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북 리뷰, 문단 이야기

코도카 포럼의 문학 강연회

원평재 2012. 5. 24. 11:04

 

도미니카 공화국의 학생 글짓기 대회에서 축사 겸 문학강연을 한 원고를 그곳

인터넷 포럼에 올렸는데 여기 잠시 소개합니다.

<코도카포럼> 혹은 영문으로 KODOCAFORUM으로 치고 들어가면 그곳 소식을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습니다.

 

제3회 도미니카 학생 글짓기 대회 시상식 축사 및 문학 강연(요지)

 

 

경명애 회장님으로부터 소개 받은 김유조 교수입니다.

3년 전 첫 글짓기 대회가 시작되고 심사의 역할을 부탁 받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회째를

맞이하게 되다니 그 감회가 참으로 남다릅니다.

더욱이 도미니카에 거주하시는 교민들의 숫자와 관계없이 해마다 글짓기 대회는 성황을

이루어서 올해는 예비심사를 거친 작품만 47편에 이르렀으니 더욱 크게 자축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두 일을 주관하신 여러분들께서 알게 모르게 꾸준히 혼신의 노력을 다하신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경하와 함께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간 글짓기 응모 원고는 해마다 증가하여서 마침내, 이번에는 응모된 작품이 너무나 많아서

1차 예심을 거쳤으나 궁극적으로는 멀리 떨어져있는 제가 인터넷을 통하여 쿨한 방식으로

엄격한 심사를 하였음을 이 자리에서 우선 밝혀둡니다.

작품 심사평에서도 밝혔지만, 이번에도 참 좋은 글들이 많이 나와서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최종 뽑힌 글들은 모두 글쓰기의 기본에 충실하고 앞으로 더욱 크게 성장할

요소를 가장 많이 담은 글들이었음을 말씀드립니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 학생들이 앞으로 자신의 글을 쓰는 방법에 크게 참고가 될 모델로 여겨도

좋으리라는 것입니다.

 

한편 돌이켜보니 2회 때에는 당시 이웃나라 아이티에 큰 지진 참사가 닥쳐서 그 복구의 체험이

글의 제재로 많이 나왔으나 이번에는 단 한편도 그 관련이 없어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도

합니다.

 

자, 그러면 글쓰기란 무엇인가,

 

짧게 설명을 해보려고 합니다.

시간과 여건 관계상 상세한 내용은 따로 프린트 물을 준비하여 나누어드렸으니 참고도 하고,

앞으로 코도카 포럼에도 기회가 닿는 대로 토픽을 정하여 지속적인 설명을 올리려고 합니다.

우선 글을 쓰는 일은 자아의 반영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자기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쓰는 글을 “즉자적 자아의 글”이라고 하는데, 보다 참다운 글은 다른 사람의 가슴에

부딪치는 감정을 염두에 두고서 이를 명상하여 반영하는 “대자적 자아의 글”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티 참사를 대상으로 글을 쓸 때에도 그 현장을 보고 단순히 슬프기만 하여서는

부족하고 이럴 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여서 직접적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까지

위로할 일은 없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대자적 자세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어떻게 글을 써야하는가?

먼저 두려움 없이 도전하자는 것입니다. 글이란 유명한 작가나 선생님만이 쓰시는 게 아니라

나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자는 것입니다.

일단 그런 마음을 갖고서 다독, 다사, 다작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에 관해서는 따로 프린트 자료를 돌렸기에 여기에서는 짧게 넘어가겠지만 그 중

“다작”에 관하여 한가지 만 특히 강조하고자 합니다.

 

즉 많이 써보는 일을 할 때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쓸까?

바로 “낯설게 하기”를 하자는 것입니다. 낯익은 표현은 감성을 유발하기 힘듭니다.

De-familiarization, 즉 일상적이고 familiar하지 않도록, 사물이나 사상과 관념을 지금까지 와는 다르게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180도 회전하여 보면, 이제까지의 즉자적 대상이 대자적 대상, 즉 새로운 형태와 생각으로 재탄생할 것입니다.

예로서 파리가 앞발을 비비는 모습을 보고, “엄마, 내가 잡으려 하니까 파리가 자꾸 빌어”라는

놀라운 표현이 나오기도 하고, “신발은 힘이 세다. 몸을 들고 있으니까”라는 전혀 반대의

시각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말에는 잘 쓰지 않는 “무생물 주어” 표현도 참 좋은 예가 됩니다.

“어머니의 얼굴에 있는 주름이 내 눈물을 불러왔다” 같은 표현이 신선하게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곳에서는 우리말은 물론이고 스페인어와 영어를 모두 배울 수 있고 또한 잘 배우고 있습니다. 이른바 bilingual과 trilingual, 이중 언어와 삼중 언어를 갈고닦습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기회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나중에 돈을 많이 벌거나 이름을 날리는데 도움이 되리라고만 기대합니까?

물론 그런 편리함과 유리함도 있겠지요.

 

하지만 진정한 의미는 이 세상을 보는 눈을 평면에서 입체로, 편견 없이 다양한 각도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흐릿한 아날로그 TV를 보다가 우리는 선명한 디지털 HD TV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곧 입체 3D TV를 감상하면서 넓은 세상, 넓은 우주 속의 나를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글쓰기도 이와 마찬가지로 진화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멀리에서 온 학생들도 많습니다.

대상을 탄 학생도 멀리에서 온 학생이라고 오늘 들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에 난생 처음 이웃 마을로 트럭을 타고 가서 학교 대항 운동경기의 응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밤중에 트럭을 타고 돌아오는데 하늘의 보름달이 갑자기 줄어들더니 한참 후에는 없어지고 사방은 캄캄해졌습니다.

“개기 월식”이라는 것입니다.

둥근 달만 알던 내게 그 달이 갑자기 사라진 일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오늘 일찍 마을을 떠나서 여기에 온 학생들도 내가 한 말을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면 참 좋겠습니다.

긴 이야기 중에서 하나의 충격만 받는 날이 되어도 좋겠습니다.

바로 “낯설게 하기”, 이 말 한 가지만 꼭 마음에 새겨도 좋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라고 하는, 큰 충격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한 번 De-familiariz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