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시대의 아쉬운 세상 나들이

나이아가라/돌아오지 않는 강

원평재 2004. 5. 28. 00:17
 오래전 나이아가라 폭포에 내가 처음 갔을 때 묵었던 호텔은 
"돌아오지 않는 강"을 주연한 마릴린 먼로가 촬영차 체류했던 
"홀리데이 인, 나이아가라 폴스"였다. 
함께 간 일행중의 한사람이 로비의 의자 밑을 뒤졌다. "뭘 하오?" 
내가 물었다. 
"먼로가 흘린 모발을 찾을까 해서---" 
"에끼 이 양반아".
"왜? 점잖지 못하다고?"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다 줏어갔지, 하하" 
"그래도 퍼블릭 헤어(!)는 퍼블릭(公的)해서 혹시라도 아직도 주인없이 
몇가닥 날아다닐지 알어?"
하긴 후에 일어난 일들이지만 퍼블릭 마니, 즉 공적 자금도 주인없이 다 
날라갔지.
그 홀리데이 인이 2류로 밀리면서 어느 해이던가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것도 보았고. 그 곳 다운타운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쇼핑 몰에 갔다가 
마지막 셔틀을 간신히 타고 연상의 여인과 돌아왔던 기억도 있는데, 
(그 때 사정이 좀 복잡했다)
이제는 바로 폭포 옆에도 큰 몰(mall)이 들어서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곳을 여러번 다녀본게 어쩌다 대체로 공짜 여행이었는데 정작 IMF가 터진 
해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내 돈을 내고 나이아가라 관광을 가게 되었다. 
그 어려웠던 해의 겨울이 매우 추웠는데 여행사에서 나이아가라 폭포가 결빙
했다고 은근히 소문을 퍼뜨렸다. 
내가 얼어붙은 폭포를 내 돈 내고 구경 다닐 만큼 한가롭지는 못했지만 
보스톤에서 공부하는 큰 아들녀석을 만나보러 가는 길에 패키지 여행 팀에 
끼어서 이 결빙의 장관을 한번 보자는 욕심이 생겼던 것이다. 
사실 개인의 비행기 값에 조금만 더 보태면 관광여행이 되는 제도를 활용코자 
하였는데. 결국 그 때 만은 여행사에 반은 속은 꼴이되었다. 
현지에 가보니 "나이아가라가 결빙이라니!", 촌사람 같은 소리 그만 두라는 
것이다.
카나다 쪽으로 들어가서 말발굽 폭포를 보는 것이 정석이어서 그 쪽으로 
들어갔는데 장관은 장관이었으나 거대한 물줄기는 결빙의 최초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날씨만큼은 북아메리카의 특징대로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고다음날 
아침에 눈을 비비니 카나다 쪽 나이아가라 일대는 다리가 푹푹 빠질 만큼 
밤새 눈이 쌓였다. 
더우기 아, 이날은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니던가. 
그 동네 사람들은 우릴 보고 웃었겠지. 
크리스마스날 이게 무슨 짓거리냐고, 
오늘은 모두 집에서 헤어진 가족들이 모이는 날인데---. 
우리는 카나다로 들어간 김에 온타리오에 있는 세상에서 제일 작다는 교회로 
증명사진을 찍으러 갔다. 
네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교회당 안팎에서 모두들 실컷 사진 박는 
원과 한을 풀고나서 한인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한 때 밀려드는 한국 관광객으로 고무되었던 밥집 주인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식당을 확장하고, 아예 몇 개 더 늘리고 하다가 망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비행기 전세 내어서 동창회까지 나이아가라에 와서 하는 꼴을 보고 
비웃었더니 벌 받았는지 모르죠---" 주
인이 웃는지 우는지 애매한 표정으로 유머 비슷한 것을 하고는 유리병에서 
청록의 알약을 꺼내 보였다. 
"비아그라인데 사실분?" 값은 10불 정도였던가---. 
"병째 삽시다" 
나이 지긋한 부인들이 팔을 걷고 나서서 낄낄 웃으며 대량구매에 들어섰다.
물론 선물용이라는 요란한 핑게가 따랐다.
북미주 구매사절단 같은 모양새가 따로 없었다. 
섹슈앨리티는 이제 인류사의 공공연한 화두가 되었다.
조금 감추어 두지도 않고---.
* 이중섭의 "돌아오지 않는 강" 
*  제주에서 그는 돌아오지 않는 가족들을 한없이  기다리고 그리워 
하였다.  
그림 속의 표상이 상징적이다.
섹슈앨리티 이야기가 나와서 사족을 하나 달고 싶다.
얼마 전에 나는 여러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문경의 "왕건 촬영장"을 
찾았다. 
수십억을 들여서 이런 대규모의 야외 세트를 설치할 수 있는 국력이 
자랑스러웠고, "문경 탄좌"를 오래 경영해오던 에너지 회사가 수백만 평의 
산에 나무를 새로 심고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모습이 가슴 흐뭇하였다. 
이때 곱게 나이든 부인 한 분이 크게 외쳤다. 
"여보, 조껍대기 술이 뭐예요? 한 병 사서 마셔봅시다." 
그 남편이 때릴듯한 모습으로 부인의 입을 막아보려 했지만 부인은 
막무가내였다. 
"조껍대기 술이 모야? 아니 조껍대기가 모야?" 
점심 술이 과했는지 말씨도 요즘 스타일이 되었다. 
당연히 조껍대기 술이 대령되었고 모두들 왠 일인지 신이나서 조껍대기 
술을 조금 지나치게 마셨다. 
점잖던 분위기가 아연 활기를 띄었는데, 어쨌든 조껍대기 술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