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리야, 옛땅! 연변과 만주 벌판

싱룽 양로원.

원평재 2005. 7. 15. 06:12
 

 한 학기의 강의가 끝났습니다.

 


 

“발해” 쪽으로 시간과 공간 여행을 떠납니다.

그래도 “조선족 문학”에 대한 연재는 아래에 계속됩니다.

 

어쨌든 오늘부터 “3박 4일간의 발해 사 탐색”을 시작하니 며칠간 사랑방 접반은

접어둡니다.

아침에 나가서 9시 2분 돈화행 기차를 탑니다.

저녁 나절에 배낭도 챙겼습니다.

 

 

이 방면에 역사학자적 안목을 갖고 있는 Y일보의 박 기자와 동행을 하게 되어서

매사에 든든하고 변증법적 결론도 많이 내리리라 기대합니다.

 

이번 여정은 연길에서 “돈화(발해의 첫 도읍지)”를 거쳐 “영안지역 경박호”의 운치와

역사적 배경을 살피고 마침내 “목단강”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사이에 연길의 중견 문호 류연산 인민대회 위원이 소개해준 목단강시의 문인

림승환 선생이 경박호까지 오셔서 우리를 안내해 주기로 되었습니다.

모두 박 기자의 주선입니다.

 


 

박 기자는 “연변 과학기술 대학”에서 리서치 하고 있는 이번 학기 과목이 끝나서

홀가분하고, 저도 한 학기 강의를 마치고 성적 평가 서류도 어제 제출한 상태여서

또한 자유롭습니다.

다만 이러다보니 이 곳 정든 땅 연변을 떠날 카운트 다운이 마침내 시작된듯하여

짙은 아쉬움이 가슴 한켠, 아니 온 가슴에서 뭉클 솟아나기 시작합니다.

정든 학생들과 또 정든 교수님들과 정든 연구실과의 작별을 생각하면 위의 표현도

부족합니다---. 

 


(과기대 만리장성에 소장, 전시된 보물 일부입니다.)

 

조선족 문학 연재도 이 곳을 떠나기 전에 서둘러 마쳐야겠습니다.

6월 30일부터는 중등학교 동기생 21명이 백두산을 찾아오면서 여기 연길을 길섶으로

깔고 지나가는데 언필칭 저를 위문 공연한답니다.

 

또한 당분간 윤동주 시인 관련 행사도 많고(7월 2일 홍장학의 강연, 17일의 문학상

시상식 말고도 생가에서의 행사들이 있습니다), 7월 4일에서 6일까지는 이 곳 대학의

연례 “국제 심포지엄”이 있어서 첫날에는 저도 졸문을 발표하고,

둘째 날에는 인문사회과학 분과 발표장에서 좌장도 해야 합니다.

6일 오후부터는 심포지엄 참가자들과 백두산 여정이 있습니다.

그래도 틈틈이 들어와 호흡을 같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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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조선족 문학 연재”(여섯 번째) 계속입니다.

 

조일남은 개혁 개방의 두 번째 10년을 맞이하는 90년대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한다.

(“중국 조선족 장편 소설 발전사(3)”, 『문학과 예술』 2001, 4호, p.114)

 

첫째는 농촌 생활의 붕괴와 도시 생활의 전개이며 이에 따라 조선족 사회도

도시 생활이 주요한 배경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둘째는 빈번한 해외교류와 대량적인 해외진출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92년의 중한 수교 후의 한국과의 비교적 자유로운 내왕을 통해서 둑 터진 봇물처럼

이 물결은 조선족 사회를 휩쓸었고 팽배한 물욕을 동반한 친척방문, 상무고찰,

노무수출, 불법체류 등 긍정적 혹은 부정적 부작용이 동반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고국과 조국에 대한 관념을 재정립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셋째는 문화시장에 대한 시장경제의 충격과 조선족 작가들의 대응이 또한 이 시기에

당면과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국가적인 아젠다로서의 시장경제 체제는 물론이려니와 특히 조선족 작가들은

조선족 사회의 급격한 지각변동으로 인한 문화시장의 혼란과 기업화 경영에 따른

출판, 예술단체의 불경기, 이곳 작가들의 출판 자유화와 해외로부터의 민족 문화의

수입 등은 이 곳 작가들에게 새로운 진로의 모색을 절체절명의 과제로 숙고하게

하였다.

 

따라서 90년대의 문학 분위기는 개혁 개방으로 크게 고양된 80년대의 정서와는 달리

불안한 년대를 보여주고 있으면서 아울러 아직까지는 시도하지 못했던 과거의 일에

대한 장편 소설로서의 천착을 시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여기에서는 이런 특징들을 수렴하여 대체로 장편 중심으로 이 시기의 문학 흐름을

짚어보고자 한다.

 

90년대 장편 시대의 시작은 “『여름밤』”(박철규, 90년 흑룡강성 조선민족 출판사)

으로부터 이다. 중국의 상처문학처럼 1967년 학교에서 공부하던 조선족 청춘남녀의

평범한 사회비극을 시대적 배경으로 다시 반추하고 있는 내용이어서 90년대의

문턱에서는 매우 의미심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어서 90년대의 장편 소설의 제재를 보면 역사제재 소설 범주와 현실제재 소설

범주로 대별할 수가 있다고 조일남은 말하고 있다.(p117)

90년대 역사제재 장편 소설로는 먼저 김길련의『먼동이 튼다』(93년, 민족 출판사)를

예로 들 수 있다. 먼동이튼다도 조선족의 과거, 조선인의 중국에서의 사실을 다룬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취급한 그 이전 소설들이 한반도에서의 생활은 그저 프롤로그에

그치고 소설의 본격적 내용은 살길을 찾아온 만주 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먼동이 튼다』에서는 조선에서의 사실 그 자체가 벌써 소설 텍스트의 한 부분으로서

중국에서의 사실과 혼연일체를 이룬다.

 

먼동이 튼다는 이근전의 고난의 시대거나 임원춘의 짓밟힌 넋이거나 심지어

김학철의 『격정시대』 보다 더 광범위하게 지금까지 외면되었던 중국 공산당과의 만남

이전의 중대한 역사사실을 직접 소설의 내용으로 한다. 조선에서의 반일학생시위,

반일 테러 행동, 중국에서의 3-1운동, 청산리 전투가 모두 소설 스토리의 한부분이

되었다.

 

김길련의 『먼동이 튼다』가 나라와 이념의 벽을 넘어 역사 사실에 접근함으로써

소설의 공간을 확장하였다면 최홍일의 『눈물 젖은 두만강』(『장백산』 1992년 6호-

1994년 2호)은 역사 제재 소설의 문화적 내용의 저변을 확대시킨다.

『눈물젖은 두만강』도 물론 이민사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그 이전 소설들이 중국이주와 이후의 생활 전선을 피와 불의 투쟁으로 묘사

하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마침내 인문풍토에 쌓인 생활 이야기로서 역사 속에 쌓인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80년대의 현실제재 장편 소설이 주로 농촌 생활을 취급하고 있다면 90년대의

현실제재 소설은 이와 다르게 도시 생활을 취급한다. 물론 도시 생활 취급의 초기

단계에서는  리원길의 『설야』 또는 『춘정』에서 농촌과 도시의 연계, 상품경제

의식의 각성, 도시 생활에 대한 지향을 얼마간 보여주기도 했지만 90년대는 완전히

도시를 무대로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미증유의 상황으로서 불안과 부조리의 현상이고 마침내 90년대

후반으로 가면 “출국 열”과 “서울 바람”으로 연결 되지만 그러한 세태로의 진입지대,

문지방 위치에 『허련순의 바람꽃』(1996년 흑룡강성 조선민족 출판사), 장혜영의

희망탑』(1998, 흑룡강성 조선민족 출판사)이 시의적절하게 자신의 위치를 부각

시키고 있다.

 

『바람꽃』이나 『희망탑』에서의 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땅을 떠난 농민들이다.

그들은 부를 갈구해 땅을 떠났고 부가 모여 있는, 부가 잡힐 듯 한 도시로 모여든다.

또한 그 도시는 한국이고 서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국은 고국이 아니고 동포는 동족이 아니다.

욕망의 바다일 뿐이다.

도시의 광란은 인육의 잔치이다.

 

바람꽃』에서의 주인공의 한국행차가 작가를 건설현장의 인부로 만든 것이라면

희망탑』에서의 한국나들이는 매음녀와 살인범을 만들어낸다.

『바람꽃』에서 지성인인 작가 홍지하가 혈연과 양심에 호소하고, 『희망탑』에서

과외작가 문 선생이 도리와 인맥에 돈가지 합쳐서 공정성에 호소하지만 이들은 모두

도시의 벽을 넘지 못한다.

이 두 작품의 문학성은 어쩌면 현실에 대한 고발의식이 너무나 급박하여서 다소

미흡한 점이 있겠지만 우리 모두가 당면한 문제의식을 제대로 강력하게 들고 나온

점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한편 박향숙의 『여사장 이야기』(1998, 연변 인민 출판사)는 도시인의 생리를

비교적 정치하게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원래 국가나 민족은 없다. 양심에 대한 호소나 도덕적 책임도 없다.

오직 경쟁과 자본의 원리만 있을 따름이다.

『바람꽃』과 『희망탑』, 여사장 이야기 등이 서로 상반되고 대조가 되는 이 시대의

현재진행중인 현실 생활 영역을 보여주고 있다면 이혜선의 『빨간 그림자』(1998,

연변인민출판사)는 그 두 영역을 두루 포용하면서도 또한 역사의식도 아우르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조국과 고국과 마침내는 국가라는 개념 앞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설정해야하는 본질적 문제에 상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론은 마침내 나라로 민족의 벽을, 민족으로 나라의 벽을 높이 세울

필요는 없다고 조일남은 자신의 평론에서 결론짓는다. 국가로부터 탈출하고 민족으로

부터 자유로우면서 이제 새로운 인간의 본질적 문제를 천착하자고 주장하는 그의

결론에서 이 시대 연변에 거주하는 한 소수민족 인이면서 동시에 세계인의 고뇌와

사유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본질에의 천착은 이 지역 문학, 혹은 “우리 핏줄” 문학의 위상을

세계적인 규모로 그 차원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이 곳의 문학 풍토에

도래하였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현동언도 “현황과 전망--역사적 변혁기 조선족 소설문학--”(『20세기 중국 조선족

문학 선집 4』, pp.470-482)에서 “우리 소설 문학이 정치 형으로부터 사회형,

심미 형으로 변화 되었다”(p.472)고 전제하면서 “사실주의 창작의 복귀, 승화,

변화 발전”(p.475)을 지적하고 “의식의 흐름 기법”과 “황당 기법”, 나아가서

"신사실주의 기법" 등의 도입(pp.478-479)등과 같은 현대적 창작기법이 도입,

실험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다소의 경계심은 내비치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 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적 발전 전망의 시점에서 이 중국의 동북 지역 조선족 사회는

기가 막히는 현실의 좌절을 겪게 되고 따라서 문학 풍토 전반도 이런 사회적

변동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떠안게 되면서 결국 속물적 상황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이른바 “출국 열”과 “서울 바람”의 시대가 조선족 사회를 휩쓸고 가면서 이러한 시대

조류는 당연히 문학의 세계에도 열병과 광풍처럼 엄습한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