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기러기 가족 (3-3)

원평재 2011. 2. 10. 06:17

마침내 곤충이 내 입술위로 달려들자 나는 두 손으로 나꿔채서
양 손바닥으로 잠자리가 되다만듯한 이 작은 곤충을 압살하였다.
순간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자 역시 세계적인 생물학자가 다르긴 달랐다.
케네스 교수는 얼른 티슈에 물을 묻혀서 퍼런 핏자국을 내고 지독한
방향을 풍기며 죽어간 이 유기체의 흔적을 내 두손에서 닦아내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냄새가 쉬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자 아내가 얼른 핸드백 속에서 향수병을 꺼내어서 내 두 손바닥에
부었다.
아, 그 향기는 바로  미스 조가 쓰던 바로 그 향기, 내 산소없는
아파트의 전실에서 홀로 갖혀서 숨죽이던 바로 그 향기가 아닌가.

그러자 나는 미스 조가 아파트에서 술이 취하면 중얼거리던 말이
생각났다.
"저는 우리 모가지가 달아나고 사모님이 돌아오시는, 지금부터 석달
후면 죽어버릴께요. 그리고 팔년을 땅속에 있다가 하루만 살아서
날라다니는 잠자리가 되어서 비행기타고 오시는 부인과 상무님 두 분
사이를 넘나들거예요."

그러면 나는 항상 그녀를 절망적으로 놀렸다.
"석달 후면 한 겨울인데 잠자리는 무슨 잠자리. 잠자리 팬티나 얼른
벗고 빨리 이리와서 누워봐"

그런데 미스 조가 죽어서 변한 그 잠자리가 나타났더란 말인가---.
제대로 발육도 못하고 말이지.
그리고 사라진지 팔년은 커녕 팔주나 갓 넘겼을까---.

"앤트 라이언, 즉 실크 버터플아이 입니다."
케네스 교수가 곤충의 이름을 말해주는 줄은 짐작이 되었으나
처음에는 라이언이란 말만 귀에 들려서 잠자리 소동에 사자가 왠 일
인가 싶었다.
내가 의아해함을 얼른 알아차린 케네스 교수는 즉시실크 버터플라이
라고 말을 풀어주었고 내가 전자사전을 얼른 열어보니 "명주 잠자리"
라는 해석이 눈에 들어왔다.

"이 냄새는 페로몬(pheromone)이라고 해서 의사(意思)전달 물질
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보통은 이렇게 진한 냄새이지만 상당한
부분은 인간이 맡을 수 없는 범주에 속하여있고---. 개미가 일렬로
줄서서 가는건 길따라 페르몬(trail pheromone)이고 섹스 페로몬도
필수적이죠.
그런데 아까 그 곤충은 암컷인지 선생님께만 계속 달려들었어요.
섹스 페르몬이 작동한것 같아요, 하하하."

우리는 함께 따라서 웃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결코 편치않았다.

이제 미스 조가 즐겨 썻던 향수 냄새는 페로몬울 뒤덮고 궁중의 내당
같은 격조 높은 우리 디너 파티장에 그윽히 다 펴져있었다.
그리고 그 향수 냄새는 미치도록 미스 조를 그립게 만들었다.

"당신 언제부터 세라 뒨느 사용하나?" 내가 아내에게 물었다.
"아이구, 이 양반이 혼자 있으면서 연애했나부네. 향수를 다 알고---.
이건 세라 뒨느가 아니고 샤넬의 알뤼르 올시다."

"흥, 연애는 당신이 했구만. 당신이 언제부터 향수 뿌리고 다녔나.
그리고 알뤼르면 영어로는 얼루어, 즉 유혹인데 참 의미심장하네---."
나도 지지않고 이죽거렸다.
이런 우리 말들은 물론 웃는 얼굴을 가장하여 오고갔다.
그 순간에도 교수는 이 터진 액체가 피가 아님을 극구 강조하여
설명하는 중이었다.

이제 결론을 이야기해야겠다.
미스 조는 행불자, 즉 행방불명자로 처리되었다.
김회장의 음모설까지 포함하여 주간지를 여러차례 센세이셔녈하게
장식했으나 그것도 시간과 함께 잊혀진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나도 경찰서를 드나들었으나 용케 사생활 부분은 언론의 포화를
피하였다.

내 친구 철학교수는 이야기의 전말을 어렴풋이 알고나서 나를 볼
때마다 크게 힐난하였다.

"죽은자에 대한 채무자는 산자야. 아리스토텔레스는 당대에는 최고
철인이 못되었어. 마누라도 못되먹었지만 그도 술이 고래였고 학문적
성취도 최상급은 아니었지. 그런데 그 제자에 플라톤이 있었잖아.
플라톤이 죽은 스승을 그렇게 위대하게 만든거야. 자넨 뭐야.
억울한 영혼을 잠자리나 나비로만 만들고 말거야?
비겁하게 친구들에게 금오신화 비슷한 이야기나 질질짜고 말거야?
언론에도 알리고 검찰에도 탄원하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한번 미스 조의
행방을 찾아봐야지---."

그러나 나는 이 세상에 나와서 미스조처럼 나와 동종의 페로몬을
공유한 개체와 만났던 석달 열흘이 있어서 현생에서의 실패한 인생이
억울하지만은 않았다.

이제 미국으로 들어간 아내와는 다시 배를 맞대고 만나서 살 일은
없을듯 하였다.
때가되어 언젠가 내가 이승에서 사라지면 팔년동안 땅 속에 있다가
마침내 잠자리가 되어 미스 조와 허공 중에 만나서 페로몬을
더덤이로 주고받으며 너울너울 춤이나 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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