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문화의 파편들

소초 조동화 화백 대담기

원평재 2010. 7. 15. 03:59

 

 

 

 

 

소초 화백과의 인터뷰는 지난 봄에 있었는데 이번 <문학과 의식> 여름호에 나왔습니다.

인사동 거리를 그리워하며 멀리서 올립니다.

아래 화보 중의 상당 부분은 지면 관계상 여기 인터넷에만 올라간 장면입니다.

 

 

 

 

 

 

 

 

 

소초 화백 인터뷰

 

 

먹과 금분으로 한국화의 오묘한 전통 세계를 오늘에 되살린 소초 조동화 화백을 종로구 경운동

89-4 SK허브 A동 101-324호의 화실에서 만났다.

인사동 전통거리의 안국역 쪽에 바짝 붙어있는 오피스텔 건물의 소초 화백 화실은 도어에 붙어있는

“Design Korea Studio(디자인 코리아 연구소)”와 “Gallery Paris"라는 선명한 제호가 여느 화실과는

다른 분위기를 처음부터 풍겨준다.

오래 동안 화단 활동을 하여왔고 한국화 전통의 맥을 이어오면서도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특별한

분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어서 전부터 안면이 없지 않기에 앉기도 전부터 질문을 쏟았다.

 

 

--소초 화백님은 먹과 금분으로 한국화의 혼을 담아내시는 분인데 도어에는 영문으로 된 간판이

   붙어있습니다.

   어찌된 일이신가요?

 

 

질문을 들은 소초 화백은 빙그레 웃으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속사포처럼 자신의 세계와 주장을

펼쳐놓았다.

 

 

--하하하, 그런 질문을 한두 번 받은 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제 경력을 보면 우선 쉽게 납득이 갈 것입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내가 한국화에서 잊혀졌던 부분,

   그러니까 먹과 금분으로 된 전통화를 개척하면서 역설적이랄까 나는 세계적인 화가로 뜨게

   되었습니다.

   내가 프랑스와 독일 등 구미 각국의 화랑에서 초대전을 벌인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 연고로 나는 한국화의 특징으로 세계화를 지향해 나아갔고 그런 맥락에서 우리의 좁은

   안목을 탈피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자는 취지에서 문짝에도 저렇게 두 가지 간판을 붙이고

   지냅니다.

 

 

이 대목에서 소초 화백의 해외 경력을 자료집을 참고하여 조금 설명해야 되겠다.

지난 2000년 소초 화백은 경향아트페어에서 최우수 대상을 받고 프랑스 무방스 갤러리,

뉴질랜드 국회,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초대전 등 유럽에서 여러 초대전을 가졌으며 미국 라스베거스

아트엑스포에도 초대 출품을 하였다.

특히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크리스 디츠 박사는 그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즉 “조화백은 당뇨로 시력이 급격히 떨어져 한쪽 눈이 실명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눈을 열고서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하여 비상한 예술혼을 보여주고 있다.”는 격찬을 받은 것이다.

 

 

--조 화백님은 운보 김기창 화백의 수제자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분의 화풍과는 다른 길을 걷는 셈인가요?

 

 

--그렇지만은 않지요. 그분의 산수경계 수묵화의 화풍은 참으로 대단한 경지이지요.

   지금도 나는 상당부분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나 나름의 독특한 “니금 화법”으로

   산수화의 한계성을 타파하고 탈출구를 모색해 나가고 있는 셈입니다.

 

 

--정말 호방한 스케일의 작품들이 화실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만 거기에 더하여 니금 화법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지요.

 

 

--니금(泥金)화법이란 문자 그대로 금가루와 수묵을 이용하는 화법입니다.

  이것은 제가 창안한 것은 아니고 실제 금을 사용하는 기법은 조선시대 유명화가인 이징의

   "니금화법"을 계승한것입니다.

   물론 그 비법이 잘 전수 되지 않아서 내가 독창적으로 연구를 하느라고 고생은 많이

   했습니다만---.

 

 

--정말 수묵에 금분을 개어 넣는 일이 보통의 비법이 아닌, 비범한 수준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소초 화백은 그런 기교적인 데에 그치지 않고 이렇게 크고 긴 두루마리 대작들도 여러편 작업을

   하셨군요.

   지금 이 화실에는 얼마나 많은 작품이 있는지요?

 

 

--약 250여 작품이 있는데 제가 작품에 애착이 많아서 처분을 잘 하지 않고 껴안고 있는 탓이

   큽니다.

   물론 너무 대작이어서 소장자들이 망설이는 경우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나는 그런 일에는

   개의치 않습니다.

 

 

--소초 화백께서는 그림도 독특하시지만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샘솟듯 하는 분이고 소설 작품에도

   손을 대어서 역시 독특한 역사 추리 소설의 경지를 개척하였다는 평가를 듣습니다.

   조금 설명해 주시지요.

 

 

--제 화실에는 사실 그림이 좋아서 오는 분들도 많지만 아이디어를 얻으러 오는 교수나 정객들도

   많습니다.

   특히 일본인들의 문화재 수탈을 생각하면 분노가 하늘로 치솟습니다.

   예컨대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은 우리 해안에서 아무리 탐사를 해도 실물을 건져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을 일본인들은 빼돌려서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바탕으로 소설을 쓴 것이지요.

 

 

그가 쓴 두 번째 소설 <격노>는 소초 화백의 역사추리소설로서 새벽 2시, 인사동 고미술 전문상점

고옥당 안에서 차를 마시며 바둑을 두고 있는 고복원과 상점주인 감사장은 갑자기 들이닥친

폭력배들에게 폭행 당한다.

이때 고급 승용차에서 내린 60대 노인 2명은 차 안에 미리 준비한 도자기와 상점안의 도자기들을

바꿔 떠난다는 설정으로 시작이 되고 있다.

 

 

소초 화백과의 대화는 너무나 놀랍고도 재미가 있고 또한 민족 정기 가득한 울분이 터져나오기도

하여 끝가는 데를 모를 지경이다.

최근 다시 핫 이슈가 되고 있는 독도 문제에 대하여 그가 쓴 순정한 해결책을 여기에 소개해 본다.

 

제목은 “독도문제 해결안(바보들의 충고)제안서”라고 되어 있었다.

 

 

일본은 우리에 거북선을 자기내의 국보라고 하고 자기내의 유산이라고 보관하고 있습니다.

나라 빼앗긴 우리는 거북선까지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내년쯤 유네스코에 등록하려는 움직입니다.

독도를 일본 하네다 공항과 같은 저반 시설로 독도 주변에 제주도와 같은 저반 도시를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조선 산업은 충분한 기술과 능력이 있습니다.

저반 섬 내에세 지하까지 굴착하여 암반 식수를 뽑아 사용하고 저반 원자력 발전소와 수력 풍력

발전으로 자체 내 대도시로 발전 할 수 있으며 가운데 독도 섬을 관광 보존 할 수 있는 지역이 될

것입니다.

호텔과 조선소 어업전초 지구와 해국기지 대형 공항 녹색 환경지구 요트와 관광 지구가 될

것입니다.

 

먼저 일본 침략 대책 연합국 연대 건물에는

1. 미국에 하와이 진주만 희생자 모임사무실

2. 중국 광동성 대학살 희생자 유족회 사무실

3. 월남 피랍된 한국 등 10개국 희생자 모임 유족회 사무실

 

건물은 독도를 일본으로부터 더욱 강건히 지킬 것입니다. 저반 시설은 육지에서 제작하여

조금씩 조립하는 방식입니다.

 

해양 조선소 해양 농지 양산업 해저 암반수 등 해양 개발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해양 골프장은 미래의 낙원입니다.

일본이 다시는 침략 야욕이 사라지게 피해국 유족회 사무실을 두고 강력 대처 합시다.

이제는 신혼 여행지를 독도로 정하게 만듭시다.

우리의 해외 땅 투기를 독도로 돌려 해외 유치를 서둘러 먼저 미국 라스베가스 카지노

재벌부터 끌어 들입시다.

 

 

소초 화백과의 인터뷰를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그분의 긴 이력서를 첨부하고 또한 칼럼

한 꼭지를 부연하는 것으로 대략 마무리하는수 밖에 없었다.

평소 조동화 화백은 베품의 삶 나눔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평가도 들린다.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구름과 같은 넓고 가이없는 마음의 소유, 혹은 무소유의 마음을 성찰

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소초 조동화 화백의 경력

 

- 35년 목포생

- 초등학교 5학년 일본민전 입선

- 건국대학 정치행정학 야간대 졸

- 운보 김기창 선생 문하생

- 한국 문인화협회 고문위원

- 프랑스 파리 갤러리 무방스 초대작가

- 인사동 동문당 갤러리 초대전

- 인사동 단성 갤러리 초대

- 전주 대성 화랑 초대전

- 프랑스 파리 유니바살 데쟈르 미술잡지발표

- 인사동 인사아트 갤러리 황금산수 초대전

- 한국 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장 초대전

- 독일 괴테 연구소장 초대전

- 중국 계림시장 초대전

- 대만 국립 박물관 초대전

- 중국 길림성 서화협회 초대전

- 운현궁 미술관 초대전

- 인사동 이형갤러리 거북선과 산하 초대전

- 아트뉴스 갤러리 초대전

- 일본 마이니찌신문사 초대전

- 일본 오사카 재일 거류민단 초대전

- 북방미술 협회 고문위원

- 전국시민단체 문화담당 공동대표

- 재단법인 대한민국 거북선 연구소 소장

- 거북선 복원 및 박물관 건립위원장

- 미국 LA 한인회 초대전

- 광주 전남 향우회 고문위원

- 북방 미술협회 세계대회 고문위원

- 저술 : 거북선, 격너, 사랑은 오래참고.

- 도서출판 國寶(국보) 인사동문화신문 대표

- 인사동문화 발행인

- 독일 프랑크푸르트 아트문화원 교환교수

- 대한민국 청솔회 회원

- 해돋이회 회원

- 거북선 사랑 모임회 회원

- 프로아트스 이사장

- 제1회 경향일보 아트페어 원로작가 특별대상

- 홈페이지 : http://www.chodong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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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초 칼럼

 

 

하루가 달리 한국 화단은 한국화의 표구점과 화랑이 서양화 전문점으로 변하고 몇몇

화랑에서 운영하는 옥션들이 서양화가를 외국에서 영입하여 미술 소장가들에게 그토록

지켜온 전통 한국화를 서양화로 바꾸게끔 유도 하고 있다.

 

100년이 된 조흥은행을 일본은행에 팔아넘기더니 벌써 인사동에 일본 화랑이 들어왔다.

우리의 주체성은좌익인가? 애국인가?

일본 통치하에도 굳건하게 지켜온 우리 한국 화가들에게 고개 숙이고 속죄하고 싶다.

우리의 미술역사는 어디로 갔는가? 일본은 지금도 서양화보다 자국의 일본화를 사랑한다.

 

서양화 전문 화랑의 옥션들이 이렇게까지 화단을 망가지게 할 줄이야. 외치고 싶다.

무관해버린 관람객이 동양화이냐? 서양화 전시하니?

한국화하면 뚝 끊어지는 관람객들 칙칙한 먹그림 어두운 창고 속에서 버려진 우리 한국화를

생각하면 한국 화단을 지켜온 지식인들이 원망스럽다.

돈이 되지 못하면 전시 할 수 없다고 모든 갤러리 운영자들에게 꼭 전해 주고 싶다.

 

우리 것도 지켜 달라고 대기업의 "행복한 눈물"의 그림 뉴스를 보고 그들의 애국관을 너무

원망하며 욕을 했다.

외국 만화 그림이 우리 박물관에 전체 한국화 가격과 같다고, 나는 오늘도 인사동 화랑가를

걸어가며 힘 잃은 한국화 표구점 주인들에게 고개 숙이며 미안하다는 인사를 했다.

 

한국은 언제부터 서양화만 추종하고 우리것을 무시하게 되었는가?

현대적인 빌딩과 아파트를 지어 한국적인 인테리어에 한국화가 어울리지 않고 서양화가

낫다고 하여 우리 귀중한 전통 한국화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양화를 모르는 애호가들이 소도비와 외국 화단에 싸이코 아트를 언론에 의하여

부동산 매입하듯 투기하기 시작하여 팔지도 못하고 막차를 탄 소장가들이 미운 눈으로

걸어놓고 매일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중국은 자국민을 위하여 국가 예산으로 피카소를 스페인 국가에서 지원하듯 중국 작가를

세계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어 주고 있고, 프랑스는 화가 작품을 국가에서 사들어 10년후

내놓는다.

대통령 외국 순방시에 예술가를 대동하여 먼저 트럽에서 내려오는것을 보고 놀랐다.

오픈시 테이프 컷팅 할때도 장관 지켜본 가운데 작가만 걸어나와 테이프 컷팅을 한다.

 

우리는 이제라도 다시 생각할 때가 왔다고 본다.

그들은 내가 왜 고개숙이고 인사하는지 모를것이다.

그러나 나는 괜히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선배 화랑 주인들을 용서해 달라고 전하고 싶다.

 

화랑에 도착한 나는 썰렁한 화랑 안 한국화를 보면서 다가가서 고개 숙였다.

우리 화랑이 전부 외면할지라도 나는 너를 지키겠다고...

언젠가는 정신차린 화랑가 주인들이 다시 찾아 올거라고 위안했다.

문닫은 옆 고미술가게 주인은 빚 때문에 가게문을 열지 못하고있다.

유리창으로 보니 반가 사유상 조각이 웃고 있었다...

 

 

-소초 조동화 컬럼-

 

 

  

 

 

소초 선생의 화실은 인사동 <뉘조> 옆 골목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풀잎만 먹고 나오는 이 밥집에 큰 기업하는 친구와 간혹 들린적이 있다.

그 건너편에는 소설가 허빈 선생과 자주 가던 칠갑산이 있다.

 

 

편에는 취

   

 

워낙 독특한 경지의 그림을 그리는 소초 화백의 화실에는 이름난 묵객, 화우, 문화인, 교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심지어 정치인들도 아이디어를 얻기위하여 들락거린다고 한다.

이날은 출판인과 작가들이 많이 찾아왔다.

 

 

  

 

대작 두루마리 작품은 열다섯자 짜리도 여럿 있었다.

금분 값만 해도 만만치 않으리라는 속물적 계산을 해보았다.

 

 

 

십여년 전만 해도 펄펄나르는 모습이다.

지금은 이 인터뷰 후에 지병인 당뇨로 입원을 했다는 소식이 이곳까지 들린다.

세월이 무상하고 마음이 아프다.

 

  

 

사우(寫)이자 동기인 백초 선생과 동행을 하였다.

 

 

 

 

 

오래 전에 증정 받은 그림이 내게도 한 점 있다.

 

 

 

 

 

표지의 여인상은 이 여성이라고 한다.

간날이 장날인가, 십여년 만에 그간 소식도 없던 이 제자가 찾아왔다고 한다.

10여년 전, 인사동에서 조금 큰 비즈니스를 하던 이 여성은

낮에 시간을 내어 몇몇 부인들과 소초 화실에 그림 공부를 다녔다고 한다.

 

히스토리와 허스토리가

그간 단절되었던 시공의 덧대기와 짜집기가 되어서

나와의 대담 시간이 지체되기도 하였다.

 

 

 

 

 

 소초 화백의 왕성한 재기를 멀리서나마 기원합니다.

 

Domenico Zipoli (1688 - 1726)
Elevazione for Solo Oboe, Solo Cello, Strings and Organ
(arr. V. Hunt)    08'20
 
 

오보에와 첼로, 오르간과 현을위한 아다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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