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 기행

사랑으로

원평재 2011. 2. 16. 23:57

비오는 날 아침에 2박 3일의 필라델피아 전원 여행을 떠났다.

Amtrak을 타려고 "펜 스테이션"에서 아들의 승용차를 내렸을 때에는

장대비가 쏟아져서 난감한 생각도 들었으나 친구의 다정한 얼굴을 생각하니

힘이 솟았다.

 

 

 

 

       (펜 스테이션이 있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도 수퍼맨이 돌아왔다.)

 

 

 

 

(허드슨 강의 지류도 황토 물이 많이 불었고 전철을 기다리는 메트로 파크

라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도 빗속에서 엉거주춤하였다.)

 

 

 

나를 초청한 친구는 지난 늦가을 내가 수술을 받고 누워있을 때에도 오라고

하여서 회복을 도와준 동기였다.

이번에는 뉴욕의 더위를 식혀 주려고 또 초대를 한 것이었다.

 

숲 속의 전원 지대란 분답한 도심의 찌는듯한 더위도 감히 침노하지 못하는

곳으로 거기 내 친구는 유유자적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30번가에서 기차를 내린 나를 픽업하러나온 친구와 악수를 

하는데 팔뚝의 힘이 장사 못지 않았다.

이번으로 세번이나 방문하여서 길 눈 어두운 나도 찾을듯한 숲 속 주택에

당도하자마자 상쾌하고 서늘한 공기가 금방 생기를 북돋우어 준다.

 

친구는 요즈음 1.5에이커 전원에서 키 큰나무, 그러니까 교목의 일부를

정리하고 잔디 밭을 늘리며 화초 키우는 면적도 아울러 키우고 있었다.

나무를 패고 그 뿌리로 예술 작품을 만들어 입구에 전시해 놓은 목각들이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었다.

 

 

 

지난 늦가을과 초겨울, 두번이나 왔다가면서 보았던 집 앞의 호수에는 당시

수량이 많지 않았으나 여름이 되어서 만수위가 되어있었다.

이 지역 상수도의 원천이기도하였는데, 막상 내 친구가 사는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천연 지하수를 뽑아서 쓰고 있었다.

 

 

 

 

전원에 저녁이 오고 우리는 또 자정을 넘겨서까지 인생 제3기에 들어선

우리의 시간에 대하여 토론하였고 지나간 날들을 반추하였다.

 

다음날 아침에는 느긋하게 일어났는데 한때 건설회사의 CEO만도 여러군데

거친 내 친구는 이제는 농부가 다 되어서 이른 아침부터 땅을 고르고 화초를

전지하고 있었다.

밤에는 추운듯도 하더니 아침에도 서늘하였다.

비도 다 게었다.

 

조금 긴 산책을 하고나니 아침 밥맛이 너무 좋아서 잡곡밥 두 공기를 뚝딱

하였다.

이제 우리는 시내 구경 같은 것은 절대하지 말고 인근의 공원이나

돌아보자고 작정하였다.

사실 깨어진 리버티 벨도 두번이나 보았었다.

 

차로 30분도 되지 않는 곳에 "리들리 크리크 스테이트 파크"가 있었는데

한때는 거창하게 부유한 사람의 사저였으나,

자손이 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상속을 포기하는 바람에 주 정부에서 

380만평이나 되는 이 곳을 관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 친구는 여러갈래로 된 이 곳 산책로를 40분 짜리에서 두시간 짜리까지

매일 번갈아서 다닌다고 한다.

친구 부부의 얼굴에 보이는 건강 화색을 알만했다.

공원 바로 인접하여서는 프라이빗 골프 코스가 있어서 친구가 권하였으나

차로 구경만 하고 사양하였다.

 

 

이제는 공원이 된 땅의 원 소유자 개인 저택은 관리 사무소가 되었는데

중세 유럽의 고성을 보는듯 크고 고색창연 하였으며

파티오 정원도 미학적 관람의 대상이었으나,

온실은 관리가 힘들어서 방치되었다는데 그 이후의 변화한 모습이 장관,

아니 가관에 다름 아니었다.

여러해 전 "앙코르 와트" 사원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생각이 문득

났다.

영화 "툼 레이더"의 배경으로도 그 장면은 재현 된 바 있었는데 여기 방치된

온실의 지붕을 뚫고 나온 나무들이 그 모양을 상기시켰다.

 

 

 

 

 

 

 

 

 

숲 속은 야생 동물과 조류의 천국이었다.

어떤 사냥이나 수렵에 버금가는 행위는 모두 금지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숲은 사랑의 정염과 소망들이 일렁이는곳이기도 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그냥 지나지 못하고 그들의 "가슴 가득한 사랑을",

"영원히 변치않을 사랑"을, 그리고 또 "불사의 사랑"을 여기 자작나무 계통의

수피에 새겨 넣고 갔다.

 

아니, 여기에 새긴 사랑이 불변이라고?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그들의 염원을 새긴 교목들이 성장하고 나이테가 늘어감에 따라서,

그들이 언약하고 새겨 넣은 그 사랑의 크기도 점점 더 성장해 나아갔다.

 

물론 나무에도 수령이 있고 재난도 따른다.

그러나 여기 새겨진 사랑의 정염은 나무의 천수가 다한 다음에도 그 쓸어진

나무와 함께 수목장이 되어 여기 천년을 더 그 정염을 교류하며 머물다가

마침내 하늘 나라로 가리라.

 

 

 

 

 

 

나무들의 사랑은 인간 보다 더 깊고 치열하다.

"연리지"라고 하면 뿌리가 다른 두 나무가 합하여서 하나가 된 경우를 말한다.

길건너 나무를 연모하여 몸을 기울여 합일한 지극한 정경을 여기에서도 본다.

 

 

 

 

두나무가 모두 접착되어 있는 지극한 모양이었는데 두 나무의 물관부와

체관부가 찰싹 붙은 모양은 여기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세상 모양은 재미있다.

"연리지"가 있는가하면 아래와 같은 나무도 있다.

한 뿌리에서 나오자마자 갈라선 경우이다.

 

 

 

그 옆에는 또 보통 보기 힘든 앤티크 롤스 로이스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사흘이 금방 지나간 건가, 떠나는 날이 금방 찾아 온건가---.

마침내 삼나무와 잣나무(오엽송)와 월넛 트리와 두 종류 가문비 나무가

울창한 숲 속의 친구네 집을 떠날 날이 왔다.

아침을 먹고도 우리는 시간대 별로 있는 기차 시간들을 자꾸 놓치면서

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했다.

헤어지기란 정녕 이렇게 아쉬운가---.

 

마침내 돌아오는 차편은 기차 시간을 다 보내고 "짱꿰 버스"를 타보기로

하였다.

필라델피아의 중국인 촌에서 맨해튼의 차이나 타운까지 다니는 그레이

하운드 차편은 30분 마다 있는데 요금은 편도 12불, 왕복 20불이니 아주

싸다.

나중에 뉴욕에 도착해서 보니 워싱턴, 보스톤 등지로 다니지 않는 곳이

없다.

중국인들이 운영하고 또 중국인 들이 주로 이용하고 값도 저렴하여 통칭

"짱꿰 버스"라고 하는데 그들이 듣는데에서 말하면 아주 싫어한다고한다.

 

버스 정류장 까지 승용차로 오는데 흑인 거리가 있어서 차안에서 조심스레

몇 컷 했다.

사실은 더 험한 동네가 있다는데 굳이 갈 필요는 없었다.

한 쪽의 호기심이 다른 쪽의 상처가 아니겠는가.

 

 

 

 

(드랙슬 대학이나 유 펜이나 모두 시내를 관통하는 거리를 캠퍼스의 중앙에

두고 발전하였다.)

 

 

 

 

(베트남 사람들도 필라델피아에 꽤 크게 모여살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우리

보다 미국에 더 많이 산다.)

 

 

 

 

 

필라델피아의 중국인 거리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짱꿰 버스가

30분마다 출발하는데 맨해튼의 차이나 타운까지 가는 데에 두시간

이내였다.

뉴저지 턴 파이크를 타고 달리다가 뉴욕 시로 들어가는 데까지는 한시간

반도 걸리지 않는데 맨해튼 도심에서 시간을 많이 버린다.

 

친구 부부와 다시 아쉬운 작별을 하고나자 크고 힘찬 사냥개,

그레이 하운드는 곧 달리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개 그린 버스"가 철길을 건너니 필라델피아는 저 뒤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