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단편 졸혼 (PEN문학 2020 3-4월호)

원평재 2020. 4. 26. 16:25







졸혼  <<PEN문학>> 153호 원고

                                                              김 유 조

 

충청남도 금산에 있는 초등학교 동기의 초대로 "금오농원"을 찾은 것은 지난 식목일 연휴였다. 청명 한식에 선산을 찾아야 되었지만 금오농원 쪽의 초대를 오래 미루어 온 탓에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체면치례를 우선하였다. 하긴 이 친구의 농원 옆으로 싼값의 포도원이 하나 나와 있다는 귀띔도 속물인 나의 관심을 끈 원인 중의 하나였다.

청계천에서 원래 화공약품상을 하던 나는 컴퓨터 칩에 특수 인쇄를 하는 기술과 약품을 일본에서 조금 일찍 들여온 덕분에 지난 수년간 업계에서는 꽤 뜨는 장사를 해 온 셈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청계천 고가를 뜯고 그 아래 기계 공구상, 화공상, 나 같은 특수 인쇄상 등등을 모두 철거한다는 바람에 솔직히 사업에는 마음이 떴고 어디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나 짓다가 땅값이나 오르면 팔자나 고쳐볼까---, 그런 생각뿐이었다.

여러해 전 남매가 중학교 들어갈 때부터 자녀의 선진교육을 위하여 두 아이를 모두 데리고 미국에 가 있는 마누라는 상기 돌아올 생각이 없다. 체류 기간과 목적을 어겼다는 이유로 이제 한국에 나오면 다시 미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핑계 등으로 귀국은 사실 물 건너 간 상태였다. 아니 그보다 최근에는 아이들이 모두 좋은 대학에 들어갈 준비로 큰돈이 필요하다고 송금 독촉이 빗발치고 있었다. 청계고가도로를 헐면 시에서 보상금으로 돈이 꽤 나올 것을 어찌 LA에서 나보다 먼저 냄새를 맡았나---. 하여간 주말 휴업기간이 시작되자말자 나는 특수 인쇄, 특수 화공 도장 등의 문구가 빛나는 자랑스러운 기술의 본산, "청계 케미컬 프린팅"의 셔터를 힘차게 내리고 금산을 향하여 BMW를 몰았다.

BMW 이야기를 좀 해보자. 군자동 중고차 매매소에 있는 친구의 특별 알선으로 이 고급차가 내 손에 들어온 건 거의 공짜 수준이었다. 압구정동 졸부의 아들이 이 외제차를 산지 며칠도 되지 않아서 젊은 여자를 태우고 가다가 큰 사고를 친 모양이었다. 이게 언론에 소문이 날까봐서 지급으로 팔아치우려는 순간이 내게 포착된 셈이었다. 물론 전액 현금 일시불이라는 조건이었다. 이걸 카 인테리어 허가만 받은 곳에서 찌그러진 데를 수공으로 펴내고 특수 도료로 코팅을 하니 새 차 보다도 더 새 것이 되었다. 청계고가 도로에서 장안동과 군자동 중고차 매매소 까지의 먹이사슬 협동체계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너희가 청계천을 아니?"

청계 고가도로 입구에 드높이 휘날리는 현수막처럼 이 유서 깊은 생활의 터전이 깨부서지는 날, 나는 상판 위에 올라가서 웃통을 벗어 재치고 소리소리 지를 것이다. 그리고 끌려 내려오면 근처의 용금옥이나 곰보집에 가서 펄펄 끓는 국물과 수육 한 사발 놓고 쐬주 한 병 걸친 후에 청계교각을 부여안고 대성통곡할 것이다. 이 한 몸 던진다는 쇼를 하면 보상비가 2-30퍼센트는 다시 또 더 오를 것이다. 살신성인의 쇼 장에 맨 먼저 찾아와주는 놈들은 내가 회장을 맡고 있는 우리 화공 약품상 조합의 이사들일 것이고 다음은 군자동 인근 캬바레의 늙은 댄서 박 양, 이어서 글쎄, "포토 21세기"의 카메라 우먼 박 기자일까, 아니면 광고회사 "날 뫼"의 카피라이터, 미즈 P일까---. 세상사 외롭지만 까놓고 볼 때 몸을 나눈 여인들 말고는 누가 진정 함께 울어주랴.

나르는 양탄자라고 어느 광고에서 멘트가 나왔던 BMW는 고속도로에 나오니 본 실력이 나왔다. 이 녀석은 착 가라앉아서 벌써 목천을 지나고 있었다. 독립기념관이라는 도로 표지를 보니 유관순 누나가 아니라 이제는 유관순 할머니가 더 옳지 않으냐는 어떤 주장이 생각났고 문득 마누라의 성씨도 같은 유 씨인데 고향이 저 산 너머 배방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동네도 혁신도시의 덕을 좀 보는 모양인데 이로 인한 처가의 유산 싸움이 눈에 보이는 듯하였다.

아내와 떨어져 살며 알게 된 늙은 댄서 박 양은 무조건 복종 형인데 날 때부터 그랬을까, 아니면 세파에 시달리고 마침내 닳고 닳아서 그리되었는가, 카메라 우먼 이 기자는 포커페이스로 유명하다. 약간 슬픈 얼굴에 표정이 없지만 촌철살인 하는 기지로 사람을 순식간에 정신 못 차리도록 웃긴다. 그녀가 찍어대는 사진도 내용상의 명암이 독특하고 짧게 달아놓는 제목이나 설명을 담은 캡션은 더 일품이다. 남자관계로 크게 상처 받은 일이 있고부터 결혼과는 담을 쌓고 사는 여자이며 나 같은 얼치기 중소 상공인들이 그녀의 밥이었다. 한편 카피라이터 미즈 P는 항상 에피큐리앙, 즉 쾌락주의자이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차가운 뱀 한마리가 있음을 나는 안다.

차는 마침내 대전을 지나 통영 쪽으로 나가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래 작가선생이나 태우고 올 걸---. 내 친구와의 약속에 너무 집착했나, 소문을 경계했던가? 왜 그런 재미나는 생각을 못했을까---. 치밀하지 못했던 일정을 자책하는데 금산 IC가 나타났다. 금산도 이제는 중국 인삼에 눌려서 맥을 못 춘다는 신문 기사 생각이 났지만 지방의 중소도시 치고는 부티 나는 동네처럼 보였다.

친구의 농원은 이곳에서도 다시 험한 길을 거쳐 20분을 달려가서야 나타났다. 아니 시커먼 얼굴에 밀집모자를 쓴 내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서 다시 한 오 분 쯤 차의 밑바닥이 아슬아슬하게 달락 말락 하는 농로를 안내하고서야 "금오 농원"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먼 듯 가까운 듯 거리를 가늠하기 힘든 곳에 금산 지구국이 무슨 SF 영화 장면처럼 갑자기 낯선 사람의 시야를 당황스럽게 하며 나타났다.

“아니 지국국은 산꼭대기나 중턱에 있는 줄 알았더니 동네 바닥에 있네?"

내가 엉뚱하게 따졌다.

"모르면 가만있어. 여기는 전 지역이 해발 300미터 이상이야. 내가 노상 자랑하는 것이 반딧불이 아닌가. 7-8월이면 반딧불이가 하늘을 덮어. 얼마나 청정지역인가 말이야!"

그는 내무부의 국장이 될 때까지 오랫동안 정부에서 일하며 도시 생활을 향유했던 사람이다. 배도 나올 만큼 나왔었고 얼굴에도 살이 많이 붙어있었다. 그러던 그가 계급정년에 걸려 퇴임후 귀농을 한다더니 그 사이에 체중은 본인의 말로 10킬로 이상 빠졌고 온 몸이 근육질로 날씬하게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밀집모자를 쓴 얼굴 밑으로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잔주름이 수도 없이 많았고 악수를 하며 꽉 쥔 손도 거칠다는 표현의 한계를 넘고 있었다. 말하자면 완전 시골 농투서니가 따로 없었다.

"금오 농원이라니 고향 생각 했구먼?"

내가 물었다.

"그래, 고향의 금오산에서 따왔지. 그래도 난 고향에는 등 돌렸다."

"? 국회의원 공천을 못 따서?"

내무부의 경력이 국회의원 같은 그런 지위를 탐하게끔 했을 터였다.

"아니야, 예전에 선친의 농토가 꽤 넓었는데 공단이 들어서며 모두 수용되었잖아. 당시 시가로는 논밭 값을 다 주었는데 그 돈 받아서 대토를 하자니 주변 땅값은 이미 엄청 오른 거야. 땅도 잃고 조금 받은 돈은 경험 없이 이것저것 해보다 다 날렸지. 그래서 이 골짜기에 들어와서 이 모양으로 살지. 이제 고향 근처에도 가기 싫어---."

 

이야기를 나누는데 앞쪽 밭과 야산 사이로 시골 똥개 정도의 동물이 날렵하게 뛰었다.

"노루다!" 내가 조금 자신 없는 소리를 질렀다.

", 고라니구나. 저런 동물이 여긴 지천이야."

내 나라에도 야생 동물이 있구나. 금산 지구국이 있을만한 곳이구나---. 내가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살피니 그가 사는 모양은 어쩐지 나와 비슷한 데가 있었다. 아파트에 사는 나와 컨테이너 박스 두개를 붙여놓고 사는 그의 생활터전은 외견상 전혀 닮은꼴이 없었는데도 무언가 근사점이 있었다.

"부인은 자주 오시고?"

내가 물었다.

", 한주에 한번은 오지. 밑반찬을 만들어서---. 자고 가지는 않지만---"

그의 어정쩡한 대답으로 미루어 한주에 한번이라는 말은 믿을만한 수치가 아닌듯하였다. 그래, 홀아비 냄새---, 이게 그와 나의 닮은 점이었구나. 그의 농원은 한 만평가량 되었는데 포도원이 천 평, 약간의 논, 그리고 나머지는 밭과 야산이었다. 비닐하우스도 하나 지어놓고 채소를 기르고 있었다.

"수입은 어때?"

"말말아. 농촌에서 돈 나올 일이 어디 있나. 연금 받아서 이런데 넣으면 마누라 굶겨. 난 현직 때 비자금 조금 있던 거 마누라 몰래 집어넣고 모든 일은 손수하지. 저 비닐하우스 모양보라구, 순 엉터리 수준이지. 나무들은 예전에 알던 사람들한테서 묘목을 얻어다 심거나 죽는다고 내다버린 것들을 여기 심은 거야. 희한하게도 다 죽어가던 나무들도 여기 오면 힘차게 살아나지. 나는 이런 나무들하고 연애하며 살아, 하하하."

그가 시원하게 웃었고 나도 그저 농담이거니 하며 따라 웃었다.

그의 눈에서 약간의 광채가 났지만 나는 무시하였다. 그가 농원을 하며 가끔 서울에 와서 친구들에게 내세운 자랑은 "청정 유기농"이었다. 유기농 소채를 재배하니 계약을 하고 사먹어라, 주기적으로 배송은 책임지겠다---, 그런 제안도 많이 했었다. 모두들 긍정은 하면서도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값도 문제였지만 주기적으로 채소를 공급받는다는 그 체계가 도시의 소시민들에게는 부담스러운 틀이었다. 먹고 싶을 때 아무거나 조금 사다먹거나 말거나---, 외식도 해야하고---, 그래 우린 송충이인데 솔잎이나 조금 갉아먹지---, 분위기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결국 그는 무료로 유기농산물들을 부정기적으로 동기들에게 나누어주며 흡족해 하더니 그나마 최근에는 시들해지고 말았었다. 정작 현지에서 그의 농원을 보니 그가 역점을 두는 것은 죽은 나무 살리는 일 같았다. 별별 수종의 나무들이 봄빛 아래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데, 이건 무슨 장관 집 정원수로 있던 거며 이건 아파트 재개발 단지에서 버린 것, 저건 국도를 내며 파헤친 것들---, 나무의 종류만도 100여 가지가 훨씬 넘어섰다고 했다.

아직은 병이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의 나무들이 잔뜩 허덕거리고 있었으나 이제 해가 가면 모두 힘차게 숨을 쉴 거라며 그는 나무들을 쓰다듬었다. 정말 틀림없이 이 병든 나무들은 마침내 거목으로 성장하리라는 느낌을 문외한인 나도 느낄 수 있었다.

"골프 좀 칠까?"

그가 또 엉뚱한 소리를 하였다.

알고 보니 그는 산자락 계곡을 병풍삼아서 비거리가 250야드쯤 되는 훌륭한 자연 골프 연습장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물은 쳐놓지 않았으나 공이 협곡에서 어디로 내빼겠는가,  공은 서울의 연습장 같은 곳에서 낡은 것을 교체할 때 무료로 잔뜩 얻어왔다고 한다.

 

나는 아이언 5번을 잡고 그는 3번을 잡았다. 우리는 잡초 위에 공을 놓고 힘차게 스윙을 하였다. 그의 자세는 좀 우스웠으나 비거리는 대단한 장타였다. 한 박스를 나누어 치고 나서 우리는 공을 주우러 골짜기를 함께 올랐다. 그는 어디쯤에 공이 숨어있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계란 줍듯이, 혹은 살아있는 새의 알을 줍듯이 바구니에 공을 주워 담았다.

", 고사리가 벌써 나왔네!"

그가 탄성을 발하며 고사리를 꺾어서 바구니에 담았다.

한 보름가량 예년에 비해 일찍 나왔다는 것이다.

"올 봄이 유난히 이르네---, 그리고 고사리는 이렇게 꺾이는 부분부터 먹는 거야. 이거 가져가서 먹어봐."

"홀아비가 무슨 고사리 요리야---."

그러면서도 이건 늙은 댄서 박 양 차지구나, 나는 곧 배송 처를 정하였다.

"이건 당귀야, 뜯어 줄께. 서울의 대패 쌈밥집 체인에서 먹는 것 보다는 향이 훨씬 다를 거야."  

"고기는 있냐? 내가 참치 캔 한 박스는 사왔다만---"

"족발 삶아놓은 게 있으니 그거면 되잖아."

우리는 손을 씻고 컨테이너 박스로 들어갔다. 오곡밥과 된장과 김치, 이상하게 삶아놓은 딱딱한 돼지 족발, 그리고 당귀나물이 전부였다.

"농군이 되면 반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지. 술은 뭘루 할까? 맥주를 준비했는데---."

"설마 내가 맥주 마시러 예까지 왔을까, 막걸리 없어?"

"요즘은 시골도 일하고 나서는 모두 맥주를 마시지."

그가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며 말했다.

"전기 값이 여긴 싸지?"

내가 묻자 농가 전기료는 도시의 반값이라고 그가 알려주었다.

"이 김치도 유기농 배추로 담았겠네?"

"물론이지, 유기농 채소는 김치로만 먹어도 양기가 세진다구---."

막걸리가 들어가자 입이 헤퍼진 두 남자의 이야기의 행로는 역시 그 곳의 그것이었다.

"내 마누라는 미국 있지만 난 도시 생활로 섹스 해결이 쉬워.. 자네는 유기농 배추 먹고 힘이 불끈한다지만 어떻게 견디나?"

"내 해결책은 독특하지만 그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그보다 내가 본래 농민 운동을 했잖아. 그 때 이름난 분들을 많이 알았지---."

유명한 "A"도 그때 교분이 생겼는데 이 양반이 정력이 절륜했다는 것이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사고를 많이 쳤지. 어릴 때 부잣집의 부모님이 늦게 본 이 아드님에게 보신을 많이 시킨 모양인데 그게 이 양반을 섹스 부분에 대해서만은 처신이 어렵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고 하더군. 난 남자로서 그 양반 이해는 해. 하지만 아픈 부인을 옆방에 두고 소리를 질러가며 방사를 한 것은 좀 심했다싶어. 당시 중앙정보부에서도 이 반체제 인사의 그 약점을 알고 있었지만 배꼽 아래는 문제 삼지 않는다는 당시 최고 지도자의 원칙으로 겨우 넘어갔다더군, 하하하."

우리는 유쾌하게 함께 웃었다.

"그 때 함께 일한 B라는 분이 있었는데 이분은 그런 윤리를 이해하지 못했어. 그래서 나이 52세에 자기 부인과 졸혼식(卒婚式)을 했다는 것 아니겠어."

 

"졸혼식?"

"그렇지. 우리가 섹스를 하는 것은 자손을 낳기 위한 것 아닌가. 그러니까 젊을 때는 그 짓을 열심히 해도 된다, 그러나 이제 자녀가 생기고 어느 정도 장성하면 순 쾌락을 추구하는 그 짓은 그만두어야한다, 마누라와 남편의 관계도 오누이 수준으로 돌리자. 죽는 날 까지 그 짓은 하지 말자, 인간이 금수와 다른 점이 무언가---, A옹은 섹스에 그렇도록 몰두했지만 나는 졸혼식이다, 대충 이런 철학이었지."

"노익장의 A옹이나 졸혼식의 B선생이나 모두 대단한 어른들이셨구만---"

내가 어정쩡하게 입맛을 다셨다.

"참는 쪽이 더 위대하다고 나는 믿어."

한 때 절륜한 정력을 과시했고 연애께나 드날렸던 그가 확신을 가진 어조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어찌 자네 같은 절륜의 사나이가 유기농까지 상식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가?"

내가 농담을 가장하고 궁금증을 다시 확대시켰다.

"불가나 유가나 기독교의 금제(禁制)와 극기에 관한 경전 부분들을 뽑아서 매일 일정시간 읽고 묵상을 하지."

", 이 친구야 말로 졸혼식을 하고 말았네," 나는 속으로 짐작하였으나 더 이상 말로 확인 할 수는 없었다.

"난 요즘 나무와 연애를 해. 전에는 동물적인 사랑을 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식물적인 사랑을 한단 말이지. 저 아름다운 나무들과 사랑에 빠지고 나니 싱싱하게 물이 오르는 소리와 새순이나 꽃잎이 돋아나는 소리도 내 귀에는 확실히 들려. 인간은 배신도 하고 언약도 어기지만 식물은 정직해. 내가 준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몇 배로 나를 기쁘게 해주지. 나는 새벽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나무들과 사랑을 하고 대화를 해. 저 싱싱한 나무들의 모습을 보고나서 내 생각을 자네도 다시 음미해 보라구---"

서산에는 어느덧 해가 뉘엿거렸으나 나는 취기로 인하여 차를 몰 계제가 못되어서 잠깐 컨테이너 박스에 몸을 눕혔다가 새벽에 출발을 하기로 작정하였다.

그의 농장 옆에 붙어 있는 천여 평 포도원은 그의 농장과 너무 비교가 되어서 나는 구입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수도 이전과 함께 투기억제 지역으로 묶여서 매매도 쉽지 않았다.

"가 등기 같은걸 쳐도 된다만---"

그가 권유하였다.

"난 현찰 박치기 장사꾼이잖아. 그런 식으로 복잡하게 하지는 않겠어."

나는 농사지을 뜻을 깨끗이 접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나들이는 소득이 있는 셈이었다. 아니 더 큰 선물이 생겼다고나 할까. 미국 사는 아내와의 이산가족 상태를 항상 내 인생의 어두운 면, 실패의 국면으로만 여겼는데 ‘졸혼식’이라고 하는 위대한 생활철학을 알게 되었지 않은가---.

나는 유쾌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오줌이 마려워서 잠이 깼다. 계절은 늦봄이었는데도 과연 그의 말대로 뼛속까지 냉기가 오싹거렸다. 전기장판이 시골의 온돌처럼 느껴졌지만 이불 위쪽은 한대지방이었다. 옆에 같이 누웠던 친구는 모습이 없었는데 무슨 이상한 물체가 흔들흔들 방안을 오락거리는 듯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아마도 헛 게 보였는지도 몰랐다. 나는 이래저래 오싹한 기분을 느끼며 간이 화장실에 가기 위하여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거기 조금 떨어진 곳에 내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김에 헛기침을 하려다가 나는 숨을 죽였다. 그가 싱싱한 나무를 부여안고 몸을 떨고 있는 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참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자네 뭘 하고 있나?"

내가 겁이 나서 마침내 큰소리로 물었다.

"아니 이 가시나가 어디로 갔지?"

그가 아직도 꿈에서 깨지 않은 듯한 몽롱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이내 나의 모습을 보고 계면쩍게 웃었다.

"가시나라면 처녀란 말인데 이 바닥에 처녀는 무슨 처녀야?"

내가 그를 흔들어 깨우듯이 또 크게 소릴 질렀다. 멀리 금산 지구국에서 내뿜는 불빛이 우리의 그림자를 길게 병풍 같은 산록으로 끌고 갔다.

"내가 이거 가끔 몽유병 같은걸 느껴. 자다 보면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있거든. 나가보면 매번 얼굴이나 몸매가 바뀌는 젊은 여자가 기다리고 있어. 내가 껴안고 한참 재미를 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서 살펴보면 여기 나무 중의 하나를 껴안고 있단 말이야---."

"이 사람아! 나도 조금 전 방안에서 이상한 물체가 흔들거리다가 사라지는걸 보았어. 여기 터가 억세게 센 가---? 아니 이곳이 도대체 전에 뭘 하던 곳인지는 알아봤어?"

"무연분묘가 좀 있었지. 개간이 되면서 일부는 읍에서 화장처리를 했고 또 봉분이 아주 미미한 것은 그냥 뒀는데 그 뫼 뿌리 자락에 우리가 잤던 컨테이너를 얹었지. 원래 예로부터 양택이나 음택이나 양지바르고 입지가 좋은 데를 찾잖아---."

"아하! 짐작이 가는군. 나무의 정령과 귀신이 한 통속으로 붙었구나."

나는 그가 껴안고 있었던 나무에다가 시원하게 오줌을 누면서 그의 말에 대꾸를 했다.

“마누라가 여기 자주 안 오는 데에도 사연이 있어.

“왜? 나는 자네나 부인이나 졸혼 사상을 전수 받았나했지.

“그게 어디 아무나 할 일인가. 사실은 마누라가 여기에 와서 하루 밤을 처음 자는데 죽을 번했어.

“어떻게?

한 밤중에 가위가 눌려서 숨을 못 쉬는 것이야. 내가 인공호흡을 시키고 동치미를 먹이고 한바탕 난리를 쳐서 깨어났지. 그때가 또 지금처럼 이른 봄이었던가싶네. 환절기에 난방이 문제인가 싶어서 그 후에 손을 좀 보기도 했지.

“아이구, 손 본 게 저런 건가, 하하하.

“하긴 그래봤자 지금 같은 꼴이지만 처음에는 더 형편없었지. 그런데 얼마 후에 또 와서 하루 밤을 자는데 밤중에 소피를 보러나갔다가 귀신들한테 홀려서 또 죽을 번 한 거야.

“어떻게?

“온 몸이 마비가 오고 헛것을 보며 막 소리를 질러요. 저 나무들 사이에서 완전히 정신을 잃었지. 그리고 다음날 보따리를 싸고는 다시는 오지 않는 것이야. 답답하면 나보고 나오라는데 나는 나갈 생각이 없고. 결국 졸혼이 된 건데 이제는 이혼을 할지도 모르겠네. 사람이 정이 떨어지면 피차 살수가 없지. 아이들이 말려도 소용이 없어. 나보고는 저 나무귀신들하고 외도를 하고 바람이 났다는 거야. 맞아. 이 풍진 세상에 나무만큼 정붙이고 살 상대도 없어. 나는 홀로고 솔로야.

"자네 김시습의 금오신화(烏神話) 이야기 들어봤지?"

", 그 처녀 귀신들이 씨 나락 까먹는 이야기 말이지?"

아이구 이 농사꾼도 고등교육은 제대로 받았네, 나는 속으로 찬탄했다.

 

"하여간 자네 농원도 우리 고향의 명산, 금오산을 따서 금오농원(烏農園)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이게 금오신화와 또 관련을 맺게 된 것 같네. 자네나 나나 고향은 외면하는 성품의 사람들인데 또 운명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이런 말씀이야. 하여간 이 컨테이너 박스가 처녀귀신 뫼 뿌리에 걸렸나보다. 아마도 다리 가랑이 한가운데 일는지도 모르겠네, 그래서 처녀귀신들이 요동을 치는 거야. 하하하. 하지만 크게 걱정은 말게. 자네가 살려놓은 저 수많은 나무들이 자넬 지킬 거야. 나는 타고 왔던 BMW가 조용히 코를 골고 있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발에 걸리는 돌 하나를 킥 스텝으로 툭 차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 여기를 나서면 얼른 서부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부터 해야겠다. 여기서 지금하자니 휴대폰 배터리가 기이하게도 하룻밤 사이에 모두 방전이 되었네. 그래 처녀 귀신한테 나도 에너지를 조금 공양한 모양이군. 나도 이제는 멋대로 아내를 경멸만 할 것이 아니라 오랜만에 빨리 LA 국제공항으로 가서 기하학적으로 세워져 있는 그 추억의 공항 탑 아래로 가야지. 그리고 돈 때문에라도 도망가진 않고 있는 아내를 서양식으로 힘껏 얼싸안고 졸혼이 아니라 해후를 해야겠다. 모두 귀신처럼 체온도 없이 불쌍하게 살고 있는 오늘날 이 황량한 이승에서 그나마 사람의 체온이라도 나누어야하지 않겠는 가---.

 

*필자 약력; 건국대 명예교수(부총장 역임), 서초문인협회 명예회장, 국제펜 한국본부 국제교류위원장, 미국소설학회 회장 역임, 한국현대시인협회 국제문화위원장, 서초문화원 전문위원, 여행문화 주간, 장편소설, 소설집, 시집 평론집등 다수 발간

*이메일 주소; mokwon100@hanmail.net 김유조   서초구 사임당로 137 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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