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의 사계

송구영신을 앤디 워홀과 카네기의 강철 도시에서

원평재 2011. 2. 20. 05:37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새해 새 아침이 밝아온다.

 

 

송구영신!

 

묵은 해를 버리고 새 해를 피츠버그에서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강철왕 카네기로 상징되던 이 도시는 70년대 이후 제강, 제철 산업의 퇴조로 큰 불황에 빠지고

도시 인구 전체가 반으로 줄어드는 위기를 맞는다.

 

이때 전국으로 흩어진 피츠버그 사람들이 "피츠버그 스틸러즈"의 영원한 팬들이 되어서

지금도 스틸러즈가 출전하는 경기이기만 하면 전국 어디서나 노란 스카프를 휘두르며 광적인 응원을

하여서 큰 힘이 된다고 한다.

 

"하인즈 워드"가 활약하는 그 아메리칸 풋볼 이야기이다.

"피츠버그 스틸러즈"의 본거지는 "하인즈 필드 스타디엄"인데 하인즈 워드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은

아닌듯 싶다.

우리의 영웅이기도 한 그가 활약하기 훨씬 전부터 이 경기장은 있었으니까 말이다.

 

 

의학 연구소를 가보았다.

피츠버그는 미국의 대도시가 겪고 있는 국제화의 추세에 비하면 아직도 지역성이

강한 곳이다.

그러나 이 의학 연구소는 그런 도시의 분위기와 달리 세계화의 기본 정신이 매우

적극적인 곳 같았다.

연구소의 작은 회의실에서 여러 사람들을 소개 받았는데 모두 열린 마음들이었다.

 

Billy Hiller라는 나이든 연구원은 자기 이름을 히틀러로 기억해 달라고 하였다.

"아돌프 히틀러?"

"아, 그럼요. 아돌프 히틀러~~~".

물론 우리가 나눈 발음은 "애더프 힛러"였다.

우리는 사적인 친구가 되기로 하였다.

 

 

신년사 어나운스먼트를 보니 세상은 어디나 비슷하여서 "Road Ahead"라는 제목 아래,

새해에는 더욱 긴축하고 더욱 열심히 일하자라는 당부의 말씀이었다.

 

특별히 피츠버그는 새로운 산업으로 21세기의 르네상스를 모색하고 있지만 전통 산업이 계속

퇴조하는 경향성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고, 특별히 지금 미국 사회의 최대, 최고 화두인 "의료 보험"

법안의 통과와 실천 과정이 이 곳과 같은 의료기관으로서는 "위기이자 기회", "기회이자 위기"라는

점이 더 없이 강조되고 있었다.

 

 

이 의학 연구소의 관련 기관은 시내에 몇군데 산재하여서 두어군데를 더 다니며 인사를 나누었다.

조심스러워서 사진을 찍자고는 하지 못하였다.

 

 

 

 

 

다음날 "하인즈 워드"는 분투 노력하여서 터취다운은 못하였으나 팀이 일단 공동 2위로 올라가는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피츠버그는 앨리게니 강과 또 무슨 긴 이름의 강이 합수하여 "오하이오 강"을 이루는 지점에

자리하여서 미국에서 가장 다리가 많은 도시라던가---,

하여간 다리가 많이 걸려있었다.

 

 

 

 

시계가 있는 건물이 메이시 백화점인데 도시 전체가 오래되고 우중충하여서 이런 건물들이 벗어버려야할

짐인지 지켜야할 역사적 유산인지는 내가 가름할 수준을 넘어나고 있었다.

"지키고 혁신하고~", 그런 모범 답안이야 항상 강의실에 존재하지만---.

 

 

 

 

 

 

예컨데 카페나 레스토랑만 해도 이곳은 고색창연하여서 우리나라나 미국의 신흥 도시처럼 새 건물에

들어서는 일이 없었다.

 

 

 

 

참고 자료

 

1792년경 조지 안슈츠가 건설한 용광로는 피츠버그에 철강산업 발전의 토대로서 중대한 공헌을 했다.

1834년 펜실베이니아 운하와 포티지 철도가 동시에 완공되자 본격적인 교역과 해운업이 시작되었다.

앤드루 카네기, 헨리 클레이 프릭, 토머스 멜론 등 산업계의 거물들이 시를 중심으로 기업을 일으켰다.

이들 기업체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노사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했다.

1881년 미국노동총연맹도 이곳에서 결성되었다.

현재 피츠버그 시는 전국에서 가장 큰 내륙항이며 중요한 교통 중심지이다.

철강산업이 가장 핵심적인 산업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지만 그밖에도 석유·유리·전기기기·기계류·석탄·코크스·

화학제품 생산을 비롯해 다양한 산업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지역 내에 있는 산업연구소만 해도 150개가 넘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는 대대적인 재개발사업을 시행해왔다.
가장 핵심을 이루는 사업은 대기오염 억제, 홍수 예방, 하수처리 능력의 향상 등이었다.
1957년 전국 최초로 원자력에 의해 전력을 생산하는 시가 되었다.
골든트라이앵글 지대도 대부분 새롭게 정비되었다.
이 삼각지대 내에는 시민회관, 피트블럭 하우스 요새가 있는 포인트 주립공원, 초고층 빌딩들과 정원이 있는
게이트웨이 센터 등이 있다.
 
피츠버그대학은 1787년에 인가받았다.
그밖에 카네기멜론대학교(1900)·두케인대학교(1878)·채텀대학(1869)·칼로대학(1929)·포인트파크대학(1933)·
앨러게니군지역사회대학(1966) 등 다양한 고등교육기관들이 있다.
카네기 재단에는 200만 권의 장서를 갖춘 도서관, 미술관, 자연사박물관, 카네기 음악당 등이 있다.
핍스 식물원과 불 천문대도 카네기 재단에 속해 있다.
스리리버스 경기장은 야구 팀인 피츠버그 파이어러츠와 축구 팀인 스틸러스가 탄생한 곳이다.
1794년에 자치시, 1816년에 시가 되었다. 인구:시 322,450(2004), 대도시권 2,358,695(2000),
피츠버그-비버밸리 대도시권 2,242,798(1990).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앤디 워홀은 피츠버그에 있는 카네기공과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52년부터 뉴욕에서 상업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팝아트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 광고 디자인 등 시각예술 전반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오면서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그는 캠벨 수프 깡통, 코카콜라 등 상업적 소재들을 미술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신문이나 잡지에 등장한 사진을 캔버스에 옮기고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색의 변화만 주는 것이 워홀 작품의 특징.

마릴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레이스 켈리 등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여인들은 워홀 작품의 대표적 소재다.

그는 유명인들의 사진을 이용한 실크스크린 작품을 통해 현대 미국 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87년 담낭 수술과 페니실린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http://www.warhol.co.kr/

앤디워홀 홈페이지

 

 

 

 

 

 

 

--구두 드로잉

 

 

 

 

 

 

 

 

 

 

 

[출처--http://blog.daum.net/yooncresumer/5829494]

 

미국 피츠버그 시내 전경. ‘뚜껑 열린 지옥’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공해로 얼룩졌던 철강도시 피츠버그는 이제 세계적인 생태도시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