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게이의 날 (소설집)

간헐천 이후

원평재 2017. 12. 27. 10:01















간헐천 이후


지방대학에서 민속학을 가르치는 최세출 교수가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옐로우스톤 관광단에

끼이며 첫째 목적으로 내세운 것은 학술 자료 수집 관련이었다. 바로 옐로우스톤 지역에 있는

인디언 보호구역을 탐사, 탐방하고 현장 조사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방학 중의 해외여행이

대학의 허락 사항은 아니었지만 일단 제출 서식은 있었으므로 그럴듯한 문구가 나쁠 리는 없었고

외부에서 받은 연구비의 사용 내역에도 크게 기여할 참이었다.

두 번째로는 몇 년 전에 뉴저지로 이민을 한 누이를 오랜만에 만나보는 순전히 개인 가사에 속한

목적도 있었다. 그리고 끝으로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마지막 목적에는 오드리 옥희 케네쓰

라는 여인을 만나는 일이 숨어있었다. 개인사가 끼어있어서 최 교수는 관광단과는 출발을 달리

하여 따로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일행과 합류하고 옐로우스톤 관광이 끝나면 다시 헤어지는

일정이었다.

 

유림의 목소리가 아직도 센 경상도 내륙 지방 유지의 딸인 최 교수 부인은 고3인 아들 때문에 이

시점에서 동행은 엄두도 내지 못할 처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최 교수가 이곳 지방 대학에 오래

전에 임용될 때 한 역할을 하였는데 지금은 작고하여 선산에 누워계신다.

 “단디 하소.”

여름 방학 두 달 계획으로 미국 행 비행기를 타러 상경할 때 최 교수의 아내 유 여사가 던진 말은

이 말 한 마디 뿐이었다. 유림의 딸로서 과묵이라는 덕목을 지니고 살아오는 유 여사는 남편이

비싼 새 디지털 카메라, 수만 장까지 찍을 메모리 카드, 128기가의 저장용 USB 등등을 뉴욕에서

사고, 그런 다음 또 비행기를 갈아타고서 중서부까지 가기 위하여 큰돈을 갖고 떠나는 마당에도

담담하게 이 말 한마디만 주문할 뿐이었다.

 대학의 정원이 국책으로 묶여있던 시절에 어떤 권력자의 시혜 같은 것으로 이 지방대학에

민속학 전공 학과가 허가될 때만 해도 대학은 성역이었고 오로지 대학 진학을 위하여서 학생들은

학과나 전공을 따지지 않고 몰려들었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자유 전공제로 들어온 학생들이 2학년으로 올라갈 때에는 모두 취직이 잘 되는 경영학이나 IT

쪽으로 진로를 택했고, 인문학에는 찬바람이 돌았다. 이 어려운 때에 최 교수가 발휘한 학문적

기지는 놀라웠다. 바로 영상학문으로의 발상의 전환이었다.

'영상 문화학', '영상 민속학', '게임 삼국유사', '영상학 산책', '성과 영상학' 등등, 최교수가 설강한

과목들은 수강생들로 인산인해였고 관련 부문에 대한 그의 저서는 날개가 돋친 듯 팔려나갔다.


 처음 그가 민속학 교수로 부임했을 때만해도 좋게 말하여서 대학 사회는 만고강산이었고

연구실은 신성불가침이었다. UCLA에서 '소수민족 민속학'으로 학위를 하고 온 그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이 지방대학에는 자리가 났고 그 전에 양가 부모들과의 인연으로 통혼 말이

오고간 이 지역의 유지도 애를 써서 그는 약관에 교수가 되었다.

차제에 두 집안의 남녀는 결혼을 했고 한참만이긴 해도 아이가 태어났으며 만사는 형통이었다.

그러나 이어 대학사회에도 구조조정의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구조조정 과정은 십여 년이

걸렸고 그동안 동료 인문학 교수들이 자신들의 철 밥통 같은 전공과목을 부여안고 가열 차게

변화에 반대 투쟁을 전개할 때, 그는 급속히 발달하는 인터넷을 통해 모교 UCLA 은사들의

동태를 주시했다. 미국의 은사들은 후기 산업사회의 메가트렌드에 발맞추어 이미 '영상

민속학''영상 인류학'을 개척하고 있었고 최 교수도 얼른 그 출발 신호를 받은 새 열차에

국제적 안면으로 동승하였다.

말이 쉽지, 이 새로운 조류를 탄다는 일이 지금도 그렇지만 초창기에는 너무나 벅찬 과제였다.

수많은 정보와 자료들의 홍수 속에서 그 수량을 조절해주고 고랑을 파서 물길을 내면서 일기

예보까지 해 준 사람이 당시 막 취직이 되어 들어온 도서관의 젊은 사서 장옥희였다.

서울에 있는 대학의 도서관학과, 아니 이제는 이름과 성격도 완전히 바뀌어 문헌정보학과를 나온

장옥희 사서는 마침 이 지방대학의 사서 채용공고를 보고 응시하여 들어온 재원이었는데 새

시대의 문헌 정보학으로 중무장한 그 녀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교수를

빼고는---.

정신적으로 새 시대의 급변하는 조류에 뜨겁게 달아오른 두 사람은 마침내 몸까지도 달아

올랐으며 지방의 눈이 무서워 그녀의 집이 있는 서울에서 영상보다 더 진하게 새 세상을 수용

하였다. 생각해 보면 지금은 별 것도 아닌 영상 자료들이 그때만 해도 놀라운 신세계이자 최음제

였고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발부하였다.

표면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양가의 규수, 옥희는 왜 결혼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고 때로 방종과

일탈의 선수임을 최 교수에게 은근히 과시까지 하였는가---. 3년도 넘게 최 교수는 자료 수집과

필드워크와 학회 활동이라는 거대 담론을 표방하며 주말이면 상경을 하였고, 장옥희 사서는 또

주말도 없다시피 지방대학에서 특근을 한다는 핑계로 서울 부모 집으로의 귀가를 기피하면서,

두 사람은 영상 세계에서의 순수 학문적 열정과 타락 천사와 같은 양 극단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러다가 어언 옥희의 눈매 가장자리에도 가냘프나마 잔주름의 예고가 얼핏 나타났다 사라지곤

할 즈음, 그녀는 미국으로 떠났다. 그녀가 다녔던 대학의 외국인 교수 부인이 마침내 남편과의

이혼을 허락한 순간이었다. 물론 장옥희 사서의 집에서도 처음 두 사람의 국제적 관계를 알았을

때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결코 이혼을 해주지 않겠다는 부인을 가진 외국인 교수와의 사랑은,

딸과의 의절을 선언할 정도로 반대가 심한 아버지의 견제까지 겹쳐서 그녀에게 멀리 지방대학의

사서로 피항 지를 찾게 한 것이었다. 외국인 교수는 그때 대학에서의 물의를 피하여 일단 본국

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렇게 떨어져 있던 기간이 3년이었고 마침내 그녀는 만신창이 끝에

이혼을 성취한 연인을 만나러 미국으로 떠나갔다.

이제 그 교수는 말썽이 두려워 미국에서도 중서부의 작은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놓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와 그 교수는 나이 차이가 17년이나 되었다. 최 교수와 그녀의 나이 차이도 10

이나 되었다. 팔팔한 엄부 아래 자라서 그런 가, 그녀가 추구한 두 남자들은 모두 그렇게 나이

지긋하고 자상한 사람들이었다.

 

그녀가 미국 대사관에서 영사의 인터뷰를 받기위하여 줄을 서던 날 최 교수는 함께 있어주었다.

뙤약빛이 뜨거웠던 그날 양산을 받쳐 들어주며 그가 물었다.

아버지는?”

끝내 의절하셨어요. 엄마가 도미 수속을 힘들게 도와 주고계세요---.”

그렇게 떠나간 그녀가 지금 와이오밍에 살고 있었다. 저명한 민속학자이자 환경론자인 케네스

교수의 부인으로서---. 한 가정을 해체하면서 그녀가 사랑을 획득하고도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최 교수와 그녀는 그 사이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하여 가끔 안부는 전달되었고 발전하는 미국의 민속학과 영상학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가

있었다. 둘의 관계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미국의 모든 분야는 이제 모두 환경과 결부되어

있었다. 정치도 기업도 학문도---.

인디언 보호 구역이 있는 중서부의 여러 주들 가운데에서도 와이오밍 대학은 인근의 인디언 보호

구역이라는 유리한 조건과 함께 민속학 분야의 강자이면서 아울러 이제는 환경 분야에서도

인문학 쪽을 접목하여 접근하는 방법론에서 선도하는 입장이라고 하였다. 케네스 교수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한다. 다만 앞으로도 계속 선두에 서기에는 정년을 앞 둔 나이가 허락지 않았지만---.

 

제가 사는 데에서 가까운 옐로우스톤 구경 한번 하시지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연구실에 있는 최 교수의 인터넷에 와이오밍의

장옥희 사서로부터 메일이 들어왔었다. 그랜드 테턴 밸리에 있는 '잭슨 홀 로지'에서 '세계 환경

북 페어'가 열리는데 '케네스-옥희 부부 공저'의 책도 출품이 되고 또 부부가 함께 그 환경

대회에도 참석하니까 오랜만에 한번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나 보는 것도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최 교수도 부부 동반이기를 갈망한다는 그녀의 PS가 의례적인 수준이었는지는 가름이 되지

않았다.

 "그동안 만날 기회를 그토록 피하더니?”

최 교수가 의문문으로 답장 메일을 띄었다. 그녀의 답신은 다시 진지한 평서문이었다.

그랜드 테턴 마운튼을 보면 지난날들의 방종과 일탈이 가슴 아파요.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이

영봉들은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상징으로 나오는 바로 그 산정이지요. 고개를 들어 그 산정들을

보면 지고지순한 감상이 들어요. 나이가 들고 철이 들어서 그런가, 이 산록을 끼고 살면서 옛날

일들은 다 해탈했어요. 저와 의절하셨던 아버지도 벌써 돌아가셨어요. 사람들을 많이 괴롭혀서

그런가, 제 머리는 일찍 하얗게 셌어요.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학회에 오셔서 혹 사람들 사이의 저를 못 찾겠으면 흰 머리칼 동양인

여자만 찾아보세요. 호호호

답신을 받으며 최 교수는 눈시울을 붉혔고 왈칵하는 심장의 동계를 느꼈다. 평소 좋지 않았던

심장이 격동하는지 부정맥도 두서없이 뛰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 누구라도 심장이 닳는다.

그러나 물론 아내에게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여행을 막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뉴저지의 누이 집에 오던 날 최 교수는 즉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나 잘 도착했소. 누이 가족들도 보니까 걱정 없이 다 잘사네.”

당신 집안이 모두 당신 닮아서 좀 허랑해요. 시누 한사람만 빼고. 시누는 야무지니까 잘

살겠지요. 단디 하소.”

뭘 자꾸 단디 하라는 거요?”

내가 돈 때문에 그카능 게 아니라요. 단디 하소. 내가 다 알아요.”

최 교수의 가슴이 철렁하고 고동쳤다. 이 선량한 마나님이 혹시---.

여보, 사랑하오.”

엉겁결에 나온 최 교수의 말이었다.

세상에 살다보이 별 말을 다 듣네요, 각중에---, 듣기 싫소 마. 심장도 좋지 않은 양반이---.

실없는 생각 말고 단디 하소. 혹시 그 예전 아가씨 만나거들랑 내 안부도 전하이소. 인자는 유감

없다고. 하기사 그 사서 아가씨도 인자는 마이 늙었겠네.”

 마누라가 귀신이구나---.

새벽의 케네디 공항에서 최 교수는 누이가 싸준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전날 밤

부인과 나눈 국제 전화 통화를 상기하고 탄식하였다. 그 새벽, 솔트레이크 시티 행 델타항공을

타는 동양인은 최 교수 혼자인 듯하였다. 요즈음 미국 항공사의 사정이 어려워서 네 시간 이상의

여정이지만 식사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며 누이가 싸준 샌드위치였다. 비행기는 만석이었으나

다행히 창 측이어서 그는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주스와 크래커를 제공하는 스튜어디스의 손길에 잠이 깨어보니 옆 좌석에는

초로의 백인 할머니가 두꺼운 책의 초반을 읽고 있다가 눈인사를 보냈다. 그녀도 주스를

마시려고 덮는 책을 보니 제목이 “Love"이었다. 그녀의 옆에는 역시 비슷한 나이의 백인

할아버지가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편안한 자세의 잘 생긴 얼굴이었다. 하긴 할머니도 한 때는

지역사회의 대표 미녀였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노인네가 무슨 사랑 타령으로 'Love'라는 책이람---. 그래도 놀랍군, 저 나이에---.

두서없는 생각에 뒤채이며 그가 다시 그 책의 작가를 보니 놀랍게도 토니 모리슨이었다. 토니

모리슨이라면 미국의 흑인 여류작가이자 노벨 문학상을 몇 년 전에 받은 사람이 아닌가. 그녀의

작품에 빌라비드(Beloved)"가 있었고 그 작품은 흑인 여성들이 대를 이어 겪는 고난과 증오와

용서의 역사가 영혼의 세계, 영교의 경지로 엮어지며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런 역사성

이나 영교의 부분들이 최 교수가 연구하는 민속학의 변경에 맞물려 있어서 평소 익숙하던

작가였다.

이 책의 작가 토니모리슨이라면, 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여류작가가 아니던가요?”

흑인이라는 표현은 얼른 혀 바닥으로 말아 올려 삭혀버리며 최 교수가 말을 걸었다.

그래요. 훌륭한 작가이지요.”

그녀가 반갑게 동의하였다.

이 책이 신간인가요?”

그가 진정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글쎄요---.”

로맨스 같은 내용입니까?”

이윽고 최 교수가 물었으나 물론 그런 건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달리 물어볼 재간이 없어서

그랬을 뿐이었다.

아이구, 천만에요. 어떤 남부의 남자가 자기 손녀딸의 친구와 사랑을 했는데 그 늙은이는

죽었고---. 소설에서는 그 이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다루고 있답니다. 나도 겨우

삼분의 일 밖에 읽진 못했지만---. 휴먼 드라마가 항상 복잡해요. 특히 사랑이란---.”

그녀가 옆에서 눈을 감고 있는 자기 영감님을 힐끗 보면서 말했다.

그렇겠군요. 단순한 러브 스토리나 로맨스 이야기는 아니리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부인

께서는 행선지가 옐로우스톤인가요?”

아니오. 우리는 선 밸리로 간다오. 젊은이는 솔트 레이크 시티에 내려서 어디로 가시오?”

고맙지만 저도 젊은이는 아니랍니다. 옐로우스톤으로 관광을 갑니다.”

좋군요. 혼자서 가나요?”

아니, 솔트레이크 시티 공항에서 많은 코리언들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LA 사는 분들이 제일

많을 것이고 서울에서 온 분들도 있을 것이고---. 저는 케네디 공항에서 탔으니 일시적이긴 해도

뉴욕, 뉴저지의 한국 대표인 것 같군요. 이 비행기 안을 둘러보니 아세안은 저 뿐인 것 같아서요.

하하하.”

하하하.”

할머니도 웃더니 말을 이었다.

선 밸리는 50년 만에 처음 간답니다. 처음 간 게 1950년대 중반이었어요.”

신혼 때 가시고 이번에 50년만의 금강혼 기념인가요?”

아니오. 이 신사 하고는 중년에 만난 두 번째 결혼이라오. 사랑이란 누가 무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백인 할머니가 자신의 이혼과 재혼 경력을 너무나 당당하게 이야기 하여서 듣는 최 교수가

오히려 좀 민망해졌다.

그는 앞의 시트 포켓에서 스카이 델타 9월호"를 꺼내면서 표지를 펼쳐보았다.

모뉴먼트 밸리가 표지로 나왔군요.”

할머니가 화보를 보고 얼른 알아내었다.

이게 그 모뉴먼트 밸리입니까?”

최 교수는 커버스토리가 실린 페이지를 찾아가 펴면서 물었다.

그렇지요. 애리조나와 유타에 걸쳐있는 대장관이지요.”

그녀가 대단하다는 점을 몇 번이나 강조하면서 대답하였다.

그 설명문은 유현하기 그지없는 기시감(erie deja-vue)"이라는 표현도 부제로 달고 나왔다.

 

장옥희 사서는 이메일에서 말하기를, 남편과 공저한 책의 사진은 대체로 자기가 모두 찍었는데

특히 애리조나의 호피와 나바호 부족이 사는 '모뉴먼트 밸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혹시 최

교수에게도 아느냐고 물어보았었다. 당시에는 모른다고 답을 했는데 이제 보니 예전에 그랜드

캐년 갈 때 그리로 돌아서 들어갔던 지역이었다.

, 기시감---, 데자부라니---,

그제서야 최 교수는 갑자기 인디언들의 혼령에라도 씌인 듯 몸을 떨었다.

나이 들면 선 밸리로 와서 한번 지내보시면 좋을 것이오. 헤밍웨이도 인근에 있는 케첨에서

지내다가 자살하였지요.”

, 아이다호의 케첨!”

최 교수가 평소 좋아했던 불패의 화신, 헤밍웨이가 자살한 곳이 마이애미의 키웨스트나 북

미시간이 아니고 하필이면 아이다호의 케첨인지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결국 용맹스러웠던

그도 노인들의 천국에서 요양원 신세를 지다가 사라졌구나---,

최 교수는 다시 탄식하였다.

, 솔트 레이크!”

할머니가 창밖을 보며 소리쳤다.

허연 소금 끼가 잔뜩 낀 푸른 호수가 여름에 내린 흰 눈 처럼 신비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정상 바로 밑 산록으로는 계절을 잊은 노란 단풍이 수채와의 붓질처럼 쓱쓱 문질러진 모양을

보이고 있었다.

 

에어컨 때문인지 서늘한 한기를 느끼게 하는 솔트레이크 공항 로비에 한국인들이 모여서서 뉴욕,

뉴저지 대표 선수 같은 최 교수를 기다리고 있다가 인사들을 나누고 예정에 따라 서둘러 모르몬

교회의 본산으로 향하였다.

그렇지, 여기 솔트 레이크 시티는 모르몬교의 본산이 아니던가, 큰 성전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신도들과 봉사자들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예약이 된 한국 출신의 젊은 안내여성은

자신을 전도사의 직분이라고 하면서 모르몬교에 대한 설명을 하고나서 그들의 성전 이곳저곳을

안내해 주었다.

오래 전 최 교수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에 이곳에 있는 명문대학 브리검 영 유니버시티

합창단 학생들이 찾아와서 공연을 하고 학생 대표들과 좌담회를 했던 기억이 났다. 그들의 선한

얼굴 속에 신의 사랑을 향유하는 만족감이 가득하여서 대학 신문사의 기자로 참석했던 그는

얼마나 감동이 되었는지 몰랐었다. 그들이 받는 일반적 오해, 곧 일부다처에 대한 교리에 관

하여서 모르몬교도들은 그때나 이제나 열심히 해명하였다. 결국 서부 개척시대에 남자들이 자연

재해나 인디언과의 전투에서 많이 죽는데, 이때 생기는 과부들과 버려진 아이들을 어떻게 수습

하느냐 하는 데에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능력 있는 남성

생존자들의 밑에 이들의 피난처를 마련한 수단이었다는 설명이었다.

고난의 시대에 생긴 공동체 의식이었으며 이제 시련은 가고 그런 제도도 사라졌다고 한다.

교리에 관한 시비는 최 교수의 관심이 아니었고 사랑의 본질과 형태에 대한 그들의 대처 방식에

인간적 고뇌가 담겨있어서 인상적이었을 따름이었다.

, 장옥희 사서는 무엇으로, 어떤 사랑으로, 어떻게 사는가에 최 교수의 관심이 다시 되돌아

몰아쳤다. 이제 유타에 도착하였으니 저 드넓은 아이다호 주의 감자 밭 속과 그랜드 테턴 밸리를

지나서 와이오밍의 잭슨 홀 롯지(Jackson Hole Lodge)에 빨리 도착하여 그녀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최 교수를 안절부절 못할 지경으로 몰아갔다.

사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는 와이오밍의 올드 페이스풀 간헐천이었지만 최

교수에게 그런 건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모르몬 성전을 관광하고 나온 관광객 스물다섯 명을

실은 대형 리무진은 빨리 달렸다. 솔트레이크 시티의 염분 가득한 호수가 주변의 산들을 병풍

처럼 두르고 앉은 모습은 항상 분지에서만 자란 최 교수에게 고향 생각을 떠올리게 하였지만

그 규모에서는 어른과 아이의 차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국토의 크고 작음 때문이리라---.

 

리무진은 이내 유타를 벗어나서 아이다호를 향하였다. 아이다호 주립대학은 최 교수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과 자매관계를 맺고 있어서 안식년 등으로 다녀온 교수들이 많았으나 한국의 북적

대는 문화에 젖은 사람들이 있을만한 데는 아니라는 평가들도 나왔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만큼

긍정적인 요소이기도 하였다. 미국의 백만장자들이 최고의 휴양지로 치는 이 곳이 한국적인

문화와는 충돌하는 사연도 '환경 사회학' 같은 데에서 한번 다루어볼 주제가 됨직도 하다고 최

교수는 자못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았다. 그런 생각이 옥희와의 상면을 초조히 기다리는 시간에

잠시나마 진통제의 역할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속도롤 낸 리무진도 그런 면에 한 역할은

하였다. 그래서 저 유명한 '그랜드 테톤 산'의 영봉들을 얼른 시야에 갖다놓았다. 어릴 때부터

익숙했던 미국 영화사인 '파라마운트 사'의 상징이 눈앞의 현지에서 뽐내며 으스대고 서 있었다.


 “저 산 아래 흐르는 테톤 강가에다 텐트를 치고서 찍었다지요. 그 유명한 서부영화 '셰인'이 촬영

되었던 장소입니다. 촬영 본부는 와이오밍 주의 잭슨 홀에 두고서 말이지요.”

강가에 있는 표지 동판 앞에서 기념사진인가 증명사진인가를 찍으며 가이드가 신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최 교수도 이미 솔트레이크 시티에서부터 사진은 수백 장을 찍고 있었다. 물론 피사체에

자신이 들어가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하긴 이제 한국 관광객들도 증명사진을 찍는 수준은 졸업을

하고 있는 현상이 재미있었다. 누가 경치 사진에 자기 얼굴을 넣으랴---.

영화 셰인이라는 말이 나오자 진통제 효과가 사라지고 최 교수에게는 다시 장옥희 사서의

생각이 생생히 떠올라 왔다. 어느 날 그녀가 그의 위에서 열정을 쏟더니 잠간 멈추어 위엄을 한번

세우고는 이어 웃었다.

싱겁게 무슨 짓이야?”

셰인 알죠?”

셰인? , 옛날 아란 랏드가 나와서 순식간에 총을 뽑은?”

호호호, 아란 랏드가 뭐예요. 앨런 랫---. 그 영화도 페미니스트의 입장에서 보면 나쁜

영화라고 봐요. 순진한 시골 촌부가 착한 남편 보다 용맹스런 서부의 사나이에게 말없이 연정을

품었으나, 그 사나이 셰인은 악당을 물리친 다음 촌부의 영웅이 되어 떠나간다는 남성

우월주의의 기념비적 작품이 아니겠어요?”

그럼 착한 잭 파란스는 남성이 아닌가? 그리고 셰인이 언제 적인데 미즈 장이 그 영화를

보았어?”

최 교수는 미즈 장, 그러니까 장옥희 사서가 요즈음의 페미니스트 영상 계에서 들고 나오는 서부

영화 새로 보기 화두에서 조금 표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다소 맥 빠진 어조로 물어

보았다.

잭 파란스가 뭐예요. 팰런스이지. 그리고 지금 제가 표절했다고 생각하고 있죠? 사실

아이디어는 그럴지 몰라요. 하지만 성감대, 아니 공감대는 저와 폭넓고 깊어요. 깔깔깔

두 사람은 서로를 간질이면서 웃고 또 웃기도 하였었다.

 

왜 웃으시죠?”

무슨 설명을 하던 가이드가 멋쩍은지 갑자기 정색을 하며 최 교수에게 따지듯 하였다.

아니오. 난 잭슨 홀에서 뒤쳐지겠다는 일정을 미리 부탁했으니 나중에 그거나 잘 챙겨

주시오.”

잭슨 홀에 가까스로 작은 호텔 방을 하나 잡았답니다. 비용은 알아서 하십시오. 엄청

비싸니까요.”

, 교수님이 혼자 오신걸 보니 앨런 래드처럼 권총 뽑을 일이 있으신가 보네요?”

금방 사귄 일행 중의 미국 교포 한 사람이 부인들을 의식하지 않고 농담을 던졌다.

권총이라니? 장총이실텐데.”

누가 또 거들었다.

리무진은 세속의 때가 묻은 농담들을 영산인 그랜드 테턴 기슭에 내다 버리면서 기세 좋게

와이오밍의 '잭슨 홀 시티'로 달려 들어갔다. 한 때 미국과 소련의 영수들이 정상 회담을 하고

동서간의 냉전 종식과 데탕트를 가져와서 인류사에 신기원을 이룬 곳이 된 '잭슨 홀 로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으나 어딘지 모르게 신뢰감 같은 것을 안겨주는 매우 특이한 건물

이었다. 정문 앞에는 과연 '세계 환경 대회''환경 북 페어'가 열린다는 플래카드가 요란하지

않게 붙어있었다.

, 저 속에 케네스 부부, 아니 오로지 장옥희라는 이름과 형상으로 더 절절한 바로 그 대상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기대에 최 교수의 가슴은 벅차게 뛰었다. 관광단 일행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갔는데 거기 로비에 양국 정상이 앉아서 데탕트 조약을 서명한, "피스

테이블"이라는 조촐한 탁자와 의자가 있어서 증명사진을 찍어야했기 때문이었다. 최 교수는

내색하지 않고 증명사진도 포기한 채 안쪽 컨퍼런스 홀로 발길을 옮겼다. 홀의 입구에는 참가자

들을 접수하는 데스크가 있었으나 그는 일단 무시하고 안 쪽을 휘둘러 옥희의 모습을 찾았다.

아니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우선 하얀 머리칼의 아시안 여성을 급히 찾아보았다. 일찍 온

참가자들은 벌써 칵테일을 한잔씩 하고 있었고 테이블에서는 웨이터들이 와인의 코르크를

연회에 대비하여 위로 뽑아 올려놓고 있었다. 입구의 건너편으로는 큰 유리를 사용한 거대한

창들이 참석자들의 시선을 뽑아 들여서 넓은 초원을 가로질러 마운트 테튼으로 훌쩍 던져주고

있었다. 거기 파라마운트사의 심벌, 그랜드 테튼 영봉들은 구름을 아래로 깔고 의연히 서 있었다.

 

그러나 하얀 머리의 동양 여인은 시선이 달리는 포물선 아래에 없었다. 최 교수는 그 큰 창

쪽으로 향하며 홀의 양쪽을 샅샅이 살폈으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창문 아래에는 서적을 잔뜩

쌓아놓고 판매하는 서적대가 있었는데, 문득 흰 머리칼을 휘날리는 옥희와 몹시 늙어 보이는

노인이 함빡 웃으며 서있는 모습이 표지가 된 “The Faithful Earth"라는 두꺼운 책들이 있었다.

지구의 생태 파괴 현장을 담은 옥희의 절묘한 사진술이 내재한 그 두꺼운 책은 속속 참석자

들에게 팔려나가고 있었다. 최 교수도 한권을 크레디트 카드로 사서 가슴에 안았다. 마치 그 옛날

옥희를 안았듯이---. 그리고 그 너머 그랜드 테튼 영봉을 우러르고 그 아래로 흐르는 테튼 강과

들판을 다시 음미하였다. 강물 소리도 멀어서 들리지 않는 그 계곡에서 그 옛날 허름한 재개봉관

2류 극장에서 들었던 '조디' 소년의 셰인, 셰인, 캄백!”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최 교수는 그 때 가까운 친구가 극장 밖으로 나오며 하던 말이 불현듯 생각났다.

아따, 쪼디기 고녀석이 쎈, , 하는 소리에 눈물이 날려고 하대!”

그 때 그 말은 울음이 아니라 웃음을 불러일으켰지만 이제는 추억이 울음을 불러 올 기회만

노리고 있는 듯하였다. 아니야, 그 영화는 옥희가 말했듯이 정말 남성 우월주의와 빛나는 미국

서부개척사를 구축한 제국주의적 영화에 다름 아니지. 그런 주장을 부르짖을 때에 더욱 빛나던

옥희의 모습을 생각해 보는 게 더 좋겠어. 최 교수는 울음을 삼키려는 듯 옥희의 음성을 상기하며

접수부 쪽으로 갔다.

 

이 책의 저자 커플들은 아직 등록하지 않았나요?”

, 그분들은 일찍 오셨으나 문제가 생겨서 병원으로 갔답니다.”

무슨 사고라도?”

단순한 심장 발작인 듯 했으나 더 이상 우리는 모릅니다. 케네쓰 교수가 바닥에 쓸어졌고

앰뷸런스가 와서 응급실로 데려갔어요. 그 이상의 정보는 없습니다. 책에 사인 받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어디 무슨 병원인가를 묻거나 알아보아야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최 교수는 일행이 실내에 있는 영수회담 '피스 테이블'에서 기념사진을 다 찍고

바깥쪽으로 나가 건물 외양을 배경삼아 다시 사진을 찍는 곳으로 빨리 걸어갔다. 이 곳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곳은 어느 호텔이나 야생동물, 특히 엘크 사슴이 어슬렁거리고 있어서 생생한

야외 촬영장이었다. 일행이 있는 건물 앞 잔디밭으로 부터 멀리 내다보이는 곳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이드가 무슨 일인가하고 뛰어가더니 이내 그쪽에서 급히

길을 건너왔다. 최 교수가 무슨 말을 하려는 그의 소매를 얼른 잡았다.

여기 내가 따로 부탁했던 호텔 예약을 취소합시다. 나도 일행과 함께 움직여야 되겠어요.”

아이구, 지금 와서 그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하여간 위약금은 내셔야할 겁니다.”

그는 좀 성가신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얼굴색을 밝게 바꾸어서 일행들에게 외쳤다.

지금 엘크 사슴이 새끼를 낳나 봐요. 여기 길을 건너서 저기 먼 쪽 건물 잔디밭 까지가 접근

경계이고 그 곳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나봅니다. 좋은 기회이니 모두 사진이나 찍고 가시죠.”

우와, 경사났네요!”

일행이 환성을 지르며 그리로 몰려갔다. 과연 길 건너 저 먼 쪽에는 엘크 사슴이 한 마리

나뒹굴고 있었는데 진홍의 핏자국이 그쪽에 홍건 하였다. 더 이상의 진출은 파크 레인저라는

글을 새긴 제복의 공원 보안관들이 정중히 막고 있었다.

새끼 낳느라 저렇게 피를 많이 흘리나---, 그건 그런데 뿔 달린 수놈이 어떻게 새끼를 낳나?”

샌디에이고에서 왔다는 눈썰미 좋은 교포 아주머니가 혀를 차다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이때

여자 레인저가 아시아인으로 구성된 일행을 보며 천천히 설명을 해 주었다. 수놈 엘크가 어제

저녁부터 이상 발정이 되어 차량의 헤드라이트를 부시고 차체에 돌진하여 차를 다섯 대나 부셔

놓더니 오늘 새벽에는 자신이 중상을 입고 쓸어져서 지금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하였다.

그러는 옆으로 남자 레인저가 대형 전기 톱날을 갖고 뛰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에이, 잘못 알아들었나봐! 경사가 아니라 비극이네!”

일행 중 여자들은 카메라를 거두기 시작하였는데 남자들은 사건이 나서 좋아라고 디지털

카메라의 줌을 길게 뽑았다.

자아, 그만하고 빨리 갑시다. 시간이 없어요. '올드 페이스풀 간헐천'12시에 터지는데 그걸

놓치면 90분을 다시 기다려야 합니다.“

가이드가 상황반전이 민망한지 갑자기 서둘렀고 사람들이 웃었다. 11시 반경에 그들은 올드

페이스풀 가이저(Old Faithful Geiser)"라는 팻말이 선명한 간헐천에 당도

하였다.

가이저란 원래 북유럽 바이킹들의 말로서 간헐천을 뜻한다고 하였다. 그 앞에 붙은 올드

페이스풀이라는 말의 뜻은 약속을 굳게 지키는 '오랜 지기;라는 뜻이란다. 옐로우스톤에 있는

몇 백 개의 간헐천 중에서도 가장 높게, 가장 정확하게 시간을 지켜 뿜어 올려 주는 곳이 바로

올드 페이스풀 가이저이며 교과서에 나오는 사진도 바로 이 간헐천이었다.

조금씩이나마 끊임없이 증기를 뿜던 간헐천의 구멍에서는 125분 전 쯤 흰 수증기에 섞여서

물줄기가 보이더니 12시 정각이 되자 어김없이 힘찬 물줄기가 치솟아 오르기 시작하였다. 믿음이

오랜 지기가 또다시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모양새였다.

물줄기가 최고로 뿜어 올라가는 순간에 최 교수는 누가 등허리를 힘차게 때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던 몸짓을 멈추고 돌아다보았다. 옥희였다.

 “, 옥희!”

과연 그녀는 은빛 머리칼을 평원 위로 가로질러 오는 바람에 맡기고 아직 처녀 적 모습을 많이

지탱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20여년 만이던가, 그러나 그녀는 남의 얼굴이 아니었다.

실버 헤어 말고는 그냥 예전일쎄.”

선생님도 똑 같아요.”

부군은?”

오래전부터 심장병을 앓았어요. 이번에도 일단 위기는 넘겼어요. 자주 그러는 편이고---.”

그녀의 표정은 오히려 담담하였다.

입술이 좀 탔네."

"입 맞추고 싶어요?"

그녀가 혀로 입술을 축이며 말을 잇는데 피곤하던 얼굴이 갑자기 생기를 띄고 순식간에 역동적

으로 바뀌었다.

"며칠 머물며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었는데 욕심이고 치기였는지도 몰라. 근데 우리가 만날 곳이

왜 하필이면 여기인가?”

제가 사는 동네와 가까운 곳에서 환경대회가 열리고 또 북 페어에도 솔직히 기념비적인 작품을

출품하게 되어서 선생님께 자랑하고 싶었어요. 근데 잊으셨는지 몰라도 선생님께서는 자주 이

간헐천 이야기를 하셨어요.”

간헐천 이야기를 자주? 글쎄 우리 사이에 민속학 이야기가 공통화제였다면 모를까. 아차,

그렇다면 우리가 친밀한 순간일 때 말인가? 장 선생---.”

아이구, 음흉해. 그게 아니라 초등학교 때부터 이 간헐천이 꼭 보고 싶었노라고---. 저는 그게

탐구심에 가득한 한 소년의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요?”

미안해, 내가 늘 이래. 이번에 나온 책이 아주 좋던데. 특히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사람의

사진술이 대단했어요---.”

과찬이시겠지만 감사히 받아들이겠어요. 제가 사인을 한 책을 갖고 왔으니 배낭에 넣으세요.

그런데 책 제목에 페이스풀이라는 표현을 넣은 의미는 음미해 보셨어요?”

, 이 간헐천의 이름에서 영감을 얻은 측면도 있을 것이고 또 문득 내 생각도 나서 믿음과

영원성 같은 것이 내포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내 이기적 해석일는지도 모르겠구려.”

따뜻한 생각이 드는 건 따뜻한 데로, 다시 말해서 좋은 건 좋으실 데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하지만 faithful이라는 뜻에는 거의 종교적 의미가 담겨있지요. Faithful Earth라는 뜻은

인간의 자연을 향한 신의를 전제하는 것이지요. 인간이 자연에 대한 신의를 지킬 때만 이 지구도

인간의 삶을 지켜주겠다는 엄청난 기브 앤드 테이크의 게임을 이 책에서 역설하고 싶었어요.

글은 물론 남편이 주로 썼고 저는 영상 부분으로 승부를 걸었고요---. 이번에 선생님이 오시면

남편과 함께 만나 디너라도 나누고 싶었는데 우리 사이에는 항상 이렇게 불연속성의 상황이 전개

되나 보네요.”

간헐천에서는 어느새 물줄기가 사라지고 약한 수증기만 나오고 있었는데, 함께 떠나야할 일행은 

가까이에 둘러서서 두 사람에게 시선을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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