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의 사계

눈 마을 통신 2 <문협 선거, 고배와 축배>

원평재 2011. 1. 28. 02:16

 

눈 마을

 

  

 권이영 작시     임긍수 작곡

 

 

눈처럼 부드럽게 눈처럼 포근하게

서로를 덮어주고 서로를 껴안고
눈처럼 넉넉하게 눈처럼 평화롭게

모두를 덮어주고 모두를 품어주는 곳
눈마을은 하얀 마을 꿈속에서 아롱지네

눈마을은 하얀 마을 꿈속에서 피네
눈처럼 넉넉하게 눈처럼 평화롭게

모두를 덮어주고 모두를 품어주는 곳

 

사랑의 훈기로 매화도 피우다가

녹으며 사라지며 스스로를 지우고
소리없이 하늘로 하늘로 가려는

순결한 영혼이 모여 아름답게 살아가는 곳
눈마을은 하얀 마을 꿈속에서 아롱지네

눈마을은 하얀 마을 꿈속에서 피네

눈마을은 하얀 마을 꿈속에서 사네

 

 

테너 박성도

 

 

 

 

 

 

수사법으로는 제목을 "축배와 고배"라고 해야 순서가 맞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축배를 든 문우와의 관계는 "허물없는 친분의 사이"라는 표현 외에 덧댈 말이 별로 없지만,

고배를 마신 문우와는 학창의 동기, 특히 대학 때에는 ROTC 훈련으로 뙤약볕 사단 연병장에서 

같이 구보하고 포복을 한 사이이니 인간 관계로는 이보다 더할 수가 있겠는가.

"고배와 축배"의 순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축배를 든 문우와도 동년배에 성품도 걸맞는 데가 많아서 동시대인의 정감으로 소주 잔이

길어지는 지경이긴 하였다.

그는 근본이 텁텁한 성품이지만 아무에게나 그런 텁텁함을 내비치지는 않는 무거운 사람인데

내게는 매우 텁텁하게 대해주어서 나도 텁텁하게 교유하였다.

 

재작년 가을에는 고배를 든 동기가 주관을 하는 일본 동지사 대학에서의 정지용 문학 세미나에  

우리 세사람이 모두 참석하여 2차 3차 술추렴도 했던 기억이 난다.

교도라면 내 동기가 일년간 교환교수로 와서 지용과 윤동주 연구로 빛나는 학술적 성과를 거두고 

마침내 시비를 건립하는 어려운 일까지 이루어낸 곳이라 그런가,

그는 뒷골목도 파삭하여서 중한 인물들로 가득했던 일행은 "도돈보리"에서 행복하였다.

내 동기는 그때 이미 출사표를 던진 상태였고 이번에 축배를 든 문우는 아직 내색도 하지

않았던 때였다.

 

귀국후 얼마후 선거전의 판짜기는 시작이 되었고 나는 당연히 동기의 편에 포함되어

있었다.

무슨 사상이나 이념의 차이로 사생결단을 하는 선거전도 아닌데 동기를 편들지 않으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내가 이럴진데 오래 문단 생활을 해 온 사람들 중에 참 힘든 사정이 많았으리라 추측을

해본다.

아니 추측이 아니라 실제상황으로 해괴한 일들이 많았다고, 태평양을 건너고 다시 대륙을

횡단하여서 눈마을에 갇힌 내게도 소문이 들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송사에 까지 이르러서 어떤 입후보자는 탈락이 되어 다섯분이 "선거 운동"을

한 모양이다.

 

어쨌든 평론가로 한때는 한국 문단 생태계에서 한 역할을 했던 내 동기는 삶 자체 만큼이나

이번 선거전에서도 자신만만하였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학계에서의 학구적 공적이나 문단에서의 실천적 행적은 자타가 인정하는 바 있고 

문학 강연 또한 은근한 카리스마 속에서도 지적인 내용이 청중을 휘어잡았는데 그런

인기와 투표는 상관계수가 그리 높지 않은 모양인가.

 

새 이사장으로 당선된 문우도 문인으로서의 창작 역량과 더불어 행정력, 청렴성, 분별력에서

높이 평가를 받는 분이어서 참으로 다행하다.

소설 문학에 정진하여 큰 작품들을 써낸 경력과 현대문학에 근무할 때부터 발표하여

대학 강단에서도 오래 강의해 온 문학이론은 내가 따라갈 형편과는 사뭇 상관없이 느낌이

좋다.

당선이 된 후에 멀리 있는 내게도 소주 한잔 기회를 바라마지 않는 메일을 보내준 섬세함도

고맙다.

 

사실 두달전 잠시 귀국하였을 때에는 두번의 해프닝 성 만남이 있었다.

한번은 세종 홀이던가, 무슨 문학상 시상식에 LA에서 김영교 시인이 수상자로 오게 되어서

나도 축하객으로 참석한 식장에, 이번에 축배를 든 정종명 당시 후보자도 자리를 했는데

두리번 거리다가 내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가만히 보니 단상으로 올라갈 입장도 아닌듯 하고 아무 구석장이에 앉아있을 수도 없겠고

내가 앉은 맨 앞 테이블 쪽이 명당이라는 판단을 내린듯 하였다.

헤드 테이블은 분명 아니고 바로 그 옆 테이블, 거기에 더하여 나같이 엉뚱한 작자가

마음 편하게 버티고 있지 않은가!

스테이크였던가, 밥을 맛있게 먹으며 우리 둘은 별 말이 없었고 그저 실실 웃기만 하였다.

무슨 말을 하랴.

후보 등록 날짜도 아직 공시되지 않았던 날이었다.

내 동기는 이날 보이지 않았다.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지방 강연에 정진할 때였고 그의 강연은 항상 인기가 충만하였다.

들어보면 참 맛갈스럽다.

 

두번째는 출국 며칠전, 반포에서 무슨 시 낭송회가 있었는데 나도 낭송자로 초청을

받았다.

이럴때는 사양을 해야 겸손 축에도 들지 못하고 그저 사리에 맞을 따름인데,

"주최측"과의 인간 관계가 있어서 낯 두껍게 나가 앉았다.

이때도 맨 앞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조금 늦게 나온 정종명 문우가 내 옆에 앉았다.

역시 헤드테이블의 바로 옆 테이블, 명당이 따로 있으랴.

내 동기는 그 전번 달에 초청되어와서 시를 낭송하였기에 이번에는 초청하지 않았다고

"주최측"에서 일러주었다.

연말이 가깝고 또 출국을 앞두어서 나는 약속이 겹쳐있던 터라 그곳에서 밥은 먹지

못하고 자리를 일찍 떴다.

"바쁜 중에 온 귀한 분이라서 일찍 순서를 드린다"는 사회자의 말씀에 나는 더욱

안절부절, 단상에 올라가자 한마디 조상 자랑을 하였다.

"조상님 덕분에 맨 처음에 나온 것입니다. 가나다 순인데, 제가 김가 아닙니까."

 

이날 정종명 문우는 접는 부채에 시를 써서 나왔다. 시 낭송을 하고나서 그 부채를

주최측에 드리면 참 좋아한다고 텁텁하게 웃으며 내게 말하였다.

좋은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내가 활용할 기회가 자주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 양반을 왜 아무도 징집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네."

그가 신분과 자격이 미달인 나를 두고 덕담성 농담을 하였다.

이사장에 출마하면 러닝 메이트 스탭이 일곱명이 아니던가. 그 외에도 따로 분과 위원장을

뽑는 부서가 다시 예닐곱명.

한번의 선거전에 6명쯤의 후보자가 나오니 문단 인물 중 결국 60여 명이 나와서 경연을

치루는 셈이렸다.

 

시 낭송회 같은 데에 가면 참 재미가 있다.

그 재미 중의 백미는 "시인 아무개 입니다"라고 자기 "신분"을 소개하는 분들의

자상함이다.

아니 여기에 이렇게 쓰다니, 혹시 필화를 염려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냥 좋은

뜻에서 쓴 말임을 밝히고 싶다.

이 보다 더 확실하고 떳떳한 자기 소개가 어디 있으랴.

그래도 "시를 쓰는 아무개 입니다"라는 자기 소개의 말이 조금더 운치는 있다.

이날은 첫번째 낭송을 하고 일찍 나오는 바람에 재미를 밝히지는 못하였다.  

 

선거도 끝났고 언급한 두 양반들은 아마도 금방 다시 만나서 서로 가까운 이야기를

나누었으리라

후보자들 중에서 가장 허물없는 대화가 가능한 사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배를 마신 내 동기도 곧이어 자기 능력을 발휘할 곳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공약 중에서 많은 분들이 이사장 월급을 받지 않거나 반만 받고 판공비도 아껴서

모두 문단 기금으로 하겠다는 대목들이 들어있다.

정종명 신임 이사장은 월급을 받지 않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받고 열심히

하겠다는 표현일 것이고 투표자들도 그런 점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은듯하다.

특별히 신임 이사장은 전자 출판에 유의하겠다고 적시하였다.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멀리 이곳에 와보니 킨들 전자책이 이제 128불이라고 연이어 TV 광고가 나오고 있다.

아마도 전자책의 충격은 금년을 원년으로 우리 모두를 뒤흔들 것이다.

구텐베르그 이래 인류사의 또다른 혁신적 기원이 시작되고 있다.

낑낑거리며 피츠버그까지 책을 두 박스 갖고 온 나의 모양새가 금방 전설이 될 모양이다.

킨들에는 1500권의 책을 내려받아 넣을수 있고 스마트 폰이나 아이패드로도 시시각각

앱을 통하여 책과 정보를 가져올 수 있다.

종이책과 특히 전자책의 자가출판(self-publication)도 이제 대세가 되고있다.

Brave New World가 도래하고 있다. 

 

피츠버그의 겨울은 눈이 많다.

금년은 미 동부 전체가 그러니 더구나 이곳은 "일러 무삼하리오"이다.

그래도 강추위는 없고 시나브로 눈발만 오락가락하다가 깜박 잊었다는 듯이 한참

다시 함박눈을 퍼부어 놓고는 금방 쾌청이다.

눈은 오래 녹지 않아서 여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사륜구동 차량을 사서 쓴다.

이곳에서는 사륜구동이 아닌 차량은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내 마음에도 수북히 쌓인 적설량은 늦은 봄이나 되어서 녹아 사라질 것같다.

그때가 되면 이 눈마을의 눈을 툭툭털고 마을 밖으로 나가서 밀린 인사를 차려야겠다.

그때까지는 이렇게 편지나 쓰는 수 밖에 없다.

 

감사합니다.       

  

 

노루 발자국~~~.

 

 

 

재작년 교도 도돈보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