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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가면 속의 아리아(계간문예 2021 겨울호)

원평재 2022. 1. 19. 13:28

코로나 시대가면 속의 아리아(계간문예 2021 겨울호)

                                                             김 유 조

여름 햇살이 강렬해 지면서 산에 오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심한 변화의 물결이 격랑처럼 찾아왔다햇살이 강하면 나는 왜 세상의 온갖 소리가 일순에 그 빛살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일순 정적이 오는 것으로 느낄까---.

"에이 그건 나이 탓이지요---."

의사가 이런 진단을 내린다면 내가 보기에 그는 돌팔이거나 삼류일 것이고 빛과 음향의 파동 원리를 들이대며 그 현상을 이치로 분석하는 과학자가 있다면아무리 그가 유명할 지라도 한 차원 높여 스웨덴 한림원에서 연설할 기회는 없으리라그들에게는 현실계만 있고 상상력이 결핍되었기 때문이다세상에는 현실의 세계를 흡입하는 상상계가 한 단계 높이 엄존하지 않는가.

여러해 전이집트 ‘왕가의 계곡’을 다녀 온 이래 나는 강한 햇살이 음향을 흡음해버리고 마는 신비 계를 체험하였고 지금도 그러하다저 거대하게 펼쳐진 왕가의 계곡이 뜨거운 햇살에 달구어질 무렵부터 현실계의 모든 것만물은 영원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법석대던 관광객들도 일순 음성을 잊고 잃는다.

 

나는 어떤 신도시로 최근 이사를 와서주말이면 인근 야산을 먼저 온 중등학교 동기들과 오르기 시작하였는데 한 여름이 오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묵음과 묵언의 현상을 다시 겪기 시작하였다무슨 일로 이런 병리적 현상이 재발한 걸까하긴 도심에 살면서 빽빽한 아파트와 지하철이나 생활공간으로 삼다가 갑자기 햇살 그득한 자연 속에 던져진 상태를 생체가 감당 못하는 탓이 가장 클 것이었다또 다른 원인이라면?

아무래도 코로나 시대의 필수품 마스크 탓이 아닐까?

"미라?"

코로나 이전부터도 어떤 여인들은 피부를 보호한다는 듯이 정말 미라처럼 붕대 같은 것으로 얼굴과 목과 팔을 칭칭 동여매고나왔다그런데 이제 여름에 접어들면서 산행 패션에는 새로운 물결이 나오기 시작하였다마스크를 가면의 형식으로 변형한  여인들의 출몰이었다영화 ‘가면 속의 아리아’에 나온 것과 꼭 같은 그 마스크를 쓴 여인들의 등장이었다코 부분에 어떻게 방역장치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하여간 마침내 가면들이 산록을 일렁이기 시작하였다팬텀들이 일렁이는 산골길---. 가관이었고 무서웠다.

어느 날 그 가면중의 하나가 나를 툭 쳤다흰 가면이 압도적인 추세에서 이 충동적 가면은 핑크색이었다.

"성자(聖子)구나!"

아래 위두 쪽으로 된 가면의 윗부분이 들리면서 주름이 좀 심한 여성의 얼굴이 나타났는데 "그 이름도 거룩한성자였다. "그 이름도 거룩한이란 대학 다닐 때부터 그녀의 이름 앞에 우리가 붙여준 수식어였다우리는 대학 동기였는데 누군가가 그녀도 이 신도시에 산다는 이야기를 한 적은 있었다.

"이 동네 산다니까 언젠가는 만날 줄 알았지만 이건 가면 속의 아리아이네극적이야우린 항상!"

내가 처음 그녀와 극적인 조우를 한건 시 쓰는 내 친구 하나가 그녀를 짝사랑하여그녀의 한옥 집 대문 앞이던 가 담벼락으로 갔을 때 나를 대동한 사연 탓이었다그녀의 가녀린 몸매와 청초한 눈매가 순진한 대학생들의 가슴을 저리게 했다여럿이서 가슴 뛰고 저려했으나 나는 내 친구의 보호자가 되면서 내 가슴을 속절없이 움켜쥐고 내리 누를 수밖에 없었다그 시절은 에피소드처럼 지나가고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실내장식 하는 회사에 잠깐 있을 때에 그 곳에 있는 두 명의 환쟁이 아티스트들이 그녀를 어떻게 알고그 청초한 몸과 눈매를 놓고 전쟁을 벌였는데 그럴 때마다 그 전쟁터 술자리에 나는 함께하였다.

 

그녀도 빠짐없이 나와서 합석으로 앉아 있었는데 나는 심판관인척하여서 목에건 휘슬이 부딪치며 내 가슴만내리 눌렀다그들은 실제로 레퍼리인 내 앞에서 미식축구 선수들처럼 성자를 앞에 두고 술을 마신 끝에 격투도 벌였다그리고 어느 날의 가장 격렬한 격투 끝에 지금은 추상 미술계의 대부가 된 친구가 그녀를 납치하듯 택시에 싣고 사라졌다.

실종되었던 두 사람은 하루 이틀 사이로 따로따로 나에게 나타났다사내가 먼저였다.

"경황 중에 잤는데 이거 일이 복잡하게 되었네내가 깊이 사귄 여자가 지금 다시 나타났거든---. 애를 없고."

수작인 것 같지는 않았다세상 일이 항상 이렇게 비극적인지 희극적인지 하여간 극적이었다.

"몸 사랑을 정말로 했어?"

'몸 사랑'이란 좀 거룩한 말은 지금 내가 어떤 칼럼니스트로 부터 배운 문자 속이고 실제로는 좀 야한 표현이었으리라.

"그럼격렬할 때마다 기침을 쿨럭쿨럭 하더라."

평소에도 그녀는 기침을 곱게 하였었다하여간 그는 그런 정도로 분위기를 전하며 레퍼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차지타임을 요청하였다.

그 다음 다음 날은 성자에게서 연락이 와서 또 만났다.

"그에게 책임지울 일은 없어난 사실 그전에 이미 어떤 그림쟁이 중년하고 사랑을 했거든나이 많았던 그 사람이 문득 사라지고 난 자리에 그가 이윽고 나타난 셈이야엊그제 밤 술집에서 둘이 그렇게 싸우긴 했지만 난 항상 그랬듯이 무심한 편이었어."

불쌍한 놈들---,

이 무서운 세상에---.

그 때 수준의 내 생각이었다그 시대와 내 나이의 수준으로는 그게 전부였을 것이다지금은무심해졌다.

호텔 커피숍에서 그녀가 갑자기 크게 울었는데 아무리 내가 상상력이 부족한 위인이었지만무언가 영화로 치면 롱테이크의 다음 신이 필요한 순간 같았으나 장면은 거기에서 무심하게도 엔딩크레딧을 올리고 말았다세월이 약이고 성자도 그 후에 시집 잘 갔다는 소식미국으로 가서 어떤 한국계와 맺어졌다던 가---. 그 때는 그 정도 시나리오라면 최고였다.

 

"가면 쓰고 나타났구나귀국해서 여기에서 산다는 소식은 간접으로 들었다만---."

"나도 네 소식 가끔 듣고 있어궁금했어너만!"

주름진 얼굴에서 땀방울이 많이 흘러내렸다.

"아이구나야 항상 산초 판차에 방자 같은 노릇이었지네가 눈길이나 주었니아차그래 항상 넌 날 쳐다봤구나."

"바보!"

가면의 위 뚜껑이 덜컥 닫혔다아니 덜컥이란 소리가 났을 리야 없지만 그게 크게 들렸다.

"어이 빨리 안 오고 외간 여자와 무슨 짓거리하는 거야도와줄까?"

친구들이 소리치고 있었다그제야 귀가 뻥 뚫리고 주위의 소음이 갑자기 귓전에 생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