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허리케인 뒷 소식, 할로윈의 저녁 풍경과 단편 한편(소수의 기본 정리)

원평재 2012. 11. 5. 12:33

 

 

 세한도

 

뉴욕에서는 지금 두시간을 기다려서 겨우 승용차에 개솔린을 채우는 난리이군요.

아들네로 일곱시간 드라이브해서 가보아야 난민 둘만 더 생기는 현장이라

이곳에서 할로윈의 "트리커 트리트"만 함께 하고 몇 컷 올립니다.

(다행히 직접적 피해는 없다고 합니다.)

구고舊稿도 하나 먼지털어 동행시킵니다.

겨우 숙제 다섯중 둘을 마치고 있습니다.

 

소수의 기본 정리

 

 

국적기를 이용하여 일시 귀국 길에 오른 수학자, 김상헌 박사의 기분은 옆 좌석의

여자 승객이 "개 바구니"를 들고 타는 바람에 더더욱 편치 않게 되었다.

그에게는 처음부터 이 여행길이 우울하게 시작되었는데 개를 들고 탄 이상한

승객과의 동행이 더욱 힘든 여행길을 만든 것이다.

 

바구니 속의 개를 보고 그가 처음 놀란 가슴으로는 항의를 하고 싶기도 하였으나

규격화 된 듯한 예쁜 통 속에 비싸게 보이는 개를 담고 당당하게 좌정하는

그녀의 품새로 보나, 스튜어디스가 그녀와 개 바구니에 대하여 각별하게 배려를

하는 모양새로 보아서는 미리 무슨 필요한 절차와 비용이 모두 치루어진 듯,

잘못 불평을 하다가는 망신을 당할 형편 같기도 하였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그와 그녀의 자리 사이에는 한 자리 빈 공석이 있었는데

사실은 이것도 항공사의 사전 조치가 아닌가 싶었다.

 

"미안해요."

고집스레 보이는 젊은 여자가 처음에는 그런 말도 없다가, 화장실에 다녀오며

그만 그 빈자리에 풀석 주저앉더니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러니까 개 때문에 하는 소리는 아닌듯하고 빈자리 공간을 잘못 차지한데 대한

미안함인지 뭔지. "비행기 타고 이제 우리나라로 돌아가니 기분이 참 좋네요.

전 미국생활 6년 만에 영구 귀국이거든요."

겨울인데도 노출이 좀 심한 옷을 입은 그녀가 말을 붙일 기세였다.

 

"아, 유학을 마치고 돌아가십니까?"

그는 평소 젊은 사람이 미국에 와서 박사학위를 하고 고국의 대학으로 돌아가는

사례를 보면 심한 컴플렉스를 느끼는 버릇이 있었다.

그도 미국생활 6년째이고 수학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고국의 어떤

대학에서 교수 자리도 제안이 있었지만 그냥 미국의 투자금융 회사에 주저앉아

버린 상태였다.

그는 자신의 재능이 창조성을 필요로 하는 대학 교수 자리에는 맞지 않다는

괴팍한 고집을 갖고 있었다.

아무래도 꼭 정상이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일종의 자기최면에 빠진 열등의식

같은 것이었고 스스로도 그런 정황을 깨우치고는 있었지만 성격인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개까지 끌고 온 옆 좌석의 그녀가 혹시라도 대학으로 금의환향하는

박사라면 이래저래 오늘 비행기 좌석 배정은 확률 이론으로 말한다면

최악조건으로 그에게 다가 온 셈이었다.

수학자인 그의 머리에 카오스 이론과 최악 조건 확률 공식이 오락가락 했다.

수학으로 박사학위를 한 그는 학문을 할 만큼 번득이는 머리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이상한 고집의 자가 판단과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로 귀국을 포기하고

미국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었다.

 

또 다른 이유란 누구의 잘못이라고 따지기도 힘들었던 상태에서 헤어지게 된

첫사랑의 여인이 고국에서 힘든 결혼 생활을 하는 가운데 거기 더하여

정신병원까지 들락날락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지금 그는 투자금융회사, "스미드 바니"에서 애널리스트로 꽤 괜찮은 일을

하고 있었다.

"유학과 귀국이라니요. 천만의 말씀이지요!"

개주인인 옆자리의 그녀가 펄쩍 뛸듯이 그의 말을 부정하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미국에서 6년간 지긋지긋하게 살다가 이제 돌아가는 길이에요. 아이 둘은

남겨두고요---."

스튜어디스가 애피타이저를 돌릴 때에 칵테일과 와인을 시켜서 거푸 마시더니

입이 좀 헤퍼진 그녀가 푸념 같은 것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성가시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유학생이 아니라는 소리에 최악의 사태는

면했다고 그는 자위하였다.

 

"기러기 가족이 되셨군요."

그가 예의를 조금 차려서 응대하였다.

"아뇨, 이혼하고 가는 길이죠. 시원해요. 히스페닉계 미군과 국제결혼을 해서

미국에 갔는데 영어도 서툰 판에 이 사람들은 집안사람들끼리 스페인어만

해대는 통에 도저히 못살겠더라구요. 말이 안통하고 산다는 것 생각해 보신 적

있어요?"

누구에게도 못했던 푸념을 처음 만난 미지의 코리언에게 모두 다 하겠다고

작정이나 한 듯이 그녀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내뱉다시피 하였다.

"하인즈 워드"의 덕분인지 국제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서슴없이 나왔다.

그가 물끄러미 개 바구니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저는 이 말 잘 듣는 펫하고 만 살았어요. 이름은 돌이라고 해요. 돌---.

자식들조차도 말을 배우자 영어와 히스페닉어로만 말하고---."

"어디 사셨어요? 미국 땅에 한국사람 없는 데가 없잖아요?"

"웨스트버지니아 쪽인데 한국사람 없어요. 잘난 유학생 젊은 애들이나 조금

있고---. 또 한국 사람끼리 놀면 남편이 의심을 했어요."

정제되지 않은 말들이 막 튀어나왔다.

모국어든 외국어든 말을 좀 배우지, 딱한 사람이었다. 언어의 문제가 모든

문제 제기의 근원이었다,

 

그는 얼마 전에 한인 신문에서 읽은 강유일이라는 작가의 대담기사가 생각났다.

한때 신선한 언어와 생각지도 못했던 신세대의 패러다임으로 작품을 쏟아내던

그녀는 언제 독일로 가서 그동안 꽤 오래 공부하며 산 모양인데, 얼마 전에는

맨해튼으로 와서 뮤지컬 작업이던가, 무슨 그런 창조적인 일에 새로 매달리고

있었다.

"저에게 외국어는 모국어의 지평을 넓히는---,"

대담에서 그녀는 그런 말을 했는데 끝 말 어휘는 그에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지렛대"던가 "촉매"던가 그 비슷한 말을 하였던 기억이 났다.

그는 수학자답게 "모국어의 지평을 넓히는 제곱수이지요"라고 빈칸을 메꾸어

보았다.

 

이윽고 식사로 스테이크와 비빔밥이 나오며 옆 좌석 그녀의 입은 잠시

봉해졌다.

그러나 후식이 나올 때에 그녀는 다시 와인 두 잔과 맥주를 청하여 마시고나서

이제 울먹이며 타향살이 설음을 이야기하려고 벼르는 듯하였다.

사태를 파악하고 놀란 그는 웃으며 선수를 쳤다.

"개에게도 밥을 주셨으니 화장실에도 데려가시죠."

"아까부터 자꾸 개가 뭡니까, 개가---. 펫이든지 강아지라고 불러야지요."

그녀가 조금 개처럼 낑낑대더니 화장실 쪽으로 개를 데리고 사라졌다.

막상 개는 낑낑대지 않았다. 성대 수술을 했을 것이다.

미국 수의사들 하는 일의 80퍼센트는 애완견 안락사와 성대 수술 같은 것이라는

말이 그에게 떠올랐다.

그는 얼른 앞좌석 등받이에 있는 모니터를 조작하였다.

오랜만에 국적기를 탔는데 좌석마다 개인 모니터가 있고 골라서 보는 영화와

게임의 종류가 아주 많았다.

 

영화 리스트를 좍 펴니 년 전에 수학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큰 화제가 되었던

"프루프"라는 제목이 나왔다. 몇 번인가 보자고 하면서도 놓친 영화였다.

그는 얼른 그 영화를 켰다. 옆자리의 그녀가 돌아왔으나 그가 무시하자 이내

잠이 드는 눈치였다.

 

영화는 들어서 조금 알고 있던 대로 천재 수학자의 정신적 황폐 과정과 그의

두 딸 중하나가 역시 천재성을 이어받았으나 오래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이야기를 펼쳐 보여주고 있었다.

어느 분야도 다 그렇겠지만 특히 천재적인 수학자는 20대의 초반에 그 천재성이

다 타버리고 그 이후에는 광인이 되거나 폐인, 잘 해 보아야 평범한 인간으로

전락되어 버리는 첫 번째 카테고리가 있고 그 반대편에는 천재성은 없으나

그 분야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마르지 않는 애정을 가진 꾸준한 노력가의

세계가 있어서 양분된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가 속한 범주는 두 번째이고 지금 한국에서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과학고등학교

동기이자 그의 첫 사랑, 그리고 지금은 이혼녀인 "장소수(張紹修)"는 첫 번째

범주에 속한다고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지금 그는 그녀, 장소수를 만나러 귀국하는 길이었다.

 

두 사람이 키스를 나눈 것은 고3 시절이었다.

"이름이 소수가 뭐니? 소수서원에서 따온 동양철학이나 유교적인 이름이니?

설마 수학의 솟수는 아니겠지?"

그가 고3 때 한반이 된 그녀에게 물으며 접근했던 것이 사랑의 시초였다.

"응, 솟수로 읽는 소수(素數)에서 따온 게 마자. 우리 아버지가 수학교수였는데

제자와 불륜으로 나온 게 나야. 그래서 그런 수학의 뜻을 내 이름에 담았데---.

수학자들을 홀리게 하는 그 미지의 대 명제, 소수 말이야. 하지만 본가의 호적에

이름을 올릴 때는 소수서원의 소수(紹修)라는 한자를 썼더군. 무너진 동양유학

정신을 다시 이어 세운다는 뜻으로 헌액 했다는 그 소수서원 말이지. 아이러니야.

그 수학자는 돌아가셨지만 살아생전 나는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어. 지금도

후회는 없어."

오래 참았다는 듯이 그녀가 그에게 비밀을 절규처럼 토로하였다.

달빛 아래 교정에서 나눈 그 때, 그리고 그 이후의 긴 이야기들을 그는 아직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수학에서의 "소수"는 1과 자기 자신만으로 만 나누어지고 다른 정수로는 나누어

질 수 없는 수를 뜻한다.

2나 3은 당연히 소수이고 4나 6과 8은 그러므로 또 당연히 소수가 아니다.

2를 뺀 모든 짝수는 당연히 소수가 아니다.

우리말로 발음할 때는 혼란을 막기 위하여 솟수라고 구별하여 쓴다는 건

상식이었다.

"내 사랑하는 솟수야, 우리는 솟수가 되자. 1은 기둥이 되는 나, 김상헌이고

자기 자신에 속하는 수자는 너 장솟수야. 우린 우리 둘에게만 속하는

솟수야---."

그런 메일과 말을 두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나누었다.

둘은 정말 열렬히 사랑하였다. 일종의 조기 사랑이었고 조숙한 사랑, 혹은

 비범한 사랑이었다.

수학에서의 소수는 원래 솟수로 읽었는데 한자음에는 "ㅅ" 받침이 붙지 못한다는

문법 때문에 "소수"로 표기가 되었다는 내력을 아는 그는 그녀, 장소수를 은밀하게

부를 때면 꼭 "솟수"라고 불렀다.

그 불륜의 수학자가 딸에게 붙여준 이름의 원 뜻, 수학에서의 발상을 그가 잊지

않고 계승한 셈이었다.

 

과연 장소수는 수학의 천재였다.

그래서 수학과를 지망하여 너끈히 합격하였고 대학에 다닐 때는 비범과 천재의

영역을 두루 향유했으나 자주 머리가 아프고 우울증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정신 질환이 그녀 가계의 내력인지는 불분명했으므로 불륜이라는 그녀의 출생

내력이 그녀의 심리상태에 큰 짐이 되고 있는 점만은 확실하였다.

그녀와 달리 그가 수학과를 선택한 것은 성적에 맞춘 측면이 컸다.

공대를 넘보았으나 성적이 조금 모자랐다.

빛나는 재능은 없었으나 수학에 대한 재미와 순수한 열정, 그리고 그녀, 장소수에

대한 또 다른 순수의 열정이 그를 수학과로 지망케 하였다.

그는 장소수와 함께 같은 과를 다녔으나 이제 두루 나라의 준재들이 모인

캠퍼스에서 연적은 많아졌고 자주 우울증을 앓는 그녀를 감당할 자신은 점점

없어져서 의과 대학의 선배에게 무심한 듯 사랑을 넘겼는데, 의대생이니까

그녀를 책임질 수 있으리라는 자기변명으로 비겁한 자신에 대한 분노를

다독였다.

 

비행기 속의 영화는 정황 설명의 서론이 끝나고 본론이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천재 수학 교수 로버트(앤서니 퍼킨스)는 젊은 시절 위대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이제는 광인과 폐인의 세계를 왕래하게 된 가운데, 장녀, 클레어는 성공한 미국적

속물이 되어서 맨해튼에서 주식 애널리스트로 살고 있고 차녀인 저 천재적 딸,

캐서린(기네스 펠트로)은 아버지가 못다 이룬 "소수(素數)에 관한 어떤 힘든 정리"를

그녀의 천재적 재능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의 수학자들은 그 증명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또 그 결과를 그녀의

노작이 아니라 아버지의 죽기 전 마지막 업적으로 보려고 한다. 심지어 그녀를

이해하는 연인, 할 조차 그런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아니 사실은

그녀 자신의 의식 계에도 상당히 혼란한 면모가 보이며 때때로 매우 비정상적인

국면이 묻어나온다.

이 위기의 상황에서 할은 명석한 머리와 폭넓은 가슴으로 캐서린의 고통이나

혼란이 가계의 생물학적 유전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와 끊임없이 접촉하며 살아 온

가운데 받게 된 어떤 파괴적인 영향력 때문이었다고 그녀를 위로하고 설득한다.

세상이 모두 그녀를 외면하고 그녀 스스로도 언제 광적인 상태로 돌변할지 모를

위협과 위험을 자각하는데 할의 신념은 결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소수(素數) 문제 중에서도 가장 난제로 여겨온 어떤 부분을

아버지가 아니라 그녀가 해결하여 노트에 풀어놓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그 증명이 옳다는 것을 다시 증명해 나아가게 된다.

그 과정은 물론 쉽지 않았다.

우선 사람들이 노트의 필적조차 이미 죽은 아버지의 것이라고 여긴다.

집요한 설명과 해석으로 이 부분은 케서린의 것임이 인정된다.

그리고 또 지속적인 수학적 증명, 증명---.

이야기의 끝마무리는 명료하지 않다.

마치 어두운 의식 계에서 부녀가 서로 천재성을 발휘하며 때로 분투하고 때로

협력하였듯이 결말은 계속 많은 불가해의 여운을 관람자의 몫으로 남기며

아쉽게 끝이 나고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현실계의 장소수도 많은 불가해의 천재성을 갖고 있었다.

특히 그녀가 그의 내면심리를 파악하는 것은 무서웠다.

그가 그녀를 의대생에게 양보하는 심리 전말에 대해서는 시시각각으로 그녀가

그의 심리 변천사를 쓸 정도였다.

최근 그녀가 이혼을 하고 그에게 구원을 요청한 때는 그도 백인 여인인 제인과

막 이혼을 한 순간이었다.

장소수가 택한 그 타이밍이 너무나 절묘하였다.

그가 이혼 수속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에서도 아무도 몰랐으니 한국에서

미리 알 사람은 없었다.

인터넷 시대라서 수학과 동기회 사이트가 잘 돌아가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공식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서로 교신을 하지 않았고 개인적인 일을 사이트에

올릴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런 어느날 그녀가 그에게 메일을 보내온 것이다.

의사인 남편과 모든 관계를 청산하고 이혼을 했는데 문제는 그렇게 해 보아도

때로 광포하게까지 표출이 되는 그녀의 우울증이 도무지 치유될 기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메일을 보낸 시점이 우연의 일치인가.

그는 그렇지가 않고 그녀가 무섭도록 정확하게 그의 공허한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고 믿었다.

"너, 김상헌의 첫 키스를 생각할 때와 소수의 기본 정리 풀이에 매달릴 때만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애."

그녀는 대화창을 통하여서 과감한 유혹으로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두 사람이 동기회 사이트에 그때 우연하게도 똑같은 순간에 들어간 것이

대화창을 열게 한, 단순한 행운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 쪽이 미리 들어가서 오래동안 용의주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면

그런 일쯤은 요행도 아니다.

그녀는 짦은 자기 고백을 아첨처럼 내놓더니 더욱 깊은 심정은 수학자들에게

항상 큰 숙제가 되어있는 "소수의 기본 정리"에 관한 이야기 속으로 감추어

넣었다.

수학계에서 점점 더 큰 소수의 발견은 수퍼 컴퓨터가 생기면서 가히 폭발적이었다.

"솟수야, 오랜만이구나. 네가 대화를 청하다니---. 아무래도 지금까지 우리

수학계에, 그러니까 이 세상에 나온 어떤 소수보다도 값이 더 큰 소수인 너를

발견했나 보구나---?"

그도 자신이나 그녀의 최근 개인사, 그러니까 이혼이니 정신질환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 없이 그렇게 물음표로 화답하였다.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이혼을 했다 던지 각자 모두 아이를 하나씩 두었는데

이혼을 하면서 모두 배우자에게 양육권을 빼앗겼다 던지 하는 개인적 사정을 알게

된 것은 이 날의 대화창 채팅이 이루어지고도 한참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아니, 더 큰 소수를 또 발견했다는 정도가 아니야. 소수를 찾아내는 심플한

공식을 발견했다는 것이야."

그녀가 혁명적 선언을 대화창의 메시지로 올려놓았다.

 

소수라는 수학적 명제가 재미있는 것은 어떤 예측 공식을 거부하고 있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하면 더 큰 소수의 존재를 자동적으로 예측할 수 있느냐 하는

일체의 공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그 숙제를 장소수가 풀어냈다는 선언이었다.

"야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 된지 십년도 되지 않았는데 이건 그보다

더 세상을 놀라게 하겠구나!."

그는 진심으로 놀라서 재 화답하였다.

그녀는 복잡한 공식과 그 실제적 결과를 보내주었다. 스캐너를 쓰기도 하고

디카로 공식 도출 과정을 찍어서 전송하기도 하였다.

그는 그 발견에 대하여 무어라 논평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재능은 그런 창의적 발견, 혁명적 대사건을 수용하기에는 용량이 부족하였다.

그러나 실제적 적용에 있어서는 수학의 천재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현상을 탐구하고

확인 할 수는 있었다.

수십 차례의 실제적 적용에 관한 의문을 그가 그녀에게 보낸 것은 솔직히 논리 검증을

위한 것이었다기 보다는 그녀와의 교신이 계속 연장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점점 논리 검증에서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된 것도 한 사람의 돌관 작업이 아니라 여러 수학자들이

연관도 없이 이리저리 연구하던 업적들이 기적같이 통합되면서 극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나마 최종 정리는 최초의 발견이 선언 된지 1년이나 더 지나서 이루어졌지 않았던가.

최초의 발견에 그렇게 센세이셔널하게 떠들었던 저널리즘들도 실상 1년 후의 최종

정리가 매듭지어졌을 때에는 별로 관심도 보이지 않았던 아이러니도 있었다.

 

하여간 이토록 어려운 세기의 문제들을 장소수 혼자서 해냈다니---, 놀라움 보다는

사실을 말하자면 의혹이나 의심이 앞서는 정황이었다.

 

장소수는 이혼을 하고나서 늦은 박사학위를 새로 모교에서 밟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서 칩거하며 지내는 형편이었다.

수학이 예로부터 고독한 학문이라고는 할지라도 이제는 협동과제로 풀어나가야 하는

시대적 추이가 아니던가.

"유레카!"하고 하늘을 향하여 깨달음을 부르짖을 수 있던 독불장군의 시대는 지나갔고

고집불통의 천재들도 상호작용의 묘미를 탐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 이 시대가 아닌가.

아니 이미 페르마조차도 그 많은 정리를 해낸 것은 수학자들과의 엄청난 서신 교환의

결과였었다.

그가 몇 가지 실제적 예를 들며 장소수에게 질문을 계속하자 마침내 그녀는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에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는 장문의 메일을 보내왔는데 걱정인 것은

그 메일에 담긴 내용들이나 논지의 전개가 매우 혼란스럽고 비논리적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가 진정으로 그녀의 심리상태를 걱정한 것은 이때 부터였다.

대화창의 대화 속에 옛 사랑을 복원하고 싶었던 그의 소망은 엉뚱하게 빗나가고

그녀는 혼돈 속에서 절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아차 하는 느낌으로 당황하고 있을 때에 그녀로 부터는 절망적인 메일이

날라 왔다.

"나 이제 더 큰 발견을 해냈어. 소수 발견의 예측 공식은 결코 불가능하다는 그 사실

자체를 증명하게 되었어. 내용은 대용량 첨부 파일에 있어. 확인하고 동의해줘.

동의만 하고 서명하면 내가 교신저자로 올려 줄께. 이 이론의 공동 발견자가 된다는

말이야. 깊은 애정을 담아서, 소수로 부터."

 

그녀의 메일 내용은 비정상 심리 상태의 증거에 다름 아니었다.

지금까지 소수 예측 공식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 못지않게 이런 공식이 불가능하다는

불가해성을 이론으로 정립하려는 수많은 노력이 있어왔지만 아직까지는 절망의

단애가 모든 수학자들의 앞에 엄존하고 있었다.

혼자 힘으로가 아니라 수많은 수학의 대가들이 협동과제로 그 문제를 정립하려

했으나 모두 손을 들고 만 상태였다.

그것을 단독으로 해결했다는 것은 폐광구에서 석유나 다이어먼드를 캐냈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돈키호테 중의 하나로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것이었고 무한 동력의

발견자를 자칭하는 정신 나간 과학자에 다름 아니었다.

 

과연 얼마 후에 그녀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동기회 사이트에 떴다.

표면적 동정의 글 속에는 점잖은 조롱이 내재해 있었다.

그는 회사에 휴가원을 내고 귀국 비행기 표를 끊었다.

이혼 소송은 결말이 났으나 자녀 양육권에 따른 부차적 쟁점들, 예컨대 친견의

횟수와 기간 문제 등으로 공방이 절정을 이루고 있을 때에 그는 포기각서를 쓰고

그런 문제로부터 패자가 되어 철수하였다.

승산 없는 싸움에서 빠져나와 진정으로 이길 수 있는 할 일이 있다고 그는

생각하였던 것이다.

 

 

옆 좌석에서 자고 있던 이혼녀가 갑자기 눈을 떴다.

무릎에 얹은 펫 바구니가 몹시 흔들렸다.

"개가 화장실에 가고 싶은 모양이군요---."

그가 무심하게 말하였다.

"펫이라고 부르라니까요."

그녀가 웃으며 말하였다.

"아, 돌---. 내 머리가 돌이란 말입니다."

둘은 함께 웃었다.

"부인은 미국에 두고 왜 혼자 가세요? 고국 방문, 일시 귀국 뭐 이런 거지요?"

"아, 혼자 삽니다. 그리고 영구 귀국일는지도 모르겠어요."

"라디오 코리아에서 들었는데 이 시대가 독신시대, 이혼시대, 미혼시대라고 하대요.

돌도 수컷인데 혼자잖아요. 영어가 안 되니까 라디오 코리아는 열심히 들었지요."

그녀가 큰 엉덩이를 그의 코앞에 들이대고 빠져나가며 말하였다.

"나는 결혼하러 들어갑니다."

돌을 데리고 화장실로 가는 그녀의 뒷전으로 그가 예전 "우리의 맹세"를 외우듯 크게 소리쳤다.

 

(이번 이야기 끝)

 

 

 

 

 

 

 

 

큰 손녀는 한바탕 일찍 돌고 들어와 방문객들을 상대하고~~~.

 

 

전날 몰에서 만난 판매원이 할로윈 치장으로 포즈를 취해 줍니다.

 

허리케인을 배경으로한 에세이 숙제들은  미리 올릴 수 없어서

활자가 된 후, 차후를 기약합니다^^.

 

 


Maria Farantou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