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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 쿠르베의 잠 (강송화의 소설 세계)

원평재 2010. 12. 24. 22:19

강송화 소설가의 작품 세계에는 우리 시대의 키 워드가 모두 들어있다.

세계화의 물결, 국제 결혼과 이혼, 불륜 혹은 혼외 정사, 파산과 봉합, 자녀의 일탈,

동성애 혹은 양성애 등등의 휴먼 드라마가 질풍노도처럼 작품을 휩쓴다.

서평을 부탁하며 강 작가가 호소하였다.

 

"제가 단편을 발표할 때마다 주위에서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쑥덕거리는 것

같아요. 모두 작가의 상상력이 동원된 픽션일 따름인데도 말이지요.

특히 동성애 같은 부분은 너무 억울해요."

 

강 작가는 현재 국내에 체류하고 있지만 재미 교포이고 미주 한국일보를 통하여

등단한 이래 국내에서는 계간 <문학과 의식>을 통하여 재 등단하고 그간 단편을

여러군데에서 발표하고 있었다.

내가 말하였다.

"직접체험이 아니라 간접체험도 작가의 감정이입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면 그건

자기 이야기라고 남들이 말해도 억울할게 없는 것이지요. 

나도 한동안 팩션 장르를 표방하며 픽션과 팩트를 섞었다고 외쳤지만

고백하자면 모두 허구와 상상력의 세계였지요.

반대로 대부분의 작가들이 픽션이라고 말하는 작품들은 이 동감과 감상의 감정이입

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작가의 사적 세계라고 남들이 말해도 맞는 말이겠지요.

힐끔거리는 주변의 시선을 독자 늘어나는 표상이라고 위안하십시오."

 

그래서 그런지 책의 판매부수가 요즈음 만만치 않다는 후문이 들린다.

 

 

 

 

강송화 작가의 작품 세계

 

근대 소설 문학이 장르로서의 위치를 굳힐 때쯤에 붙여진 호칭은 NOVEL이었다.

기록이 새롭고 신기한 내용을 담았다는 함의였다.

여행이나 체험 공간이 제한적이었던 당시로는 작가의 창조적 상상력이 이야기의 근간을

이루었기에 배경 설정은 아무래도 개인이 직접 체험하기에는 힘든 먼 이방의 이질적

환경이기가 쉬웠다.

인간의 속성 자체도 진부한 일상 보다는 또 다른 세상의 추구였다.

독자의 가독성도 신기성(novelty)에 달리게 되었다.

 

시대의 추이에 따라 사실주의 문학이 자리를 잡게 되자 로만스 문학적인 황당성이나

비현실적인 전개 방식에는 획기적 전환과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보통 사람들의 직접

체험과는 거리가 있는 그럴듯한 가상현실이 독자의 시선을 끌어낸다는 기본에는 큰

변화가 있을 수 없었다.

물론 아방가르드나 메타 픽션 속의 실험적 작품은 이 담론에서 제외가 된다.

 

강송화는 삶의 과반을 미국에서의 이민자, 그러니까 재미교포라는 신분으로 지낸

작가이다.

문단으로의 첫 등단도 미주 판 한국일보 신춘문예였고, 고국에서의 등단은 나중에

<문학과 의식>을 통하여서 이루어졌다.

아무튼 한국계 재미 작가로서는 양쪽의 통과의례를 모두 마친 셈이었고 그의 작품

속에는 당연히 국내외의 이질적 요소가 인과의 법칙에 따라 아주 자연스레 엮어져 있다.

소설 문학의 제반 요소가 그의 작품에 숙명적으로 자리한 동기이자 재미와 가독성을

한껏 올려주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그의 소설이 재미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산업사회의 저 통절한 속성, 소외와 그 극복에의 몸부림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여주어서

흔히 흥미 있는 이야기가 주는 경박함과 가벼움의 파도에 방파제가 되고 있다.

작품 하나하나를 짧게 열어보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곳에 꿈이 있었네”는 미국에서 보석상을 하는 어떤 부인의 이야기이다.

세계적 불황기에 미국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그런 어느 날 노숙자가 보석 비슷한 것을

들고 와서 돈 몇 푼과 바꾸자고 한다.

처음 외면했다가 나중에 몇 푼을 쥐어주고 바꾼 그 물건은 감정을 해보니 대단한 보석으로

판명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의외의 반전으로 작가는 끝을 맺는다.

바다 건너 먼 이야기가 우리의 실상에도 와 닿고 결말은 의외성을 갖고 와서 읽는 재미와

함께 깊은 상념을 준다.

 

“구스타브 쿠르베의 잠” 역시 일상을 벗어난 놀라운 신세계이다.

바로 레즈비언의 이야기를 처음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처럼 끌고 나가다가

역시 긴장감과 추리력을 요구하는 기법으로 독자들을 끌고 간다.

레즈비언 놀이의 황홀감과 마지막에 또다시 보여주는 극적 반전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놓고 있다.

 

“멈춰진 시간”은 여자관계가 좋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앞날이 보이지 않는

현상의 타개책으로 도미를 한 한 여인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시작된다.

초기 미국생활에서의 각고의 노력과 상당한 성공, 이어서 펼쳐지는 남편의 외도에

절망하여 여인은 충동적으로 귀국을 하여 옛날에 사귀던 젊은이와 재회를 하고 마침내

하루 밤 몸을 섞는다.

하지만 미국에 두고 온 자식이 그리워서 다시 도미를 하고 남편에 대한 가벼운 용서의

마음도 생긴다.

그러나 한국에 남은 옛 애인은---, 충격적인 결말이 다시 독자들의 마음에 집힌다.,

 

“부부‘는 어쩌면 재미 교포 가정의 좌절과 재기의 기본 방정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순한 공식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마약과 경매라고 하는 극적 배경이 자리

하고 있어서 독자들은 아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침내 그렇게 부정해 왔던 남편에 대한 사랑의 회복이라는 휴머니즘이 독자를

안도케 한다.

 

“아메리칸 드림” 역시 이민 가정의 통상적인 변모, 변천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것은 수많은 직업으로의 놀라운 자리바꿈과 거기 따르는

소상한 묘사가 작가의 재능을 확인하는 재미를 준다.

여기에 옮겨본다, 그 변천사를.

우선 부부가 함께한 닭 꼬치 장사, 특히 꼬치를 끼울 때에 실수로 손가락에 꼬챙이를

찌르고 다치는 일은 상상도 못한 상식의 확장이다.

그리고 가정집을 찾아다니는 이동 미용사 생활, 그 다음의 옷가게는 기본, 건물 인수,

남편의 외도, 나중에 용서하고 주인공 여자의 이름으로 재산 옮기기, 여왕 행세와

쇼핑광으로의 변신, 남편의 뇌졸중, 결말 부분의 자기반성의 시간---,

과연 삶이란 무엇인가?

 

“어떤 해후”에도 휴머니즘이 자욱하다. 고국 한국에서 IMF때 실직을 하고 이혼한 남자는

아들을 데리고 미국, 약속의 땅으로 간다. E-2 비자라는 설정이 처음부터 조마조마하다.

그 말썽 많은 신종 노비문서 같은 걸 갖고 미국으로 간 그는 얼마 되지도 않아서 또 얼마

되지도 않는 전 재산을 사기당하고 분한 김에 살인을 한다.

아이는 자연히 다른 가정에 입양이 된다. 수많은 세월이 흐르고 훌륭하게 성장한 아들이

정말 미국 땅에서는 드물게 수형수인 아버지를 면회 오고 어떤 해후 속에 인생의 의미를

찾은 살인범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전개된다.

 

“축 에덴기”에는 아직도 다루지 않았던 주제가 있다고 궁금해 하는 독자들에게

Here, Now!라고 외치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하다.

바로 13살에 조기 유학한 청년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부잣집 청년과 결혼하여 도미한 소라, 남편은 알고 보니 마약에 섹스광이다.

조기 유학생의 실상의 일부가 베일을 벗는 순간이다.

소라의 아메리칸 드림 추구의 계기는 처절한 것이었다.

이상한 눈길을 보내는 계부를 피하여, 그리고 가난한 애인의 고난 참담한 표정도 피하여

미국으로 온 그녀였는데 행복한 생활도 잠깐, 남편의 실상을 본 것이다.

마침내 소라도 마약과 섹스에 탐닉, 남편과 함께 어떤 섬으로 가서 전에 비디오로 찍어둔

CD 속의 낯익은 두 백인 여성과 혼음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마침내---.

 

“파도타기를 끝냈다”에서는 이제 이 땅의 가정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이혼이라는

화제의 전말을 그려놓고 있다.

영화에서나 본 미국 이혼 법정의 풍경이 소상하게 글밭을 이루고 있다.

양육권에서 승소하고 잠시 귀국한 여인은 어릴 때 애비 없는 호로 자식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살았던 과거를 반추하게 된다.

이야기는 이혼 전후의 심리상태도 잘 묘사하고 있고 이긴 재판의 결과를 엎고 남편에게

아이들 양육권을 주는 아내의 모습, 엄마의 모습도 절절하게 전해져 오는데,

그것만으로는 아쉽다는 듯 둘째 오빠의 실종과 남편의 영상을 클로즈업 시키며 독자의

감성을 울려놓아서 한 단계 더 문학성을 높이고 있다.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은 각각 주인공의 이름이 다르고 전개의 설정도 다르지만 한편의

대하소설로도 읽힐 수 있겠다.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좁혀서 말하자면 재미 동포의 실상이 고국의 흙을 묻혀서 현실로 다가오게끔 그려 낸

이야기이지만 따지고 보면 이 이야기들은 우리시대, 이 산업사회를 살아나가는 고독한

개인, 혼자뿐인 개체의 고민과 신산한 삶을 적어내고 있어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모든 현대인은 유태인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인간의 유대관계가 단절된 소외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또 다른 자아를 이 여덟 편의 이야기 속에서, 특히

그 주인공들에게서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