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문학 산책

조선족 소설 문학 개관 (미래시학 봄호 특집)

원평재 2017. 3. 15. 20:25














  

조선족 소설 문학 개관

김 유 조

* 서술 방향

1. 들어가는 말

2. 조선족 문학의 형성과 전개

3. 개혁 개방 이후의 발전과 변화

1) 80년대 전후반 소설 문학 개관

2) 90년대 소설 문학의 급격한 주제 변천

3) 출국 열, 서울바람 문학의 경향과 전망

4. 내부 번역 과제

1) 어휘, 문법, 표현방식 등의 간색

2) 조선족 언어문자 규범화의 분석과 피드백

5, 나가는 말

 

1. 들어가는 말

중국 대륙에 거주하는 한민족(韓民族)의 거주 사를 고찰코자 한다면 그 연원을 당나라 시대의

신라방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하겠지만 본고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범주는 현재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당대 문학 활동에 관한 것이므로 거주현황에 대한 논의도 최근의 것으로 한정코자

한다.

근세사에 중국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는 한민족 동포들은 스스로 그들을 조선족이라고 부르고

있고 대체로 그 숫자는 200만 전후를 헤아리는 것으로 되어있다.

한편 중국의 개방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주로 상용, 기타의 목적으로 중국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대략 29만 3천명으로 보는 통계가 있고 이런 추세로 미루어 본다면 2010년 까지는

약 100만 명을 넘으리라는 추계도 있다. 여기에는 물론 현재 연간 150만 명이 넘게 드나드는

한국인들은 들어있지 않다. 한편 북한으로부터도 상당수가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서 들어와 있을

것이며 일부 통계에 잡히지 않은 인원들도 있을 수 있다.

한민족, 배달겨레로 통칭 되어온 우리의 핏줄이 근세사의 배경으로 이렇게 다양한 분포를 보이기

시작하자 재중 한국어 신문, 예컨대 『흑룡강 신문』 등에서는 이 모든 사람들을 통칭할 때에는

“한겨레”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흑룡강 신문 2005년 1월 14일)

우리 동포들의 중국 거주사가 100년을 넘어 오늘에 이르는 동안 우리 말이 잘 갈무리되어서 공사

간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엄존하여 마침내 찬란한 문화와 문학작품이 개화된 역사의 뿌리에는

이러한 토양이 밑받침을 하였다.

그런데 중국의 조선족 문학의 또 하나 특기할 점은 이 문학 자체가 중국의 소수민족 문학의

일부로 공인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임명하는 각 지역별 작가

협회 조직의 하나인 "중국 연변 문학 작가 협회"라는 기구와 주석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

(김학천 주석과의 인터뷰)과 함께, 월간 문예지 “연변 문학”이 창간이래 51년 동안 우여곡절

가운데에서도 속간되고 있다는 사실이 세계 다른 지역의 우리 교포 문학과는 그 위상이나

현상이 자못 다르고 매우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연변 문학』 김삼 발행인

과의 인터뷰)

본고에서는 연변을 중심으로 하여 일제 강점기 이래 자생적으로 빛나는 문학 전통을 이어온

조선족 문학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 발전 과정을 일별하면서 동시에 특히 중국의 문화 대혁명

이후 새로운 개혁과 개방 시기에 이 곳의 특이한 문학 전통이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가 에 분석의

초점을 맞추고 여기에 더하여 독특한 이 지역 문학의 어휘 구조와 서술 구조에도 유의 하여

어떠한 상호 텍스트 이해의 방안이 모색되어야 하겠는지, 혹은 그 방안의 하나로서 통, 번역의

필요성 부분에 대해서도 하나의 과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바이다.

 

2. 중국 조선족 문학의 시원과 발전

최근 10여 년간의 조선족 문학의 주제 변천과 언어 상의 차이를 고찰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논자는 먼저 중국에서의 조선족 이민 문학의 시초와 그 전개 과정에 대한 고찰을 선행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을 느낀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연구는 벌써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인 연길을 중심으로 하여 기라성

처럼 그 연구 업적을 쌓고 있는 여러 학자들의 실적을 참고할 수 있어서 학문적 객관성과

유효성의 부분에서 다행함을 느끼게 한다.

매거할 수 없는 자료 가운데에서도 일부 업적들을 살펴보면 단행본 단일 저자로서는 『해방 전

조선족 이민 소설 연구』,(장춘식, 2004 민족 출판사) 등을 볼 수 있고 공저로는 『조선-한국

당대 문학사』(김병민 허휘훈 최웅권 채미화, 2000년 연변대학 출판사), 『당대 중국 조선족

연구』(김동화 김승철 주필, 1993년, 연변 인민 출판사) 등이 있으며 논문집으로는 『중국

조선족 언론문화 학술 논문집』(주필, 채영춘, 2001년 연변 인민 출판사), 『조선언어 문학

논문집』(1995년 동북조선민족 교육출판사), 등이 보이며 『중국 당대 문학사』(김병활,2001년

 연변대학 출판사)처럼 중국 전체의 문학 통사에서 조선족 문학 흐름의 줄기를 파악하는 업적도

있다.

 

중국 조선 족 문학의 역사를 대략 100여년으로 보는 데에는 학계의 견해가 거의 일치하지만

구체적 시원을 언제로 보느냐, 그러한 아이덴티티는 문제에 대한 이론적 정립에는 여러 견해가

있음이 사실이다.

연변대학의 김호웅 교수는 중국 조선족 문학의 기원, 성격 및 작가 범위에 대한 기존 견해를

첫째, 전통의 유구함을 주장하는 원칙과 둘째, 출생지 원칙과 사망지 원칙, 그리고 셋째로

속지주의 원칙과 속인주의 원칙 등으로 나누어 보고 있다.(*****『중국 조선족 소장학자 조선학

연구 론문집』, 김호웅 민족 출판사,1992,pp217-231참조)

(다양한 견해 제시 중략)

 

그러나 이 견해 역시 동일한 작품을 두고 이곳과 남북한이 서로 자신들의 문학에 편입코자 하는

대립과 모순이 생긴다.

예컨대 연변에서는 1958년과 1961년에 『혁명의 노래』와 『혁명 가요집』을 각각 출판하였는

데 1959년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는 동일한 내용을 조선 문학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평양의 사회과학 출판사에서는 1986년에 출판한 『조선 문학 개관』에서 1926년

부터 1945년까지의 문학을 “항일 혁명 투쟁 시기의 문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학자들 중에서도 이런 속인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예컨대 오양호 교수는 “1940년

에서 광복이 올 때까지의 한국 문학은 간도 이민 문학의 시대가 존재함으로써 가능”했다고 보고

이시대의 문학사는 간도 이민 문학을 중심으로 써야한다고 주장한다.

 

3. 개혁 개방 이후 조선족 소설 문학 작품의 주제 분석

1) 80년대 전후반 소설 문학의 개관

개혁과 개방의 시대는 주지하다시피 1976년 10월에 이른바 “4인방”이 분쇄되면서 시작이

되어서 조선민족 문화는 불사조처럼 다시 소생하여 부흥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특히 1978년 12월에 열린 제2차 동북3성 조선어문 사업 실무회의에서는 4인무리가 퍼뜨린 조선

언어문자 무용론, 조선 언어문자 사멸론을 호되게 비판하고 민족 언어의 발전이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 기여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조선말의 규범화에 관한 방안들을 심의 채택하는 중요한 결의

를 하였다.

새로운 역사 시기에 들어와서 조선문 문예지도 확장되어서 문혁 이전에는 『연변문예』와

『송화강』 두 가지밖에 없던 것이 조선족 거주 지구를 중심으로 특징 있는 문학지가 속속 탄생

하였다.

즉 연변지역에는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의 기관지인 『연변 문예』(월간, 1985년부터 『천지』

로 개칭하고 현재는 『연변문학』), 『아리랑』(총서, 1980년 창간), 『문학과 예술』((격월간,

1980년 창간) 등이 발간되고 통화지구에는 중국작가 협회 길림성 분회의 기관지로『장백산』

(격월간, 1980년 창간), 길림지구에는 『도라지』(격월간, 1979년 창간), 장춘지구에는

『북두성』(격월간,1983년 창간), 심양지구에는 『갈매기』(격월간, 1982년 창간), 하얼빈

 지구에는 『송화강』(격월간 196?0년 창간), 목단강 지구에는 『은하수』(월간, 1980년 창간)

등이 발간되기 시작하였으며 번역 문학지로 북경에 『진달래』, 연길에 『세계문학』이 나오기

시작하였다.『중국 조선족 문학사』 pp463-468참조)

이 시기의 소설 문학을 개관해 보면 80년대의 전반기에는 정치상 문예상의 좌경노선의 오류를

시정하면서 작가들의 사상을 해방하고 사실주의 창작원칙을 회복하면서 이른바 “상처문학”,

혹은 “상흔 문학”의 주제를 담은 소설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그 외에도 우리 민족의 역사와

현실, 생활과 투쟁, 인정세태들을 진솔하게 그린 작품들이 다양하게 출현하였다.

이 시기에 조선족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인 이근전의 『고난의 년대』(1982년), 김학철의

『격정시대』(1986년)등이 나온 것은 휴화산처럼 갇혀져있던 천재성과 격정이 새 시대의 조류를

타고 활화산처럼 터져 나온 필연이라고 할만하다.(장춘식, 『시대와 우리문학』,p.133)

한편 80년대 후반기가 되면서 전국 농촌의 경제체제 개혁과 개혁개방은 사회 전 영역에 큰 영향

을 끼쳤으며 전국적으로 전개된 ‘진리의 기준문제’에 대한 대토론, 실사구시 정신의 발양, 건국

이래 당의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1981,6)등은 후반기에 들어 마침내 주체의식이 형성되면서

‘반성 문학’, ‘개혁 문학’ 작품들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작품들은 냉정하고 엄숙하게 1950년 이후의 역사를 반성, 평가하고 인간의 내면 의식의

세계를 깊이 있게 묘사하여 현상적인 비극성을 보다 더 부각시켰고 표현 기교면에서도 다양한

서술 시점의 선택, 구성 방식, 언어의 세련성, 의식의 흐름, 환상, 상징, 변형 등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였다.

농촌과 도시의 경제체제 개혁을 다룬 작품들은 특히 농촌 개혁의 역사적 필연성을 심도 있게

그렸고 쓰라린 과거사를 조명하였다.

이 시대 소설 문학의 또 하나의 큰 특징은 마침내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애정 소설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80년대의 후반부는 또한 다양한 실험이 시작되던 큰 기대의 시대였다. 새시기 새시대의 문을 연지

 10여년이 지나면서 이제는 그 동안 막혔던 문학의 큰 물결이 소용돌이쳐 내려오면서 큰 계곡

작은 개울을 이루어 다양한 지세를 구축하고 각자의 모색을 시작하며 문학적 기교가 배태하고

성숙을 기약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이 분수령의 시대에 이 곳 문인들은 서구의 작가들 예컨대 울프, 조이스, 헤밍웨이, 포크너등의

작가에 대한 연구를 하고 그들의 실험을 도입할 여유를 갖게 되었다.

특히 새시기 문예 부흥기에 폭발적인 양적 팽창을 보이는 정보의 홍수, 소위 정보 엔트로피

현상에 대해서도 이 시기의 작가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장춘식의 『시대와 우리문학』

(pp.150-152)에 따르면 전정환은 “겨울날 그는 울고 웃었다”(『북두성』, 1987, 3기)에서

이야기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으나 내면에 일종의 관념 탐구와 심리 분석과 형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여성의 ”거미 한 마리“(『북두성』 1987, 3기)에서도 성적

심리 의식의 흐름으로 욕망과 순결 사이를 방황하는 남성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리얼하게 재현

시키고 이성적인 의식과 비이성적인 잠재의식간의 모순과 충돌이 사유의 혼란을 조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편 구조주의적인 문학의 틀을 이용하여 작품을 풀어나가는 시도를 꾸준히 해온 우광훈의

메아리(『아리랑』 1987 1,2월 합병호), 이광수의 눈과 귀와 뇌의 진동(『천지』 1987 1월호)

등도 장춘식은 특기하고 있다.(p.154)

 

2) 90년대의 소설 문학

개혁 개방의 물고가 터진 20세기의 마지막 10년간은 그동안의 내부적인 에너지도 축적 되었고

국내외의 활발하고 왕성한 교류 등으로 인하여 작품 활동과 작가정신은 더욱 융성한 기세를 펴

나갔다. 현재 연변에는 500여명의 연변작가 협회 회원들이 있고 지속적인 문예지의 발간과

『20세기 중국 조선족 문학선집』(연변 인민 출판사), 『새세기 조선족 중견작가 작품대계』

(흑룡강 조선 민족 출판사) 등을 통하여서도 무게 있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산업화의 세기는 사회적 갈등과 고통의 사회적 분위기를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구와 미국의 산업화가 성숙하던 20세기 전후의 문학이 리얼리즘 기법 속에서 주제에 있어서의

자연주의 적 비관론이 성행하던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90년대식 및 21세기 식 소설 문학의 주제를 탐색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으므로 이제까지의 이루 매거 할 수 없이 많은 중견 작가들의 작품과

업적에 관계없이 격변하는 주제 변화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 변모하는 모습을 천착해 보고자

한다.

90년대를 선도하는 1991년도의 창작 소설에 관하여 오상순은 그 내용으로 분석을 하여서

크게 주제 소설과 무주제 소설, 문제 소설과 세태 소설, 성격 소설과 정감소설로 나누어 평가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91년도의 소설 작가들은 특히 주제의식에 투철하여서 사상적 감화력을 가지며 인식

교양적 가치가 큰 소설들이 발표되었다고 평가한다.

임원춘의 별찌(『장백산』, 91년 5호), 류원무의 앉은 석동(『도라지』, 91년 1호), 강효근의

묘갈명(『도라지』, 91년 5호) 등 작품에서는 현실 생활에서 나타난 긍정적 인물들의 아름다운

영혼을 노래하여 고상한 정신세계와 참된 삶에로 사람들을 이끌고, ---(후략).

그 다음으로 이 시대에 새로 나타난 특징으로 무주제의 작품 출현도 그는 지적하고 있다.

91년도 우리 문단의 창작을 두고』pp235-240참조)

91년도의 작품에서 조선족 작가들은 또 민족의 운명과 전도, 사회문제에 대한 우려와 참여의식

으로 사회에 미만한 부조리 현상에 날카로운 비판의 붓끝을 들이대고 있다.

윤림호의 “쌍고동”, 김재국의 “가라앉은 섬”(『도라지』, 91년 3호), 박선석의 “산간마을의 풍파”

에서는 몰라보게 변질된 고향 마을의 인정세태, 그 속에서 기형적이며 이기적이고 광적 모습으로

변해가는 마을 사람들의 몽매상, 비극상을 통하여 오늘의 이 곳 농촌의 급변하는 시대적 생활

공간 속에서 인간성이 어떻게 변모되고 있는 가를 가슴 아프게 펼쳐 보여준다.

(중략)

이 밖에도 사회의 부정부패 현상을 폭로한 김창수의 “이승과 저승사이” (『은하수』, 91년 7호),

김영옥의 “개 젖”(『도라지』, 91년 4호), 그리고 기타 사회 문제를 다룬 소설들도 고민의 심도와

사색의 폭이 깊고 넓다.

91년도에 발표된 작품 가운데는 참여의식, 비판의식이 강한 문제 소설이 많은가하면 세태소설도

적지 않다. 소설의 세속화 경향은 사회생활의 세속화에서 왔다. 그것은 문학현상이면서도 문화

현상이다.

(중략)

91년도 소설부터 뚜렷이 등장하는 인물형으로는 여성 주인공의 출현을 들 수 있다. 주영돈, 한상호

가 편『중국 동북 조선족 여성과 항일 투쟁』(연변대학 출판사, 1997)에서도 보듯이 여성들의 역할

은 항상 크고 시의 적절하였다.

이러한 여성들의 형상이 소설 문학에서는 어떻게 투영되었는가 하는 것은 특히 페미니즘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적 조류 속에서 특별한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작품 생략)

한편 91년도 소설작품에는 비극적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한다고 오상순은 지적한다.

서구 문학에서도 리얼리즘이 산업화와 함께 시작하였고 그러한 흐름은 궁극적으로 자연주의

문학, 특히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와 사회적 욕구 충족의지 등이 결국 비극을 배태할 수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인간은 파괴되고 마는 비극적 인간상을 그려낸 그러한 역사적 흐름과도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예단해 볼 수 있다.

시장경제 자본주의와 물질주의가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점

에서는 극복해 내어야할 모순과 부조리 성을 내재하고 있고 이 부분에 작가들의 예리한 분석과

비판의 붓 길이 가야한다는 시대정신의 흐름이라고 하겠다.

조일남은 개혁 개방의 두 번째 10년을 맞이하는 90년대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

한다.(“중국 조선족 장편 소설 발전사(3)”, 『문학과 예술』 2001, 4호, p.114)

첫째는 농촌 생활의 붕괴와 도시 생활의 전개이며 이에 따라 조선족 사회도 도시 생활이 주요한

배경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둘째는 빈번한 해외교류와 대량적인 해외진출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92년의 중한 수교

후의 팽배한 물욕을 동반한 친척방문, 상무고찰, 노무수출, 불법체류 등 긍정적 혹은 부정적

부작용이 동반되기 시작한 것이다.

셋째는 문화시장에 대한 시장경제의 충격과 조선족 작가들의 대응이 또한 이 시기에 당면과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90년대의 문학 분위기는 개혁 개방으로 크게 고양된 80년대의 정서와는 달리 불안한 년대를 보여

주고 있으면서 아울러 아직까지는 시도하지 못했던 과거의 일에 대한 장편 소설로서의 천착을

시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여기에서는 이런 특징들을 수렴하여 대체로 장편 중심으로 이 시기의

문학 흐름을 짚어보고자 한다.

90년대의 장편 소설의 제재를 보면 앞에서 오상순이 분석한 방향과 비슷하게 역사제재 소설 범주

와 현실제재 소설 범주로 대별할 수가 있다고 조일남은 말하고 있다.(p117)

90년대 역사제재 장편 소설로는 먼저 김길련의 “『먼동이 튼다』”(93년, 민족 출판사)를 예로 들

수 있다. 『먼동이튼다』도 조선족의 과거, 조선인의 중국에서의 사실을 다룬다. 그러나 그런 사실

을 취급한 그 이전 소설들이 한반도에서의 생활은 그저 프롤로그에 그치고 소설의 본격적 내용은

살길을 찾아온 만주 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먼동이 튼다』에서는 조선에서의 사실 그 자체

가 벌써 소설 텍스트의 한 부분으로서 중국에서의 사실과 혼연일체를 이룬다.

최홍일의 『눈물 젖은 두만강』(『장백산』 1992년 6호-1994년 2호)은 역사 제재 소설의 문화

적 내용의 저변을 확대시킨다. 사상의 역사 속에 쌓인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80년대의 현실제재 장편 소설이 주로 농촌 생활을 취급하고 있다면 90년대의 현실제재

소설은 이와 다르게 도시 생활을 취급한다.

이러한 현상은 미증유의 상황으로서 불안과 부조리의 현상이고 마침내 90년대 후반으로 가면

“출국 열”과 “서울 바람”으로 연결 되지만 그러한 세태로의 진입지대, 문지방 위치에 허련순의

『바람꽃』(1996년 흑룡강성 조선민족 출판사), 장혜영의 『희망탑』(1998, 흑룡강성 조선민족

출판사)이 시의적절하게 자신의 위치를 부각시키고 있다.

『바람꽃』이나 『희망탑』에서의 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땅을 떠난 농민들이다. 그들은 부를

갈구해 땅을 떠났고 부가 모여 있는, 부가 잡힐 듯 한 도시로 모여든다. 또한 그 도시는 한국이고

서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국은 고국이 아니고 동포는 동족이 아니다. 욕망의 바다일 뿐이다.

이 두 작품의 문학성은 어쩌면 현실에 대한 고발의식이 너무나 급박하여서 다소 미흡한 점이

있겠지만 우리 모두가 당면한 문제의식을 제대로 강력하게 들고 나온 점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한편 박향숙의 “『여사장 이야기』”(1998, 연변 인민 출판사)는 도시인의 생리를 비교적 정치

하게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원래 국가나 민족은 없다. 양심에 대한 호소나 도덕적 책임도 없다. 오직 경쟁과

자본의 원리만 있을 따름이다.

『바람꽃』과 『희망탑』, 여사장 이야기 등이 서로 상반되고 대조가 되는 이 시대의 현재진행

중인 현실 생활 영역을 보여주고 있다면 이혜선의 『빨간 그림자』(1998, 연변인민출판사)는 그

두 영역을 두루 포용하면서도 또한 역사의식도 아우르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조국과 고국과 마침내는 국가라는 개념 앞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설정해야

하는 본질적 문제에 상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론은 마침내 나라로 민족의 벽을, 민족으로 나라의 벽을 높이 세울 필요는 없다고

조일남은 자신의 평론에서 결론짓는다. 국가로부터 탈출하고 민족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 이제

새로운 인간의 본질적 문제를 천착하자고 주장하는 그의 결론에서 이 시대 연변에 거주하는 한

소수민족 인이면서 동시에 세계인의 고뇌와 사유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본질에의 천착은 이 지역 문학, 혹은 “우리 핏줄” 문학의 위상을 세계적인 규모로

그 차원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이 곳의 문학 풍토에 도래하였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현동언도 “현황과 전망--역사적 변혁기 조선족 소설문학--”(『20세기 중국 조선족 문학 선집 4』

, pp.470-482)에서 “우리 소설 문학이 정치 형으로부터 사회형, 심미 형으로 변화 되었다”

(p.472)고 전제하면서 “사실주의 창작의 복귀, 승화, 변화 발전”(p.475)을 지적하고 “의식의

흐름 기법”과 “황당 기법”, 나아가서 "신사실주의 기법" 등의 도입(pp.478-479)등과 같은

현대적 창작기법이 도입, 실험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다소의 경계심은 내비치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 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적 발전 전망의 시점에서 이 중국의 동북 지역 조선족 사회는 기가 막히는

현실의 좌절을 겪게 되고 따라서 문학 풍토 전반도 이런 사회적 변동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떠안

게 되면서 결국 속물적 상황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이른바 “출국 열”과 “서울 바람”의 시대가 조선족 사회를 휩쓸고 가면서 이러한 시대 조류는

당연히 문학의 세계에도 열병과 광풍처럼 엄습한 것이다.

 

3) “출국 열”과 “서울 바람”의 문학 시대

“출국 열”이니 “서울바람”이라는 표현을 어떤 작가나 평론가가 최초로 썼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조일남이 『문학과 예술』 2001년 4호 119쪽에서 90년대 후반과 앞으로 전개될 상당한 기간들의

시대정신을 일찍부터 그렇게 요약한 것은 확실하다. 그는 중국에서의 서울 바람 소설의 1번지는

유원무의 “눈물의 편지”(『아리랑』 25호, 1986.7)로 보면서 이 때가 되면 중국 문단에서도 이런

주제의 픽션이 허용되고 있다고 본다. 서울 바람 소설은 이후 주춤했으나 1992년 서울 박문사에서

 36인의 조선족 수필집, “『서울바람』”이 나온 이래 기약이나 한 듯이 1993년부터는 특히 수필

장르 속에서 문단에 본격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1993년도 『도라지』 2호에는 김남현의 소설 “서울 갔다온 태룡이”와 이여천의 수필 “아버지의

아버지의---발자국을 찾아서”가 게재 되었다. 이여천의 이 수필이 첫 선을 보인 이 무렵부터

유연산의 수필 “서울 바람”이 “『청년생활』”(1993년 5호-12호)에 연재되기 시작하여 1996년에

『서울 바람』(연변 인민 출판사)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하였고, 『“연변여성』”을 비롯한 여러

조선족 정기 혹은 부정기 간행물에 서울바람 소재의 글들이 자리를 잡아서 오늘 이때까지 지속

되고 있는 것이다.

이후 한국의 출판사 “말과 창조사”에서 “『서울에서 못다한 이야기』(1997년 6월), 김재국

개인의 수필집, ”『한국은 없다』“가 민예당에서 나왔는데 이 수필집은 『장백산』 (1997.5호

부터 연재)되었다. 또한 김문학과 김명학은 ”『한국인이여 상놈이 되라』“(2000US 5월, 흑룡강

조선민족 출판사)로 한국, 한국인들에게 통렬한 일격을 가하고, ”이혜선은 『코리안 드림(한국에

나가있는 중국 조선족들)』“(2001년, 요녕 민족출판사)로 박차를 가한다.

마침내 이런 전후간의 사회현상을 대표하는 장편소설이 본격 등장하였으니 허련순의 『바람꽃』

(1996년 흑룡강성 조선민족출판사), 장혜영의 『희망탑』(1998년 흑룡강성 조선민족출판사)이

바로 그것으로 시대정신을 본격적으로 수렴한 대작이라고 할만 하다.

이 두 장편은 이제 20세기의 후반 10년과 21세기의 상당한 기간동안 동북아 조선족 문학의

주제와 소재가 싫든 좋든 앞에서 들어본 수필의 제목과 내용의 범주에 당분간 고착되리라는 점을

확실히 하였으며 시대정신의 정곡을 찌른 주제 선택이었다고 할만하다.

또한 이 두 대작은 시대정신의 수렴 역할 뿐만 아니라 향도적인 역할까지 겸했다고 할는지,

그때로부터 이 시대를 관류하여 거의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출국 열과 서울바람은 모든 조선족

문학의 주제로 일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심지어 정판룡 교수도 생전에 쓴 문화 평론 가운데 “출국몽과 출국열”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작가

유연산은 “『서울 바람』”(p.213)에서 언급할 정도이다.

아무튼 이러한 “서울 바람”이라는 기표에서 읽을 수 있는 개념의 범주를 소설과 실화라는 장르

부분에서 제목을 한번 가려 뽑아 그 흐름의 일단을 통시적으로 보고자 한다.

 

(소설)

눈물의 편지 유원무 아리랑 28호 1986,7

서울 갔다 온 태룡이 김남현 도라지 2호 1993

중국여자, 한국남자 김정 도라지 2호 1994

사랑의 애가 김정 도라지 5호 1994

한국색시의 눈물 김진순 장백산 6호 1994

마카오 술집 김남현 천지 8호 1994

읽어버린 길 김영자 도라지 1호 1996

돌아올수 없는 안해 김남수 연변녀성 10호 1997

 

(실화)

서울에서 온 편지 지정구 청년생활 1호 1993

고국, 안녕 박화 연변여성 3호 1995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 김혁 청년생활 5호 1997

무너진 믿음 깨어진 한국행 꿈 허영선, 이선희 연변여성 3호 1997

한 밀항자의 자술 울산 연변여성 6호,1997

깨어진 부자 꿈 기곡 연변여성 6호 1997

황금의 유혹 이룡수 연변여성 10호 1997

 

『연변문학』 2004년 제5호에 게재되어서 2005년도 윤동주 상 소설부문을 수상한 허련순은

 “하수구에 돌을 던져라”라는 단편으로 출국 열과 서울 바람의 진면목을 모두 새끼 꼬듯 꼬아

넣었다.

 

화자인 나는 작은 다방을 경영하는 물장사인데 새벽바람으로 작은 올케의 방문을 받는다. 작은

올케는 주변머리도 없고 큰 야망도 없이 집안 일만 열심히 하고 사는 발이 자그마한 연변 인근의

시골 여자였다. 붙여먹던 밭이 비행장으로 수용 당하면서 다소간의 보상금이 나왔는데 그 돈의

대부분을 이 주변머리 없는 여인은 한국으로 출국을 하려고 수속을 하다가 떼이고 만다. 출국

수속을 한 것도 그녀의 뜻이 아니라 시집식구들이 통으로 밀어붙이는 눈짓은 물론이고 화자의

남동생인 남편이 강제로 종용한 일이었는데 물정 모르는 발이 작은 여인은 서울 사람의 사기에

걸리고 만 것이다.

올케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화자의 능멸에 그냥 나가고 말지만 행방불명이 된다. 가게 문을 연

화자 앞에는 멋진 단골 남자가 나타나는데 이 사람도 아내가 서울에서 돈을 부쳐주어서 생홀아비

신세지만 생활만은 여유 있게 잘 지내는 사람이다. 서울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았어도

돈만 부쳐주면 감사한다는 말에 화자는 조금 놀라고 비참한 생각이 든다.

갑자기 전화가 오고 올케는 봉선화가 곱게 핀 인근 시골의 빈집에서 음독상태로 발견되는데 목숨

은 건진다.

일을 그르치고 나니 그녀는 시집의 분위기 때문에 위장 결혼을 하여서라도 서울로 가야할 형편이

되고 말았다. 이혼을 하고 위장 결혼을 하자면 3개월이 필요하다는 말에 남편인 화자의 동생은

위장 사망신고를 낸다.

그녀가 떠나는 날, 남편 녀석은 화장한 마누라의 얼굴에 오장육부가 뒤집혀서 행패를 부리지만

마침내 여자는 떠났고 인천 어딘가에서 법적 요건을 갖추기 위하여 그녀가 남자와 한방을 쓴다는

소식을 듣는다.

얼마 후에 여자로부터 송금이 오고 남편은 친구들과 축하연을 벌이는데 이런 동생의 모습을 보고

화자는 하수구에서 크게 토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대의 능력 있는 조선족 여류 작가 허련순은 출국열과 서울바람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다룬

이 작품에서 대화체의 표시도 《 》에서 --표시로 바꾸고 있다. 서울에 오래 체재한다는 그녀의

일상과 관련이 있는지 한국어 표기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논거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로 논의의 여지를 남긴다.

『도라지』 2005년 1호에 나온 “하늘에다 웃음을 그릴께요” 역시 출구 없는 출국 열, 서울바람

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화자인 나는 위장결혼을 하여 서울로 나가려는 백결이라는 여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여인의 남편은 병중에 있는데 여인의 출국 명분은 돈을 벌어서 남편의 병을 고치려고 한다는 것

이다.

화자인 나와 여인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병중인 여인의 남편과도 화자는

아는 사이이다.

여인은 화자의 아이를 임신하여 벌써 3개월이 되었다. 두 사람은 정사를 나누고 그들이 사는 도시

의 “수상락원”으로 간다. 공원에는 사랑하는 남녀를 표상으로 하는 콘크리트 조각상이 있다.

콘크리트로 빚은 여인상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여인은 그 손가락이 저 하늘에다 웃음을 그리려고 하는듯하다고 말한다.

나는 백결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했다가 다시 “떨궈라”고 말한다.

이 장면들이 이중인화 되는 형상은 허무의 극치를 보여준다. 우선 공원의 남녀상이 콘크리트

조상이라는 부분부터 이 도시의 황폐성, 급조성, 무가치성을 표상한다.

하늘은 인간의 염원을 투영하는 오랜 기표의 역사성을 갖고 있지만 이 순간만은 아무것도 없는

허상이자 허공일 뿐이고 거기 웃음을 그리려는 백결이라는 여인의 꿈도 허망할 뿐이다.

과연 여인은 병원에서 아이를 “떨군다”.

몸조리를 권하는 화자인 나의 권유도 뿌리치고 여인은 냉면을 먹고 싶다고 하여서 두 사람은

“삼천리 랭면” 집으로 가서 산후 조리와는 거리가 먼 냉면을 씹는다.

여인은 집으로 가서 이혼한 남편을 보겠다고 말한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서울에 나가서 돈을 벌다가 이제 돌아오겠다고 연락이 온 “안해” 생각을

한다.

이런 일련의 사실 전개와 의식의 흐름이 감상을 배제한 채, 혹은 적절한 객관적 상관물의 등장과

함께 21세기의 황무지가 독자들의 안전에 황폐한 모습으로 등장할 따름이다.

 

『도라지』 2005년 2호의 단편 “둥지”의 화자인 나는 아직 초등학교 학생에 불과하여서 이 황폐

한 이야기는 일종의 “개안 주제(initiation theme)인 셈이다. 물론 문장 가운데에 나오는 나이에

맞지 않는 용어의 사용 등은 작가의 부주의에 속한다고 하겠으나 증언으로서의 개안 주제를 설정

한 것은 매우 훌륭한 기법이라고 하겠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함께 가난한 채로 오순도순 지내던 벽동툰에도 출국의 바람이 불면서 경제적

인 면에서 차등이 오고 남편들이 벌어오는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살림의 모양과 여인네들

의 외양에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와 이장의 딸인 야림이와의 우정에는 변함이 없다.

어느 날 학교에서 선생님이 벽동툰 마을의 짧은 역사를 설명하신다. 이 마을은 평안북도 벽동

에서 여덟 가구가 들어와서 논밭을 억척스레 일구어 조선족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비옥한 땅은 풍요와 다산을 가져와서 한 때는 이 벽동 소학교만 하여도 오전반, 오후반 수업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산아제한과 출국열의 여파로 마침내 문을 닫아야할 형편에 이르렀다. 학생들은

모두 몇 곳의 소학교를 모아서 현성에 만든 기숙학교로 옮아가야할 운명의 날을 맞은 것이다.

“산아제한이 무엇이냐”고 어떤 학생이 묻는다.

개안주제를 이끌고 있는 작가의 용의주도한 기표이면서도 인구가 감소되고 해체되는 이 곳의

현실을 반영하는 기의가 보인다.

마침내 선생님은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으며 말한다.

“이 시간--- 이제 돌아들 가시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읽었을 때의 슬픈 감동이 가슴에 저려온다.

그러나 벽동툰의 엄혹한 사정은 그런 정도의 서정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날 오후에 야림이의 엄마가 화자의 엄마를 찾아와서 머리채를 끌고 두드려 패며 온갖 행패를

다 부린다.

그 야무졌던 화자의 엄마가 어느새 이장과 눈이 맞아서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날 밤 엄마는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이장의 집에서도 부부가 밤새 싸움을 벌였는데 결국 이장이 손을 본 여인네들은 남편이 출국을

한 동네 여인들 모두였음이 판명된다.

이 부분은 희극과 비극의 경계가 모호할 지경이다.

화자의 엄마는 급히 집을 헐값에 팔아치우고 동네를 떠나는 것으로 이 단편은 끝이 난다.

아니 그렇지만은 않다. 동네를 떠나기 직전 화자는 문을 닫는 소학교를 찾아가 본다. 벽동 소학교

라는 간판은 벌써 도끼로 두 쪽이 나서 덜렁이며 걸려있었다. 학생들이 낭랑하게 글을 읽던 이

곳은 이제 양들을 치는 축사로 바뀔 것이다. “양들이 이제는 나보다 팔자가 더 좋구나”라고 처연

한 생각에 사로잡히는데 문득 칠성이가 나타나서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울지 마”라고 위로를

하는데 그렇게 마음이 따뜻해질 수가 없었다.

“까치 두 마리가 백양나무 둥지에 둥지를 틀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저희들끼리 재깔이는

소리가 자냥스럽게 들려왔다.”

 

디아스포라에 따른 조선족 공동체의 황폐화 현상은 그것대로 그리면서 그러나 다음세대의 성장

속에서 다소나마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소망이 묻어나면서 작품은 끝이난다.

 

『연변 문학』의 최근호(2005,제4호)에 이르면 이러한 희망의 메시지는 보다 뚜렷한 모습으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다음에 음미코자 하는 두 작품은 주제 속에서 이러한 전환적 사고를 보여

주면서 아울러 서술 기법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음을 보여준다.

주제와 기법에서의 새로운 르네상스의 시대의 대망 론을 펼쳐 보이고 싶은 대목들이 보이는 것

이다.

『연변문학』 통권 529호인 위의 책에는 단편 “은행나무 잎 떨어질 때”(박초란)와 중편 “청춘

극장”(유일복)이 발표되었는데 두 편이 모두 주제에서는 서울바람과 출국 열을 다루고 있는데 그

기법이 고차원적 실험을 담고 있고 내용도 모두 변증법적인 발전을 꾀하고 있음이 발견된다.

 

먼저 “은행나무 잎 떨어질 때”는 제목부터 노란 “은행잎”이라는 색채가 보여주는 표상이 바로

황금이고 배금사상, 물질주의 이다. 노란 은행잎의 심상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작가가 매우

의도적으로 고심한 배경설정이다. 구체적으로 돈 문제가 대두될 때에도 은행잎은 배경으로 등장

하고 등장인물들이 비극적 상황에 처할 때에도 은행잎의 형상은 등장한다. 비극의 시원에 돈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는 객관적 상관물인 셈이다.

화자인 “그녀(은하)”는 아마도 “연길”인 듯싶은 중국 동북의 어느 소도시에서 미용실을 경영

한다. 작가는 용의주도하게도 도시의 이름이나 미용실에서 일하게 된 배경이나 현재의 위치 같은

것은 과감하게 생략하여서 독자의 시선을 주요 화제에 집중시키면서도 앞서의 생략된 부분들로

인한 의문점을 갖게 하여 현대 소설의 일반적 기법인 “낯설게 하기”의 특징을 살려 작품성을

높이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일본으로 돈을 벌러 가서 5년째 소식이 없는데 시댁과는

연결이 있는 눈치이고 따로 여자도 숨겨놓은 듯 하다.

그녀에게 어느 날 칠형이라는 술꾼이 찾아온다.

그에게는 이혼해 버려야할 여자가 있다. 그가 해외 노무에 나갔다가 온데 따른 사연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열 살 난 아들이 압록강에서 수영을 하다가 익사한 사건 때문이었는데, 여자는

아이를 하나 더 낳게만 해 준다면 이혼을 해주겠다고 막무가내를 쓴다.

한편 화자인 은하는 주정뱅이의 딸이었고 결국 어머니가 가출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동사해

버리는 가족사의 비극 속에서 칠형이를 동정하고 아버지에 대한 속죄를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녀는 칠형이에게 아내에게로 가서 아이를 낳도록 하라고 이르고, 같은 날 시댁의 연락으로

남편을 만난다.

남편은 이혼을 요구하며 20만원을 건네지만 그녀는 돈이 든 카드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이혼장에

서명을 해준다.

이 고장에는 더러운 낙엽만 있고 은행나무라고는 없다. 은행잎이 절절히 그립다.

그녀는 은빛 미용실 간판을 뒤로하고 한국행을 결행한다.

 

이야기의 끝에는 다소 애매한 상투성이 있다. 그녀는 미용실 체인의 “한 사장”이 마련해준 구학

(求學)의 길로 한국행을 택한다는 것이다. 그게 무얼 뜻하는지는 불명료하다.

그러나 그 애매성 속에서 작가는 단순한 물질주의적 출국 열이나 서울 바람이 아닌, 학열(學熱)

이라고 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삽입, 제창하여서 이제까지의 시대정신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려는 전환기의 모습을 은밀하게나마 제시했다고 하겠다.

한편 유일복의 중편소설, “청춘극장”도 새로운 전환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야기의

끝에 가서는 처음에 가졌던 청년들의 원대한 꿈이 한갓 헛되이 되는 모습도 보이지만 물질주의의

시대 상황에서 고향을 지키고 문학을 지키고자 하는 발상을 가진 청년들이 모임을 갖고 의지를

천명하는 자세만도 높이 평가하고 새로운 시대의 여명을 감지해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하겠다.

지금 연변은 디아스포라를 겪고 있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꿈을 모아보자고 했던 청춘극장의 청춘

엽서가 있는 한,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런 절규가 담긴 서신이 존재하는 한, 21세기

의 연변문학은 “출국 열과 서울바람”의 시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르네상스의 주제와 보다 심원한

문학의 기교를 실험하는 풍토가 열리리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연변문학 2004년 제 8호에서 김호웅 교수도 과거의 상처받은 역사 체험이나 이산하는 농촌 체험

등에서 탈피하여 이제는 새로운 모색을 하는 문학 사조를 세우자고 문학 대담에서 강조하다시피

조선족 문학도 이제는 새로운 전환점에 들어섰다고 희망적 결론을 내려 볼 수도 있겠다.(p.25 참조)

 

4. 우리말 내부의 번역과제

 

1)어휘, 표현방식, 문법 등의 간격

중국 조선족 자치주의 조선어 문학 작품을 개관하면서 현행 한국어의 어휘, 어법과의 차이가

엄청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부분들을 낭만주의에서 근대 사실주의로 넘어가는 분수령에 존재했던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작품에 나오는 심한 사투리, 때로는 의미 파악조차 힘든 사례와 비교한다는 것은 전혀

맞지 않은 논리라고 하겠다.

마크 트웨인은 사실주의의 한 특징인 정확한 정황의 묘사라는 측면에서 방언의 사용을 의도적

으로 시도했다할 것이지만 조선족 문학에서는 사용하고 있는 서술법이나 언술이 중국 소수민족

언어와 문학의 한 영역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방언의 일부로 치부할 성격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두 언어, 혹은 북한의 문화어를 포함한 세 가지 언어의 현실을 단순히 민족어

내부의 문제로 간단하게 처리할 성격은 아니라는 점을 논자는 인식하게 되었고 따라서 적절한

번역의 틀을 학문적, 체계적으로 구축해야하겠다는 당위성을 느꼈다.

이러한 주장은 시각에 따라서는 민족 분열적 사고라고 힐난하는 시선도 있겠으나 아래에 어휘의

측면과 의미론적인 측면에서 구체적인 예를 들면 논자의 소론에 동감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의 차이점은 언젠가는 극복되어야겠지만 그럴 때에도 한시적이나마 이 세 지역에 존재

했던 언어 상의 간격과 차이는 화석화된 상태에서라도 명증 적으로 밝혀두어야 학문하는 입장

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언어생활에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또한 현재 상태에서 상호 차이에 대한 분석 연구의 당위성이 닿는 맥락은 첫째는 의미 파악의

정확성을 위한 것이고 둘째는 어느 한쪽의 엄연한 표준적 언어가 다른 일방으로부터는 계층화

되어 수용됨으로서 불필요한 상위, 하위 언어의 개념이 형성되거나 심지어 희화적으로 취급되는

반문화적, 민족 분열적 작태로 까지 번질 수 있는 현상을 미리 막아야 한다는 점도 간과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한국의 표준어와 조선족의 언어를 어휘 측면에서 대비한 것을 예시코자 한다.

이 자료는 연변 과학 기술대학에 상주하고 있는 이화여자 대학교에서 파견 운영하는 “이화 생활

과학 연구소”에서 발간한 기초 조사 자료에서 주요한 차이점 들을 비교 분석한 것이다.

 (『통일을 대비한 연변 조선족 가정생활 기초조사』 2000.11)(pp.157-164)

 

*의류 관련용어

--품목

건강 체조복/에어로빅 복, 량짼돌, 토우짱(套裝)/투피스, 반따이(半大衣)/반코트,

--일반

백화상점/백화점, 마선/재봉틀, 복장/패션, 복장설계사/패션 디자이너, 슈샌좡/캐주얼 웨어,

--색상

가지색/자주색, 까만색/검정색, 귤색/오렌지 색, 연한색깔/파스텔 톤,

*생활용어, 용품

간부질/간부직, 교사직, 공작/일, 궁기/구멍, 눈거리/싸구려, 땐스/TV, 땐 초궈/볶음요리하는 전기

프라이 팬, 마사지다/망가지다, 부서지다, 반가바합니까?/좋아합니까?, 싸다/(물건을)사다, 싸발

하다/퇴근하다, 쌍발하다/출근하다, 수음기/라디오, 수평있다/수준이 높다, 수평없다/수준이

낮다, 쎄게/열심히, 잘, 아숨채 않다/감사하다, 양백/이백, 일없다/괜찮다, 출조차/택시, 필업하다/

졸업하다, 할랄/하루, 헗다/쉽다, 호상/상호, 홀타/쉽다,

*가족 및 친족 관련 용어

나그네/남편, 상세나다/죽다, 새가/여자아이, 아바이/할아버지, 아매/할머니, 아즈바이/아주버니,

아저씨, 오망/노망, 황디/상여,

*기타 밀접한 용어

電視(실제로는 간자로 쓰고 있음)/TV, 微派爐/보일러, 照相器/사진기, 電腦/컴퓨터, 組合音響/

오디오 세트, 錄像器/캠코더, 吸塵器/진공 청소기, 釉水馬桶/변기, 火鍋/신선로, 快餐/스낵,

牛陫/소갈비, 漢堡包/햄버거, 中(아래 위 두자로 직렬)/뀀,

 

이토록 어휘가 변천한 것은 지역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두 언어집단이 서로 오래 떨어져 있어서

발생한 단순한 어휘변천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변천사를 간단하게나마 상고해 보는 것도

앞으로의 연구 방법론을 위하여 필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의 언어 규범화에는 말 할 수 없는 정치 문화 사회적 요인들이 켜켜로

영향을 미쳤음을 다음과 같은 연구로도 알아볼 수 있다.

“해방 후 우리나라의 조선어 규범화가 걸어온 길”이라는 논문에서 언어학자 정경언은 1945년부터

 1977년을 1945-1957, 1958-1963, 1964-1967, 1968-1977 네 단계로 나누어 이 네 시기에 출판된

“모택동 선집” 조선문 판의 단어를 뽑아 다음과 같이 비교하였다.

한어에서의 領袖는 네 단계에 걸쳐서 수령->령수->수령->령수로, 工作報告는 사업보고->공작

보고->사업보고->공작보고로, 사설은 사설->사론->사설->사론으로 공자는 로임->공자->

로임->공자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섯 단계는 결국 조선어가 중국이라는 거대국가 속에서 그 변화의 소용돌이를 그대로

언어에 반영할 수밖에 없었고 언어순결 화라는 표제가 얼마나 현실과는 괴리가 있느냐를 보여

주는 일면이기도 하다.

모언어 자체의 변화나 모언어로부터 파생된 새로운 언어의 변모된 모습에서는 이렇게 어휘의

변화가 가장 먼저, 그리고 쉽게 눈에 뜨이지만 사실은 의미론적, 수사학적, 문법적 변화가 가장

큰 과제로 등장한다는 것을 대중들은 간과한다.

예컨대 언어의 순결 화를 추구한다고 하여서 축구 용어인 “코너 킥”을 “구석차기”나 “모서리

차기”로 남북한에서 경쟁적으로 사용해 보아야 오히려 모언어의 순결성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어휘의 변화는 쉽게 되돌릴 수도 있지만, 의미론적, 문법적 변질은 어떤 모언어 자체의 근간을

뒤흔들 우려가 있다는 말이다.

영어에서의 “코너 킥”에서는 corner가 명사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부사적 대격(adverbial

accusative)으로 사용된 것을 남북한이 깊은 사려 없이 경쟁을 한 꼴이 되어서 우리말에도

부사적 대격이라는 새로운 문법체계를 도입하는 첫 단초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성나서 돌차기”는 돌에서 차는 것이 아니라 돌을 차는 것이듯이 모서리 차기는 모서리에서 차는

 것이 아니라 모서리를 차는 꼴이다.

영어에서는 무생물 주어(unanimated subject)가 많은 문장을 이끌고 있어서 영어는 잘 못해도

이제 우리 민족도 영어식 표현에는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예컨대 “그녀의 목덜미에 돋은 파란 정맥을 (내가) 보자, 나는 슬펐다.”와 “그녀의 목덜미에 돋은

파란 정맥이 내 마음을 슬프게 했다.”의 두 문장을 두고 어느 쪽이 더 훌륭한 표현인가 하는 설문

에 서울의 학생들이나 연변 과기대의 학생들이나 거의 모두 무생물 주어가 있는 후자를 선호하는

반응을 보였다.

“원 쏘련”의 고려인들이 “머리를 잘 쓴다”를 “머리가 일을 잘 한다”로, “전화가 통하지 않는다”를

“전화가 일을 하지 않는다”로 흑룡강 신문 1991, 8월23일 기사를 인용하여 조선족 문화론에서

(p.313) 지적하고 있는 사례와 유사한 예가 되겠다.

이러한 기본적인 언어심리학적인 예를 보면서 중국 조선족들의 일상 가운데에 “우리 둘이 탄(談)

해 보자”, “저녁에 영화를 팡(방)한다.”, “쌍발(上班)시간에 땐스(電視)를 보았다”라는 중국식

조선어가 물밀 듯 들어오고 있는데 어떤 원칙이나 대처가 필요한지도 한번 심사숙고할 과제라고

하겠다.

한어의 영향 아래에서 표현방식이 변화했거나 생성된 예를 조금 더 인용해 본다.

“그의 말 속에 문장이 있다” “게사니 털과 같은 눈”과 같은 표현 방식은 바로 한족 식 표현이며

(p.314) 함박눈이나 큰 눈을 “게사니 같은 눈”이라고 한다면 표현의 문제를 떠나서 결국 한족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관념 구조가 변질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을 간과할 수 없겠다.

한편 “일 없습니다”, “기차표가 긴장합니다.” “결심을 내려야 한다.” “생활이 바쁘다”(같은 책

p.314)라는 표현도 한어에서 영향을 받은 범주인데 이 중에서 뒤의 두 가지 표현은 현재 한국어

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다른 차원의 분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조선 어문학 논문집』(1991, 민족 출판사)에서는 “심중에 수자가 있다.” "그의 말 속에 문장이

있다.“ ”높은 곡조를 부르다.“ "침을 석자씩 흘린다.” 등과 같은 표현을 들고 있는데 한국어와

완전히 의미가 단절된 용법이 있는가 하면, 또 비슷한 방식도 있음을 발견할 수 있으므로 앞에서

말한 현상과 더불어서 함께 연구해볼 과제라고 하겠다.

잘 알려진 바데로 미국의 언어학자 및 인류학자인 Edward Sapir(1884-1939)와 그의 제자

 Benjamin Lee Whorf(1897-1941)가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해서 제창한 사피르-워어프 가설

은 인간의 경험과 사고양식은 언어습관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창하였다. 따라서 언어가 다르면 그

세계관도 다르다고 보는 것이 그 주요 골자이다. 이 가설이 초기에는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언어결정론(linguistic determination)을 형성했으나, 후기에는 언어와 사고가 서로 상호작용

한다는 언어 상대성론(linguistic relativity)으로 약화되기는 하였으나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논리의 상당부분은 오늘날 일반 상식이 되었다고 하겠다.

결국 조선족 언어의 범주를 한국말이나 조선어와 분리하여 하나의 군체로 여기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떠나서도 연변 조선족의 말이 독자적인 영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범이 제 말하면

온다는 식의 표현을 “조조 말을 하면 조조가 온다.”는 식의 중국어 표현은 곤란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하리라고 본다.

한국어와 중국 조선족 언어는 상당히 넓게 표현 방식의 변화와 거리를 두게 되어서 이제는 앞

에서도 말했듯이 뜻의 명확성과 상호 존엄성을 위해서도 새롭게 규범화된 번역의 단계에 도달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피력하였는데, 특별히 상당한 수준을 가진 문학 작품 보다는 신문의

기사나 일반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 잡지에서 그러한 특징이 두드러지는 점을 보게 된다.

아래에 대표적인 문학 작품들과 문제가 되는 신문기사, 그리고 대중 잡지의 짧은 단편들을 그

예로 들면서 약간의 번역 시도까지 곁들여서 번역 과제의 필요, 당위성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먼저 『흑룡강 신문』 올해 4월 23일 기사를 예로 들어본다.

이 기사만으로는 한미간의 관계가 긴장 상태인지 원만하게 된 것인지는 한국인들로서는 판단키

어려운 입장이다.

 

“---계획에 ‘적합하지 않는 내용’이 들어있으며 ‘그중 많은 부분에서 가능하게 주권을 엄중하게

제한하게 된다’는데서 한국은 그 리유를 찾았다.

한미지간의 분기가 더욱 명랑화되고 있다.“

 

한편 “『민간 이야기』”라는 잡지는 “백성들 우리들의 간물”이라는 표제가 말하듯이 일반 대중

을 위한 가벼운 이야기꺼리로 가득하다.

2000년 2호의 “쓰기 어려운 혼인광고”라는 이야기를 보면 내용 전체는 이해가 어렵지 않겠지만

한국의 독자들이 읽으면 내용 보다 생경한 어휘의 선택이나 기이한 문장의 전개에 우선 웃어버릴

것이다. 우스운 이야기를 우습게 여기는 것은 메시지로서 성공이라고 하겠지만 내용과 관계없이

전달문의 문장을 우습게 보는 것은 두 언어 사용의 집단들에게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할 가능성을

상존시킨다. 결국 적절한 수준의 내부 번역이 따라야할 필요성이 제기 된다.

이야기는 어떤 단위에서 과년한 여성 사업 일군을 시집보내고자 상급자가 신문에 낼 원고를 작성

하여 최고 상급자인 소장에게 결재를 받는 과정을 조선족 언어로 풀어나가는 내용이다.

 

“---전략. 이렇게 몇 사람이 함께 모여 적당한 어구를 골라 쓰면서 한동안 바삐 돌아쳐서야 광고

는 비로소 다시 수개되었다.

마 소장은 안경을 걸고 심열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수개하니 많이 좋아졌구만. 그런데 당신은 하나의 문제를 홀시했구만. 광고에서 정치

면모를 제기하지 않았구만. 온정이는 다원인데 이는 바로 우리 소에서 지식분자정책을 잘 락착

했다는 것을 설명한단 말이오>>

중략

<<무슨 말이오, 무슨 말. 이 모든 것은 여러 사람들이 공동히 노력한 결과가 아니겠소. 나는 다만

군중들의 의견을 령활하게 집중했을 뿐이지. 후략.--->>“ (민간 이야기 2002, 2기 pp.4-5).

 

『장백산』 2004년 2기(3-4월호)에 나온 성진숙의 중편소설, “채팅의 불가사의”에서도 어휘나

의미론적인 차이가 있는 표현들이 산견된다. 주제 자체가 인터넷의 시대에 나온 절묘한 내용이기

도 하면서 아울러 번역 과제의 좋은 예문 역할도 하고 있다.

 

인물이 못난 박말순은 남편마저 개혁개방 바람에 로시아로 돈을 벌러가고 혼자 몸으로 민족문화

사업소에서 사업하는, 인물이 몹시 못난 중년 여성이다.

어느 날 사촌 언니의 딸, 은영이 전화를 했다.

“<<이모네 단위 컴퓨터 인터넷에 올랐지요?>>

<<그런데는?>>

<<나 래일 컴퓨터를 좀 쓰고싶어서요>>

<<무슨 일로?>>

<<쌍왕료텐(채팅)할려구요.>>

마침 <<8.1절>>인데다 일요일까지 겸한 쌍휴일인지라 --- (중략).

<<나 배워줄 신심있냐?>>

<<이제부터 실천해 보자요. 먼저 이모의 왕명(網名-아이디)부터 지읍시다. 그래야 왕짠(인터넷)

에 오를 수 있어요.>>

말순은 닉을 “순이”로 한다. 이에 “젊은 놈들은 직통배기로 까박을 주고 무참을 준다.”

그러나 마침내 “남중왕”이라는 쌍왕의 상대를 만난다.

그는 자신을 “해방패 태생에다 보황패 패장이였고 집체호 호장이었다”고 소개한다.

순이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떠뜨리며 얼른 답복을 보냈다.

(후략).

 

이 작품에서는 << >>인용 표시는 주요 어구의 인용표시로만 사용되고 대화의 표시인 “ ”,

따음표의 대용은 아니다. 대화는 별다른 인용부호가 없이 쓰인다.

어휘와 표현방식에 비하면 문법구조상의 변화는 매우 느리게 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장의

앞 부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문법의 변화는 그 군체의 언어체계를 뒤흔드는 것으로서 결국은 그

군체가 보유한 문화체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의 교포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교수를 부를 때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가면 가볍게 이름을 부르

는 분위기로 발전하는데, 그 학생들이 한국으로 하계방학의 문화체험 방문을 하여서 한국인 교수

들을 “아무개 교수님”이라고 경칭과 함께 부르는 언어문화를 배우고 나면 사고방식에서도 많은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 차이는 바로 수평적 사고에서 수직적 사고로의 전환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지금 까지는 모든

사물을 평등과 수평으로만 보아왔으나 아시아 유교적 사고가 아직도 강한 부모의 모국에 와서

모국어를 익히면서 마침내 사고 구조에도 변화가 왔다는 것이다.

중국어에서도 이 경어의 경우에는 한국말과 많은 차이가 난다. 김경일은 몇 해 전에 있었던

"제1회 중국 조선족 장학 퀴즈“에서의 예를 들고 있다.(『중국 조선족 문화론』 p.316)

조선족 학생들의 언어가 반말로 되어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모두 “아무개”하고는 “--입니다”를

생략했다는 것이다.

또한 자기를 낮출 줄 모르고 아무에게나 “저”대신 “나”를 썼다고 한다.

결국 어휘, 표현 방법, 문법 등에서 많은 변이를 보이고 이에 따라 사상이나 사고구조에도 개변이

왔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문예지에서는 한국어와 조심스럽고도 완곡한 차이와 변이를 보이는 노력이 느껴지는 중에서도

또 한편으로는 큰 차이를 보이는 조선족 언어들을 구체적으로 아래에 적시해 보고자 한다.

발표된 작품 년대가 좀 오래되었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본고에서는 이미 화석화된

언술까지도 고찰의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아리랑』 1981년 12월호 “무명용사전” (김학철)

p.99 죽음을 무릅쓰고 자꾸 재껴야한단 말일세

p.110 나는 데면데면하게도

p.115 달빛은 여전히 우련하였다.

p.119 검박한 옷차림에 용모가 강의한 팽덕회 동지의 호매하고도 힘진 말소리는

p.121 즁간을 널빤지 두어쪽으로 간막이를 건너 질렀다.

p.122 20세기의 목란들이 꼬물도 수집어하는 티가 없이

 

같은 책 “배움의 길” (리원길)

p.132 큰 오유를 범하여 성예술학교에서 이 산골학교로 내려먹었던 것이다.

p.134 나는 성애가 무등 답답해났다.

p.141 일솜씨가 얼마나 재구 깐지겠냐

주름진 눈굽

p.152 밑둥이 건뜻 들리운다. 급히 나꾸채니 메기가 왈쯔랑왈쯔랑 이리갔다 저리갔다---.

 

같은 책

p.255 건강에 매우 불리합니다.

p.383 생뚱 같은 질문

 

지금까지 어휘와 문법구조, 그리고 표현방식 등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차이점을 사례를 들어 고찰

하여 보았다. 이러한 사례들은 물론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수많은 구체적 용례들을 범주화 할

수 있겠으나 본고에서는 일단 이 정도로 문제 제기만 하고서 앞으로 이러한 현상들을 어떻게 정리

하여 상호 텍스트의 호환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을 아직은 제안의 수준에서 제시코자

하였다.

 

2) 조선족 언어문자 규범화의 분석과 피드백

중국 조선족 언어문자의 규범화에 관하여서는 그동안 각 시기별로 많은 노력이 경주되어왔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노력의 경과를 재음미, 고찰하여 분석함으로써 앞으로 상호 텍스트의 호환성을

위한 규범화 구축에 피드백 효과를 기대코자한다.

1990년대 후반에 연길과 장춘에서는 “KOREAN 규범문제와 관련한 국제학술토론회”가 열려서

통칭 “우리말”에 대한 대 토론회와 논문집을 통합하여 같은 이름의 논문집도 내어놓았다.

토론회의 표제에 “KOREAN"이라는 영문을 붙여 놓은 점에서도 ”우리말“이 내포하고 있는 오늘

날의 상황논리가 가슴에 와 닿는다.

어쨌든 토론회는 유익하고도 의미심장하여서 한국, 북한, 조선족으로 갈라진 한글의 제반 문제를

난상 토론하여서, 나올 만한 문제는 모두 나왔고 가능하면 이 세 갈래의 말을 통합하는 원대한

희망도 제시되었으며 그러한 목표시점까지 나아가는 도정에서의 여러 문제점을 서로 협의하도록

원칙적인 합의도 도출하였다.

이 소론에서는 그러한 방향으로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현재 당면한 제 문제들이 논의된

쪽에 더 관심을 가지면서 몇 가지 부문을 재음미코자 한다.pp.64-76 참조)

위의 논문집에서 최윤갑은 “중국에서의 조선어 규범화 사업에 대한 회고와 현재 부딪친 문제”

라는 논제로 당의 민족정책 수행의 과정에 따라 순조로웠던 시기와 순탄치 않았던 시기로 점철된

반세기의 노정을 회고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이 규범화 문제는 1977년 이전 시기와 그 이후로

대별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전 시기란 중국 조선족 자체의 규범은 없고 조선(북한)의 조선어

규범을 따른 시기이었다.

우선 어휘 부분을 보면 『조선어 소사전』(1954년)에, 후에는 조선말 사전에 준하였고 철자법도

그런 식이었다.

그러나 1977년 이후 시기에는 평양 중심 언어의 영향은 기본적으로 유지하되 조선족의 독자적

어휘, 조어, 문법 등의 규범을 만들고 심의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중에서 중국에서의 특별한 정황

이 영향을 준 것으로는 상공인-->공상인, 한의-->중의, 등이 예가 될 것이고 우리말스러운

원칙으로는 “사과배”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한편 어려운 한어나 외래어는 쉬운 말로 바뀌었다. 추비-->덧거름, 슬리퍼-->덧신이 그러

하였다. 그리고 조선(북한)이 문화어를 제정하면서 북부방언을 많이 올린 추세에 따라서 지역적

으로 보아서 이와 유사한 어휘를 많이 쓴 조선족 사회에 이러한 방언은 급속도로 정착하기 시작

하였다. 그리고 대응되는 방언의 경우에도 표준어휘가 없으면 그대로 정착이 되고 어감이 조금만

달라도 역시 표준어로 정착이 되었다.

예컨대 가장치기: 가장집물을 마구 들부수기, 손군: (손자, 손녀, 증손, 고손)들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 그러하였다. 또한 강냉이=옥수수, 돌개바람=회오리 바람 등의 예를 들 수 있겠다.

1995년 8월에 열린 제9차 중국 조선어 사정 위원회에서는 “4법”(맞춤법, 표준발음법, 띄어쓰기,

문장부호법)을 일부 수정하고 “한어를 조선글자로 적는 법”을 제정하였는데 4법은 한국과 조선

(북한)이 다같이 쓰는 것은 이 곳에서도 쓰고 한국과 조선(북한)이 똑같이 수정한 부분은 이

곳에서도 수정하고 나머지는 통일이 된 이후로 미루고 이곳에서 쓰는 대로 계속 쓰기로 하였다.

다만 “한어를 조선말로 적는 법”만은 이 곳 나름의 원칙을 정하여 사용한다고 천명하였다.

이 곳의 특징이 다르고 동시에 한어는 이 곳의 공통어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하고 한국의 문물이 물밀 듯이 조선족 사회에 들어오면서 조선어

규범 사업을 밀고 나가던 이 곳의 사정은 나름의 큰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우선 외래어의 범람이다. 아나운서는 방송원에서 다시 되돌아갔고 세미나르라는 러시아어

차용어는 세미나가 되었다.

한자 혼용도 50년대에 취소되었던 것이 『연변일보』, 『흑룡강 신문』, 『일요일 경제주간』

에서 복원이 된 것은 한국 신문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ㄴ 과 ㄹ이 사라지는 간판도 나오고

중국의 인명, 지명 표기도 몇 갈래로 혼돈이 왔다. “코리언 규범화 세미나”에서는 금세기 내에서

통일된 조선어(한국어)를 후대들에게 넘겨줄 것을 열렬히 호소하였다는데 정치적으로나 문화적

으로나 통일의 길은 멀고 언어는 더욱 세 지역에서 별도의 길을 가는 것 같다.

그 외에도 토론회에서 논의된 주제들을 목차에서 주요한 것, 혹은 인상적인 것들을 일별해 보면

현재 한국어와 조선족 언어가 당면한 문제점에 대한 연역적 접근 방책을 모색해 볼 수도 있겠다.

주제 중에는 현행 띄어쓰기에 대한 차이점, 철자법, 문장 부호 규범, 발음 규범, 중국 조선 한국의

문법 비교, 조선말의 자모수와 그 순서 및 이름에 대하여, 한자어 표기문제, 외래어 표기법 등등

의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나름의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러한 내재한 문제점들이 바로 표층구조화 된 것이 우리 한민족 문학의 주제와 텍스트 호환

문제의 해결에 대한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임은 물론이겠다.

전학석이 주필로 공저한『중국 조선족 언어문자 교육사용 상황연구』에는 중국의 여러 민족교육

에 대한 통람을 하면서 조선어 언어문자 교육상황도 심도 있게 분석하였고 나아가서 우리말이

맞고 있는 위기와 기대로 574 페이지에 달하는 연구서를 끝맺고 있다. 이 책에서도 조선어는

북한의 평양 문화어에 뿌리를 둘 수밖에 없었음을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있는데 그 근원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점과 대부분의 이주민들이 북한 지역 사람이었고 1963년경 주은래 총리가

제기한 “조선족 자치주의 언어는 평양에 맞추도록” 한 교시에도 그 큰 영향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p.186)

그러나 1977년을 분수령으로 하여 이제는 한국의 영향을 많이 받기 시작하여서 다양한 사상이나

외부지향적인 경향은 새로운 물고를 터주었다고 하겠으나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또 하나의 혼란

과 도전을 조선족 언어에 미치고 있음도 사실이었다.

“연변 교육학회”에서 2002년에 발간한 “『우리말과 글을 바르게 곱게』”라는 책자의 내용에도

피드백 할 자료들이 많이 있다. 이 책의 메시지는 현행 조선족 언어를 다음 세대들이 점점 더 잘

못 알게 되고 잘 쓰지 않거나 거칠게 쓰게 되는데 이를 바로잡고 나아가서 이 곳의 표준어를 더욱

아름답게 가꾸자는 것이다. 그 구체적 실천 강령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방언을 쓰지 말고 우리 말 표준어를 쓰자고 한다. 물론 이 때의 우리말이란 한국말이라기

보다 이 곳 조선족 군체에서 갈고 닦은 말을 뜻한다.

둘째 한어 식 말을 쓰지 말고 규범적 조선족 말을 쓰자는 것이다. “아이야, 선생이 하라는 작업을

하지 못 했구나”로 말고 “아이구,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못 했구나”로 해야 한다.

셋째, 외국어 어휘를 무조건 섞어 쓰지 말고 한국식 외래어, 예컨대 도마도를 토마토, 휴즈를

퓨즈로 고쳐 쓰는 식도 말아야한다.

넷째, 낡은 옛날 식 말을 말고 현대어를 쓰자.

다섯째, 예절 바른 말을 해야한다. “늙으대기두상, 대갈두 둔하다고야”라는 식은 곤란하고 “할아

버지 좀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해야한다.(p.12)

또한 이 책에서는 한자어의 영향에 대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한어 사회에서 우리말을

제대로 쓰자는 각성이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아울러 일일이 매거할 수 없을 정도로 한어와의 접촉에서 오는 오용, 남용의 예를 범주화하고

있어서 이런 용례집들은 앞으로 내부 번역작업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족 언어와 한국어는 말할 나위도 없이 같은 말이다. 다만 북한에서 문화어라고 하여서 평양

중심의 새로운 규범을 세웠고 중국에서 조선족 언어는 이 규범을 따라야한다고 하는 바람에 차이

가 났다. 물론 그 근저에는 이 곳으로 천입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북쪽 사투리에 익숙한 사람

들이고 그 말들이 후대로 승계된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어의 영향이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가 지금 상당한 정도 서로 가깝게 나아가고

있다는 점인데 그 큰 공은 조선족 사회에 돌려야 할 것 같다.

“우리말과 글을 바르게 곱게”에서는 심지어 한어의 속담에 영향을 받아서 변형된 우리 속담조차

도 바루어야 된다고 한다.

예컨데,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도 아직 늦지 않다.”와 같은 표현이다. 이 말은 원래 “양을 잃고

울타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양은 여러 마리를 기르고 소는 보통 한

마리뿐이었다.

또한 조선족 사이에서 많이 쓰이는 “일없다”라는 표현도 서울에서 온 사람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괜찮습니다.” “별 말씀입니다”라고 해야 옳다고 지적한다. 이 "일 없습니다“라는 표현

은 요즈음 젊은이들 간에 ”얼 없습니다“로 되어버렸다고 한다.

물론 이 소론에서는 이러한 노력의 결과에 대한 미래예측 보다는 현황의 파악데 더 역점을 두고

있지만 이 곳 언어 사용의 사정을 짐작키 위하여 예로 제시했을 따름이다.

문학 평론가 최삼룡은 “『격변기의 문학선택』”이라는 자신의 평론집에서 “무한한 가능성--

우리 소설의 문체혁신”이라는 소제목으로 90년대 후반의 작품 13편을 서술 시각, 주제의식 등

에서 높이 평가하면서 특히 서술 문체의 변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한마디로 예전의 거친 문체

에서 새로운 묘사 기법이 성숙되고 있다는 것을 예문을 구체적으로 들면서 분석하고 있다. 절대적

으로 공감이 가는 부분인데 이런 변화가 한국어의 영향이라고는 언급하지 않았고 그런 시각으로

보기에는 과도한 비약이 있겠으나 적어도 두 표현 사이의 간색이 많이 메꾸어지고 있음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 조선족의 언어생활이 크게 변모하고 있는 격변기를 의식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소론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현 단계에서의 두 언어 사이의 간격을 조사 연구하고

현재 시점에서의 내부 번역과 통역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천명해둔다.

 

나가는 말

이제까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의 조선족 소설 문학의 주제 변천과 언어생활에서의 한국어와

조선족 언어의 차이, 이에 따른 내부 번역의 필요성에 관하여 논의를 전개해 보았다.

자칫 두 곳의 언어를 분리하여 인식하는 자체가 한 핏줄의 분리를 꾀하는 처사라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현존하는 차이를 파악하고 두 언어 군체에 내재하는 규범화 현상을 비교 분석하여

접점을 모색하는 것이 학문적 자세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상호 텍스트 호환의 출발점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문학적 측면과 언어적 측면을 소론에서 함께 다루는 이유는 문학작품의 이해 가운데에서

두 언어에 엄존하는 차이점을 분명히 파악하여서 새로운 통 번역 과정에 충실하게 기여코자함

이다. 번역이 제2의 창작이라는 잠언도 이러한 시도에 대한 이해의 디딤돌이 될 수 있겠다.

이러한 취지에서 파악해본 조선족 문학의 주제 변천사는 복잡다기하고 의미심장하였으나 마침내

기교적, 심미적 모색의 시대에 접어든 바로 그 시기에, 개혁 개방의 물결에 따른 “출국 열”과

 “서울 바람”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서울 바람과 연안 지역으로의 이주 열기도 이제는 그 현장에서

의 심각한 반성이 오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돌아가서 고향을 새롭게 만들고자하는 염원들이 작품

속에 영글고 있다.

이런 문학 주제의 긍정적 변화 속에서 언어 부분도 새로운 작가들을 중심으로 미학적 순치과정을

겪고 있는 현상이 보인다.

이 부분은 한국어의 일방적 영향이라기보다는 21세기의 공통 관심사가 상호 주의적으로 작용

하면서 반성과 모색의 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한어와 영어에 물든 상대의 모습

에서 자신을 돌이켜보며 우리말과 글을 바르고 곱게 다듬자는 작업이 그 하나의 예가 되겠다.

하지만 그런 작업 속에서도 두 지역의 언어차이에 대한 연구와 문학 주제에 대한 분석은 지속적

이어야만 하며 차이의 극복을 위한 쌍방간의 규범화 작업도 따라야 하겠다.

21세기의 도전은 어떤 방향성을 띌는지 알 수 없으며 한 핏줄의 민족사에도 중대한 변화가 예감

된다. 격변의 시대에 기대와 우려를 함께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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