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단편 소설) 우울증 세대의 증언 첫회 (세계 노년학 대회를 기리며)

원평재 2013. 6. 24. 12:05

 

 

 

 

 

 

 

 

고국에서 열리는 "제 20차 세계 노년학-노인 의학 대회"에 참석하면서 내 개인사가 들어간

글을 지어 올리는 행동에는 조금 망설임이 따른다. 혹시 이 글이 1962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세 사람 중의 하나인 제임즈 왓슨이 쓴 "이중 나선"의 글과 유사한 행로를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른다는 억측이 있다면 참으로 가당찮은 추론임을 확실히 해둔다.

이글은 그렇게 길지도 않고 또한 내 학문 연구의 과정을 밝히려는 것도 아니다.

글의 후반은 그저 나와 친구들 간의 아주 오랜 만에 갖게되는 값진 해후와 가슴 아픈 소식들을

개인사적 기록으로 남기는 데에 그칠 것이다. 혹시 그들 중의 하나가 이 시대의 엄청난 재앙인

고령자 우울증의 희생자라면 그것이 불치의 병도 아니되 방치해서는 더더욱 안된다는 점과

예방적 경각심을 갖자는 목소리가 경종이 되어 울린다면 더할 나위없는 부차적 효과가 아닐까

싶다.

 

덧 붙여서 에피소드 같겠지만 이 글은 자칫 "우울증 세대의 자화상"이라는 제목이 될뻔도

하였다. 어떤 종편 TV 방송국에서 국제 과학자 대회에 참석차 정말 모처럼 고국을 찾은 나,

강덕희와의 대담 프로그램을 갖자면서 들이댄 처음 제목이 그러하였다.  말하자면 이 시대의

대규모 전염병인 우울증에 속절없이 걸려있을 나의 자화상을 여성 과학자의 입장에서

고해성사하고 그 근본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식의 포멧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물론 일이 그렇게 비약된 데에는 내 책임도 클 것이다. 내가 연구하는 학문 분야가

"노령자 우울증에서의 DNA 인자의 변형과정 가설"이라는 좀 특이한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60세를 바라보는 연구자가 솔직히 본인의 질병이 아니라면 만고불변의 숙명처럼 타고

났다는 제놈 지도가 작성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 변형을 논하고 주장하랴.

비장한 개인적 운명의 작난이 아니라면 이런 연구 테마는 아직 금기의 영역이 아닐까,

물론 내가 그런 우울증에 걸려있다는건 천부당 만부당한 루머이다. 다만 주위의 여건으로부터

모멘텀을 받아서 이런 연구에 몰두하였고 이제 어떤 가시적 결과도 예측해 볼 수는 있는

데에 까지 이르렀지만 난들 과학계의 분위기를 왜 모르겠는가. 

그렇다보니 나도 항상 가슴에 과학자로서의 자결까지 염두에 둔 일종의 은장도를 품고

다니는 것도 사실이다.

   

미디어들의 태도를 조금만 더 언급해 보고싶다. "국제 노년학-노인의학회(IAGG)"가 1950년

창설된 이후 4년마다 한번씩 개최하는 학술대회를 아시아 에서는 1978년 도쿄 대회이후

두번째로 35년 만에 서울에서 열게 되니 개최국인 한국의 언론들이 깊은 관심과 센세이셔널한 

보도 자세를 취하는 방식에 이해가 가지 않을 없다.

그런 와중에 한국계 여의사로 미국의 유명 의학 연구소에서 일하는 내게 시선이 집중된

현상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고맙기도 할 따름이다.

더구나 나의 경우는 조금 과장이 되긴 하였지만 우울증 인자의 DNA를 인간 제놈 지도에서

3D 촬영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그 변형조차 예단할 수 있다는 가설을 던져놓고 있으니

노벨 생리-의학상에 가장 근접하고 있다는 고국의 미디어 보도는 항상 황송하기까지하다.

내가 사실 연구실 속에서 은둔자의 삶을 살고 있는데도 심심치 않게 그런 보도가 고국에서

나가고 있으니 정말 국적은 바뀌어도 핏줄은 영원하다고나 할까.

 

흔히 노벨 의학상이라고 지칭되는 노벨 생리-의학상은 1901년부터 지금까지 대략 200여명

에게 수여되었으나 그중 10명만이 여성 과학자라는 사실로도 나의 존재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데보라 강 리(한국명 강덕희)"의 이름은 G-7 국가가, 아니 전세계가 고령화 시대로 진입

하면서 생긴 여러 치명적 현상들 중의 하나인 노인 우울증의 문제를 둔화, 예방, 치료하는

목적치에 가장 근접했다는 현주소로도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

더구나 고국에서는 작년에 야마나가 신야가 만능 줄기세포로 덜컥 노벨 의학상을 받아서

1987년 도네가와 스스무가 항체 유전자 연구로 같은 상을 받은 것과 합하여 일본인들이 

두사람이나 이 부분의 금메달을 땄다는 상황이 되면서 나에게 거는 기대치가 유별나게도

되었다.

 

"뎁, 이번 과학자 대회에서 발표를 꼭 좀 센세이셔널하게 해 봐요, 작년에는 줄기세포 때문에

 우리 쪽이 관심사 그래프에서 꽤 많이 추락했잖아요. 그 결과 연구개발비의 그랜트가 뚝

떨어지고야 말았고---."

우울증 DNA 연구 파트의 디렉터인 조나던의 진지한 배웅 말이었다.

내 경우, 사실을 말하자면 연구소의 줄어든 출장비 문제도 있고 하여서 이번 참가는 썩

내키지가 않았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노인 우울증 문제는 미국에서도 국가적

재앙 중 하나로 인식되고는 있지만 전통적 심리치료 쪽과 제약회사들의 화학적 접근 방식에

맞물려 DNA 기제로 접근하는 내 분야는 밖에서 보기와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돈 문제를

둘러싼 경쟁과 견재가 심하여서 연구소는 항상 전쟁터를 방불케하였다.

거기에 더하여 이 시점, 고국에서의 나에 대한 과한 기대와 반응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거의 참석을 포기하려던 중, 서울 대회의 대회장 겸 조직위원장인 차흥봉 박사의 UCLA

방문은 큰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세계대회를 준비하며 전세계를 투어하던 이분이 우리 연구소를 방문하였을 때의 장면이

새삼스럽다.

"강 박사의 학문적 성취는 더 말하면 잔소리지요. 우리나라에 와서 연구 업적도 구체적으로

보고하시고 그러면서 현장에 큰 자극과 격려도 주십시오. 알고보니 또 고등학교 동문입디다.

12년 후배지요? 부군은 우리 연배이시고."

이 양반이 작정을 하고 오셨구나. 더구나 젊고 건장하고 건강하게 보이는 분이 대 선배이시라니,

더우기 벌써 10여년이나 노인병동 신세를 지고있는 남편과 동년배라니---.

무언가 크게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나지 아닐수 없었다. 더하여 고향생각까지 물밀듯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선배님, 사대 부고 나오셨군요?"

"그럼요. 우리 때는 남녀 공학이 아니었지만 강박사 때는 공학이 되었고 그후 고향 국립의대를

나오셨더군요?"

 

 

 

아, 고향!

물밀듯이 스며든 고향 생각은 이제 그리움으로 연소되면서 가슴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감정으로 목구멍을 연통으로 삼더니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그러고 보니 우선 중학교 시절은 불씨의 시원, 뜨거운 아궁이였다.

중학교 교지 "무궁"을 함께 만들던 김민지, 나희은, 정차옥, 그리고 송병만, 박범수, 정성관. 

제일 공부가 빼어났던 민지는 경기여고 64회쯤이던가, "대 경기 의식" 같은걸 방학때면

고향으로 내려와 삼년을 풍기더니 서울 의대를 갔어, 희은이는 이화여고, 이대 의대 그런

수순이었고 차옥이는 그림을 잘 그렸지. 

병만이 범수도 모두 경기, 서울로 갔는데 성관이만 고향에 남았어. 그러고 보니 친한 중에도

여자 셋은 모두 의대로 갔는데 남자들 소식은 잘 모른다. 조숙하게 문학을 한다는 아이들이

보통 가정이 어렵거나 문제가 있기 십상인데 그때 모인 아이들은 하나같이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이었지. 집안이 승승장구하여 모두들 서울로 올라가는 계기가 되었을거야.

하지만 내 경우는 중3의 마지막 순간이 암흑으로 뒤덮히더니 결국 그대로 진학한 사대부고

시절은 정말 흑암의 세계였지. 고교진학 원서를 쓰기 직전 아버지의 공장에 불이나고 이어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시고 급사, 아마도 충격에 따른 심장마비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형제자매들은 각자 능력대로 자기 앞길을 개척하다가 마침내는 내가 자리잡은 미국으로

모두 들어오게 되었으니 뒷말도 많은 LA에서 내가 은둔자로 학문 수행을 하는데에는

마음의 병풍들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 불쌍한 어머니, 나중에는 웃으며 돌아가셨지.

 

내가 대학을 다닐때는 다행히 그때가 한참 학생 아르바이트가 좋았던 호시절이어서

누구는 그걸로 돈을 벌다가 축재의 경지에 까지 이르러 아예 전업으로 인생 행로를

바꾸었다던가.

의대를 졸업하던 해에 그 무렵 이미 하늘의 별따기로 어려워진 미국 의사 자격시험,

ECFMG에 도전하여 가까스로 도미, 운 좋게도 나이든 재미교포의 도움으로 MD., PhD.를

마치고 대학 연구소에서 평생을 지내는 인생이 된 나.

열두살이나 많은 그 싱거운 남자는 내 남편이 되었지만 벌써 십여년째 요양원에서 정신 줄을

반쯤 놓고 있는 폐인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가끔 정신이 돌아오면 내 말을 잘 듣고 꿈결같이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번에도 내 선배의 이야기에 힘입어 고국 방문을 하겠다는 요지를 듣고 내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허니, 잘 결정했어. 자꾸 고향을 피할 생각만 하지말어. 친구들도 이제 다시 다 만나고 못난

남편 이야기도 솔직히 다 해버려. 감추지 말고."

그가 더듬거리며 내게 힘을 주었다.

 

사람이 어찌 혼자 살 수 있으랴.

그러나 그가 쓰러지기 전에는 내 공부와 이어 연구에 몰두하느라고, 쓰러진 후에는 그 형상과

형편이 참혹하여서 형제자매를 빼고는 일절 주위와는 평생 교통을 않으며 살아왔다.

다만 고향의 어떤 사람이 열어놓은 음악 카페에 들어가서 닉네임 "무명"으로 내 유명세를 탕감

하고 조용히 침잠되며 살아왔을 뿐이었다.

후에 Nature나 Science에 때로 주저자로, 때로 교신 저자로 Deborah Kang Lee라는 이름을

올렸지만 오프 라인 쪽으로는 그저 무명일 따름이었다. 구체적 인간관계로는 크게 관심을

끌지 않으면서 지내온 삶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로 잘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 갑자기

고향이라니, 그 고향의 앞에 우뚝 일어나서 무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니.

 

가끔 비즈니스 관계로 고국을 방문하는 오빠로 부터 나라의 발전과 위기와 또 회복에 대해서

들어왔지만 서울은 과연 놀라웠다. 사실 내가 한국사람이라고는 하여도 서울은 지리조차도

잘 모르고 떠나온 곳이었다. 

하지만 인천 공항의 위용과 깨끗한 면모는 자랑을 느끼기도 전에 주눅이 들 정도였는데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학술 대회 쪽에서 대기한 차량들이 유기적으로 안내를 하는 그

질서와 체계가 더욱 놀라움을 자아내었다. 나도 대형 국제학회를 여러차례 오가나이즈해

봤지만 이번처럼 완벽한 진행은 해내지 못했었다는 자각이 따른다.

교통편도 미리 신청을 해둔 경우는 그 먼거리를 50달러에 지체없이 들어오게 되어 있었고

미리 신청하지 않은 경우에도 네임 택을 달면 100달러 정도로 해결이 되다니.

기사는 팁을 거절하는 데에도 나는 억지로  떠맡기다시피 하지 않았던가. 

 

 

애초에 나는 기조강연자로 선정된 것도 아니고 심포지엄 260개 세션 중에서 1056편의 발표

중의 하나에 속하기에 학술대회 속에서의 내 산술적인 존재란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구연 발표, 즉 오럴 커뮤니케이션으로 발표되는 논문도 150개 세션 910편이니 대단한

학술대회가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이번부터는 "노년치의학회"까지 참여하여 발표 인원은

더욱 늘어 날 추세라는게 아닌가.

나는 명사특강, 라운드테이블, 워크샵, 특별강연 등의 출연에도 극구 사양을 하였다.

원래 이번 주제가 "디지틀 에이징"이라고 하여서 디지틀 시대의 노령화라는 다소 노인

공학적 접근이 주요 기조인 점을 간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고령공학, 생명과학과 노화관련의분과가 있듯이 내가 연구하는 분야가 결코

소외된 그런 국제 학회는 아니었으나 내게는 개인적으로 할 일이 많았다.

우선 내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보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화급하였다. 의학을 전공한 가까운

친구가 둘이나 되었으나 그들의 이름은 이번 대회의 발표자나 진행자의 명단을 두드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임상의로 출발한 그들이 의학 연구에 몸을 담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나온

의과대학을 검색하면 금방 현주소를 찾게 되리라는 확신같은 것도 물론 내 가슴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 발표를 첫날 끝내면 기조강연 중에서는  박성철 삼성전자 웰 에이징 연구센터장의

'디지털 에이징: 주목해야 하는 이유와 의미, 그리고 방법', 또다른 기조 연설로는 미국의

브라이언 케네디(Brian Kennedy) 박사의 '노화조절 경로'를 주제로한 내용이 눈에 뜨였다.

그리고 IAGG 현 회장을 맡고있는 브르노 벨라스(Bruno Vellas) 프랑스 툴루즈대 교수의

'알츠하이머 병의 임상시험: 현재까지의 성과, 앞으로의 나아갈 점 등도 꼭 참석할 주제였다.

그외 나머지는 나의 분야와 적당한 거리를 두어서 내 나라를 떠난 후 처음 와 보는 내게 

개인적 행보를 취할 핑계꺼리를 적당히 제공해 주었다.

 

코엑스 칸퍼런스 홀에서의 개막식은 국악 팡파레와 더불어 눈물이 핑 돌게하는 극적 장면

이었다. 많은 국제대회에서 이런 감동을 주는 경우도 드물었다. 물론 "배달계레"와 같은

해묵은 감상도 없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내 고향의 대 선배되는 차흥봉 박사께서 차기

4년을 이끌어갈 회장의 중책을 맡으며 취임 및 기조 연설을 할 때에도 가슴은 벅찼다.

 

이날 차기 IAGG 회장으로 선출된 차흥봉 세계노년학·노인의학대회 회장은 개막연설에서

"이번 대회는 인구 고령화 이슈가 선진국을 넘어 개발도상국으로 확산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다"며 "개발도상국의 경험을 졸업하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단계에 있는 한국의

경험과 선진국의 경험을 나누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축사를 통해 "편안하고 활력있는 노후생활보장을 새 정부의 국정과제로

삼고 고령화와 노인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에 힘쓸 것"이라며 "노인 일자리 확충 등 다양한

정책들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계속>

 


 

편안하게 듣는 Classic

 

01. 사냥 칸타타 中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 바흐
02. 월광 - 드뷔시

03. 비창 소나타 2악장 - 베토벤

04. 쟌니 스키키 中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 푸치니

05. 사랑의 인사 - 엘가

 

06. 현악 5중주 3악장 - 보케리니

07. 골드베르크 변주곡 아리아 - 바흐

08. 타이스 명상곡 - 마스네

09. 아베 마리아 - 구노

10. 백조 - 생상

 

11. 파가니니 광시곡 中 제18변주 - 라흐마니노프

12. 호프만의 이야기 中 뱃노래 - 오펜바흐

13. G선상의 아리아 - 바흐

14. 짚시의 노래 中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 드보르작

15. 캐논 D장조 - 파헬벨

 

16. 아라베스크 1번 - 드뷔시

17. 인류의 참된 기쁨이 되신 예수 - 바흐

18. 야상곡 C Sharp 단조 - 쇼팽

19. 트로이메라이 - 슈만

20. 신세계 교향곡 2악장 - 드보르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