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시대의 아쉬운 세상 나들이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원평재 2004. 6. 18. 06:30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라는 말은 상식의 허실 중에서도
관념적인 "있음"과 현실에서의 "없음"을 대비시키는 이름난 화두이다.

 

이베리아 반도와 모로코 여행에서도 이런 괴리현상이 몇가지 발견
되어서 여행기의 한 수단으로 정리해 본다.
여행기의 홍수 속에서 그 나름의 정체성을 빛내기 위하여---.

카사블랑카에는 영화 카사블랑카에 나온 카페는 없었다.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는 같은 이름의 영화의 무대가 되었던
"릭키의 카페" 혹은 "아메리카 카페"는 원래부터 없었고,
지금은 하이얏트 호텔의 1층에 영화를 모방한 "카사블랑카 카페"가 하나 있다.
사실 영화 "카사블랑카"는 애초부터 카사블랑카에서 찍은 것이
아니었다고한다.

스페인의 세빌리아에는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관련한 것은 없고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여주인공이 일한 연초회사가 지금은 세빌리아
대학의 법학부로 사용되면서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물론 카르멘의 동상은 시내에 서 있다.
이 곳은 또 모찰트의 "돈 조반니"의 배경이기도 하다.

한편 그라나다 등 안달루시아 지방에는 꽃과 물과 새를 갖춘 정원을
집안에 제대로 유지하면 "카르멘"이라는 호칭을 받고 대문에도
자랑스럽게 "아무개의 카르멘 저택"이라고 크게 문패처럼 달아놓았다.
그러나 카르멘이 산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다.
 
세고비아 지방에는 세고비아 기타가 없었고 비탈리의 샤콘느가
初演되어 유명해진 사실만 존재했다.
작곡가이자 연주가이며 클래식 기타의 화성법을 피아노 음계에 맞추어
체계화한 세고비아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그라나다 인근 리나레스에서
출생하여 바르셀로나에서 국제적 명성을 떨쳤다.

사라고사에서는 고호, 고갱, 등과 함께 고씨 성을 떨친 화가 고야의
동상이 있었으나 막상 그곳에서 그의 유명한 그림은 찾지 못했고
옷을 입었다 벗었다한 "마야"도 그곳에 있을리 없었다.
"옷을 벗은 마야"는 마드리드의 쁘라도 미술관에서 그 요염한 자태를
아직도 빛내고 있다.

[옷을 벗은 마야(하)] Nude Maja, before Nov. 1800, oil on canvas



[옷을 입은 마야(하)] Clothed Maja, 1800-03, oil on canvas

리스본에는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1999년에 작고하여 이미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녀를 기린 공원이 새로생겼다.
유명한 백화점 체인 "엘 꼬르떼 데 잉글레스"가 포르투갈에 진출
하면서 기념으로 헌정하였다고한다.

포르투갈 군부독재 40년이 가능했던 것도 three F, 즉 풋볼, 파두,
파티마의 덕분이었다는 말을 덧붙인다.

허브 공항으로 거쳐온 화란의 암스텔담에 있는 스키폴 공항은
일대 스트라이크에 휩싸여 있었다.
노동계 파업의 한 분수령을 이루는 불법 파업으로 소위
"와일드 캣 스트라이크"인데,
덕분에 가방들이 주인과 함께 들어 오지 못하고 화란에서 잠을
하룻밤을 자고 들어왔다. 명성과 실재의 괴리를 보았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비엔나에는 비엔나 커피가 없고 귀향한
여행객에게는 가방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