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짧은 소설) 밴조 칼라마주 미시간

원평재 2019. 4. 21. 20:50








(짧은 소설) 밴조 칼라마주 미시간

                                                  김 유 조

음료는 무얼로 하실까요?”

금발의 젊은 여자종업원이 물었다. 방학을 맞아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 같았다. 두 남자는 주류 리스트를 펼쳐보았다.

형님은 맥주로 하시지요?”

그러지, 아 여기 두 개의 심장을 가진 강이라는 수제

맥주가 있네, Two Hearted River 라는구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헤밍웨이가 쓴 단편에 큰 두 개의 심장을 가진 강이라는 게

있네. The Big Two Hearted River라고, 오늘 횡재했네.

뜻밖에도.“

참 잘 되었네요. 저는 미시간 사람이니까 UPA로 하지요.

Upper Peninsula Ale 이라고 북미시간 수제맥주라는 군요.

형수님은 무얼로 하시지요? 여보, 당신은 와인 쪽일 테고.”

초로의 두 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을 잔으로 청했다.

두개의 심장을 가진 강이라는 이름의 강이 근처에 있나요?”

형이 아가씨에게 물었다.

여기서 멀지는 않지만 강물은 수피어리어호로 들어가지요.”

맞아. 생각이 났어. 사실은 내가 40년 전 답사 때에도

그쪽으로는 못 가보았네.”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두 형제는 다시 헤밍웨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부인들은 다른 주제로 비켜갔다.

내가 랜싱의 미시간 주립대학에 혼자 연구교수로 왔을 때만

해도 조교수 신분으로 대단찮은 논문 쓰고 연구한다고 정신이

없었고 자네도 뉴욕과 시카고에서 의사 수련을 마치고

미시간에 막 정착하던 때라서 여유가 없었지. 그때 나는

한국에서 온 영문과 대학원생들과 헤밍웨이 족적을 따라 답사

트레일을 했는데 싸구려 모텔만 찾고 고물 올스모빌을 타고

다니다가 라디에이터에 이상이 생겨서 껌으로 막고 다녔다니까,

하하하.”

저희는 40년을 미시간에 살며 북미시간 끝까지도 올라가

보았지만 헤밍웨이 트레일 같은 건 생각도 못했네요. 이번에도

형님과 형수님이 미동부로 자녀방문을 오셨다가 이리로

들리시겠다기에 단순히 미시간 여행만 계획하였지요. 사실

무얼 보여드릴 것도 마땅치 않아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헤밍웨이

트레일을 제안해 주셔서 고민이 사라졌다니까요.”

고맙네, 사실은 내 제안이 부담만 준 것인지도 몰라. 우리가

모두 정년퇴임을 하고 일선에서 물러섰다는 사실이 축복

이면서도 또한 허무감, 상실감으로 와 닿는 것은 나만의

감회는 아닐 것일세. 그래서 피붙이를 찾게 되는 게지.”

그럼요, 저도 평생 의사로 있다가 그만두고 나오면서는

벼라 별 거창한 계획을 치밀하게 다 짰지요. 요일별, 심지어

시간대별로도 다 세워 보았지만 일 년의 반쯤이 지나고 나니

모두 도로아미타불이더군요.”

그럼 대책은 뭔가?”

거의 매일 골프지요 하하하. 건강에 좋겠다고들도 말하지만

너무 과한 운동이라 체중만 빠지더라구요. 여기는 한국처럼

중간에 먹고 마시는 그늘 집 같은데도 별로 없고 마치고

나서도 그냥 헤어지지요, 하하하.”

자네 집이 있는 디트로이트에서 페토스키를 거쳐 엊그제

부터 우리가 묵는 호텔까지 거의 열 시간을 올라왔네.

헤밍웨이가 스물 두 살 될 때까지 아버지를 따라 가족들과

시카고에서 미시간 호를 건너와 여름 한철을 지낸 이곳까지

말이지.”

그래도 중간에 많이 들렀잖아요. 헤밍웨이가 나중에 글을

쓰며 머물렀던 호톤베이에 있는 레드팍스 인을 들렀던 것도

인상적이었지요. 한때 여관이었지만 지금은 헤밍웨이

서적과 기념품을 주로 파는 서점으로 바뀌었고 별채는

카페로 변신했고요. 모두 추억을 팔아먹고 사는 셈인가요.”

그때 마침 전채가 나오고 이어 메인요리가 나와서 그들의

대화는 잠시 멈추었다.

형님, 지금 들고 계신 맥주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는 그

두 개의 심장과 관련한 단편 소설 이야기 좀 하시죠.”

그래, 그래요. 우리 모두가 살아온 삶이란 모두 고단한

과정이지요. 헤밍웨이의 단편에 나오는 주인공은 모두

닉 애덤스라는 이름인데 항상 허무의 질곡을 겪는

젊은이였어요. 아마도 10대 말에 제일차 세계대전에 뛰어

들었다가 박격포탄을 맞아서 6개월간이나 입원치료하고

제대를 한 작가의 트라우마가 평생을 지배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평생 우울증이나 허무 속에서만 허우적댄 건 아니고

단편 두 심장을 가진 강에서도 일종의 회복, 힐링의 과정을

읽을 수 있지요. 닉은 처음 기차를 타고 미시간

호반의 이름 없는 강가에 도착하는데 마을은 얼마 전의

화재로 모두 불타버리고 잿빛 메뚜기도 강둑을 제대로

올라가지 못하며 허우적대지요. 그 장면은 바로 닉의

마음의 황폐함을 나타내 줍니다. 작가는 물론 그런 설명을

하지는 않고 다만 일종의 객관적 상관물로 그의 마음을

그려낼 뿐입니다. 작가가 파리 시절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세잔느의 화풍처럼 전면 일부만 자세히 그리고 후면 전체는

그냥 흐리게 두어서 전체를 설명하는 방식이랄까, 혹은

빙산이론이라고 하여서 빙산은 1/8만 수면에 나타나고

나머지는 감추어져있다는 서술론을 작가는 스스로

말하고 있어요. 하여간 닉은 고장 나고 너덜너덜하게 헤진

마음으로 큰 두 개의 심장을 가진 강으로 들어오지만 마침내

하루 밤을 강가에서 지낸 후 강심으로 들어와 송어 두 마리를

잡으며 힐링의 경지를 맛보게 되지요. 미시간 주는 새로

퓨어 미시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던데 바로 그런

자연 속, 강물 속에서 닉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는

의미심장함이 담긴 소설인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다시 강단에 돌아간 느낌이 드네.“

아즈바님 강의 들으니 퓨어 미시간 사람으로 사는 데에

새삼 자부심을 느끼네요.”

, 자연인의 승리를 만끽하셔도 좋습니다. 헤밍웨이는

특히 자연은 선, 문명은 악이라는 이분법을 가졌지요.

그런데 닥터, 내일 디트로이트로 돌아갈 때에는 바로

내려가지 말고 이등변 삼각형의 두 변이랄까, 좀 돌아서

갔으면 좋겠네.”

어디를 들릴까요? 아무데라도 좋습니다만.”

좀 뚱딴지 같이 들릴지 모르겠으나 미시간 서쪽의

칼라마주를 잠깐 들렀다갔으면 싶네.”

, 화이자 공장이 있던 곳이지요. 요즘 화이자는 철수

했지만 오히려 제약과 생명과학 회사들이 그 건물과

공장에 들어와서 크게 일자리를 만들어놓은 동네이지요.”

생화학 교수를 지낸 제수의 답변이었다.

형님, 거긴 왜요? 가만있자. 곧 호텔로 돌아가서 불꽃

놀이를 봐야 해요. 칼라마주 이야기는 내일 가면서 듣죠.”

돌아오면서 그들은 편의점에서 맥주를 한 팩 샀다. 불꽃

놀이를 보면서 한잔씩 더 하자는 뜻이었다. 이름이 알려진

상표 대신에 남미 어디에서 들어온 익숙지 않은 종류였다.

그날 밤의 불꽃놀이는 화려하여서 헤밍웨이 트레일의

마무리를 장식하였으나 두 형제가 마신 오렌지 맛이

첨가된 맥주는 뒷맛이 영 개운치 않았다.

마침내 트레일의 끝 날이 오고, 돌아가는 길은 다소 단조

로웠으며 이등변 삼각형의 두 변은 길었다.

길이 멀어서 좀 미안하고 심심하네. 내가 그쪽으로 둘러

가자는 경위를 이야기해 보리다. 1968년에 푸에블로

호라는 미국의 정보 함이 북한에 납치되었다네. 함장은

부커 중령이었고. 한 일 년간의 고초 끝에 60여명 선원

들은 석방이 되는데 당시 그들이 가장 고통스러웠다던

술회가 미국신문에 났어요. 그들이 화장실에 가야할 때는

반드시 한국말로 허락을 받아야했다는군. 말하자면

변소 갈랍니다였는데 그들이 들러댄 말은 밴조 칼라마주

미시간이었다는군. 그때는 무슨 말인가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미시간 주의 소도시 칼라마주라는

지명이더라고. 그래서 얘까지 온 김에 한번 가보고 싶은

충동이 났다오.”

그들은 피곤한 몸이 되어 칼라마주로 들어섰다. 크지 않은

소도시임에도 웨스턴 미시간 대학교의 위용은 대단하였다.

또한 그 옆에 함께 선 칼라마주 칼리지도 아담하고 예뻤다.

감상이 생기를 되살리고는 있었으나 두 형제는 대학

캠퍼스에서 무언가를 찾으며 급히 서두르는 듯 하였다.

남자분들, 왜 이리 서두르세요?”

부인들이 물었다.

밴조 칼라마주 미시간

형제의 대답이었다. 어제 밤 오렌지 맛 맥주 탓인 듯하였다.

 

약력: 2004년 문학마을 등단, 소설집 3(<<하노이 하롱베이>>,

<<세종대왕 밀릉>>, <<양초와 DNA>>), 평론집 1, 시집

3(2권 공저), 헤밍웨이 평전, 스타인벡 평전, 영미단편소설

연구, 영국문학사, 학술 및 번역서 다수, 학술원 우수 도서상,

헤밍웨이 문학상, 문학마을 문학대상, 서초문학 소설대상,

계간문예 상상탐구 소설대상, 문단활동; 서초문협회장,

국제펜 국제교류위원장, 한국현대시인협회 국제문화 위원장,

한국현대작가연대 부이사장

 

주소; 서울 서초구 서운로 221 (래미안 서초 스위트 apt)

101-2401

전화; 010-4523-3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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