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대설 주의보

원평재 2011. 2. 13. 23:06

그해 마지막 휴가병 열차를 탔을 때에는
첫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제대를 앞두고 갑작스런 특별 휴가를 얻은 것은 행운이었으나
고향 D시로 한시 바삐 가고자 하는 열망은 서울에서의 이런저런 일들을 버려야했었다.

춘천에서 청량리로, 이어서 용산역 TMO로 달려가야하는 초 스피드 작전이었다.
아마도 그때 인기 있었던 독일작가 하인리히 뵐의
"휴가병 열차"를 흉내내고 싶은 청년장교의 욕망도 작용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없다.
서울에서의 일이란 서양화를 하는 처녀 M에게
전화 한통 못하고 내려가는 딱한 일이었다.
특히 그녀는 졸업미전을 준비한다면서
김소위님의 큰 도움을 바란다는 편지를 보낸 처지였다.

돈 문제인가?
지방에서 개업한 변호사이지만
부친이 100호 짜리 졸업미전 작품의 캔바스와 안료를 못댈 이유도 없을텐데---.

새벽에 D시에 내렸을 때는 눈발이 제법 굵어있었다.
이날 오후 나는 친구와 큰 눈을 그냥 맞으며 도심의 대로를 걷다가,
친구는 먼저 들어가고 나만 대책없는 눈길 행진을 하고 있었다.

"어? 이게 누구야?"
대설 주의보가 내린 폭설 속에
서울에서 한참 100호와 싸워야할 M이
함박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게 아닌가.
그 옆에는 여자 친구가 함께 있었다.
M의 고향이 가까운 경주였었지---, 생각이 미쳤다.

친구가 사라졌어도 우리는 말없이 눈발을 헤치며 걸을 따름이었다.
두 사람의 마음은 "이건 바로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아닌가---",
거의 확신 쪽으로 진전되고 있었다.
손목이나 잡았을까---,
이 날카로운 인상의 미학도는 긍정과 확신의 고개는 끄덕였으나
둘은 끝내 "닥터 지바고와 라라의 품새"는 흉내내지 못하고 헤어졌다.
김소위가 그 학교 "휴웃길" 위에 있는 전시장에서
대형의 100호 추상화를 관람하고
미로 같은 그 학교 정문 앞에서 이상한 양식을 함께든 것은
상식의 코스였으나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무슨 이유였을까?
아무 연락 없이 돌아다니는 상대방에게서 서로 배신감을 느꼈는가?
그 미묘한 감정의 변환은 내내 해석이 불가능했다.

그후 오랬동안 국화가 피는 계절이 되면
"국전 입상자"난을 보는 것이 나의 습관이 되었다.
동명이인인가, 흔한 이름은 많았으나 특선 소개에는 끼이지 못하였다.

어느해 가을, 덕수궁 미술관 앞을 지나다가
거대한 낙선 작품들을 둘러메고 나가는 낙선 미술가들을 석양에 보았다.
같은 처지의 "세잔느"가 생각났다.
그리고 무릅을 쳤다.
큰 도움의 요청은 어쩌면 100호 짜리 캔바스를 운반하는데
청년장교가 한번 힘을 써 달라는 요청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런 실수를 했고
이 미술학도는 대한 극장에 구경갔다가 시간이 남아서 들어간 커피 숍에서
롱 코트로 탁자 위의 찻잔들을 모두 둘러엎었다.

"대설 주의보"도 이런 하찮은 실수를 봉합치는 못하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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