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고도방 구두 (시와 창작 여름호 명 콩트)

원평재 2020. 9. 4. 17:00

 

고도방 구두

김 유 조

 

"고도방 구두를 아시나요?"

그룹투어에 나선 열댓 명 일행 중에서도 며칠 같이 다니며 특별히 가깝게 느낀 한 가족에게 내가 던진 말이었다. 스페인 코르도바에서의 저녁식탁 자리였다. 여행에 앞서 안내책자와 인터넷 등을 뒤져 미리 공부를 좀 하던 중 특별히 코르도바는 내게 흥미를 던지는 내용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방의 꽤 큰 도시에서 지낸 내가 항상 부러워한 것이 있었다면 고도방 구두였다.

그때만 해도 비싼 운동화 시절이 아니었기에 싼 운동화의 위쪽 등급으로는 목을 자른 군화, 그 위에 단화, 또 그 위에 고도방 구두가 있었다. 그러니 고도방 구두란 구경의 대상일 뿐 내 차례에는 결코 닿지 않았고 부잣집 친구들 몇 명이 그걸로 폼을 잡는 분위기였다. 말 엉덩이 가죽을 한 뜸 한 뜸 수작업으로 신발창에 붙인다던가.

그런데 여행에 앞서 공부를 해보니 그 고도방의 어원이 바로 이 코르도바라는 게 아닌가. 아랍어에 따르면 피혁을 일컫는 말이었단다. 8세기부터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한 이슬람 세력은 남부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어서 지금의 코르도바로 진출하였다. 이들은 여기에서 아랍의 선진 기술인 피혁과 금은 세공업을 발달시켰다. 아울러 배후 세력으로 유태인과 집시들도 끌어들였다. 문명과 문화 발전의 기폭제는 항상 다원주의와 변화를 수용하는 마음자세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유럽 일부와 동남아시아까지 넘보았던 이슬람은 대제국 건설 이후에 원리주의와 불변원칙을 고수하면서 변화를 수용하기 시작한 서구 문명에 역전되기 시작하였다. 영광의 정점에서 불변이란 얼마나 달콤한 미망인가---.

하여간 당시로는 굉장한 선진 기술인 가죽 무두질, 즉 코르도반 기술을 개화 시킨 이곳은 지명 자체도 "코르도바(Cordoba)"가 되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식탁화제가 별것인가. 사전에 습득한 이런 이야기로 저녁 식사시간을 이끌려던 것이 내 생각이었다.

"내가 그런걸 알게 뭐요!?"

놀랍게도 청년의 대답은 몹시 거칠고 무례하였다. 부모의 나이가 우리부부와 같은 또래이고 그때까지 청년은 내내 매우 착하게 보였는데 의외의 일격을 가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식사시간에 구두 이야기도 못한단 말이오?"

나도 언성을 좀 높였다. 무안하고 화가 났다.

"아저씨, 참 잘났어요. 구두 방이 그래서 어떻단 말이오?"

그가 혼자서 점점 격앙되더니 얼굴을 붉히며 대들었다.

"구두 방이 아니라 고도방 말이오. 그리고 구두 방이라면 또 어떻소?"

총각의 거친 말과 나의 당황한 답이 오고갔다. 화장실에 갔던 아버지가 나타난 것은 이때였다.

"얘야, 무례하구나. 사과드려라. 죄송합니다. 뜻밖의 오해가 생겼나봅니다."

그분은 나에게 다가와서 조용히 말을 이었다.

"우리는 T시에서 고도방 구두점을 크게 했지요. 이름은 은성제화라고---."

"아이고 저도 고향이 그곳입니다, 은성 제화, 정말 반가운 이름이네요. 제가 고향을 떠난 건 30년도 넘지만 은성 제화를 어찌 잊겠습니까---."

"하지만 그걸 그만둔 것도 10여년 이상 되는군요. 우리는 지금 T시에서 금융업을 한답니다. 은성 상호 신용 금고가 발전된 은성 저축 은행이라고---."

", 들은풍월이 있군요. 적절한 변신을 하셨습니다."

"제화점이 원래 현금 장사 아닙니까. 그래서 금융업이 차세대 사업이 되자마자 우리는 갖고 있던 현찰로 즉각 변신을 했답니다."

", 서양의 유대인들이 그런 변신에 빨랐지요. 대표적인 것이 골드만 삭스라든지, 모건 스탠리라든지---. 그런데 자제분은 왜 저렇게 흥분했습니까---?"

"모두 갓바치라는 말 때문이랍니다. 가죽 일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나라에서는 가죽바치, 혹은 갖바치라고 했지요. 우리야 그런 전통적 계층과는 거리가 멀고 해방 후에 미군의 진주와 함께 이 일을 시작했지요. 사업이 잘 되니까 중앙통으로 나아갔고---. 그런데도 사람들은 샘이 나는지 우리를 갖바치라고 부르면서 예전에 광주리를 짜면서 평생을 살아간 고리 귀신하고 같은 족보를 적용하더라고요. 우리가 돈을 벌수록 뒷전에서는 더 그러는 것 같아요."

그때 아들이 미안한 얼굴을 하고 아버지의 말을 이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지금 제가 T시에서는 제일 큰 가방장사 딸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자 뒷말들이 더 많아진 겁니다. 고리귀신 집과 갖바치 집의 혼사랍니다."

청년의 격앙되었던 감정은 아직도 조금 남은 상태였다.

"사돈될 분이 T시의 K백화점에서 큰 가방 집을 경영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된 것이지요---."

아들의 목소리가 큰데 비해서 아버지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고 낮았다.

", 자제분이 결혼식을 앞두고 있군요?"

내가 물었다.

", 그렇답니다. 총각 때 한번 부모를 모시고 혼수품도 장만할 겸 따라나서겠다고 해서 왔지요. 유명한 S가방 대리점 집의 딸과 연애를 하다가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답니다. 우린 지금 금융업으로 변신을 했는데도 T시라는 보수 사회가 그러고들 있답니다. 이 녀석의 형도 몇 년전 성혼을 할 때 그런 보수 사회에서 여간 힘들지 않았지요---."

아이구, 요즘의 운동화 시대 이전까지는 제 평생 꿈이 고도방 구두였고 이번 여행에 큰 맘 먹고 장만한 이 가방은 바로 S가방 제품인데요. 하하하---.”

코르도바의 특별한 저녁은 깊어갔다.

 

약력; 건국대 명예교수(부총장 역임), 서초문인협회 명예회장, 미국소설학회 회장(현 고문), 국제펜한국본부 국제교류위원장, 현대시인협회 국제문화위원장, 격월간 여행문화 주간, 문학마을 소설대상 수상, 상상탐구 소설작가상, 헤밍웨이 문학상, 학술원 우수도서상 등 수상, 장편소설 삼각지에 온 빈포사람들 외 소설집 3, 시집 3, 평론집 1권 등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