빠진 얼굴 모습도 다

약점이 되었겠네---. 두 번은 커녕 오늘 이걸로 우리는 빠이 빠이, 밀레의 만종을 치고

말겠어요. 밀레의 만종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그 그림에 보이는 바구니에는 아기의

주검이 담겨있다는 소리 들어봤어요?“

"네에? 뭐라구요?"

그가 외치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이구, 너무 과민 반응은 마세요. 그냥 식후 한담이래요~."

그녀가 아이들 말버릇을 흉내 내어서 분위기를 눅이려하였다.

"초현실주의 작가의 대가 살바도르 달리가 제기했던 이야기인데 밀레의 만종에 있는 저 감자

담긴 바구니 속에는 원래 아기의 주검이 들어 있었다네요. 천재 화가 달리는 이 만종 그림을

보기만하면 몸이 으시시 떨렸다는데, 그건 바로 아기의 주검이 담겼던 저 감자 바구니에

천재의 감성이 감응되었기 때문이래요.

그후 사실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만 있었는데, 어느 해 루브르 박물관을 침입한 자의 칼에

손상이 된 밀레의 그림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원래의 밑그림이 X-레이로 투시되어 나왔는데

달리가 이야기한 그대로였대요.

밀레가 친구들의 충고대로 비평가들과의 말썽을 피하기 위하여 아기의 주검에 덧칠을 하고

감자 모양으로 바꾸었다는 것이지요."

"그거 참, 감자 같은 이야기이군요---. 그때만 해도 방역과 위생이 말이 아니어서 유아 사망률이

끔찍한 수준이긴 했어요."

"나같으면 고구마를 그렸을까---?"

"그건 그럼 고구마 같은 이야기네요."

"나 참, 우린 왜 또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 말장난에 희희낙락이지요? 저 풍요로운 수확의 들판에서

하루의 일을 마치고 만종에 맞추어 감사 기도하는 평화로운 부부의 모습에 그런 끔찍한 설화가

따라붙듯이 한순간에 소낙비처럼 다정해졌던 우리도 이제 곧 헤어져야할 끔찍한 일만 남았나

싶네요---.

무거운 머리에 가벼운 가슴으로 기회가 생겼는데 아쉽기만 해요.

시각은 아직 정오도 아닌데, 불임에 석양의 만종이라니---."

"정말 이건 말도 안 되네요! 만종에 서린 주검 이야기와 감자 바구니, 그리고 불임에 수정

이야기, 소나기처럼 만났다가 헤어짐---, 도대체 너무 가혹하군요."

"세상에 말이 안 되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라야지요. 나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세상의 아름다운

것만 화폭에 옮기며 살아왔어요. 푸른 잎새가 내 전공이었어요. 타이틀도 맨 날 잎새 원(I),

잎새 투(II), 이런 식이었고---. 그런데 그 잎새의 뒷면에 그렇게 많은 벌레와 병원균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줄은 몰랐었네요---.

불임 이야기가 나오던 시기에 우연의 일치인지 그런 게 눈에 띄더라구요. 어쩌면 그때부터는

모두 부정적인 것만 눈에 보여서 그랬는지도 몰라요.

그리고 내가 즐겨 그린 잎새라는 말 자체가 바른말, 그러니까 표준어가 아니라는 것도 그제서야

또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렇군요. 그런 뒷면을 외면하고 싶어서 저도 두 번 이상은 같은 여자를 만나지 않았던가

싶어요.

지금 제 머리 속에서는 자꾸만 경고음이 들려요. 오늘의 도슨트, 김미희 선생님은 제게 너무나

벅차고 겁나게 예뻐요. 아름다운 여자는 고약한 마음을 가졌다는 제 공식도 지금은 무너졌어요.

이게 무슨 철 지난 로맨티시즘도 아니구요.

제가 감당도 못할 이 감정을 무슨 말로 표현해야하나, 하여간 그렇게 계속 만나고 싶으리라는

예감이 들어요. 총각이 그런 대상의 처녀를 찾아내야 할 텐데 말이지요. 두려운 생각이 자꾸만

드는군요.

하지만 너무 긴장하지는 마세요. 아침부터 내내 고혹스런 얼굴과 청아한 목소리에 제가 정신

차릴 수 없이 몰입되었지만, 결혼한 부인이시라니 제 가슴이 터지기 전에 컷 오프하고 말께요."

"그래요. 그런게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결말이지. 하지만 영화나 TV나 소설 같은 데에서나

나올 것 같은 작별의 말을 정작 내 귀로 듣고 보니 참 슬프네. 불임 상담 의사나 시동생처럼

우리 계속 만나면 안 될까?"

"둘 다 아니잖아요. 전공도 다르고 시동생도 아니고---."

"마음이 중요하다면서---! 서로 그렇게 여기는 마음이면 되지 않나? 그리고 전공은 생명 과학이

사촌간이랬잖아---. 아니야, 우울한 내 욕심이지. 좋아요. 어쨌든 오늘 참 오랜만에 불임의

수심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몸이 하늘로 둥둥 떴어요.

아직은 내가 겁나게 예쁘고 매력적이라는 그 말, 그리고 고혹과 청아라는 찬사에 무지 무지

위로를 받는 김미희래요."

그녀는 아이들 말씨를 다시 흉내 내어서 성인의 슬픔을 감추었다.

 

 

"두분의 불임 클리닉은 지금 어느 단계에 까지 왔나요?"

그가 화제를 일단 바꾸었다. 세찬 소나기와 격렬한 "소낙비"는 모두 끝이났지만 두 사람은 서로

한마디라도 놓칠 수 없다는 듯 계속 얼굴을 가까이 하고서 말을 나누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모두 처음에는 알지도 못하던 사람이 알게 되고 잘못이 없다면 다시 만날

수도 있으련만 두 사람은 이제 인당수로 떠나기 전날, 심청 부녀가 망종 보며 슬퍼하듯 그렇게

처연한 얼굴이었다.

그래, 그들은 정말 그런 낯빛이었다. 동쪽에 떠오르는 햇님을 심청이 부상목(浮上木)에 붙들어

메어 놓고 싶었듯이, 여기 두 남녀도 소나기 다음에 얼글을 내민 빛나는 오정의 햇살을 그냥

천개(天蓋)에 꼼짝도 못하게 붙잡아 놓고 싶었다.

그들은 오늘이 지나면 이제 다시 서로를 볼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신탁(神託)을 받은 것도 아닌데, 오늘 석양이 오기 전에 두 사람은 작별을 할 처지였다.

조금 전 "컷 오프"라는 선언을 한 남자의 입술은 대역죄를 용서받고 싶다는 듯 간혹 혼자

떨었다.

전날 밤샘의 영향이기도 하였으리라.

"불임 클리닉 단계가 어디까지 나갔느냐구요?"

"네."

"아, 지금 배란일에 맞추어 수태를 시도 하는 순서인데 그게 남편의 비협조랄까, 무관심 속에서

거의 실패로 끝날 것 같아---."

"이상하네요. 부군께서는 자기 힘으로 꼭 아이를 갖겠다고 했잖아요. 그럼 열심히 협조를

해야할텐데---."

"그 사람의 감성이 또 만만치 않아요. 사실은 오늘도 배란일 최적기인데 지난달과 같은 짝이

나버릴 것 같애."

"지난달과 같은 짝이라면?"

"허탕친 에피소드랄까, 부끄러운 실패담이지 뭐. 배란일을 의사 선생님과 다 계산하여서

그 날짜에 나는 목욕제개하고, 호호호, 무슨 선녀가 되었다고 야한 잠자리 날개옷까지 그날의

작업복으로 입었지."

"선녀가 무슨 잠자리 날개옷을 입어요? 나무꾼이 다 훔쳐갔는데---."

"나 농담할 기분 아니야. 그러면 놀리는 걸로 알고 화낼거야. 하여간 명품으로 잠옷도 새로

구하여 입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는데 정작 화백 남편께옵서는 자정을 넘긴 시간에

들어온 거야.

세상에 살다살다, 무슨 놈의 씨받이 날짜까지 받아서 잠자리 날개 옷 입고 날자, 날자꾸나

하느냐고---,

술이 고주망태가 되어서 소리를 지르며 들어오더군. 내가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는지---,

막가는 심사에서 나도 집에 있는 와인을 병째로 들이키고는 나 지금 작업복 입고 완전히

쪽팔렸어---, 날개 찢을거야 하고 소릴 질렀지."

"아이구, 용서하세요. 나 조금만 웃을게요, 하하하."

그가 참지 못하고,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호흡 조절을 하며 웃었다.

"다음날 아침, 남편 말로는 하필이면 그날따라 미술 학원에 불시 소방 감사가 나와서 불량과

미비 지적을 많이 받은 끝에 시정조치 하느라고 종일 정신이 없었고 그런 일이 아니라도

옛날 시골에서 종자 돼지 접붙이던 걸 본 생각이 나서 발기할 자신이 서지 않더라는, 그런 식의

해명이었어."

"아이구, 정말 그만 좀 웃기세요."

"왜?"

"발기할 자신이 서지 않는다는 게 뭡니까?"

"화백님 말씀을 옮긴 거지만, 김미희가 불임 때문에 다 망가졌어---. 나 숙녀였는데 슬퍼."

"숙녀 자격증 끄떡없으시니까 걱정 마시구요, 그 전 달의 배란일에는 어찌 되었어요?"

"마찬가지로 발기부진이었어. 불쌍해, 그 왕성하던 사람이---."

"부진이 아니라 부전이지요. 온전치 않다는---."

"그러니 부진이지. 아냐 불능이야."

"심인성 발기부전이 겹치게 되면 약물치료도 힘들어지는데요. 인류 최고의 발견이라는 비아그라,

시알리스도 다 무색해져요. 아이 갖는 일도 중요하지만 부부 관계가 어쩌면 더 중요하잖아요---."

"나는 아이 낳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해. 그게 목적이 되었어요. 목표가 아니라 인생 목적!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지만."

"이해한다면 건방진 말인가요? 하여간 결국 인공수정, 시험관 아기 단계로 넘어가야겠네요.

들으셨겠지만 먼저 난자를 난소에서 떼어내는 일이 좀 고통스럽지요. 하지만 견딜 만해요.

인공 수정을 하여 배양을 한 다음에는 다시 자궁에 착상을 해야 하는데 그때 실패율이 아주

높아진다고는 하지요. 뭐, 안되면 자꾸 또 하면 되는 거지요. 비용도 아주 저렴하게 다운

되었어요. 한 25만원 정도---."

"전공이 다르다면서 잘만 알고 있네."

"우리가 생명 과학 쪽으로 많이 넘어가고 있어요. 그 쪽이 연구비가 많아요. 세계적으로---.

양수겸장을 노리는 것이지요."

"그럼 우리 불임 부부의 카운슬러하면 되겠네. 상담 의사로---."

그가 손사래를 치면서 자기 사정이 지금 그렇지 못하다고 설명을 하려는데 허리춤의 휴대폰이

또 힘차게 떨리기 시작하였다.

"자꾸 찾나보네. 들어가 봐요. 어서."

"아니요. 밤을 세웠으니 찜질방에 가서 푹 자고 들어가야겠어요. 이래 뵈도 제 목이 든든하거든요."

"그 말 들으니 나도 갑자기 몹씨 졸립네. 오늘 낮 시간은 다 비워놓았으니까 여기 호텔 룸에

들어가서 우리 시체 놀이나 할까?"

"시체놀이?"

"정신없이 푹 자는거 말이야."

"솔직히 조금 겁나는데요?"

"설마, 우리가 근친상간을 하겠어? 호호호."

"그럼 체크인해 주세요. 제 카드는 가난해요---."

"정말 자고 갈까---?"

그녀가 다시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는 듯, 혹은 반문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브런치 식대

청구서를 들고 천천히 일어났다.

바로 그때, 이번에는 그녀의 휴대폰이 "이히 리베 디히"하며 수신 신호음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무슨 바람이 불었수? 그래 오늘은 일찍 들어와서 저녁하시겠다구요?"

그녀가 도루 앉았다.

화가 남편께서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추어 들어오겠다는 전화였다.

전화를 끊으며 그녀는 앞에 앉은 그에게 윙크하였다.

"들어와서 이번에는 마지막 시도를 해 보겠다는군. 잘 되었네. 우리 정말 여기 객실에 들어가서

먼저 근친상간 해버릴까? 날짜 맞추어서---.어차피 그 양반하고는 오늘 시도를 해본다 한들,

의학적 승산은 없다던 데. 발기 처방약도 받아 두었지만 임신 자체는 공연한 헛수고래요.

그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의 통과의례라고 하더구 만. 이런 말 하는 나를 무섭다고 말아요.

나도 이제 너무 지쳤어---. 막가파가 된 심정이야."

"힘내세요. 약간의 성공률은 그래도 있답니다. 그게 인체의 신비라고 하지요. 자연 치유,

자연 복원력, 그런 게 다 신이 내리신 축복인가 봐요. 인간은 또 그 미미한 가능성에나마 최면을

걸어 도박을 하고, 마침내 잃는 게임이 되더라도 후일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최후의 노력은 다

해 놓는 셈이지요."

"우리 담당 의사 선생님하고 똑 같은 말씀을 하시네. 하여간 지금은 의술이 발달해서 불활성

정충이라도 한마리만 건지면 시험관에서 수정이 된다지만 예전에는 의대생들의 그걸 섞어서

자궁에다가 직접 주입했다더구 만---. 그게 탄로가 나고 병원 윤리 문제가 나오고, 난리가

났다면서?"

"제 생각에는 병원 윤리 이전에 개인 윤리의 문제였다고 봐요."

"무슨 말씀이야?"

"묽은 정액에 몰래 의대생 정액을 탔다는 것 말이지요. 정액을 제공한 의대생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무언가 묵시적 동의를 하고 넘어 간 게 아니었겠어요.

난 그런 제공자는 되지 않았겠다는 것입니다. 학점을 못 땄거나 학비를 보조 받지 못했을지라도---."

"여기 종교 재단에서 하는 이 명문 의대는 물론 아니었어."

"저도 들어서 알고 있어요. 여긴 물론 아니었지요."

"나와 그이는 A형과 B형이라서 아주 자유로워."

그녀가 뜬금없이 "자유"라는 표현을 문득 썼다. 그는 무슨 말이냐고 묻지 않았다.

A형과 B형 부모는 모든 혈액형의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이었지만 그런 차원의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미남 총각님, 아까 청동 시대의 성기 부분이 많이 닳은 것을 보았지?"

"그래요. 거기만 반짝이던데요?"

"아기 못 낳는 여자들이 만져서 그렇게 되었다더군. 거기를 세 번 문지르고 손가락을 꼬으면

효험이 있대요---."

"그렇게 해 보지 그랬어요?"

"몰래 열번쯤 문질렀지! 호호호."

"그럼 쌍둥이도 놓겠어요. 하하하."

"그러고 보니 우리 시대에도 신화는 계속 생성되고 있네. 인간의 염원이라는 게 소멸하지

않으니까---."

"그럼요. 주술 문화가 당대 발복을 노리다시피 인간의 욕망은 즉시성, 현세성이고 조급하고

몰시대적이고---. 노력 없이 혹은 노력보다 훨씬 크게 결과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렇다 해도 아이에 대한 내 염원을 그렇게 우습게 욕심으로만 보지는 말라구."

"그럼요. 전혀 그런 뜻이 아니지요. 로뎅의 '청동시대'를 문질러서 광택이 나게 한 그 모든

염원에 대해서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무슨 소리로 탓하거나 웃을 수 있겠어요.

제가 말하는 건 그런 절박한 염원이 아니라 욕심에 속하는 당대 발복을 지적해 본 것이지요.

아, 그래도 사람에게는 염치라는 게 있어서 자신의 작은 공덕이 바로 자기에게 바로 돌아오지는

않더라도 좋으니 자식에게 만이라도 발복해달라는 주문(呪文)이나 기호(記號)도 풍성 하지요.

하버드 교정에 서있는 설립자 동상의 왼쪽 구두가 반질거리는 것이 그 한 예가 되겠네요.

그걸 문지르면 설혹 자기에게는 입학 허가서가 나오지 않더라도 하다못해 자식이 태어날 때는

하버드 입학 허가서를 가슴에 품고 나오라고 말이지요. 하하하."

"호호호, 거봐, 자식이 중요하지."

그녀가 단호하게 속삭이며 일어났다.

카운터 쪽으로 당당하게 걸어가던 그녀는 갑자기 급선회하여 코너 쪽의 화장실 있는 데로 몸을

틀었는데 잘 찍은 연속 촬영의 카메라 프레임을 다시 돌려 보는 듯 또박또박한 발걸음이

나긋나긋한 팔등신을 얹고서 숨이 막힐 듯 수려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 내었다.

"아, 지금 우리 두 사람 앞에는 대략 세 가지 정도, 경우의 수가 있구나."

아름다운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는 주문을 외듯 그 세 가지를 손가락으로 꼽아 보았다.

우선 화장실로부터 나오자마자 그녀는 카운터에서 식대를 치르고 그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리는 첫 번 째 경우의 수를 포함하여서, 상상 가능한 나머지 두 가지 경우의 수까지도

어느 것 하나 버리기 싫은 정말 간절한 소망에 다름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에게는 그 특별한 생리 현상도 함께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도 문득 우선 화장실부터 가야겠다는 조급한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렀다.

그날 소나기가 내리고 나서 서너 달이 훌쩍 지나갔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나지 못하였다.

그녀도 항상 바빴지만 그는 더욱 바빴다.

그러는 중에 가을은 불쑥 찾아왔고 전람회는 여기 저기 풍성하였다.

한양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도 "밀레"가 다시 찾아왔다.

가을 어느 날 해부학 교실에서 밤을 새운 그는 사우나를 마치고 그 밀레를 보러 미술관을

찾았다.

오랜만에 다시 밤샘 헛수고를 하면서 피를 말리고 미술관을 찾은 것이지만 이번은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하여간 조금 멍한 머리를 하고서 그가 홀이 넓은 제1 전시관, 바로 밀레의 전시장을 들어서니

아, 거기 그림들 앞에서 아름다운 김미희 화가가 도슨트로 해설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눈부신 아름다움에 가득하였으나 조금 피로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역시 그녀는 색채와 의상의 마술사인가, 딱 붙는 까만색 스키니 진 바지 위에 불타는

버밀리언 색조의 원피스를 무릎 근방까지 무심한 듯 내리다지로 헐렁하게 입어서 몸 전체에

퍼진 피로감이 남들에게는 눈치 채이지 않도록 최대한 방어를 하고 있었다.

임부복 모양의 그 원피스가 그 가을을 휩쓰는 패션 모드에 맞춘 건지, 아니면 임부복 자체인지는

아직 그가 모를 일이었다.

 

 

"워싱턴 DC로 떠나요, 곧. 미국의 국립 보건원, NIH로 갑니다. 그동안 서류하느라 정신없었어요.

황우석 교수 파동 때문에 우리 코리아의 Bio-scientist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국제 학계에서

주목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 덕도 많이 봤네요. 여러 군데에서 그 분 시체라도 가져 가겠다고---,

아니 제가 말이 거칠죠. 시체처럼 된 그 양반을 모셔가겠다고 하는 와중에 저도 덕을 보고 좋은

조건으로 쉽게 떠나게 되었어요.

인터넷에서 오늘 밀레 전람회의 도슨트로 선생님이 나오신다는걸 알고 잠깐 들린 것입니다.

떠난다는 제 소식을 오늘 새벽에 메일로 보내 드렸습니다.

이제 저의 그 메일 주소는 닫을 것입니다. 다시 또 만나지는 않고 떠날 겁니다.

어제도 밤을 새우며 일했지만 이런저런 생각 때문인지 모처럼 헛수고가 나왔네요.

이 가을에는 부부 전도 열게 되었다면서요, 축하합니다---.

끝으로, 사랑---, 그래요 사랑합니다."

사람들이 그녀와 함께 다음 그림으로 옮길 때 그는 쪽지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고 얼른 자리를

떠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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