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문화의 파편들

눈내린 까치설날의 일지

원평재 2009. 1. 24. 22:57

서울에 대설주의보가 내린 일은 근년에 드문 일이었다.

야밤중에 휴대폰의 불빛이 밝아지며 재난등의 비상시에 들어오는

문자가 이 놀라운 예보를 보내주는데 나는 짐짓 걱정이 되었다.

이 사람들 또 틀려서 곤욕을 치루는게 아닌가---하고.

 

 

 

 

 

문득 아침에 눈을 뜨니 사방은 은세계였고 어린이 같은 감동이

피어올랐다.

이래저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디카를 둘러메고 우리 마을을 돈 다음 버스를 훌쩍타고 도심으로

달렸다.

날씨도 춥지않고 햇살이 눈발에 이어나오니 포토메이니아들에게는

천우신조 같은 날이렸다.

 

 

 

 

 눈 속에서도 손병희 선생은 의연히 서 계셨다---.

 

 외투를 실하게 입은 원각사 탑도 아침 햇살에 아름다운 자태였다.

 

  

내 마음은 별로 조급하지 않았다.

나보다 월등 눈빛이 밝고 더우기 부지런한 사람들이 이 은세계를

요모조모 담아서 포토 샵의 재능을 한껏 발휘하리라.

거기 끼어서 성취와 좌절, 환희와 낙담으로 일희일비할 때는 지났다.

과거는 흘러갔다.

 

   

 삼일운동의 진원지를 건너서면 전통의 마실 길, 인사동이 아니던가---.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이 이른 아침부터 이 길을 누볐다.

우리도 관광객이 되는 순간 그러했듯이---.

 

 

 

 

 퀘벡의 올드 타운에서 눈 내리던 날, 자그만 프랑스계 처녀가 갤러리 앞 길을 쓸던 기억이 난다.

 

  

 

 

다시 본문을 이어간다.

저 찬란한 햇살 아래, 한 순간이면 사라질 절체절명의 장면은

그들, 부지런한 메이니아에게 맡기고

나는 남은 잔영, 지워진 설경, 녹아흐르는 눈~물을 포착하여

역사적 기록물이기 보다는 개인사적 일지 같은걸로 남겨보자.

박수를 기대하지 않았을 때에 관객들은 오히려 "우리~"한 가슴으로 

신음 소리를 내리라.

 

 

 

  

 길을 건너서 북촌으로 들어섰다---.

 

 

 

  

 

 눈내리는 날, 윤보선 가에 다시 오겠다던 결심은 지킨 셈이 되었다---.

 

 

 

 

 

 

 

가회동에서 결국 마을 버스를 탔다. 감사원을 거쳐서 회차 지점은 성균관 대학교 교정이었다.

 

 

 

 

 

  

 

 

 

 과연 유학의 본산다운 캠퍼스 풍정이었다.

  

 

  

 

유림의 본산을 대문 틈으로 잠시 엿보았다.

동기이자 친구인 이 600년 캠퍼스의 대제학과는 며칠전에도 만찬을 나누었지만 

불쑥 문을 따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도서관원에게 부탁하여 인터넷을 서서 조금 두드렸다.

 

 

 하숙집 간판과 짚풀 박물관이 인상적이었다.

 

 가톨릭 신학대학의 증축 공사도 거의 마감이 되어가는듯 하다.

 

 성대에서 이어진 대학로로 들어왔다.

   

  

 

대학로 마로니에 길은 예총회관이 있어서 자주 오는 편이어서

다른 기회에 따로 소개를 더하고 싶다.

이제 지하철을 타고 명동으로 가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한다.

 

  

 

 

 명동 국립극장이 거의 완공 단계였다.

 

 

명동은 진고개 쪽을 중심으로 완전히 일본과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의 마당이다---. 

 

 

 

 

 

 

 

 

 

 

명동 성당 앞길이 이런 역사적 의거 터전인 줄은 몰랐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장면과 조우하였다.

설 명절을 잘 쇠고 오시기 바라는 마음 가득하였다. 나는 고향을 잃은 사람이기에~~~.

 

 

 

 

 

눈이 오던날, 그러니까 까치 설날 하루 앞선 날이었지만 이 글과 그림을

보는 분들의 시간은

까치설날이 될듯 싶은 그런 하루의 일지를 여기 담습니다.

일단 인상적이었던 곳의 사진들을 조금씩 담아서 하루의 일지를 도표처럼 만들고

앞으로 자질구레한 편린들을 연작의 형태로 연재해 올립니다.

 

설 연휴 잘 지내시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