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봄비 오는날 들은 슬픈 이야기

원평재 2011. 2. 13. 23:08

이번 봄비 말고 지난번 봄비가 사람들의 온갖 찬사 속에서
넉넉하게 내리던 날의 이야기 입니다.

그날 우리 직장은 최근에 완성한 "정보 통신 센터"를 공개하고
설명하는 날이었습니다.

제가 있는 곳도 수많은 첨단 자료들이 이합 집산하고 또 엄청난
분량의 통계가 새로 잡히면서 과거의 기록도 한 세대 정도는 유지
보관되어야 하는 곳이므로 그 규모는 방대할 수 밖에 없지요.

옛날에는 이런 자료들이 큰 사무실의 룸을 몇개씩 잡아먹으면서도
유기적인 활용 차원에서는 항상 수요자들의 불편과 불평을
유발하였지요.

이제는 세상이 좋아져서 하이 테크놀로지가 이런 문제점들을
해소하고 있는 현장을 구성원들이 한번 보고 이해를 도모해야겠다는
것이 이 봄비 내리는 날 행사의 의의 였지요.

밝게 인테리어가 된 접견실에서 프레전테이션과 브리핑을 받은 후
우리는 여러 부수적 자료실을 방문하고 마침내 주요기기가 안존된
지하실로 내려갔지요.

우리 기관이 채택한 기종은 "시스코(CISCO)"였습니다.
에어컨 설비에 의해 섭씨 15도의 적정한 온도 속에서 유지되는
시스코 장비는 검은 프레임으로 된 거대한 컴파트먼트를 여러개
병렬 시켜 놓아서 하나하나가 마치 이집트의 미이라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지요.

"왜 미이라 같은 느낌일까---"
검은 프레임? 지하실(적당히 서늘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산업 디자인 쪽에서 꽤 유명한 분이
내 옆으로 왔어요.
그가 아마 J은행의 "으뜸" 로고를 제작하였지요.
엄지 손가락으로 으뜸을 표시하는 이 디자인은 그 은행의 유명한
표상역할을 이십여년 이상 끄떡없이 해오고 있지요.

아니 IMF 때는 무너지는 대들보를 밑에 깔린 서까레들이 바치고 있는
형상이라고 갖은 모략도 받았다던가요---.
너그럽고 인품 좋은 예술가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도 불편할 때는
있나봅니다.

나도 그렇듯이 밖에서 봄비를 맞은 옷이 조금 젖은 그가 약간
미소 띈 얼굴로 내 옆에서 말문을 열었어요.

"봄비 오는 날 슬픈 소식을 전하게 되어서 죄송하지만---"

혹시 이 양반 처제가---?
그가 미소 속에서도 슬픈 소식이라는 말을 꺼내자 나는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그와 나의 매개체는 직장의 동료라는 부분도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그분의 처제라고도 할 수 있었으니까요.

늦게까지 학문의 도장에서 작은 몸피를 불태우는 과년한 처제를
그는 항상 불편해 하면서도 즐겁게 돌보아왔고 그런 돌 봄 중의
하나가 강의 시간을 마련해 주는 일이었답니다.
꼭 쉽지만은 않은 시간 얻는 그 일을 무슨 인연인지 나는 이런저런
타이밍과 인간관계로 쉬운듯이 해결해 주었지요.
후에 작은 대학의 전임이 되면서 나와의 연결은 끊어졌지만---.

집념과 함께 능력도 검증되어서 나는 개인적으로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우리집에서 작업을 같이한 적도 있었지요.
나이 차이나 신분의 확실성을 감안한다쳐도 집 사람이 부담감을
갖을 수도 있었는데, 전혀 신경쓰지 않고 일을 해낸 것을 보면
그 처녀의 인상과 행동이 아주 반듯한 느낌을 주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같군요.

나이가 꽉차고도 넘어서 결혼을 했는데 부군도 나이가 꽤 많은
국책 매체의 언론인이었답니다.
부군이 있던 곳도 금전적으로 유혹이 많은 자리로서 상처입은
담당자들이 부지기수였으나 그 사람은 역시 반듯한 처신으로
이름을 날렸다는군요.

내가 전광석화처럼 이런 생각을 가다듬고 있는데 그 직장 동료가
말을 이엇지요.

"제 처제가 3월 말에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오랜 투병이었지요---."

5년을 앓았다는데 나는 물론 그 동안 알리가 없었지요.
유방암이라고 하였습니다.
병력을 비슷한 때 기록하기 시작한 환자들이 3년을 넘기지 못하였는데
부군의 전폭적 지원과 주위의 배려로 5년을 버티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중국 최고의 의료 시설까지 동원했었지요---. 생각해 보면
너무 가혹했다 싶기도 해요. 연명은 했지만 그 고통이---,
사는게 아니었죠. 특히 마지막 6개월은---."

거대한 검은색 시스코 설비가 관람객을 압도한 방을 빠져나와서
우리는 학생들의 실습실로 자리를 옮겼어요.
그곳에서 학생들은 "자유 과제"로 그라픽이나 도안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카페"를 열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올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지요.

표면적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괴물단지, 시스코를 허브 축으로하여
경천동지할 동영상과 영혼을 혼절 시키는 이미지 컷들이 자유자재로
시공을 이동하는 모습은 나도 이미 알고 있고 또한 사용의 주체가
되어 있지만 다시보니 또한 경이 그 자체였지요.

허브 축인 시스코 설비가 미이라라면 여기 앉아서 소프트 웨어를
가동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미이라로 부터 영혼을 빼내어 주술로
부리고 있는 대제사장 들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모두 자칼의 가면을 쓰고있단 말인가---.

아니 사실은 저 피라밋 속에서 미동도 하지않는 미이라가 사실은
상형문자 속에서 영생을 누리며 서로 윙크를 나누고 있는데,
밖에 있는 인간들이야 말로 모니터에서 명멸하는 애니메이션이나
부질없는 영상 컷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향년 몇이셨던가요?" 내가 조용히 물었지요.
"마흔 일곱이었지요. 마지막에 너무 고생을 해서 유명을 달리하고
나니까 오히려 위안이 되는군요---."

그래서 그가 슬픈 얼굴 보다는 오히려 잔잔한 미소를 띄었던가---.
하여간 마흔 일곱이라면 42세에 발병하였으니 당시 당사자의 마음
고생은 또 얼마나 컸겠는가.

"자녀는요?"
'중학교 다니는 딸이 있는데 아직 아무 것도 모르고---."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바깥에는 봄비가 계속 신록을 보듬고 있었어요.
넉넉한 봄비와 신록에도 마음이 스산해지는 것은 인식의 주체인
우리가 나이 들었으되 해탈치 못했음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