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안나 카레니나....

원평재 2012. 12. 11. 23:03

 

A 형!

어쩌다가 웃자란 세대처럼 되어버린 시절에 다시 한해가 지나가는 세모의 절기,

그냥 또 속절없이 세월 타령만 할까, 아니면 입을 닫고 있을까 우왕좌왕 하던 차에

인형의 용기있는 펜 대를 바라보고 몇자 사족을 달아봅니다. 

 

안나 카레니나....

인터넷을 보니 무슨 연고인지 지금 서울에서는 안나 카레니나에 관한 독회讀會강연이

두군데에서나 열리더니, 마침내 "응답하라, 1997"이 아니라 "응답하라, 1877"로

톨스토이를 소환, 청문코자하는 분위기가 불타고 있군요.

 

그 대표적인 경우를 들자면 J일보의 중년 여기자가 "첫사랑"과 "나이 들어서의 사랑",

"불륜"과 "진정한 사랑"이라는 이항 대립의 포멧으로 트위터들에게 독전의 북소리를

며칠 전부터 보내고 있네요.

천만다행인 것은 이 분이 젊고 "전투적인 여성주의자(militant feminist)"들의 섯부른

승전고를 울리려는 편향된 시각이 아니더라는 것이지요.

오히려 연륜이 주는 사려분별력, 지혜로운 주장으로 논쟁의 물고를 트고 있어서 이제는

구경꾼이 되기에도 자격이 넘어버린 우리 세대에게는 불온한 정서로 들리지가 않더라는

말입니다.

제목도 "너희는 늙어봤느냐, 우리는 젊어봤다"라는 천하의 고금 진리에 속하는군요.

사유나 판단 속에는 시간 요소도 필수임을 전제하여 내 건 신중함까지....

알고도 말하기 어려울 수 있는 남녀 상열지사의 정서에 A형은 공감 혹은 비호감의

적절히 정제된 신호를 보내면서 억지 여성주의자들이 끼어들지 않도록 흐름을 종합

정리하여 개진하였구나,  소리없는 찬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A형

사실 톨스토이만 하여도 남성 위주의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시대적 상황 아래에

있던 작가, 그리고 작자였지요. 지적하셨다시피 그는 세상의 가치를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에 있다고 보고 남녀간의 애정도 남자는 가정의 보호와 유지, 여자는 출산으로

연결되는 일체의 공익적인 위치에 있다고 보았지요. 

물론 여기가 바로 페미니스트들의 송곳니가 깊숙히 파고 들어가는 공격 포인트 이지요.

공익과 희생정신을 배반하였다는 관점으로 재단된 한 여인을 작가는 비정하게도 철로

위에서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결국 대책이 없어진 작가는 이 작품을

끝으로 더 이상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었으니 가히 자업자득, 인과응보가 아니겠는가.

 

페미니스트의 이러한 주장과 톨스토이의 작가적 입장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쪽으로

편향될까요.

남자일 때, 여자일 때, 첫사랑을 수행하기에도 미숙한 청춘일 때, 웃자라 버린 고령사회의

일원일 때, 공공연할 때, 매우 사적일 때, 과연 언제 어느 때라도 우리는 청평 추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인가요....

한편 A형이 마지막 대목에서 톨스토이에게 응답하라고 다그친 주제들은 사실 문학의

영원한 주제일 뿐만 아니라 몇가지 고등 종교의 경전에서도 참으로 깊이 다룬 명제라는

사실을 음미했으면 합니다. 이 부분을 길게 좀 썼다가 아무래도 종교라면 심약한 관계로

다 지워버렸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명작이나 베스트 셀러가 생기는 바탕은 모두 독자라는

사실도 음미할 필요가 있겠지요.

 

요즈음 글을 길게 쓰면 바보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가독성이 그만큼 떨어지는 것이지요.

결론이 도출되기 힘든 주제에 얼른 맺는 말로 사흘전에 들은 연주 이야기로 일단 빚장을

걸어볼까 합니다.

음악 방송 NPR에 따르면 다니엘 바렌보임이 엘가의 첼로 협주곡 녹음을 마쳤다고 합니다.

데이니얼이 그의 부인 자클린과 40여년전 무대에 올린 다음 부인이 곧 불치의 병으로

쓸어지고 작고한 이후 처음이라고 하지요. 

 

두가지만 적시코자 합니다.

영국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가 이 곡을 작곡한 것은 1919년, 우리나라가 삼일 독립 만세를

부르던 때였습니다. 그의 나이 60세.

유럽으로서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승국까지 모두 패닉 상태에서 회복하지 못한

인류사의 고난참담의 시절이었지요.

엘가의 이 곡은 지금도 연주자가 없을 정도로 힘든 곡으로서 당대의 참혹한 경험이 고스란히

반영된 명작이었는데 이 곡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서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상심한 엘가도

그 이듬해에 유명을 달리합니다.

순애보!

 

엘가의 첼로협주곡은 그 후에도 이에 도전하는 첼리스트가 드물어서 진흙속의 진주와 같은

존재였으나 마침내 우리에게도 귀익은 자클린 뒤 포레의 등장을 맞게 되지요.

자클린과 데이니얼 바렌보임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는 세상의 연애와 결혼사에 오래 남을

극적 요소들을 모두 갖추었지요. 1966 년에 만나, 67 년 자클린은 부모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태인 바렌보임을 따라 유태교로 개종하고 결혼을 감행,

두 사람이 가장 행복했던 1967 년 바렌보임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로 협연한

엘가의 첼로 협주곡....

 

자클린과 바렌보임은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각고의 노력끝에 무대에 올리고 그 반향은

공전절후의 대 격찬. 

하지만 천재 첼리스트는  1972 년 다발성 경화증이란 치료 불가능한 병으로 연주활동도 

끝나고 죽음만 바라보는데, 아직은 청춘 바렌보임의 혼외정사와 사생아 출산.

42세에 자클린이 죽을 때에는 이미 모두들 주위에서는 떨어져 나갔다고 하지요.

위에서 본 두가지 경우에 우리는 모두 격정과 순정으로 가슴만 벅찰 뿐, 심판자의

역할에는 주저하게 될 따름입니다.

 

  

이번 엘가에서 보우잉을 휘두르는 주자는 엘리사 와일러스타인입니다. 나이 30.

아이구, A형!

서른, 잔치는 "시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데이니얼 배런보임은 望八拾입니다. 

 

Cellist Alisa Weilerstein

 

British composer Edward Elgar wrote his cello concerto in 1919 — soon after the end of World War I — and it's suffused with the dark weight of that war.

All Things Considered host Melissa Block sat down with 30-year-old American cellist Alisa Weilerstein to listen to Weilerstein's new recording of the piece, which she made with the Berlin Staatskapelle and conductor Daniel Barenboim.

 

Young Cellist With An Old Soul Plays Elgar, Elliott Carter

Cellist Alisa Weilerstein.

 

이야기는 조금 더 극적인 요소를 보탭니다.

앨리사 와일러스타인은 엘가의 곡과 또 한곡, 미국의 작곡자 엘리엇 카터의 첼로곡을

리코딩하였는데 그후 일주일만에 카터는 유명을 달리했다고 합니다. 104세~.

우리가 이야기하는 부분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에피소드일 따름입니다만---.

 

결혼 상담소가 주식 공개를 하고 준재벌의 반열에 오른지 십년도 되지 않아서

재혼 상담소를 겸하여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마침내 파산을 하는 시대, 세계 제일의

출산율 저하국가,  세련되지 못한 짧은 연애 시절과 병영 문화 후에 닥쳐오는 청년

실업시대, 모르는 가운데 찾아 온 웃자란 세대, 세태~. 

이런 초유의 시대에 풍성한 소설의 자료만 믿고 뛰어들었다가는 독자 부재의 세태에서

파생하는 공황감....

 

응답하라, 21세기(140자 트윗 독후감을 요하지는 않습니다.)

 

A형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만 신춘의 상면을 기다리며~~~.

 

NPR Music - YouTube

 

 

Cello Concerto in E minor Op.85

엘가 / 첼로협주곡 E단조 Op.85

ELGAR, SIR EDWARD (1857-1934)

Ⅲ. Adagio

 

 

Jacqueline du pre

John Barbirolli
London Symphony Orchesra

Elgar op85 Cello Con E minor 3 Jacqueline Du Pre Adagio

 

퍼셀 이후 200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에 내세울만한 작곡가를 찾은 영국인들이 엘가에게 쏟은 사랑과 존경은 실로 대단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섹스에 별장을 구하고 겨우 안정을 되찾은 엘가는 1918년에는 실내악곡 3곡을, 1919년에는 첼로협주곡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 해 여름동안 저명한 첼리스트 살몬드가 별장으로 찾아와 엘가와 함께 이 협주곡을 연습한 후 10월 26일 런던 퀸즈홀에서 본인 지휘로 초연 되었다. 모처럼 다시 찾은 창작열은 이듬해 사랑하는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소실되었고, 결국 그는 작곡에서 손을 떼었다.

마지막 대작이 되어버린 이 첼로협주곡은 오케스트라의 연습부족으로 초연에서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오랜 친지인 여류 첼리스트 해리슨의 인상적인 연주에 힘입어 차차 인기를 회복했고, 그후 카잘스를 위시하여 자클린느 뒤 프레, 폴토르틀리에 등의 연주와 음반 취입으로 가장 사랑 받는 첼로 레퍼토리가 되었다. 이 곡은 일찍부터 친교가 두터웠던 콜빈 일가에게 우정의 표시로 증정되었다. 

   

 

§ 연민의 우울함으로 가득찬 첼로 협주곡

1919년 엘가의 예순 두 번째 생일날, 지휘자 랜든 로날드(Landon Ronald)는 브링크웰즈를 방문하였고, 엘가는 그에게 이 협주곡의 긴 패시지들을 피아노로 들려주었다. 3일 후에는 엘가의 실내악 작품들을 초연할 때 참여하였던 첼리스트 펠릭스 잘몬트(Felix Salmond)가 찾아와 이 작품을 살펴보았다. ?펠릭스 잘몬트는 매우 기뻐하고 흥분하였다?고 앨리스는 당시 상황을 일기에 적고 있다. 7월 말, 엘가는 시드니 콜빈에게 ?첼로를 위한 협주곡을 거의 완성해가고 있네. 정말 대작이며 나는 이 작품이 대단하며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이 작품을 콜빈과 그의 아내 프란시스에게 헌정하기로 하였고 잘몬트에게 독주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잘몬트는 다시 한번 브링크웰즈를 방문하여 마지막으로 덧붙여진 부분들을 연주해 보았으며, 8월 앨리스가 완성된 악보를 런던에 있는 엘가의 출판업자에게 부쳤다.

엘가의 실내악 작품들처럼 간결하고 응집력이 있는 이 첼로 협주곡은 구조적인 면에서 관례적인 것을 벗어나 있다. 통상 3악장 구조로 되어 있는 협주곡 형식에서 벗어나 교향곡과 같은 4악장 구조를 채택하고 있으며, 각각 두 악장씩 짝을 이루도록 배치하였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시작되는 1악장의 도입방식은, 우울하고 비탄에 잠긴 첼로의 레치타티보로 시작되고 있다. 비올라 파트에서 들려주는 애도의 탄식과 같은 주제가 인상적인 1악장은 중단 없이 밝고 유쾌한 스케르초 악장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의 백미로 꼽히고 있는 아다지오 악장은 엘가의 탁월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만날 수 있는 악장으로, 오케스트라 위에서 독주 첼로가 자유로이 노래하고 있다.

1악장 도입부와 마찬가지로 첼로의 레치타티보로 시작되는 4악장은 이후 대부분이 활기찬 요소들이 뒤를 잇고 있지만, 여전히 우울한 기운이 잠재되어 있으며, 곡의 끝부분에서 첼로는 아다지오 악장에서의 마음을 애끓게 하는 프레이즈를 가져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마침내 첼로에서는 바로 첫번째 프레이즈를 갑자기 연주하고, 오케스트라에서 끝을 내버린다. 이 작품에 대해 ?가을날의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우울함은 비관적인 것이 아니라 연민에 의한 우울함이다?라고 말한 다이애나 맥베그(Diana McVeagh)의 말처럼, 이 협주곡의 매우 우울한 선율을 통해 엘가는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것들­수만 명의 목숨, 그리고 삶의 방식­에 대한 애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도를 담은 이 협주곡의 초연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10월, 퀸즈 홀에서 엘가 자신이 직접 지휘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펠릭스 잘몬트와의 협연으로 초연된 이날 연주회 프로그램에는 엘가의 협주곡 외에도 앨버트 코츠(Albert Coastes)가 지휘하는 스크리아빈과 보로딘의 작품이 같이 올라 있었는데, 앨버트는 엘가에게 할당된 리허설 시간의 상당부분을 자신의 리허설 시간으로 사용해버린 것이다. 결국 엘가의 협주곡 연주는 매우 불만족스러운 것이 되었고, 런던의 한 비평가는 오케스트라에 대해 “유감스럽게도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평하였다.

하지만 당대 유명한 비평가였던 어니스트 뉴만(Ernest Newman)은 불완전한 연주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아름답고, 매우 간단하다. 지난 2년간 엘가의 음악에서 볼 수 있었던 그러한 간결함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그러한 단순함 밑바닥에는 깊이 있는 현명함과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평생을 지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에 잠겨 이를 동경해온 훌륭한 영혼을 느낄 수 있다”고 평하였다.

협주곡 초연이 있은 후, 엘가는 이렇다할 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벤 존슨의 ‘악마는 당나귀(Devil Is an Ass)’를 기초로 한 오페라 ‘The Spanish Lady’와 피아노 협주곡, 그리고 BBC로부터 위촉받은 3번 교향곡의 작곡을 시작했으나, 이들 모두 스케치만 남아 있을 뿐 완성되지는 못했다. 갑작스런 작곡 활동의 중단은 1920년 평생 창작의 불씨가 되어준 아내 앨리스의 죽음과 그로 인한 내적 공허감으로 말미암아 창작 의욕이 모두 사라진 때문인 듯하다.

바흐·헨델·쇼팽의 작품들을 오케스트라 작품으로 편곡하거나, 행사 음악들을 간혹 작곡하는 것으로 작품 활동을 벌인 엘가는, 대신 명연주로 꼽히는 자신의 주요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녹음 작업들을 지휘하며 말년을 보내게 되었다.
1933년 마지막 병상에서 친구에게 첼로 협주곡의 제1주제를 불러주며 “내가 죽은 후에 누군가 말번 언덕에서 이 선율을 부르는 휘파람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놀라지 말게. 그 사람이 바로 나일 테니까…”라고 말한 엘가는 그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운명적이게도, 초연에 참여했던 19세의 전도유망한 연주자가 그로부터 66년 후 영국의 존경받는 지휘자로서, 역시 영국을 대표하는 첼리스트와 함께 이 작품을 녹음, 첼로 레퍼토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게 되었는데, 그들이 바로 존 바비롤리 경(Sir John Barbirolli)과 자크린느 뒤 프레(Jacqueline Du Pre)였다.

이혜진(음악칼럼니스트)

 

엘가 첼로협주곡 E단조 - 구성과 특징

제 1악장 모데라토 Adagio-Moderato

첫머리를 위엄 있는 첼로의 레치타티보로 연 다음, 단순한 ABA 리드 형식의 1악장이 펼쳐진다. A는 9/8박자로 비올라가 주제를 시작하면 이어 첼로가 받아 단조롭게 노래 부르다 결국 E단조 상행음계로 폭발하듯 솟구친다. 토르틀리에는 이 부분을 겉은 표정 없이 냉정해 보이나 속은 열정으로 끓고 있는 영국인들의 기질 같다고 했다. 반대로 B는 12/8박자로 애교 있는 주제가 계속되는 변주로 여러 가지 표정을 꾸미고 있다.

 

제 2악장 알레그로 몰토 Lento-Allegro Molto

Elgar op85 Cello Con E minor Jacqueline Du Pre 2nd

Jacqueline du pre

John Barbirolli
London Symphony Orchesra

기타적 효과를 노리는 첼로의 레치타티보로 시작되는데,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으로 되었다. 몰아치는 첼로의 스파카토와 이에 대응하는 목관과 투티가 점화법으로 그려진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제 3악장 아다지오 Bb장조 8분의 3박자 Adagio

단지 60마디로 되어있지만 명상적인 분위기를 구축하며 협주곡의 중심을 이룬다. 영국 에어풍의 멜로디를 느린 속도로 최대한 확대하고 전조를 수단으로 하여 낭만적이며 서정적 아름다움을 절정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은 마치 질문을 던지듯 V7화음을 페르마타로 길게 울린 다음 곧바로 4악장으로 이어진다.

 

제 4악장 알레그로 Allegro-Moderato-Allegro,Ma Non Troppo

투티에 의한 주제가 제시되면 ''''레치타티보처럼'''' 이라고 지시된 첼로 솔로가 주제를 느리고 자유롭게 이끌다가 간단한 카덴차로 일단락 짓는다. 그 다음 유머러스한 주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자유로운 론도 형식을 꾸며간다. 끝으로 가면서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2/4박자에서 4/4박자로 바뀌면서 3악장의 분위기가 되 살아난다.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듯 보이다가 결국 3악장 주제를 재현하고, 이어 1악장의 레치타티보를 엄숙하게 토로한 후 알레그로 몰토로 힘차게 피날레를 장식한다.

 

엘가 첼로협주곡 E단조 - 가치와 매력

이 곡의 특징은 먼저 독특한 구성에 바탕을 두고 지극히 간결하게 작곡되었다는 것이다. 전곡은 4악장으로 되어 있지만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앞의 1, 2 악장과 뒤의 3, 4 악장을 묶어 거의 휴식 없이 진행한다. 레치타티보는 각 악장의 첫머리를 장식할 뿐 아니라 곡 중간에서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또한 동기나 주제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특히 3악장의 주제가 4악장에서 교묘하게 취급된다거나 마지막에 1악장의 레치타티보를 다시 가져오는 등 구성에서 뛰어난 독창성을 보인다. 첼로 독주의 기교적인 부분이 관현악과 더불어 과장됨 없이 간결하게 정수만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실내악적이다.

한편 반음계적 전조로 화성적 색채를 짙게 하는 양식은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듯하며, 감정의 내면적 성향에 있어서는 슈만이나 브람스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중후한 영국인다운 품격을 갖추고, 적당히 낭만적 서정성을 내포하며, 담담하고 애잔한 우수를 띤 곡으로 세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시대를 벗어나는 노 대가의 최후의 대작에 걸 맞는 곡이다.

<http://mycello.net/>

 

Jacqueline du pre 1945~1987

순박한 미소와 넘치는 힘의 첼로 연주

국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클린느는 세 살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악기 소리 가운데, 특히 첼로 음을 지적하며 그 소리를 내고 싶다고 졸랐다고 한다. 네 살 때 자기 키보다 큰 첼로를 선물 받고 다섯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첼로를 공부한 그녀는 카잘스와 토르틀리에, 그리고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사사해 어린 나이에 금세기 첼로계의 모든 흐름을 두루 섭렵할 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 16세가 되던 1961년 런던에서 공식 데뷔 무대를 가졌고, 65년엔 뉴욕에 데뷔했다. 이후 그녀는 세계적인 첼리스트로서 널리 각광을 받으며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나이 23세이던 68년에는 가족이 탐탁치 않게 여기던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했고, 28세 되던 73년, ''''다중경화증''''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려 사실상 연주 활동의 막을 내려야 했다.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죠?

1987년,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랜 투병 생활로 지친 42년간의 짧은 생애를 마쳤다. 그녀의 연주는 남성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강렬한 힘과 넘치는 표현으로 마치 톱질이라도 하는 듯 힘찬 보우잉과 순진하고 솔직한 동작으로부터 발산하는 순수한 열정이 돋보였다. 그녀는 병에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항상 웃음을 간직한 낙천주의자였고, 자신감에 넘쳐흘렀으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활달하기까지 했다. 그녀의 그런 낙천적 성격과 자신감이 그녀의 연주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듯 했다. 이런 그녀의 연주를 한편에서는 자신을 활활 태워 만들어 낸 음악’이라고 했고, 다른 한 편에서는 한 인간이 평생을 두고 써야 할 수명과 기를 짧은 기간에 소진했기에 때 이른 죽음을 맞이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그녀의 연주는 스케일이 크고 열정적이었다.

그녀가 잃어 버린 것은 첼로 뿐이 아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잃어 버릴 것이 없을 만큼 아무 것도 갖지 못했다. 최후의 비참했던 연주회로부터 시작하여 두 다리, 양팔 그리고 몸 전체의 균형을 잃었고, 사물이 두 개로 보일 지경이어서 책도 읽을 수가 없었다. 전화의 다이얼 돌리는 일도, 돌아눕는 일도 그녀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1975년 이후로는 눈물을 흘릴 수도 없게 되었다. 남편 바렌보임을 비롯하여 사람들은 바쁘다거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뒤 프레에게 연락하는 횟수를 줄였고 차츰 아무도 찾지 않게 되었다.

'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야, 그리고 새해맞이  (0) 2012.12.30
세모의 거리를 거닐며  (0) 2012.12.28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0) 2012.12.07
가을 풍경 리포트 1  (0) 2012.10.17
그림 찾은 여름 오후  (0) 2012.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