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게이의 날 (소설집)

(단편소설) 고인돌 (펜 산문집)

원평재 2018. 1. 2. 10:23












고인돌


가평 설악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청평 댐 덕분에 큰 도로가나기 전에는 꼬불꼬불한 강 길로 드나들어야하는 벽촌이었다.

외지와 격리되다보니 좁은 지역에서의 배타적인 분위기가 동네를 감싸고 있었다고 한다.

하긴 이런 척박한 환경이 일직이 젊은이들을 서울로 내몰았다.

가정이 어려웠던 애린이도 그래서 서울로 온 모양이었다.

이 동네 사람들의 예전 혼례 사정은 어땠을까. 어쩔 수 없이 겹사돈이 많았다고 한다.

어쩌랴. 앞에는 유명산이 버티고 섰고 옆으로는 북한강이 휘돌아 감도니 가마를 타야할 

각시가 조각배를 타고 나가기도 힘들어 원행 혼사는 꿈도 못 꾸었다고 한다.

내 사랑 정애린, 아니 최애린의 고향은 이런 곳이었다.

내가 애린을 알게 된 것은 내 본업인 우체 업무 때문이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전산화 되어서

일선 우체국과 "우체 집중국"의 사람이 업무상으로 대면할 경우가 많이 사라졌지만 일선

우체국이 민영화 되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월말, 분기 말, 연말 정산 때 마다 회계 관련

사람들이 집중국으로 파견을 나와서 직접 장부를 맞추어 보는 것이 편할 때가 많았다.

애린은 청평 종합 고등학교를 나와서 서울의 이런 저런 회사에 다니며 마침내 야간대학

경영학과를 나오고 민영 우체국 직원이 된 예쁜 아가씨였다. 미모가 빼어나서 처음부터

인상 깊게 여겼는데 어느 월말 정산 때에 작은 일이 일어났다. "우체 적금" 계정의 이자 계산

관계로 집중국의 담당자와 예쁜 그녀가 말다툼을 벌이고 언성이 높아진 것이다. 내가 말리자

그녀는 단박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커피를 마주하면서 나는 이 여직원이 거의 피해망상증에 가까운

심리 상태에 빠져있고 우울증세 같은 것을 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말 정산하러 와서 만날 때마다 사람을 무시해요."

그녀의 항변은 옳지 않았다. 집중국의 담당 직원은 매우 유능하고 사리에 밝은 사람이었다.

다만 그 담당자에게서 인정을 느끼지는 못했으리라. 그가 매우 이성적인만큼 그만큼 냉정한

면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누구를 무시할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나는 정중히 사과하였다.

눈과 키가 크고 몸매도 반듯한 이 처녀에게 필요한건 우선 심리적 안정인 듯싶었기 때문

이었다.

"과장님을 먼발치에서 나마 보고 항상 존경해 왔어요."

그녀는 또 울었다.

"지금부터는 오빠처럼 대하겠어요."

 

그러고 보니 아마도 조울증 증세도 있는 듯 했다. 그녀는 갑자기 신명이 나서 다변해졌다.

침 퇴근 무렵에 나왔기 때문에 우리는 가까운 데에서 저녁을 먹고 이름이 좀 있는

"와인 바"로 가서 포도주도 한 잔씩 걸쳤다. 우리는 직업과 상관없이 요즈음 유행하는

퓨전 음악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나와서 지하철로 걸어가는 마지막 100 미터쯤은 팔짱도

꼈다.

"두 번 놀랬어. 정애린이라는 이름을 듣고 처음에는 눈물 많고 애련한 사람이리라고 느꼈는데

알고 보니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에 나오는 여장부처럼 저돌적이네. 영화와 이름이 비슷해서

문득 생각이 났어요."

내가 팔에 힘을 주며 놀렸다.

"그 영화는 못 봤지만 과장님은 역시 문화인이시군요. 사무실에 소문이 자자해요. 근데

모르시는 게 있군요. 정애린이 아니라 최애린이예요."

그 말을 남기고 나서 그녀는 긴 머리채를 결사적으로 흔들며 지하철역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성이 정씨라는 것을 평소 나는 확실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의 원래의 성씨는 최씨였다. 애린이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나서 어머니의 성씨를 따랐다.

여러해 전에 최씨라는 본성을 찾아볼까도 했으나 절차가 복잡했고 바꾼 후의 후유증이 더

심할 것 같아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때의 참담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어머니를 미혼모로 만든 최씨 청년은 마음에 없는 처녀의 배가 불러오자 도망을 갔다.

손이 귀한 최씨 가문에서는 처녀의 불러오는 배를 쳐다보며 처음에는 미안한 표시와 함께

호의를 보이더니 처녀가 여아를 낳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니 동네 뒷산의 1000평 정도

되는 쓸모없는 땅을 애린의 이름으로 해주고 손을 털었다.

내가 애린이의 몸을 본 것은 한 세  만나고 나서였다. 애린이가 적극적으로 유혹한

셈이었다. 세 번 만에 남녀가 잠자리를 같이 했다고 해서, 더욱이 여자가 더 적극적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내 사랑의 기록이 너무 가볍게 느껴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숙명처럼

상대방을 탐하였고 무슨 일인지 때로는 학대하였다.

애린은 몸매가 좋았다. 단 어깨가 다소 구부정한 것만 빼고는---. 이건 아마도 그녀의 성격과

관련이 있는듯했다. 똑바로 남을 보지 못하는 시선처럼---.

우리는 자주 그녀의 외가가 있는 가평 설악을 찾았다. 외가래야 그녀의 살붙이는 거의 없는듯

했다. 이것도 나의 추측일 따름이었다. 그녀의 가족사에는 가급적 접근하지 않는 것이 그녀를

돕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 했다. 중년의 나이에 젊은 여자와 몸을 섞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목숨이라도 던지고 싶은 심정인데 호기심을 누르는 일쯤이야---.

우리의 만남은 그녀가 나에게 연락을 해야만 이루어졌다. 내가 직장으로 연락하는 것은

금기였다. 모두 그녀의 주장이었다. 소문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녀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우리의 정사는 어디까지나 그녀가 주도권을 쥐어야 되었다. 그녀가 내게 전화를 하는 순간은

그녀의 정서가 고도로 들떠 있어서 조울증 중의 ""의 상태이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매우

침잠된 ""의 상태였다.

 

""에서 만나면 그녀는 일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의 상태가 되었고 ""에서 만나면

헤어질 때쯤은 실실 웃음을 풀었다. 조울증 환자를 내가 단지 젊은 여체 때문에 가까이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세상의 잣대가 일시 멈춘달까, 따로 명상의 시간이 필요 없는

상태가 된다. ""의 상태에서 그녀는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대신 아파하는 듯 했고 ""

상태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모두 행복의 육화로 삼기 때문에 나도 쉽게 대리 체험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이런 기분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릇 이것이 사랑이라고 나는

부르고 싶다. 아내와는 이런 감정을 겪지 못하였다.

첫 번째 몸을 섞은 어느 휴일 오후, 우리는 서로 선약이라도 해 두었듯이 설악으로 가서 그녀의

산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산은 돌 더미였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식견은 없었으나 어쩌면 오래

풍화된 고인돌 더미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돌무더기는 아늑하면서도 유현하고 섬뜩한

데가 있었다. 우리는 그 위에 올라가서 주로 노래를 불렀다. 아니 주로 그녀가 불렸다.

레파토리? 글쎄 만남과 사랑과 이별에 관한 우리 가요가 주류였다.

만난지 다음해의 첫 주말 오후에 우리는 다시 돌무더기 산을 찾아가서 힘차게 사랑과 이별의

노래를 불렀다. 정초부터 핑계를 대고 나가는 나에게 가족들의 잔소리가 있었으나 애린에게도 

새해가 온 것이 아니던가. 노래의 카니발이 끝나고 돌산에서 손을 잡고 내려오다가 우리는

후덕하게 생긴 중년의 남자를 만났다.

"어떻게?"

그는 우리 둘을 조금 걱정스레 쳐다보며 애린에게 추궁하듯 하였다.

"외삼촌, 이 분은 제 직장 상사인데 제 땅을 사실까 해요."

애린의 말을 급조된 핑계로 느끼며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다.

"직장의 아시는 분이라면 땅의 조건은 다 이야기 드렸겠지?"

착한 목소리의 외삼촌이 애린에게 말했다.

"그럼요. 이건 맹지라고 해서 길이 없는 땅이라는 말씀 말이죠. 그리고 맹지 앞의 주인이

고집불통이어서 길을 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다 드렸어요.“

난데없는 상황전개에 나는 당황하면서 엉거주춤 땅을 보러 왔다고 동의하였다.

"새로 닦는 경춘 고속도로의 청평 인터체인지가 여기 설악입니다. 사두시면 손해는 없을 겁니다.

맹지이지만 때가 되면 이쪽도 계획적인 택지 개발이 될 것이니까요."

"고속도로가 완성될 때쯤이면 저도 전원주택이나 하나 지을까 합니다. 나이도 있고---"

나도 거짓말에 꽤 순발력이 있네---, 하지만 나는 내 거짓말을 속으로 자책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린이는 점점 흥분하고 있었다.

"과장님, 저기 설악 면사무소 쪽으로 가요. 거기 복덕방이 있거든요. 주말에도 문을 열어두라고 

부탁해 두었어요. 오늘 계약서를 써요."

"값은 흥정이 되었니?"

외삼촌이 염려스런 눈초리를 보냈다.

 

", 직장의 잘 아는 분이니까 일시불은 아니지만 값은 아주 잘 쳐주셨어요. 과장님 어서가요."

내가 멀리 보이는 노인정 앞에 세워둔 승용차 쪽으로 몸을 돌리는데 외삼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시집가려니까 땅이 처분되는구나. 더욱이 여기를 떠나 미국으로 가니까---. 겹사돈이라서

외려 쉽게 이루어진 혼사인데 어릴 땐 두 사람이 서로 보고 컸지요."

나는 발을 잘못 딛고 쓰러질 뻔하였다. 차를 타고 내가 애린에게 힐난하듯 물었다.

"그게 모두 정말이야?"

"그래요. 마침 미국 있는 이모가 중매를 섰어요."

엉거주춤 외삼촌의 승용차 뒤를 좇아서 우리는 설악 면사무소 옆의 부동산 중개업소로 가서

계약서를 썼다. 전에 노래를 부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면 중간에 있는 모텔을 우리는 꼭

들렀다. 그러나 이 날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 이후 애린이 미국으로 갈 때까지 우리가

한 번도 몸을 섞는 일은 없었다.

등기를 넘기는 날 애린의 외삼촌이 무얼 상기시키듯 말을 꺼냈다.

"산에 있는 돌무더기는 제가 좀 써야하겠습니다. 애린이 하고도 전부터 약속이 되었던

일이지요. 그 돌들로 근방에 제가 새로 지은 집의 축대를 쌓을까하거든요."

"그건 고인돌 같은 고대의 유적지가 아닐까요? 괜찮을까요? 관청에서나 혹은 심리적으로나---."

"관이라면 제가 책임지겠고 심리적이라는 말씀은 무언지 잘 못 알아듣겠군요."

사실 나도 돌무더기라면 그 위에서 노래나 부르던 때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

환청이 들린달까, 기이한 마음의 갈등이 피어올랐다. 그건 무슨 돌 값 같은 이해관계와는 전혀

다른 신묘한 분위기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내 마음을 정리하고 돌을 주기로 하였다. 어쨌거나

그는 내가 한 때 사랑했다가 이제는 멀리 떠나보내는 연인의 외삼촌이 아닌가---.

나는 그녀가 보름 후에 떠나는 일정만 확인하고 이제 어쩌면 영원히 해후하지 못할 연인과의

이별 연습으로 일절 연락을 끊었다. 땅값도 그냥 그녀의 계좌로 부쳐주었다. 남자 쪽이

필라델피아에서 수퍼마켓과 주유소로 꽤 견딘다는 소리는 귓전으로 들었으나 여인이 시집을

가는데 어찌 돈이 들지 않으랴. 나는 신용 대출을 받아서 적지 않은 땅값 문제를 해결하였다.

한때 짧게나마 열애하였던 연인은 떠나가지만 그녀와의 사랑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 땅과 바위

옆으로는 내 노후의 전원을 마련하리라. 아니 바위 덩어리는 그녀의 외삼촌이 갖고 가기로 했지.

그래도 하여간 청평 호반은 내려다보일 것이다.

그녀가 떠나던 날, 나는 인천 공항으로 나갔다. 토지 매매가가 조금 부족하여서 떼놓고 

지불하지 못했던 액수를 달러로 바꾸어서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등기등본을 넘겨주며 그건 그만 두라고 당부했던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만 둘게 따로

있지 않겠는가---.

 

공항에서 나는 먼 친척을 자처하며, 사람들 사이의 그녀에게 돈을 건넸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아이새도와 마스카라가 범벅이 되면서 만들어 부친 눈섭이 떨어져 내릴 듯하였다.

"외삼촌은 보이시지 않네?"

내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물어보았다.

"엊그제 돌아가셨어요. 돌을 옮기시다 갑자기---."

나는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몸이 경직되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문득 이제 나도

설악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솟아올랐다. 나도 미쳤지, 내 중년의 사랑이 꽃피었다 시든

터전에서 누구와 무엇을 더 나눌 것인가. 그래, 태양 거석기 문명의 흔적을 내 인생 중의

가장 뜨거웠던 시절의 영원한 기념물로 남기면서 나도 설악을 떠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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