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단편 소설) 독도 후기

원평재 2016. 2. 22. 17:56

(단편 소설) 독도 후기

                                                                                                                    김 유 조

 

비바람이 세찼다. 너울 속 파도도 높았다.

그런 속에서도 강철선은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며 달렸다. 멀리 희미한 덩어리가 짙은 물안개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나타내었다.

가부좌를 틀고 있는 두 불상의 모습이 저러할까, 망망대해에서 만난 두 섬에서 구원의 종교심이

그의 가슴에 문득 솟아올랐다. 예전 이 근처에서 난파되거나 방향을 잃은 뱃사람들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하지만 거친 파도 속에서 배를 대지도 못하고 다시 표류를 할 때에는 저 돌섬들이 얼마나

매정하게 느껴졌을까,

세상살이의 거친 풍파를 헤쳐 나온 사람답게 그의 마음에 만감이 교차하였다.

그래도 독도는 우리나라의 피붙이 같은 것이니까---. 그는 높은 파도와 비바람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웅혼한 섬의 자태에서 엄친의 정 같은 것을 문득 느끼며 자위하였다.

예보에 따르면 해 뜨는 광경을 보기는 글렀지만 하여간 일출 시간대에 기상 신호는 보내드리겠다

는 담당 장교의 전날 저녁 말대로 새벽 네 시 반경, 그는 수선스러운 소리에 잠이 깨었다.

얕은 잠 속에서도 기상 신호 자체는 분간하지 못했으나 사층으로 된 벙커 침대의 중간층에서

얼떨떨한 상태로 그는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저녁 늦게까지 술렁이며 뒤채이던 100여명 소설가들은 벌써 상당수가 병사들의 안내로 함교 쪽

난간을 올라가고 있었다.

아니 소설가들만은 아니고 수필가들까지 참여하여 혼성된 독도 탐방 문인들이었다. 폭이 좁은 

철제 계단은 보기보다 거칠지 않은 품새로 자상하게 발걸음들을 받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해지를 열고 밖으로 몸을 내밀자마자 비바람은 그런 아기자기한 느낌들을 단박에 박살

내겠다는 듯 사람들의 몸을 뒤흔들었다.


일출보기는 사치스런 꿈이 되었지만 독도에 발을 딛는 정도라도 성취하고 싶었던 문인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옷 속까지 파고드는 폭우의 위력 앞에 이내 낭패하였다.

감성 반응의 강도차이일까 그들 중 절반가량은 금방 피신이라도 하듯 아래쪽으로 급히

사라졌으나 나머지 절반가량은 어쨌든 상갑판 위의 구조물들을 붙들고 비바람을 감내하였다.

남아있는 사람들 속에 포함된 그는 쉽게 포기하고 내려간 사람들이 전에 이미 독도와 인연을

맺었으려니 생각을 고쳐 짐작해보았다.

"아이참, 생애 네 번째나 독도 입도에 실패하네. 비바람 사진이라도 찍어가야겠어요."

누가 외친 비명 같은 말이 그에게는 잠시 위로가 되었다. 모두 전날 나누어준 하얀 비닐 우의를

쓰고 있어서 사람 분간은 물론 성별 분간도 힘들었지만 비바람을 뚫는 음정으로 미루어 보면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류 쪽 같았다.

"세탁물 싸주는 투명 폴리 백 같구나."

그는 어제 우의를 받으며 생각하였었다. 세탁소를 하는 뉴저지의 엘리자베스 항에서 그는 한때 

드럼을 가게의 지하에서 직접 돌리며 꽤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부유했던 항구 도시가 히스패닉 동네로 바뀌면서 사정은 급히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유태인 중심의 부유한 백인들이 빠져나가며 고급 세탁물이 들어오지 않았고 거기 더하여

히스패닉 세탁소가 문을 열자 값이 반 토막이 되더니 자기들 말이 잘 통하는 그쪽으로 주민들은

몰려갔다.

궁여지책으로 변신을 하여 코인 숍, 그러니까 동전을 넣고 돌리는 기계 세탁소를 꾸려보았으나

중고 기계를 사다가 넣은 탓인지 고장이 잦았고 그는 손재주가 없었다.

마침내 세탁물을 받아서 큰 공장으로 보내는 드롭 숍으로 방식을 바꾸고 옷 수선까지 부업으로

열었으나 수입은 쥐꼬리만 하였고 아내가 병을 얻었다.

지하에서 드럼을 돌리던 때의 화학물질 후유증인지 기침이 잦더니 병원에 갔을 때는 폐에 중병이

4기까지 갔다는 진단이었다.

지하실에서 드럼 돌린 시간이야 남자인 그가 훨씬 더 길었는데도 죄책감이 그를 짓눌렀다.

인생의 종반, 자기는 짬짬이 써둔 단편으로 동부 미주 신문을 통하여 등단이나마 하였으니

세탁물에서 휘날리는 먼지까지 가득 섞인 이 풍진 세상에 그럭저럭 이름 석 자는 남기게

되었달까.

병석에 누운 아내는 고생만 하다가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는 셈이 아니겠는가.

아,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아들 하나는 미대를 나와서 전위 미술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 비록

생계는 맨해튼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근처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며 해결하는 스트리트

아티스트이긴 하지만 어머니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스트 빌리지의 한 칸짜리 스튜디오를 얻어서

독립적으로 사는 아들의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리라. 언젠가는 브룩클린 다리를 건너가서 작은

갤러리를 여는 게 아들 빌리의 꿈이었다.

 

아니, 그런 간접적인 것 말고 직접적인 꿈의 성취로 생각해 보아도 아내가 일직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사실을 따지자면 교육대학을 다닐 때에 그가 좋아하고 서로 사랑한

여자 동기생은 따로 하나 있었다.

이름은 이명원이었다. 그녀는 그림을 기가 막히게 잘 그렸다. 하지만 그와 이명원, 두 사람의 꿈은

그저 훌륭한 교사가 되어서 아이들을 길러내고 혹시 기회가 닿으면 교감과  교장이라는 직책도 

교직의 끝마무리 꿈으로 간직하는 정도였다.

그 소박한 꿈을 비집고 들어온 여자 동기생이 지금의 아내 강은혜였다. 그녀는 끝내 육탄 공격

이랄까 하여간 그 비슷한 상황까지 몰고 가서 그를 차지하였다.

어쩌면 아들 빌리를 그림으로 몰고 간 밑바탕에도 그녀의 그런 비집고 드는 복심이 숨어있지나

않았는지, 간혹 그는 생각하였다.

아무튼 교대시절, 그들 학년 중의 최고 퀸카는 트리오 삼총사였다. 정진주, 이명원. 은정자

세 사람은 학교 성적도 좋았고 예능에도 모두 한가락이 있었다.

정진주는 노래, 은정자는 시. 이명원은 그림이었다. 그의 지금 아내 강은혜는 대략 이류, 아니

삼류일지도 몰랐다.

남학생 중에서는 그가 가장 성적이 좋았고 키도 크고 동기들의 말을 빌리자면 킹카라고들 하였다.

또 다른 킹카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제대병장 복학생으로 입학 동기들과는 다소 거리를 둔 속내

깊은 멋장이였다.

그들은 무시로 모여서 무언가를 도모할 기세도 한동안 보였다. 교대신문 제작과 문예 동아리 같은

것이 그러하였다. 하지만 강은혜의 질시와 "육탄"의 등장으로 학창의 순수 로망은 깨어졌고

길게만 보였던 대학생활도 금방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이른 결혼, 이른 출산, 그리고 마침내는 아내의 종용으로 미국 이민까지 와버렸으니 크게

미안할 일도 없었고 아내도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였다고 발을 구르거나 슬퍼할 처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게 어찌 그런 계산법으로만 따져질 건가.

그는 병든 아내에게 내내 미안한 생각뿐이었다.

심지어 비바람 몰아치는 날 이렇게 상갑판에 올라서도 그는 아내에게 공연히  미안한 생각만

앞섰다. 이 새로운 체험의 장소에도 혼자 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기에 온 것은 그가 억지로 만든 기회가 아니었고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었으나 그게 자기

혼자만 운이 좋아서 누리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할 따름이었다.

운이 좋았다는 것도 무슨 대단한 계제는 아니었다. 마침 문중에 벌어진 여러 친척들의 상속

다툼이 있어서 잠시 귀국 체류 중에 소설가 협회로부터 메일이 왔고 연락을 취하였더니 마지막

추가 인원을 받는다는 말에 금방 응답을 한 결과였다.


떠나온 조국 땅, 그 중에서도 독도를 밟아본다는 역사적인 기대감, 거기 더하여 직접 대면으로는

단 한사람의 소설가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백 여 명의 대한민국 소설가들을 한꺼번에 만난다는

사실 등으로 벅찬 기분에 잠긴 그는 출발 전날에는 체류하던 사촌 집에서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하였다.

그런 기대로 찾은 독도와 울릉도였는데 비바람이라니, 그런 악천후 속에서는 다들 경황이 없어서

인지 사진 한 장 같이 찍을 소설가도 찾기 힘들었다.

“네 번째 실패”라고 누가 지른 비명으로 잠시 위안을 삼으며 그는 사진 몇 장을 셀카로 혼자 찍은

다음 난간을 조심스레 부여잡고 아래쪽 차량갑판이라고 부르는 넒은 광장으로 내려왔다.

전시라면 상륙용 탱크와 야포, 200여명 가량의 병사들이 사선을 뚫고 튀어나갈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소설가 협회의 독도탐방과 문학 세미나를 알리는 현수막이 조금 맥이 빠지게

걸려있고 백여 개의 접이식 의자만 덩그렇게 자리를 지켜서 전날 밤의 활기를 역설적으로 반추

시킬 따름이었다.

돌이켜보면 전날 밤에는 소설가와 평론가들이 대표발제를 하고 소설가들의 활발한 질의와 응답,

이어서 탱크를 올리고 내리는 엘리베이터 무대에서는 해군 홍보단 병사들이 마술과 노래 등으로

또 다른 열기를 띄어주기도 했었다.

 

그는 벙커 침낭으로 다시 올라가봐야 이야기할 상대도 별로 없으리라 체념하며 그냥 불편한

의자에 잠시 앉아있기로 작정을 하였다.

그런데 무료함이 막 찾아올 즈음, 길이로 한 백 미터쯤, 가로로는 이십 미터쯤 되는 차량갑판

공간을 쉬지 않고 도는 어떤 남자를 의식할 수 있었다.

검은 뿔테안경이 나이 짐작을 방해하긴 하여도 아무래도 초로에는 깊숙이 들어선 듯, 그러나

노인이라는 표현은 감히 붙이기 어려운 그런 중간키의 남자, 소설가 혹은 수필가의 타이틀이

붙어야할 사람이었다.

하여간 고국의 변한 모습 중에는 나이 짐작의 혼돈 같은 것도 뺄 수 없었는데 그 실증적 광경이

다시 눈앞에 전개되어 있었다. 그래, 젊은 노인이라고 부르자.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힘차게

발길을 내닿는 그 동선의 궤적에 다시 시선을 모았다. 젊은 노인은 손에 책을 하나 쥐고 굳세게

걷고 있었다.

"아차, 그런 게 있었지,"

산책자가 손에 든 책을 보며 그는 각자 작품집을 한권씩  갖고 오기 바란다는 협회 공문 생각이

문득 났다. 그도 동인지는 한두 권 있었지만 자신만의 출판물은 없었고 더욱이 짧은 귀국길에

무슨 책이랴. 빈손으로 승함을 하며 빚진 기분이 없지는 않았었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책을 사줄 도네이션이라도 하라면 돈은 조금 낼 텐데, 그러나 물론 돈으로

때우자는 생각은 아니고, 등등의 자격지심이 있어서 책은 더 크게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접이식 의자에서 얼른 일어나 그 점잖게 보이는 젊은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어찌 보면

노인이 쥐고 배안을 뱅뱅 도는 그 책이 그를 불렀다고도 하겠지만 사실은 무언가 분위기 전체가

그 두 사람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어떤 영기 같은 것이 처음부터 그 공간에는 존재하는 듯,

신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선생님, 책은 언제 거두나요? 책을 안 갖고 온 사람은 어떻게 되나요? 돈을 좀 내면 되지

않을까요?"

그는 질문을 하면서도 자신이 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책을 안 갖고 승함하였어요? 그런 분들은 곧 하선, 아니 여기 말로는 퇴함을 시킨답니다."

"네?"

그가 깜짝 놀라서 다시 더욱 바보 같은 표정으로 젊은 노인을 쳐다보았다.

"하하하. 이거 초면에 실례되는 농담을 했나보네요. 몇 시간 후에는 모두 울릉도로 하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책을 제출하건 말건 관계없이, 하하하"

그가 또 웃었다. 무슨 비웃음 같은 게 아니라 천진난만한 웃음소리였다. 

"제가 어리버리, 유머도 못 알아챘습니다."

그는 또 어리숙 하게 변명을 하였다. 약삭빠른 태도보다는 이실직고, 있는 그대로가 최선의

정책이 아니던가.

"어리버리라니요. 천부당만부당이고요. 제 이름은 선우일이라고 합니다. 혹시 들어보셨어요?"

그는 또 당황해지고야 말았다. 

"솔직히 기억에 없습니다. 아니 그보다 읽은 적은 있는 듯도 합니다. 선 선생님의 존함을,"

"제 성은 선이 아니고 선우, 그러니까 선우 선생이라고 부르시던지, 아니 뭐 우일 씨라고 불러도

상관이 없어요. 하하하."

그가 또 사람 좋게 웃었다. 하지만 짙은 눈썹, 도수 높은 뿔테 안경 속에서 안광이 번쩍이는

기세는 이 양반이  보통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다듬게 했다. 

"제 이름은 김진우라고 합니다. 흔한 이름이지요."

그가 쭈뼛거리며 자기소개를 하였다. 

"김 선생 이름, 아니 이름뿐만 아니라 김 선생을 내가 좀 알아요. 영구 귀국을 한 건 아니지요?"

"네에? 저같이 이름도 없는 사람을 어떻게?"

김진우의 당황스러운 말에 대꾸는 않고 선우일 소설가는 같은 보폭으로 걸음을 계속하였다.

그도 대책 없이 보조를 맞추어 따라갔다.

"내가 골프를 매일 치다가 여기 갇히니 소화도 안 되고, 그래서 습관대로 걷기를 합니다. 양해

하시기를---."

한참 만에 그가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 골프를 친다는 건 무슨 과시적인 효과를 노릴 때나 하는

소리라는 고향 사촌 형 말이 생각났으나 선우 작가의 말에 그런 티가 들어있지는 않았다.

"제주도에 몇 십 년 전에 땅을 조금 사둔 게 있는데 그 땅 쪽으로 골프장 정문이 나며 내 집 앞을 

조금 건드리게 되어서 평생 공짜 비슷하게 공을 치게 되었어요. 내가 땅을 팔 리도 없고 하니.

하하하."

선우 작가가 시원하게 또 웃었다. 

"이런 골프 이야기, 미국 사람에게는 우습게 들리지요?"

"아닙니다. 저도 지역의 퍼블릭 뿐만 아니라 프라이빗 골프 멤버십도 하나 있지만 아내가 아픈

이후 거의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골프나 치고 살면 신선노름이지요 뭐."

"부인이 편찮으세요? 아, 다들 모르고 있나보네."

"누가요?"

"동기들, 명원, 진주, 정자, 기억나시지요?"

"은정자,  정진주, 이명원 말인가요? 아, 바로 그 선우일 선생님, 그러고 보니 정자의, 아니 죄송

합니다, 은정자 씨의 부군이 틀림없으시군요. 제가 이렇게 바보가 되었네요. 학원 문학상을

받으신 선배로 은정자와 인연이 되신 일, 마침내 결혼으로 골인하셨다는 후문도 이제 희미하나마

기억이 납니다."

"정자는 하정이 되었고 명원은 자운이 되었지요. 진주는 주하가 되더니 요즘은 그냥 펄이라고

하나 봅니다. 사모님은 강은혜 선생님?"

"네, 마누라 이름은 강은혜입니다. 고맙습니다만 어떻게 잊지도 않으시고?"

"아, 며칠 전 남산의 소설가 협회에 다른 일로 들렀다가 김 선생이 참여한다는 걸 발견하고는 집에

가서 마누라로 부터 학창의 롱 스토리를 다시 한 번 들었지요."

"부끄러운 전말입니다. 그런데 흔한 이름인데 어떻게 제가 올 줄로?"

"미주에서 추가된 분들 이름을 따로 모았더군요. 생년월일과 함께. 그래도 약간 긴가 민가는

했지요. 사시는 곳이?"

"뉴저지의 항구도시 엘리자베스 입니다. 엘리자베스 사람들의 옷은 깨끗이 제가 건사하지만 

대서양을 더럽힌다는 오명 속에서 먹고 삽니다. 하하하."

그가 자신의 직업까지 이실직고했지만 선우 작가는 따라서 웃지 않고 그 부분을 슬쩍 넘겼다.

다른 소스로 어쩌면 그런 것은 이미 다 아는 듯싶었다. 다만 가장 최근 소식, 마누라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은 아직 전달이 안 되었구나, 그의 생각이었다.

"다들 잘 지내시겠지요?"

그가 두루뭉수리로 물었지만 명원의 소식이 제일 궁금하였다.

"아, 잘 나가지요. 제 마누라는 집에서 매일 잘 나가고, 펄 그러니까 진주 씨에 대해서는 여기 오늘

제출하려는 내 소설집에 조금 극화해서 올린 게 있고, 명원 씨는 호주에서 꽤 이름난 화가로 잘

나가고 있지요." 

그가 다소 유머러스하게 현황을 내비쳤다.

 "명원이는 원래 그림을 잘 그렸는데 결국 대성을 했군요."

그가 선우 작가에게 별 내색 않고 물어보았다.

"네, 아주 잘 나가지요."

선우 소설가가 개인의 사생활은 피해 간다는 듯 좋은 말만하여서 그의 궁금증이 다소간 차단은

되었다. 그는 의례적인 데에서 빠져나와 궁금한 현실을 건드려 보기로 하였다.

"명원이의 초기 사정은 풍편에 듣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남편이 돌아가셨다는---. 다만 그 이후

부터는 교대 동기생들 모두의 소식에 제가 완전 깜깜입니다. 제 마누라가 저와 조기 결혼, 조기

이민, 뭐 그렇게 되면서 주위와는 완전히 단절을 하였기에 저도 동기들과 소식 돈절이지요."

"아, 김 선생께서도 삼총사의 졸업 후 초기 사정을 좀 아시는군요. 부군이 그렇게 돌아가시고 나서 

명원 씨, 그러니까 자운 화백은 한동안 심리적 타격이 컸지만 곧 회복이 되어서 화가로 입신을

했달까요. 자녀들로는 남매를 잘 키웠습니다. 제 마누라하고 펄하고 자운하고 워낙 삼총사

아닙니까, 자운의 작품은 저도 두어 점 갖고 있답니다."

화가가 되었다는 자운 혹은 명원에 관하여 김진우가 알고 있다는 초기 소식이란 그녀의 남편이

무슨 해양사고랄까, 시드니 앞 바다의 바다낚시 같은 데에서 잘못되어 목숨을 잃었다는 비극적

뉴스였다. 

그녀도 자기들처럼 일찍이 이민을 떠났다는 소식까지 그는 들어 알고 있었다. 물론 일반적인

이민의 물결이 오래전 이 나라의 풍조였지만 그녀의 행로에는 김진우 자신의 아내, 강은혜의

“공로”가 적지 않았으리라, 그는 탄식한 적도 있었다.

그의 아내 강은혜는 삼총사의 대열 같은 데에는 끼이지 못할 학창시절의 위상이었는데 어느 때

부턴가 그를 좋아하기 시작하더니 교생 실습을 같은 초등학교에 나가면서 그와 염문 비슷한

풍문을 주위에 교묘하게 띄었다.

일이 꼬이느라고 삼총사와 그는 교생 실습학교가 달랐다. 반면에 같은 초등학교로 배치가 된

강은혜와는 대표수업 관계로 깊이 의논도하고 보고서를 쓸 일 등, 함께 할 과제들이 많았다.

어느 날 저녁을 먹으며 강은혜는 술을 과음하였고 그가 부축하여서 가까운 모텔로 들어가는

모양을 학생들이 보면서 일이 터져버린 것이다. 그녀는 둘이 결혼할 사이이고 이미 정혼도

하였다는 식으로 해법을 내세워서 두 사람은 졸업도 하기 전에 결혼식을 올리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선우 선생님, 제가 선생님 작품을 좀 읽어봐도 될까요? 당장 책을 제출해야 되는 건 아니시지요?"

"아이구 뭐 배를 내리기 전까지만 내면 되겠지요. 그 보다는 좀 민망하군요. 졸작이라서---.

일종의 팩션이랄까, 팩트와 픽션이 가감된 이야기인데 하긴 지난날에 관한 오리엔테이션으로 김

선생의 입장에서는 한번 읽어보셔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선우작가는 그에게 좀 오래되어 낡은 동인 소설집을 건네주고는 휭 하니 자신의 걸음걸이를 재촉

하였다. 순간 배가 조금 흔들리는 듯도 하였다. 아니 그의 마음이 좀 일렁 거린지도 몰랐다.

그는 접이식 의자 하나를 새로 펴서 길게 앉으며 소설 동인지 목차 중에서도 선우일 이라는

이름을 먼저 찾아내었다.

단편의 이름은 “울릉군 독도리”였다. 책은 좀 구겨져있었고 배도 흔들려서 그는 정독 보다는

속독을 하였고 때로는 한 단원을 빠뜨리며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도 하였다.

 

  

울릉읍 독도리

 

정진주는 “섬”이라면 치를 떨었다. 결코 가서는 안 된다는 의식과 주장이 얼마나 강했냐하면

교사로서 학생들을 데리고 가야하는 수학여행도 섬이라면 인솔 책임을 회피하고 결근이었다.

돌이켜보면 대학 때의 수학여행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 셈이었다.

남쪽의 항구 도시에서 교육대학을 나온 그녀는 지금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영어전담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물론 함께 나온 동기들은 대체로 고향인 남해안 근방에서 교직에 종사하고 있다.

제주도 졸업여행은 그 동기들과 부산에서 배를 타고 떠났었다. 재학 중에 군대를 갔다 온 세살

위의 남학생 강민경도 일행 중에는 있었다.

 

아, 이건 명원이와 가까운 진주이야기---, 김진우는 학창 때를 떠올리며 급히 읽어 내려갔다.

급한 마음에 한 두 단락이 빠지는 줄도 모르고 그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세상에는 팔자와 궁합이 있는지 군대를 갔다 온 강민경이 정진주와 복학을 하여 한 클래스가

되자 두 사람 사이에는 급속도로 감정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그는 결국 졸업하던

해에 이 세상을 떠났다.

사실 민경과 진주 간에 사랑의 감정이 무르익으면서 그는 그녀의 몸을 줄기차게 요구하였다.

면경이며 거울 같은 존재인 자기에게는 몸을 다 보여주고 또 허락하여야 한다는 소리를 그는

입에 달았다.

그녀는 그의 요구를 완강히 거절하였다. 다만 깊은 키스와 헤비 페팅만이 허용범주였다. 정념과

금제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는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되더니 갑자기 그는 그녀의 몸을 요구하지 않고

키스와 페팅도 멀리하였다.

강민경으로 인하여 깊은 키스와 짙은 페팅의 즐거움에 조련된 그녀는 가끔 몸이 달아올랐다.

그녀는 여러 달 그런 갈망의 신호를 체면 유지의 수준에서 계속 보냈으나 그는 안면을 싹 바꾸고

꿈도 꾸지 말라는 태도를 보였다.

마침내 그녀도 졸업학년의 가을이 올 때 쯤 부터는 독이 올라서 생각을 고쳐먹기 시작하였다.

우선 가슴이 조금 보이던 투피스 상의를 터틀넥으로 바꾸고 하의 쪽으로는 통짜 칠 부 내의에 꼭

끼는 거들을 하나 더 걸친 다음, 스커트 대신에 바지만 입기 시작하였다. 뜨겁게 즐거웠던 그와의

지난 기억을 마모시키고 혹시 있을 앞날의 급작스런 정념의 기회에도 재갈을 물리기 위함이었다.

갑옷에 정조대까지 찬 이 패션은 서릿발 같은 복수심의 발로였다. 그리고는 집에서 말하는 부자

집 청년들과 선도 보기 시작하였다.

 그때만 해도 졸업학년 때에 떠나던 수학여행에서도 그녀의 전투적 방어 복장은 마찬가지였다.

객지에서 혹시 그가 벌일 만일의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거들과 바지는 그녀 자신이 입고 벗기에도

힘이 드는, 꼭 끼는 것으로 골라 입었다. 난공불락!

한때 머리에 쥐가 나도록 즐거움을 깨우쳐 주고는 이윽고 유기해버린 자에 대한 응징이라는

결심도 다시 가슴깊이 새겼다. 동기들 간에는 그가 무슨 몹쓸 성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오빠, 소문이 좋지 않아. 정말 그런 건 아니겠지?"

"나 성병 걸렸다는 소문? 이 자슥들이 내가 요즈음 술을 묵지 않으려니까 악담으로 뒤담화를 까네.

하긴 내가 그런 병에 걸렸다면 그건 전적으로 옷 안 벗은 정진주, 니 채금이다."

"세상에! 말하는 폼이 벌써 불결하고 더러워. 나 다른 데 시집 가 버릴까봐. 그동안 여럿 남자와

맞선을 보다가 하나 잡았어."

"그기 정말이가?"

"그럼, 아주 멋지고 깨끗한 청년이야."

그녀의 말이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은 그래도 그에 대한 일말의 미련은 남아서

이런 수준의 공갈 협박성 대화도 있었다. 그런데 수학여행을 떠난 바로 그날 뱃전에서 그는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대로 바다에 몸을 던져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성병 때문일끼다. 그기 많이 아프기도 하거든---."

학생대표가 경험자의 유식함을 뽐내는 가운데 여행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모두들 제주항에

발을 딛자마자 다시 배를 갈아타고 되돌아올 운명이었다.

인솔 교수의 얼굴은 반나절 만에 새카맣게 탔다. 그 와중에 그가 몸을 던진 이유들이 근거 없이

불거져 나왔으나 큰 이유의 하나가 정진주 때문이리라고는 아무도 짐작조차 못했다. 그의 입이

그렇게 무거웠었다.

애통하는 속에서 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찾을 생각은 접었다. 망망대해는 차라리 포기를 빨리

하기에 도움이 되었다.

‘워낙 입이 무거워 뜨지 않는가 보다’라는 친구들의 허탄한 농담처럼, 며칠이 지나도 그는 결코

떠오르지 않고 깊이 심해로 침잠하고 말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편을 잡으면서도 그녀는 그냥 독신으로 지냈다. 강민경이 살아있을 때에

그녀가 공갈을 친 대로 ‘깨끗한 청년들’은 주위에 많이 나타났으나 거들 떠 보지도 않고 그녀는

독신을 고집하였다.

그러다가 마침 유행처럼 불기 시작한 초등학교의 조기 영어 교육 바람을 타고 ‘테슬(TESOL)’,

그러니까 ‘영어 학습 교육학’의 박사과정을 밟으러 그녀는 미국으로 갔다. 교육부에서 장학금을

일부 지원하고 휴직 상태를 인정해주는 좋은 조건의 파견교사 시험에 합격을 한 것이다.

 

배가 다시 일렁거리면서 김진우는 단편의 상당한 부분을 스킵하며 넘겼다.

진주는 테슬 과정으로 학위를 하며 자메이카 섬 출신의 젊은 학자와 결혼을 하고 금방 이혼을

하고 있었다. 귀국 후 의무 복무 기간 동안에 그녀는 서울로 올라와서 교육부 산하의 영어 조기

교육 연구원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칠년 연하의 영어교육 연구원과 근무를 하면서 끊임없이

구애를 받았다. 젊은 연구원의 이름은 박준수라고 하였다. 연상의 이혼녀 정진주에 대한

그의 갈망은 순수 그 자체였다는 반증들이 단편 속 곳곳에 묘사되어 있었으나 김진우는 빨리

책장을 넘겼다.

정진주는 연구원 박준수의 권유로 마지못해 “독사모”에 들게 되었다. 독도를 사랑하는 모임

이었다. 그녀를 독사모에 가입시킨 박준수는 이어 독도에 관한 여러 종류의 학술 대회와

세미나에 그녀를 이끌고 갔다. 예컨대 한국 영토학회니 독도학회니 하는 데에서 벌이는

‘학술 대토론회’ 같은 것이 그것이었다.

 

배가 다시 일렁이고 몇 페이지가 그냥 넘어갔다.

 

"정 선배, 내가 활동하고 있는 자연보호 중앙회에서 독도 탐방을 가는데 거기 함께 가 봅시다.

삼일간의 여정이니 우리 연구원에는 금요일 하루 월차를 내고 다녀오자고요."

"난 섬에는 안 간다니까. 알잖아."

"기회가 좋아요. 그리고 '자연보호 사람보호', 캐취 프레이즈가 또 마음에 들잖아요. 이제는 자연

보호와 환경문제 같은 데에도 다양하게 관심을 쏟으면서 과거의 미망으로부터 해방 되셔야 해요.

갑시다."

박준수가 떼를 쓰듯이 밀어부쳤다.

"섬이라면 난 아주 죽어버릴 것 같아---."

그런 다음 날부터 사흘간 그녀는 몸살을 몹시 앓았으나 결국 박준수를 따라서 자연보호 독도탐방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배가 또 조금 흔들려서 김진우는 다시 몇 페이지 가량을 건너뛰고 읽기를 계속하였다.

 

다음날 오후 정진주와 박준수는 일행과 함께 독도 탐방의 물길에 올랐다. 잔잔한 바다 위를

쾌속정은 단숨에 달려서 두 시간 만에 그들을 독도에 쏟아놓았다. 박준수는 정진주의 손을 꼭

잡고 이곳저곳을 안내하며 보살폈다. 입도 후에 주어진 시간은 단 이십분이었다.

벌써 세 번째 이곳에 왔다는 박준수는 이것저것 열심히 정진주에게 설명을 해주면서 조금이라도

더 바다 쪽으로 나가서 맨 땅과 자갈과 모래를 그녀가 직접 밟게 해주려고 애를 썼다. 그들이

내린 '동도' 쪽은 독도 주민부부가 사는 '서도' 보다는 조금 더 넓었고 접안시설도 더 잘 되어

있었으나 손바닥만 한 상륙구역을 제하면 더 이상의 진입은 차단되어 있었다.

그런데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있는 그쪽 멀리 바다와 면한 낮은 위치에 비석 같은 물체가

두어군데 서있는 것이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정진주는 디지털 카메라의 모니터를 주시하며 줌 장치를 최대로 당겨보았다. 그 망부석 같은

두어 개 물체는 과연 비석들이었다. 하나는 제법 갓머리도 쓴 괜찮은 비석 같았고 또 하나는

그런 것도 없이 온몸이 풍상에 씻긴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모니터에 어른거렸다.

그녀는 강민경이 죽은 후 얼마 후에 났던 신문기사를 잊지 않고 떠올렸다. “독도에 흘러들어간

이름없는 유구” 대략 제목이 그러했던 기억이 났다.

 

"김 선생, 부끄러운 내 작품에 너무 몰두하는 건 아닙니까?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어요?"

김진우가 한참 선우일 작가의 단편에 몰입하여 있는데 문득 들려온 소리였다.

"네, 이제 두 분이 울릉도는 일주를 하였고 막 독도에 상륙하였습니다. 선착장이 있는 동도,

그러니까 새 우편 주소로는 “이사부 길”에 들어섰군요."

"아이구, 진도가 많이 나갔군요. 그나마 독도에 간접 상륙하여서 축하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이 LST 상륙선은 독도만 물 건너간 게 아니라 울릉도에도 입도하지 못한다는 소식이 방금

들어왔네요. 원래 이 상륙함은 들어가기 힘들어서 LCVP라나 작은 주정을 띄울 작전도 생각한

모양인데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타기에는 매우 위험해서 결국 취소를 했답니다."

"네에? 이거 참 억울해서 어떻게 하지요?"

"상갑판으로 올라가서 또 사진이라도 찍어야겠지요?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도

하잖아요."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난간을 잡고 다시 위로 올라갔다. 비바람은 세찼지만 울릉도는

자신의 파란 속살을 운무 속에서도 다 드러내 보여주었다.

하지만 김진우의 관심은 이제 눈앞의 울릉도에 있지 않고 읽다가 접어놓은 단편 쪽에 있었다.

선우일 작가를 다른 일행들과의 담소 속에 남겨놓고 김진우는 얼른 밑으로 내려와서 페이지를

열었다.

 

"박 선생, 저 비석이 무언지 저기 젊은 해경에게 좀 물어봐요."

그녀가 급할 때면 찾는 사람이 박준수였다.

"아, 저기 비석들은 광복 직후에 미군의 오폭으로 희생된 우리 어부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비석

이지요."

젊은 해경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럼 저 왼쪽의 밋밋한 비석은요?"

정진주가 무언가 답답한 마음으로 디카에서 눈을 떼지 않고 해경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아,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만 여기를 지키다가 이곳에서 돌아가신 여러분들을 위무하는 복합적인

비석일 것입니다. 저도 여기 배치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만---."

"그럼 옛날에 여기에 표류해 온 우리나라 사람의 유구 같은 것을 장사지내고 묘지를 쓴 경우는

없었나요?"

"유구가 뭔가요?"

해경이 조금 짜증을 내며 물어보았다.

"아, 해류에 떠내려 온 시체 말입니다."

그녀는 아주 쉽게 설명을 해주었다.

"아, 네,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여기가 우리나라 땅이니까 신원미상이나마 우리나라 사람 같은

시체라도 떠내려 오면 옳다하고 여기에 매장을 하고 기록을 남겼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듯해요.

모두다 국제 관계 때문이라지요, 아마. 잘은 모르지만---."

해경이 친절하게 추측까지 곁들여서 설명을 해 주었다.

"아이구, 엄마야!"

디지털 카메라의 줌을 최대로 당겨서 눈을 모니터에 고정시키고 해경의 설명을 경청하던

정진주는 그만 시멘트 둑에서 바다 쪽 자갈 해변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떨어지면서도

그녀는 카메라를 품에 꼭 안고 구르느라 온 몸에 심한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었다.

생명 까지는 몰라도 골병이 들 정도의 부상이었다. 몹시 아픈 쪽은 어깨와 가슴이었으며 팔과

무릎에서는 붉은 피가 철철 흐를 지경이었다.

 갑자기 작은 소동이 일어났지만 배에는 응급실이 있어서 간호사가 우선 과산화수소로 소독부터

하고 지혈 조치를 취한 다음 설파제에 항생연고까지 듬뿍 뿌리고 발랐다. 간호사는 뼈가

부러지거나 탈골된 징후는 없다고 진단을 해주어서 그나마 다행이었고 정진주도 아픈 마음이

다소 진정되는 듯싶었다.

"웬일이야, 자연보호는 나 혼자 다 한 것 같고 부끄럽고 창피해---."

그녀는 아픈 중에도 민망한 표정을 지었으나 독도에 입도하면서 그녀가 처음부터 품었던 어떤

참혹한 기억과 기분은 오히려 많이 여과되고 세척되어 있었다.

"그 남자, 아니 그분이라고 해야 하나요, 하여간 정 선배님 첫사랑의 묘지를 마침내 이곳에서 찾은

듯 하네요,"

선장실 옆의 응급실에 누워있는 그녀에게 박준수가 걱정스런 얼굴로 간호사의 시선을 비키며

말문을 띄었다.

"그래요, 박 선생, 전모를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확인이 되었다는 확신은 오네요. 그 당시

사고가 났을 때에 죽은 사람의 집안에서는 백방으로 노력을 했으나 결국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였어요. 그런데 그로부터 반년 가량이 흘렀을 때에 신문 한 조각에 제주에서 실종된 수학여행

학생의 시신이 독도 근해에서 발견되었고 가족의 동의로 독도에 매장한다는 기사가 났더라구요.

동기들은 모두 발령을 받아서 뿔뿔이 흩어진 후였고 나도 나설 계제가 전혀 아니어서 그 일은

그렇게 개인적 사건으로 흐지부지 되었지. 다만 나는 지난 십 여 년 이상 동안이나 그 신문 기사를

내 가슴에 혼자 묻어두고 살아왔나보네."

그녀는 여기저기 온 몸이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많은 말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조용히 참배라도 하도록 손을 써 볼까요? 속 시원하게. 정 선배."

"필요 없어요. 20분간만 정박한다는 배가 지금도 내 부상 때문에 연발을 하는데 말도 안돼요.

그리고 나도 이제는 숙제를 다 푼 기분이구만. 내 첫사랑의 묘지라고 아까 박 선생이 말할 때 나는

깨달았어. 그래 지난 사랑은 다 묘지에 묻었어. 난 이제 더 이상 지난 일에 묶여있지 않아도 될 듯

싶어. 정말 속이 시원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박 선생!"

그녀는 아픈 손으로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배가 떠나네---."

정말 쾌속정은 쾌속으로 달려서 금방 울릉도 도동 항구에 접안을 하였다. 일몰이 오자 자연

보호의 전 회원들은 도동항에 있는 광장으로 모였다. 독도수호 결의문 낭독 행사가 있었다.

 

격정의 결의문 낭독이 끝날 때 쯤 두 사람은 조용히 대회장을 빠져나왔다.

"저기 산 중턱에 무슨 리조트라고 지금 완공 단계에 있는 콘도가 있어요. 아직 정식 개관은 안

했지만 모델 하우스 쪽에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답니다. 그리로 가시지요."

두 사람은 남유럽 식으로 지어놓은 리조트 콘도 단지로 택시를 타고 갔다. 마치 두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곳은 텅 비어 있으면서도 모든 것은 다 준비되어 있었다. 호화 '수이트룸'으로

장만된 어떤 공간에서 박준수는 정진주를 부축이랄까 거의 안고 침대에 눕혔다.

"나 몸이 불편한건 그렇다 치고 샤워조차 못했는데---."

"아까부터 정 선배의 몸에서 해초 냄새가 나는 걸 내가 간과하지 않았어요."

"젊은 사람이 플레이보이 같아. 못됐어!"

"플레이보이 치고는 제가 너무 서툴고 서두르는 것 같지 않아요?"

"박 선생, 잘 들어요. 이래저래 난 남자에 대해서 두려움이 많고 내 몰골이 이래요---. 생각컨데

나중에라도 배신할 듯싶으면 지금이라도 나를 그냥 재미로 안아보고 싶다고 미리 말해줘. 거절

하진 않을게.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오늘 밤은 나도 혼자 자기는 싫어. 다만 박 선생 같은 젊은

총각이 왜 나를 사랑한다고 이렇게 넋이 빠졌는지, 그건 종내 궁금해."

정진주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렸다.

 "정 선배! 비너스의 화살이 박혔다고 생각하세요. 그 말로만 부족하다면 한 가지 만 보충할게요.

내가 어렸을 때, 꽤 괜찮은 중산층 가정이던 우리 가족은 어느 날 관광지에서의 교통사고로 어린

나만 남기고 모두 저 세상으로 떠났어요. 남들에게 잘 하지 않았던 이야기지만---. 철이 들고 나서

세상을 둘러보니 졸지에 그렇게 된 아이들이 참 많더군요. 신종 고아들이지요. 자동차 보험 협회

에서는 '희망 어린이 동아리' 같은 걸 만들어서 도움을 주고도 있지만 그런 참사와 재난은 그리스

비극처럼, 또 천형처럼, 멀쩡했던 어린 아이들을 참혹한 인간형으로 만들어 버린답니다. 제가 정

선배에게 기울이는 사랑이 그런 가정적 결손 때문 만이라고는 생각지 마세요. 그저 첫눈에

반했다고만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더 이상 제 말에 답하지 말아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정 선배가 바위에서 굴러 떨어져 지금 심신이 다 아픈 건 초야를 치르는 의식과 정성으로

받아들일게요. 저기 창밖에서 들려오는 해조음에 귀 기울여 봐요. 저 거대한 파도 소리가 내

청혼의 음성이니까요." (끝)

 

김우진은 먹먹한 마음이 들어서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갑자기 선우일 작가의 목소리가 그를

일깨웠다.

"주로 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셈이지요. 국내에서 가까이 살다보니 집사람과 펄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 삼았달까요."

"펄이요? 아, 정진주. 그러고 보니 아까 그 독도의 형상을 글 속에서 다시 본 듯합니다."

김진우가 놀라며 응답하였다.

"그래요. 고맙습니다만 김 선생은 자운 화백이 더 궁금하고 관심이 가겠지요."

"네, 명원이 말씀이지요? 맞습니다. 궁금증이니 관심이니 하는 마음가짐은 모두 사치스럽고요,

고백을 하자면 선생님의 단편을 읽고 나니 더욱더 제 자신이 부끄럽고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풍랑

속에 깎이면서도 의연한 독도의 형상이 따로 없군요."

“운명이라는 게 있잖겠어요. 김 선생도 어쩔 수 없이 지금 부인과 엮이지 않을 수 없었고---.”

“꼭 그런 길 밖에는 없었을까요. 그저 비겁하게 저와 주위를 속이는 시나리오에 얼씨구나 하고

따라간 제 행동을 지금껏 자책하고 있습니다. 명원이, 아니 자운 화백이 제 결혼 직후에 치룬 잇단

결혼식 때에도 제 가슴은 말 할 수 없이 무너져 내렸었지요. 제가 저간의 진실을 밝히며 용기 있게

나서지 못하고 비겁하게 세상과 타협하는 데에 분노하던 명원이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러다가 자신도 중매가 들어오자 선택의 여지도 없이 금방 결혼, 이윽고 호주 이민이라는 현실

도피를 택한 게 아니겠는가. 나아가서 그 부군 되는 분은 명원이의 영혼이 다른 데에 있다는 걸

깨닫고 바다낚시 같은 혼자만의 세계에 몰입한 건 아닐까. 사고를 당한 것도 자신에 관한 미필적

고의 같은 건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도 평생 저를 떠나지 않더군요. 물론 이런 상상이 모두 제

나름의 오만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김진우가 그동안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을 피를 토하듯 쏟아내었다.

“김 선생, 사실은 그 자운화백이 저기 울릉도에 와 있어요. 며칠 되었습니다. 일이 있어서 잠시

귀국한 김에 그림의 소재를 찾아 저 섬에 들어간다고 했어요. 제 집사람은 안내 겸 여행 삼아서

동행이고. 물론 내가 소설가 협회의 이번 울릉도 독도 문학기행에 참여한다니까 대략 그 일정에

맞춘 건데 일기불순으로 일이 좀 어긋나긴 하네요."

"세상에! 그럼 어떻게 하시지요?"

"아, 나는 내일 오후에 울릉도로 들어갑니다. 파고가 1.5미터만 되어도 들어가지 못하는 강철선

이나 주정과 달리 일반 관광선은 들어갈 수 있다고 하네요. 여기 말로는 입도 가능이라고 하지요. "

"아, 다행이군요."

김진우가 그렇게 화답하는 말과 얼굴에는 어떤 갈망의 표정이 역력하였다. 선우일 작가는 아무

내색 없이 말을 이었다.

"이 배는 지금 동해항으로 들어가는데 우리의 숙소는 주문진으로 정했다고 하는군요. 거기서 하루

밤을 자고나서 환선 굴을 내일 오전에 들어간답니다.“

아, 환선 굴!

예전에 들은 전설로는 한번 들어간 사람 중 다시 되나오지 않으면 신선이 되어 굴뚝처럼 생긴

비밀 문으로 승천하였다는 그 환선굴---.

김진우의 마음은 이제 현실과 환상, 실재와 선계를 넘나들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배가 동해의 군항에 닿자 작별 세리머니가 있었다. 별다른 것은 아니고 군악대가

빗속에서 해군가를 우렁차게 부르는 것이었다. 책 증정식도 간략하게 있었다. 이별 혹은

작별에는 항상 애조가 있는가, 신바람 나는 군가에서도 그런 단조와 아다지오 풍이 섞여 들리는

것은 듣는 사람의 마음 탓이런가.

자리가 잡히자 소설가협회의 이사장이 마무리 인사를 하였다.

“여러 선생님들, 작별 인사가 좀 빠르다 싶으시겠지요? 이제 여기서 부터는 작별입니다. 울산과

부산 쪽 분들 중에는 지금 바로 가시는 경우가 있고 강릉 속초 분들 중에서도 꼭 주문진에서

주무시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또 내일 환선 굴에 들어가셨다가 신선이 되어서 나오지 않으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고요.”

좌중에 약간의 웃음이 돌았다. 김진우가 선우일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의 시선도 향방이 마찬가지였다.

그 다음날 환선 굴에서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깊고 넒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오후에 울릉도로 들어가는 선착장에는 선우일 작가의 모습만 보이고 김진우의 형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끝)

 

대구 출생

문학마을(소설) 미주 시 정신(시) 문학과 의식(평론) 등단

이해의 소설대상(문학마을), 서초문학상, 학술원 우수도서 상 수상

소설집 “세종대왕 밀릉”, “촛불과 DNA”, “하노이 하롱베이 오키나와 처녀” 평론집 “성과 문학과

세태”

한국 문협, 펜클럽 회원, 건국대 명예교수









Orfeo ed Euridice K,384


글룩 / 오르페오와 에우디리체 중 '정령들의 춤'

Gluck, Christoph Willibald 1714∼1787, 墺)


Dance of the Blessed Spirits

James Galway, flute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3막

대본 : 칼짜비기(Calzabigi, Ranieri Simone Francesco 1714∼1795)

때 장소 : 태고의 그리스를 포함한 지구 황천의 극락세계

초연 : 1762. 10. 5. 빈 궁정극장

연주시간 : 1·2·3막 각각 35분

등장인물 : 오르페오(A 또는 T)  에우리디체(S) 사랑의 여신(S) 양치기와 님프 등 다수

Gluck Orfeo Ed Euridice Dance of the Blessed Spirits James Galway fl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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