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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빼는 날을 앞둔 마음

원평재 2019. 2. 24. 22:50






방 빼는 날을 앞둔 마음

이달 말로 지역 문협의 단체장 임기가 다하여 방을 뺀다. 연임을 권하는 덕담도 꽤 있었지만

미련을 두다가는 개인적 삶이나 둔필의 글쓰기에도 지장이 오고 열군데 덕담 보다는 한군데

험담이 비수가 될 것이다.
이제 막상 방을 빼려고하니 그간 이 훌륭한 공간을 십분 이용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

시간들이 갑자기 아쉬워진다.
양재역 네거리 교통의 요지에다 컴퓨터와 복사기등 제반 장비, 냉난방 시설, 그리고

층마다 지속되는 문화 행사들이 글쓰기와 문학적 동기 유발에 큰 동인이 되는 이 곳을

최대한 활용하지 않고 방기했던 시간들이 아쉽다.
물론 완전히 유기했다고 한다면 엄살이겠지만 적극 활용하지 않은 것은 인생사의 각

단락마다 찾아오는 후회와 반성의 자료이다. 또 문인들과 지인들을 자주 초대하여

우의를 나누지 못했던 나태도 크게 아쉽기만하다.
강단에 있을 때는 연구실이 있어서 나만의 공간이었는데 그 방을 뺄 때의 탄식이

지금 새롭다.
연구실은 참 열심히 지켰다. 새벽같이 나와서 저녁 늦게까지 실험실이 있는 자연계통

전공자도 아니면서 불을 밝히고있었던 시절이 생생히 그립다.
하지만 은퇴의 순간 나는 그 순수 폐칩의 공간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은퇴 교수들 중에는 캠퍼스 근처에 오피스텔을 얻어서 잃어버린 나만의 공간을 재건

하는 경우도 여럿 보아서 나도 그런 성채를 한 때는 꿈꾸기도했으나 이내 생각을 접었다.

두어해 만에 그런 공간을 접는 선배 교수들의 일종의 실패사례들이 교훈도 되었고

하여간 '밀실에서 광장'으로라는 내 모토가 그런 일을 꾀하지 않게한 원인이었다.
내 경우에도 어쩌다가 그런 기회는 있었다. 은퇴 직후 제자 중의 한 사람이 그런 공간을

잠시 제공도 해 주었으나 그것도 잠깐, 내가 해외에 장기 체류차 나갔다가 들어 오면서는

그 기회도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다. 그런 공간을 유지하면서 이루어낼 과제가 내게는

불분명했고 또 솔직히 청소를 포함한 관리 일체가 유목, 낭만적 기질의 나에게는

농업적 붙박이의 정체성으로 보였달까, 강제적 유폐 구금의 생활로 비쳤던 것이다.
그러니 지역문학 단체장에게 주어진 나만의 공간을 매일의 일상으로 지키고 있기는

참으로 부담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쨌거나 이제 그런 속박의 방을 빼면서 아쉬움의 타령을 읊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어쩌면 한 시대의 시간을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조바심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이 방을 빼면 또 다른 방이 기다리고는 있다. '여행문화사'의 주간을 맡고있어서

종로3가 송해 거리의 오피스텔 604호가 나를 속박한다.

그러나 은연중에 그 공간을 반갑게 여기는 마음의 행로를 볼 때 상실과 회복이라는

방정식이 아닌가 싶기도하다.
사실은 벌써 반년 가량 들락거린 편집 공간이기도하다. 앞으로는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도해본다.
하여간 방 빼는 날을 며칠 앞 둔 요즈음의 심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