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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민주운동 50주년 기념식을 마치고

원평재 2010. 3. 2. 17:25

해마다 2월 28일이 되면 가슴이 뛰는 사람들이 있다.

1960년 대구에서 고등학교 2학년 말을 마지하고 내일이면 3학년으로 진급하는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일단은 그러할 것이고 그 전후에 학창을 함께한 세대들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아니 이땅에 사는 국민들이라면 이날을 모두 기억하고 그 의의를 소중하게 간직하리라---.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60년대에고등학교를 다닌 동시대인들 조차도 이날을 까마득히 잊고

지내는 사실이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 되고 있었다. 

 

  

2-28 민주 의거의 역사가 어언 50성상을 셈하게 되었다는 것이 별로 자랑이 아닌 세태를 맞게된 것이다.

역사의 뿌리가 깊어지는 속에 거꾸로 기억은 얕아지고 급기야 망각의 현상을 맞게 된 것이다.

다만 천만다행으로 이 지역 국회의원이자 1960년 2월 28일, 불의에 항거하여 함께 교정을 뛰쳐나갔던

이해봉 의원이 2009년 12월 29일, "2-28 관련 민주화 운동 기념사업회 법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 되도록 진력하였다.

이에따라 2010년 2월 4일에는 법률 제 10007호 민주화 운동 기념 사업회법 일부 개정 법률이 공포되기

이르렀으니 광복이후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효시이자 단초는 바로 이 2-28 민주 의거임을 국가적으로

추인하게 되었으며 올해는 그 올바른 역사 세우기의 원년이 되는 셈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역사 교과서에서도 민주 운동의 효시로는 2-28이 언급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그 내용을 모르는 다음 세대의 학생들도 이 날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 역사책을 뒤지게 되었다.

사단법인 2-28 민주운동 기념사업회의 제3대 공동의장을 지냈던 홍종흠은 다음과 같이 경과 보고의 글을

50주년 기념식 전야제에서 낭독하였다.

글도 명문이지만 내용은 더욱 값진 것이어서 다음 세대를 위한 자료의 가치도 높아서 여기에 주석처럼

달아두려고 한다.

  

이제 2-28은 망각의 개념이 아니라 새롭게 의미를 생성하고 피워올리며 새봄의 전령으로

상징화, 개념화의 과정에 들어서게 되었다.

 아!

이렇게 꽃을 피워올리려고 50년을 기다려 마침내 올해로 2-28 민주 의거 50주년을 기념하게

되었으니 겹친 감동을 무엇에 비견하랴.

하늘의 뜻은 어쩌면 항상 이렇게 오묘하고 의미심장한지 헤아릴길이 없다.

그동안 경향에서 묵묵히 <2-28 의거>를 지켜내려온 여러분들의 노고가 새삼스럽다.

<2-28 의거>를 지켜내려왔다는 표현 밖에 달리 수식어구를 달 필요도 없다.

<2-28 의거>는 이제 그 어휘 자체만으로도 개념화 되었기 때문이다.

 

전야제와 당일날의 사진 기록을 주섬주섬 정리하여 올려본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달리 캡션을 달지 않으려고 한다.

역사 속에 우뚝 세워진 이날의 감회라고 하는 거대담론과 함께

동기들의 깊게 팬 주름살을 마주하면서 사적 감회를 나누는 장면들이

그냥 오버랩 되도록 두는 수 밖에 달리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많은 인원이 모였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적 분위기는 동기생들만의 나눔으로 남겨두고

여기에서는 절제하였다.

 

 

 

지금부터는 전야제 다음날 제 50 주년 2-28 민주 운동 기념식 장면을 스케치하였다.

 

 

 

 

기념식은 아침 일찍 2-28 의거탑에 헌화하는 순서로 시작이 되었다.

 

  

  

 

기념식은 이날 오전 11시, 대구 문화 예술 회관 대극장에서 개최되었다.

깨끗한 구조물과 자원 봉사자들의 활동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식전에 보여준 영상물이 당시의 상황을 압축하여 많은 설명을 대신해 주었다.

 

  

 

 

이대우 군이라는 신문 표제가 선명하게 나왔다.

"선동"이라는 표현은 당시의 상황 탓이련가.

 

작년 4-19 묘역에 그를 안장하던 때의 안타까운 기억이 되살아났다---.

 

 

   

  

  2-28 하루전날 열린 이 선거유세 인원은 강제 동원과 현금 회유의 결과였다.

 

 

  

 

작년 삼성 병원에서 보았던 모습이 생생하다. 

 

 

 

   

   

 

대구여고 학생장이 50년전의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결기에 차고 강개한 목소리의 소녀는 일순 식장에 숙연함과 더불어

놀라움을 던져주었다.

불의와 부정이 이땅에 자리잡기는 결단코 어려우리라는 다음 세대의 결의 같기도 하였다.

 

  

이어서 기념사와 축사가 이어졌으나 따로 따로 이 곳에 소개할 겨를은 없고

이해봉 의원을 중심으로 하여 면면들의 모습만 힘께 올린다.

  

  

이제 헤어지고 올라가고 내려 갈 길만 남았다.

아무리 바쁜들 몽매에도 못잊을 손, "따로 국밥" 집에 들렀다.

세월은 여기에도 손길을 미쳐 국일관은 규모가 작아져서 수용이 어렵다하고

벙글벙글 집이라는 데로 빙글, 방향을 틀었다.

서서 기다렸다 먹었지만 추억의 입맛을 다시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참가하지 못했던 퍼포먼스는 동기이자 문인인 정시식 시인의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마치 오래전 그 시절의 사진과 같은 효과를 냈군요~~~.

 

228의거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거리 퍼포먼스가

경북여고정문에서 반월당을 거쳐 228민주기념공원까지 개최되었다.

 

  

 

 

 

 당시의 주역들이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거리행진에 대거 참석하여 그날을 회고하는 모습

 

퍼포먼스에 참석한 학생들

 

228민주의거기념공원에서 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개최되었다.

 

2010. 02. 28

 

<끝> 

 

<첨부 자료>

경북중고 42동기 2.28 민주운동 경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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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부터 반세기전 1960년2월28일, 당시 경북고등학교 2학년과 1학년의 어린학생들이 대한민국

건국이후 최초로, 이 나라 국민의 자유와 민주를 위해 궐기한 역사적 사실은 지금도 가슴이 벅차고

설레입니다.

당시의 교정은 아닙니다만 그때 의거에 나섰던 홍안의 벗들이 50년만에 모교에 다시 모여 그날의

경과를 정리해서 보고드리게 됨은 아직도 나라의 민주발전과 통일조국의 선진화 염원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 국민은 일제의 수탈과 질곡에서 해방된지 15년, 동족상장의 6.25로 나라가 폐허로

변한지 10년, 거기에 이승만 자유당정권의 독재와 부패가 겹쳐 가난과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국민의 불신과 지탄을 받아온 자유당 정권은 4대 정부통령선거에서도 집권연장을 위해

온갖 부정선거를 자행했던 것입니다.

  2월28일 그날은 일요일이 었습니다. 우리가 일요등교에 항거하고 학원을 정치 도구화 하지말라,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빛들아 하고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던 것은 바로 그같은 자유당정권의

독재와 부패, 부정선거를 규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3학년 선배들이 졸업하고 2학년으로 최고 학년이 었고 후배로는 43회가 1학년

이었습니다.

3.15정.부통령 선거운동과정에서 대중유세가 한창이던 2월25일 학교당국은 전례에 없던 28일의

일요등교를 우리에게 강요했습니다.

핑개는 임시시험을 앞당겨 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그날 예정된 야당 부통령후보인 장면 박사의 수성천변유세에 못가게하는

자유당 정권의 부정한 술수임을 간파했습니다. 우리는 일요등교를 거부했고 학교당국은 임시시험을

토끼사냥이다, 영화관람이다 하고 빌미를 바꾸어가며 우리를 회유했으나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28일은 밝았고 낮12시가 지나 교정에는 1.2학년생들이 모여들었습니다.

30분이 넘자 약800명에 이르는 전교생들이 조회단앞에 몰려 시위에 나서자는 흥분된 분위기로

들끓었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극장으로 인도한다는 명목으로 시위를 제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2시55분 단상에 뛰어오른 이대우군은 안효영군과 함께 준비해온 결의문을 낭독했고

우리는 선생님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거리에 나섰던 것입니다.

  교문을 나서자 수성천변 강연을 위해 승용차를 타고가던 부통령후보 장면박사와 조우했으나

장박사는 그것이 시위인 줄 모르고 손만 흔들고 지나갔지만 우리는 시위를 계속했습니다.

대구상고와 사대부고 앞을 지나며 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고 반월당을 지나 매일신문사 앞에서

우리의 뜻을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대구경북의 지방정부가 있던 경북도청의 뜰에서 우리의 결의문을 낭독했고,

도청정문의 경찰 제지를 뚫고 자유당경북도당 당사앞에서 자유당의 불의를 규탄했습니다.

경찰의 강압제지로 시위대의 대열이 분리되고 일부 친구들이 채포, 연행되는 가운데서도 일부

시위대는 대구시청앞에서 항의의 뜻을 전했습니다.

일부는 경상북도 지사 관사앞에서 당시 오임근 지사를 불러내어 자유당 정부의 부당함을 규탄하고

시정을 요청했습니다.

결국 시위대는 경찰의 끈질긴 제지로 모두 해산되었고 약200명의 동기생들이 경찰에 연행되었고

일부 선생님들도 경찰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우리의 시위는 대구고등과 경북여고, 부속고등 학생들의 시위를 직간접적으로 촉발시켰고

대구시민들의 호응과 지지속에 온 국민들에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후 2.28민주운동의 불씨는 전국으로 번져 대전, 수원, 충주, 부산, 청주 등지에서 민주시위를

불러왔고, 3.15마산의거에 이은 서울의 4.18, 4.19, 4.26시위로 마침내 자유당정부는 무너졌습니다.

우리 경북중고42회의 2.28이 4.19혁명으로 완성되면서 이 나라에 처음으로 민주와 민권이 승리한

새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지난해는 2.28민주운동이 민주화 관련 기념사업법에 한국민주화운동의 효시로 자리매김하면서

대한민국 2대 헌법정신 속에 자리잡았습니다.

이에 앞서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정신과 함께 시민의 2대 정신적 지주라는 시민적 합의를

이루었습니다.

4.19직후 우리의 민주화운동은 이 나라에만 머물지않고 독재에 신음했던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제3세계국가들에도 민주화의 봉화를 올리는 계기를 만들어 세계의 민주화에 기여했습니다.

  2.28민주운동으로 인해 당시 우리동기생들과 모교선생님들에게도 숱한 피해를 주었던 사실과

이 민주운동을 기리기위한 범시민적 기념사업단체인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의 발족등 부수적으로

보고드릴 사항이 많습니다.

그러나 자세한 경위 설명은 줄이고 이만 경과보고에 가름하겠습니다.

 

                                       2010년 2월 27일 42회 동기생 홍종흠

 

 

 

제50주년 2·28민주운동기념식 행사

 

1. 2·28기념탑헌화: 2010, 2, 28(일) 9:00 2·28기념탑(임원 및 회원)

2. 50주년기념식: 2010, 2, 28(일) 10:30 대구시문화예술회관대극장(성당동)

3. 참석대상자: 중앙인사, 각급기관장, 2·28회원, 시민, 학생등 1,000명

5. 식전행사: 2·28찬가, 시민의노래음악, 2·28민주운동관련 스크린영상

6. 식순:
- 개회
- 국 민 의 례 (악대, 합창단,)
- 경 과 보 고 (2·28부의장)
- 결 의 문 낭 독 (학생)
- 기 념 사 (2·28공동의장)
- 축 사 (VIP, 대구광역시장, 경상북도지사, 대구광역시의장,대구광역시교육감)
- 2·28찬가 제 창
- 페 회
- 식후행사: 퍼레이드, 경북여고 정문앞출발(기념식장→경북여고 버스로이동)

7. 퍼레이드: 11:30. 600명  -코스구간(결의문낭독방송,2·28찬가방송)

 1)참가인원
(1)VIP, 기관장, 회원, 시민등: 280명
(2)학생: 320명
2)퍼레이드코스
경북여고출발→반월당→중앙네거리→한일극장→2·28기념공원도착
→공연(뉴캄퍼니이벤트)
3)퍼레이드시 행렬순서
취타악대, 퍼포먼스, 학생피켓, 만장기따라 각급단체장, 2·28회원, 시민참여
※ 2·28기념공원도착후 공연참가자 음료수, 빵지급.

8. 식후행사(2·28기념중앙공원)
1) 인사말  2)공연진행  3)폐회

 

2·28민주정신과 국가의 선진화(안)
◎일시 : 2010년 2월 24일 (수) 10:00~14:00
◎장소 : 그랜드관광호텔2층 다이너스티A홀
◎주최 : 사단법인 2.28대구민주운동기념사업회
◎후원 : 대구광역시, 대구광역시교육청, 대구지방보훈청, 각언론기관

 

모시는 글
2·28민주운동제50주년을 맞이하여 학술대토론회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념적, 지역적, 정치적 대립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는 이때, 

불균형이 안고 있는 현실적 모순을 뛰어넘어 2·28민주정신과 새로운 국가의 선진화

통합 방향을 모색하고 고민하는 자리를 열어 보고자 합니다. 

주제에 따라 지성을 대변하는 분야별 전문가와 토론자들을 모시고 대토론회를

개최하오니 함께 자리 하셔서 미래를 전망 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010년  2월    일
사단법인 2.28대구민주운동기념사업회
공동의장  안  인  욱


  《 회순 》
◉ 09:30 ~ 10:00 (접수)
◉ 10:00 ~ 10:05 (초청인사말)  안인욱(2.28공동의장)
◉ 10:05 ~ 10:10 (인사말)  김범일(대구광역시장)
◉ 10:10 ~ 10:15 (축사)   최문찬(대구광역시의회의장)
◉ 10:15 ~ 10:30 (발제 및 토론) 

 

*기조연설: 박세일 교수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제1세션 : 2·28민주정신과 정치의 선진화
발표: 노동일 총장 (경북대학교)
제2세션 : 2·28민주정신과 사회의 선진화
발표: 김호기 교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제3세션 : 2·28민주정신과 청년문화의 선진화
발표 : 홍덕률 총장 (대구대학교)

사회(이해두 동북아 자치단체연합 사무총장)


*종합토론 : 학계2명, 언론계2명, 2·28임원2명, 시민단체2명.
흠전매일신문논설위원,최용호경북녹색성장추진위원장,김정길매일신문명예주필,

김태일영남대정치행정대학장,김용락경북외국어대학교수,허노목변호사,백승대영남대교수,

김약수대구미래대학교수,4.19홍영유,석민매일신문기자,김경민YMCA사무총장,

MBC박영석,양정봉대구신문편집국장흥사단최현복사무처장, (10명으로조정함)               

             
◉ 12:30 ~ 13:00 (오찬)   ◉ 14:00 ~      (페회 리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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