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픽션) 우울증 세대의 증언 / 세번째 연재 (종편 TV 대담의 현장)

원평재 2013. 6. 30. 09:03

 

 

 

 

 

 

 

 

 

 

 

"수퍼 문의 날에 한국 출신으로 세계 과학계의 수퍼 우먼이 되신 강덕희 박사님을 이 자리에

모시게 되어서 참으로 큰 영광입니다."

스튜디오에는 정말 넉넉하게 둥근 풀문이 그래픽으로 떠있었고 이름난 여성앵커 B씨가

활짝 웃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아이구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 너무 띄어 주시네요. 수퍼 우먼은 B 앵커이신데---."

 

내가 좀 철닥서니 없는 어법을 쓰면서 거룩한 표정은 내다버렸다.

아, 그러고보니 먼저 포멧을 확 바꾼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토크 쇼에 출연하는 문제를 최종적으로 디렉터인 조나단에게 의논 겸, 보고를 하게 되었

때 그가 포멧을 확 바꾸라는 충고를 하였다.

"기왕에 언론을 타게 되었으면 전에 말했듯, 센세이셔널하게 한번 회오리 바람을 일으켜요.

대형 신문사와 신디케이트 되어있지 않은 방송국을 택한건 잘 한 선택같소. 그래야 모든

신문사들이 나중에 모두 호의적 보도를 하게 될 터이니까. 그런데 너무 얌전떼기로 방송에

나오면 뉴스 밸류가 약하다고 신문들이 억측할테지. 과감하게 도전해요. 우리 랩 쪽 사정이나

성과를 극화해도 좋겠고. 지금 CNN 아시아 판을 틀어보니 그곳 사정이 국내 정치문제와

대통령의 중국 방문 등으로 노인 문제를 아주 크게 다룰 분위기가 아닌듯 하던데.

뎁! 한번 튀어봐요. 대담 포멧도 확 바꾸고~. Have a great day!"

취침 직전이라면서 이번에는 그가 낮 인사를 보내주었다. 나와 담당 피디, 영상 엔지니어, 

그리고 작가선생 한 분이 코엑스 건물 옆 무역회관 62층 이탈리아 식당, 마르코 폴로에서

점심을 먹으며 프로그램 의논을 하는 자리였다. 이 나라가, 아니 우리나라가 이렇게 먹고

살게 되었구나.

"저기 보이는게 봉은사이고 저쪽이 경기고등학교 입니다."

"아, 네?!" 내가 조금 표나지 않게 움찔하였다.  

"미국의 책임자께서 무슨 주문을 하셨나요?"

담당 피디가 조심스레 물었다.

"네, 뭐 여기서의 일은 제가 모두 처리토록 위임되어 있지요. 다만 조언 수준이지만 합리적

이면 경청하고 따를 필요가 있겠지요."

조금전 들었던 조나단의 말이 귀에 쟁쟁거렸다.

"우울증이 주제라니깐 필요하면 캐시 이야기를 해도 좋아요."

아, 주위를 끌려면 캐산드라까지 팔아먹으라는 이야기? 그건 아닐 것이다. 진심이고 충정어린

조언일 것이다. 무슨 이야기이든 금기는 없으니 자유롭게 이야기하라는. 

자신을 실적에 끼워넣기 해달라는 그런 야비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아니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이 시대 과학자의 한 사람이 아닌가, 그는!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라는 나의 진솔한 첫마디는 그런 전략의 서막인 셈이었다. 내가 대학

다닐때 많이 쓰던 그 겸손의 표현이 지금도 유효한지, 올드 패션인지는 확인치 못했으나

여성 과학자의 일성으로는 적어도 파격일 것이다.

하지만 겸양의 측면으로 따져도 내말은 사실 과한게 아니었다. 정말 그녀야말로 수퍼우먼이

아니고 무엇이랴. 

ABC 방송의 토크 쇼, "더 뷰"에 간간히 들어가 접해보는 바바라 월터즈 보다 체구는 좀 작고

말라서 덜 푸근한 인상은 아쉬웠으나 무엇보다도 아직은 젊지 않은가.

가만있자, 젊음을 여러 덕목 중에서 가장 앞세우게 된 나도 이제는 나이가 속절없구나.

 

 

 

"먼저 이번 세계 노년학 대회에서 가장 관심을 끈 주제 중의 하나를 발표하신 소감과 내용을

잠시 소개해주시지요?"

미리 콘티의 순서를 훑어보기도 했지만 혹시 있을지 모를 초대 손님의 오만한 반란을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는 선제 압도하며 출발을 해야 되리라. 이혼을 두번인가했다는

앵커 B씨는 우아한 미소 속에서도 장미 꽃대 속의 가시같은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도 자신의 그런 점을 의식하는듯 플로어에 모인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박수를 유도해

내었다.

스테이지의 스폿 라이트 보다는 다소 어두운 객석의 청중들을 힐끗 보니 아무렴, 중년 이후의

부인들을 모아놓았을텐데도 모두 화려한 화장 속에 나이는 짐작도 못할 지경이었다. 남자들은

일부러 뺐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네, 노년학 세계대회에서 노년 우울증에 관하여 발표한 내용을 이곳에 모이신 여러분들에게

설명해 드릴까 했는데, 나이라는 기준으로만 본다면 전혀 도움이 될 내용이 아닌듯한데요."

청중들은 내가 아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분좋게 웃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시절에도 한국의 지방 대도시에서 잘 살았던 이야기, 이어서 닥친

집안의 불행, 가족들의 이산과 각자의 독립적 개척, 도미와 정착 과정 등을 아웃라인만 소개

하고 꼭 궁금한 점이 있으면 중간 중간에 앵커의 교통정리를 거쳐 객석으로 부터 질문을

받기로 하였다.

아니 어쩌면 즉석 토론으로 이어질 각오까지 나는 내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주장하여

받은 점잖은 콘티를 이제는 내가 내팽게칠 작정까지 한 것이다.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다.

겁이 나서가 아니라 챌린저블한 흥분으로.

타임즈 토크도 이제는 노래도 팔고 춤도 팔고 눈물도 팔고 웃음도 팔고, 모두 다 내다 팔기

시작하잖던가. 내가 준비의 마지막 과정에서 조나단의 제안을 수용하면서 곧장 이런 결심과

전략을 토로하였다. 

"언불청 고소원 입니다" 

앵커가 환호성을 꾹 누르며 내 인문적 바탕을 떠보았지.

젊은 엔지니어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가운데  내가 사자성어로 맞장구를 쳤었다.

"점입가경으로 만들어 보자구요?!"

젊은 엔지니어가 그 말은 알아들었는지 염화시중의 미소를 띄던 날이었다.

 

한시간에서 조금 모자라는 토크 쇼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준비작업은 거의 하루가 소비

되었다. 나로부터 추천받은 준비 아이템은 물론이려니와 자체적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서

일목요연하게 디지털 패녈에 정리되어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자료는 수거불능의 쓰레기라는

랩의 수칙이 여기에서 더 잘 지켜지는가 보았다. 

진행 순서는 우선 이번 학회에서 밝힌 전문적 내용을 다소 쉽게 풀이하면서 소개해 나가기로

작가선생과 코드를 맞추었다.

"비행기를 탔건 말건" 이제 말문을 텄으니 일단 화장빨 속에 감춘 참석자들의 나이를 툭툭

건드리며 나는 나아갔다.

"그런데 우울증이 꼭 나이와 상관은 없답니다. 젊은이들이 우울의 극치에 가까운 양태에

빠져드는 경우를 우리는 주위에서 자주 봅니다. 그 이후 중년에 이르면 이런 행동들은 일종의

소강상태에 빠지는듯 싶지요. 그러나 노년의 문턱에 다다르면서 이 문제가 다시 첨예화

됩니다. 막후에 숨어있던 각종 현상들이 무대 전면으로 마구 나서는 셈이지요."

그런 현상에 공감하며 일반적 걱정에도 동참한다는 표시로 앵커의 표정에 근심이 어렸으나

속에는 안심이 서렸을 것이다. 청중들이 내 말따라 심각해지기 시작하였으니까.

 

"그럼 중년의 나이 때에는 잘 극복이 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먹구름 표정을 추스리며 앵커가 역할을 하였다.

"아니지요. 참으며 쇼우를 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일시적으로 참는 것과 극복은 결코 같지

않지요. 오히려 병을 더 키우는 것에  다름아닙니다."

우울증도 암 인자처럼 우리의 DNA 지도 어디인가에서 날때부터 번지수를 부여받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후천적 여건이 조성되는 어느 순간 결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튀어

나오고야 만다. 아니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도 미리 예정된 시간에 맞추어 튀어나올 것이다. 

교묘하게 심어진 컴퓨터 바이러스, 예컨대 '트로이의 목마' 같은게 꼼짝않고 잠복해 있다가

자신에게 내재된 타이밍에 맞추어 존재를 외치듯이.

그러나 중년에는 너무나 할 일들이 많다.  가장 큰 할 일들이란 자식을 양육하는 임무이다.

자식을 키우는 엄마들은 중년에 병이 날 시간도 없다.

그럼 독신들이 우울증이나 암에 걸릴 확율이 더 높다는 말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독신이 게으름이 아니라 더 큰 가치를 위한 양보와 포기의 경우라면 그건 양육의 노고에

못지 않으리라. 아니 희생이라는 덕목을 프리미엄으로 갖고 있으니 그런 분들은 자기 방어에

더 잘 무장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신없이 매달렸던 세상 일들과  추구해오던 가치들은 어느 때인가 대략 배신자의

모습으로 눈 앞에 나타난다. 왜냐하면 우리의 성취감은 달성이 될수록 밟히기 싫어서

저만큼 더 멀리 달아나는 자신의 그림자 같기 때문이다.

그림자가 가장 길어질 때는 바로 황혼 때가 아닌가. 동이 틀때에도 그림자는 길지만 그건

점점 짧아진다는 약속의 그림자이다. 저녁 그림자는 이제 점점 길어지다가 암흑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자 온누리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나이를 상수로 하는 어둠 속 그 어디메에 

우울증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쯤해서 청중들은 침이 마른다. 자신의 그림자가 바로 그 어둠의 변경에서 서성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유발하는 음습한 그림자의 정체도 바로 DNA 중의 하나이다. 그게 단독자로 있는지

어떤 기능을 갖고있는 DNA와 메카니즘 상, 한지붕 두가족의 주소지로 존재하는지는 아직

예단을 금한다.

하여간 그 그림자 DNA는 뇌에서 대사물질을 만드는 데에 관여를 하고있다.

뇌세포에서 생성되는 홀몬에는 멜라토닌, 세로토닌,앤돌핀, 도파민 등 등이 있는데

멜라토닌은 잠을 촉진하고 세로토닌은 낮시간의 안정적이고 편안한 활동을 촉진하는

홀몬이다.

우울증 환자가 밤에 세로토닌이 과잉 분비되면 불면이, 그리고 불안감이 올수 있기 때문에

항우울제는 뇌세포 전달물질로서 세로토닌의 흡수를 차단, 또는 조절하는 약리작용을

가지고 적당한 밸런스가 유지되도록 하고있다.

여기까지는 어지간히 모두 파악이 되어서 항 우울증 약의 개발은 세로토닌의 대사 균형을

이루게 하려는 노력과 주욱 함께였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정리해 보자면 우울증은 세로토닌 신경계와 또하나 노르에피네프린 신경계의 기능부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신경계의 기능을 올려주면 우울증이

완화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때쯤 화면에는 두 물질의 구조식이 떴다.


세로토닌(좌)과 노르에피네프린(우)의 구조식

 

염산 플루옥세틴, 염산 밀나시트란, 염산 아미트리프틸린 등을 기본 제재로 하여서 한국에서

다빈도 처방을 하는 항 우울약의 이름을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하여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야기가 여기에 이름때 쯤이면 일반 청중은 보통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여러곳 강연의

경험이 그러하였다. 그러나 내 연구 분야를 설명하려면 다소 진부해진 이런 이야기를 빼고 갈

수는 없는게 안타깝다면 안타까우리라.

바로 그때 중간쯤에 앉은 청중이 손을 번쩍 들었다. 작가 선생과 미리 조율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차라리 돌발변수면 좋겠다는 투지가 마음 속에서 꿈틀거렸다.

"아까부터 무언가 궁금해 하시더니 이제야 기회를 드리게 되었네요."

앵커가 부드럽게 모더레이터의 역할을 하였는데 앵커의 분위기 설정과는 달리 손을 든

중년 여인은 매우 전투적이었다.

"세계적 석학께 이렇게 말씀 드려서 어떨지는 몰라도 앞의 말씀을 들으면 사람은 타고 날

때 자기 분복을 다 타고 난다는 우리 말도 있긴 하지만 그럼 타고난 DNA 팔자대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그런 주장이신가요?"

그녀는 말을 맺을때쯤에는 거의 자신을 가누지 못하고 씩씩거리기 까지 하였다. 틀림없이

가족력에 우울증이 들어있을 것이었다.

이럴 때에 앵커가 나서지 않으면 그 역할이 의심을 받을 것이다.

"네, 질문하신 분의 뜻을 강 박사께 정리하여 전달할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DNA 관련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함에 따라서 DNA 운명론을 제창한 과학자들은 강박사 이전에 이미 많이 존재

하였으니 강박사께 책임 추궁이나 항의를 할 형편은 아닌듯 합니다만, 호호호."

그녀가 곱게 웃었다.

"좋은 질문하셨습니다. 원래 우울증이란 확실한 외부 공격에 대해 합당한 반응으로 증세가

나타날 때에는 우울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치유도 경중에 따라 시간의 문제와

결부될 따름입니다. 우울증이란 그런 외부적 공격과 관련없이 내부적으로 나타날 때

일컫는 병입니다. 이 말은 물론 학술적 정의인데 그 경계가 모호하고 분명치 않을 때가

많지요. 또한 그러다보니 의료 행위상 이보다 더 쉬운 진단도 없고 이보다 더 수긍할 수 없는

진단도 또한 없는 웃기는 형편이 되었지요."

"어쨌거나 그런 말씀은 다 좋다고 쳐요. 그렇다면 약을 먹고 증세를 누그려 보아도 자식이나

손자 대에 또 나타나는 불치의 병이고 저주 받은 혈통이란 말인가요?"

화장이 좀 유난하다싶은 부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면서 큰 소리를 내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답을 하였다.

"DNA가 유전의 대명사로 통하는 데에는 일단 큰 이론이 없을 것입니다. 한때 유럽의 왕가에

혈우병이 내림 병력이 된적도 있었고 육손가락, 물갈퀴 손가락 등이 격세 유전하는 현상도

속수 무책으로 방관되어 왔지요. 그런걸 통계나 내고 과학자연 하던 시대도 분명 있었고 그

나름의 시대적 기여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창조적 과학자는 그런 현상을 어떻게

타파하느냐에 신명을 바치는 사람이라고 저는 봅니다. 시간이 문제이긴 하지만 긴 안목

으로는 해결책이 나올게 확실합니다."

"확실하다는 그 말씀에 일단 방점을 찍고, 그럼 우선 강박사님이 연구하고 계시는 학문

분야의 뒷 부분을 모두 설명 듣고나서 또다른 궁금증을 물어보시지요."

명 앵커가 명 지휘봉을 휘둘렀다.

이제 교두보가 마련되어서 나는 급히 후반부의 템포에 박차를 가했다. 거리낄게 없었다.

알레그로 논 트로포,

당당하고 빠르게, 그러나 너무 젠체하지는 말고.

"아까 어느분께서 '타고난 분복'이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말에는 '팔자도 길들이기'라는 절세의 화두가 또 있습니다. 우리의 조상 어른들은

하늘이 내린 천형같은 운명을 그대로만 수용하지 않고 각고의 수고와 깊고 넓은 기도의

마음으로 극복해 내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마음 속에 홧병을 안고 계시지요? 저 두터운 화장품과 값비싼

의상 아래에 불타는 홧병을 간직하고 계시지요? 그걸 감싸안고 계실때에 그 열기는

여러분의 DNA를 병든 상태로 만듭니다. 그 병든 상태의 DNA는 그대로 둘 때에 다음 세대로

유전이 될 것입니다.

저는 개신교 신자로서 진화론을 그렇게 내세울 형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삼라만상이 이렇게

변화해 온 것이 오로지 돌연변이같은 데에만 의존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보는 증거들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종이 변이되었다면 그건 느린 과정을, 거쳤을 것입니다. 그 느린 과정을

저는 오랜시간에 걸쳐서 3D, 즉 입체적 시각으로 찍어내는 방안을 고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의 일부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또 다양한 과학자들이 이용하고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화학 분자식이나 구조들은 통상 평면으로 인지 되어왔으나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입체입니다.

여기 이렇게 DNA라고 백보드에 쓰거나 저기 그래픽으로 나온 분자식, 아 저기 얇게 

평면으로 둥실 떠있는 달님도 모두 입체인 것입니다. 그걸 입체로 찍어내어서 다시 그속을

들여다보는 방법에 제가 도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잠간!"

조용한 공간에 앵커가 비명과 같은 소리를 질렀다.

"그 기술을 반세기 전에 영국의 여성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연구소에서 자신의

윗사람인 모리스 윌킨스에게 도둑질을  당하여 노벨상을 받지도 못하고 세상을 하직한

사실과 강 박사의 케이스가 유사성이 있다고 항간에는 말이 많습니다."

앵커가 센세이셔널리즘에 적당히, 시의적절하게 불을 지폈다.

"로지에 대해서는 여성 과학자의 한사람으로서 깊은 경의와 안타까움을 항상 느낍니다.

아쉬움은 여성 차별에 대한 사실 때문이라기 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쪽에 더 무게를

실어봅니다. 자신의 몸에 이상이 왔어도 일찍 발견하지 못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연구실에서 버티었다는 사실은 과학을 향한 순교라고도 볼만합니다. 아마도 그녀가 조금 더

살았더라면 노벨상도 공동 수여받지 않았을까요. 하여간 노벨상에 얽힌 부분은 제가 잘 알지

못하여서 무어라 언급할 입장에 있지는 않습니다. 또한 제가 개발하고 있는 기술은 특별한

데가 있긴하지만 이미 CT 단층 촬영에서도 보듯이 입체 촬영술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DNA의 내부를 들여다 본다는 것은 그 자체의 기술도 기술이려니와 DNA가 변형되는

메카니즘을 입체적으로 들어가 보고 거기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어서 수리를 하거나 제거를

하는 전략으로 나아가는 데에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갈 길은 아직 멀었습니다." 

 

로지에 대한 일은 매우 델리케이트한 문제였다. 더구나 누명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제임즈 왓슨은 아직도 건재하여서 재작년인가 자신의 제놈 지도를 공개 하면서 암 연구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지 않은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였고 서양

속담에는 벽에도 귀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내 연구 분야를 조금 더 강조하고 부연하여서 로지 문제에서는 좀 거리를 두고자

하였다.

이제 내 이야기는 이렇게 밝혀진 메카니즘을 근거로 DNA 구조가 어떤 붕괴 메카니즘을

갖고 있는가, 이기적 DNA가  우울증을 유발시켜서 자폭하는 메카니즘도 있을수 있다.

그게 노년 우울증의 섭리, 나아가서 생명의 신비가 아닐까,

이 정도 수준이 되면 God only Knows, 즉 GOK의 차원으로 과학이 철학과 심지어 종교

와도 손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이기일원론"도 가까운 원군이 아닐까,

또 붕괴 메카니즘을 이해하면 그것을 막거나 쇄신할 방법이 오히려 쉽게 나오고야 말리라,

고대 건축물의 부서진 곳에서 오히려 원상을 유추하기 쉽듯이, 또 쿼크니 반물질이니 하는

것 처럼 DNA를 구성하는 물질의 근본은 무엇일까도 탐구의 대상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3차원적이고 공간개념의 하부구조이다. 단순히 평면 조직으로 DNA를

파악할 수는 없고 입체적으로 사진을 찍고 구현할 수 있는 경지에 나는 지금 도달하고 있고

이건 3차원 영화나 그래픽에서도 탐을 내는 기술이다.

우리 연구소는 한번도 노벨 과학상을 획득하지 못했지만 "파이널", "세미 파이널"이란

별명이 붙어있다시피 여러 약품 제조에 참여하여 밥값은 충분히 하고도 남는 조직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덧붙여주었다.

 

"아하, 건물이 자못 낡아서 헐어지면 최초의 청사진하고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고 그러면

적절한 파괴 공법을 개발해서 건축을 다시하건 아니, 리모델링을 일단 쉽게 할 수 도

있는 그런 쪽에 강박사의 현주소가 있다고 파악해도 되겠습니까?"

명 앵커의 이 말은 작가선생의 작품이 틀림없었다.

"역시 이름난 앵커이시라 종합하시는 역량도 대단하십니다."

내가 시비를 걸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노벨상도 그렇고 특히 과학계에서 여성에 대한 괄시가 심한거 같아요. 사실

노벨도 어머니 아들이고 부인도 여자일텐데 말이지요."

누가 또 걸걸한 목소리로 항변하였다. 메조 소프라노였다.

"호호호, 뭐 알렉산더 대왕도 어머니가 계셨지요, 단, 노벨은 결혼을 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노벨상도 그의 사후에 만들어졌지요만. 그런데 여성이 괄세를 받았다는 데에는 아이러니가

좀 따릅니다. 1901년에 노벨상이 제정된 이래 마담 퀴리는 3년만에 물리학 상을 받고

1911년에는 다시 화학상을 받습니다. 퀴리의 딸과 사위도 그 후에 또 화학상을 받지요.

다만 인류사에서 여성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잔재는 아직도 지구의 여러 곳에서 그리고

어쩌면 서구에서 가장 늦게 여성 참정권이 확보된 미국의 곳곳에서도 아직 차별을 받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모두 모범 답안이었다. 그러나 청중은 모범 답안만 들으러 온건 아니겠지.

"박사님, 한국에 계셨어도 어쩌면 더 좋은 자리와 돈이 보장될 수도 있었을텐데 왜 어려운

미국을 가셨나요. 더우기 여자의 몸으로. 물론 우리는 덕분에 목에 힘을 좀 주고 삽니다만,

호호호."

우람한 목소리의 덕성스러운 질문이 나왔다. 알토였다.

"제가 미국으로 갈 때가 미국의 의사들에게는 참 어려운 시절이었지요. 월남 전쟁에 미국이

지고 철군을하자 수많은 군의관들이 미국의 방방곡곡 병원에 이력서를 내던 때였습니다.

그러니 미국으로 간 동기를 예과시절 교양 물리학 교수님의 영향이 컸다고만 하기에는

제자신 좀 자신이 없군요, 본질적으로 제 DNA에는 유목민 기질, 노마드 기질이 있었던가

봅니다. 미국 생활의 단면은 잠깐만 언급해 볼게요. 어차피 이 부분은 50분으로 된 대화록에서

삭제될 것이니까요, 호호호."

나는 몇개의 키 워드로 내 생애의 일부를 내어놓았다. 서독 광부, 장애인, 백혈병으로 작고한

어느 파독 간호사, 컴퓨터, 부동산, 지난 20년간의 주식 상승기, 두번째 부인, 등등이

모자이크되어 퀼트 이불이 되었다. 남편이 아파서 누운지 10여년이라든지 딸과 사위가

인도네시아의 오지 '이리안 자야'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큰 일을 이루어서 내 이야기가 세상에 소상히 나올 때까지는 일부 미지의 상태,

무명도 통용되는 여지가 마음 편할 것 같았다. 

 

"임상 의사를 하시면 돈도 더 많이 벌고 할텐데 평생 연구소를 지킨데에는 무슨 동기라도

있으신지요?"

이건 앵커께서 친히 물어본 말이었다. 앵커와 미리 약속이 되어있던 질문이었다.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극화해 보자는 그녀의 제안에 내가 흔쾌히 동의한 결과였다.

"네, 원래 저는 임상 보다 리서치 메디컬 쪽을 좋아했지요. 이건 뭐 제 DNA가 선호한

것이라 설명이 불가능하겠지요. 그럼 포커스를 전공 선택의 동기에다 맞추어 볼까요?

지금은 세포 생물학, 분자 생물학, DNA, 암 연구 등이 모두 한 집안처럼 경계를 허물고

지내지만 30년 전만하여도 조금씩 경계를 달리하고 있어서 저는 백혈병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어느날 마음을 돌리게 되었지요. 저와 한 연구소에 있던 동료의 부인이 바로

우울증 환자였던 것입니다. 그 부인은 지금 이 세상 분이 아닙니다."

나는 조나단의 부인 캐산드라 이야기를 꺼냈다. 백혈병은 내 남편의 죽은 전 부인이 앓던

병이었다. 그런데 우울증은 가까이 살아있는 사람의 끔찍한 진행형 병이었다. 당시 연구비

상황은 두군데가 비슷하였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의 병을 연구하고 싶었다.

 

20여 년 전 어느날, 그날 조나단은 연구 기금 관련으로 북부 캘리포니아, 즉 북가주의 어떤

기업에 강연을 나간 상태였다. 그래서 연구소가 있는 남가주로부터 이동의 동선이 꽤

길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휴대폰이 있었겠지만 그때는 삐삐가 고작이었다. 조나단의 집에

함께 살고있던 할머니가 삐삐를 쳤다.

조나단의 책상에서 그 작은 기구가 소리와 떨림 장치를 같이 해 두었는듯 몸부림과 절규를

함께하였다. 

영문을 모른채 연구소에서 가까운 조나단의 집으로 내가 달려갔을 때는 연옥이 따로 없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쌍둥이 두딸이 엄마의 양손을 각각 붙들고 있는 가운데 할머니는 발코니로

나가는 문을 결사적으로 잡고 앉아 있었고 집안은 아수라장이었다.

내가 들어서며 할머니에게 왜 병원 응급실이나 911 을 부르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이런것도

보험이 되느냐고 부들부들 떨며 말도 잘 잇지 못하였다. 내 모습을 보더니 캐산드라는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두 딸을 가벼운 인형 밀치듯하고는 부엌으로 달려가서 나이프 하나를

잡아서 목에다 대고는 발코니 문쪽으로 다시 돌진하여 할머니를 쉽게 밀쳐내고 베란다 난간을

올라가려고 혼자 싱갱이를 했다.

입으로는 내내 무어라고 중얼거렸으나 알아듣지는 못하겠고 평소 아름답다고 예찬 받은 저

벽안, 푸른 눈동자에서는 푸른 레이저 광선이 펄펄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때 이래 나는 푸른 눈동자에 대한 일종의 앨러지 반응이 생겼다. 생각해 보자. 아무리 태평양

연안의 도시에서 살고 있다 할지라도 푸른 눈동자는 거의 세 사람 중의 하나에 박혀있는 이

시추에시션에서 푸른 눈동자 앨러지라니!

그로부터 20년이 지나서 캐산드라는 그 발코니 난간을 뛰어넘는 데에 성공하였다. 주변 수많은

사람들을 좌절의 고통 속에 빠뜨린 20년, 쌍둥이 딸들은 그때 소아심리 치료를 받았고 할머니는

노년 심리치료, 조나단은 경찰보다 더 까다로운 아동 복지국의 조사도 받았다. 캐산드라는

입원을 했는데 다행히 연구소 프리미엄으로 정신병원은 가까스로 피하고 외과에서 머리에

생긴 물혹 제거 수술을 받았다. 상당한 부분은 보험 처리가 되었다. 

물혹 수술이 외과적 처치이긴 하였으나 그녀의 진정한 병은 바로 우울증이었다.

정신분열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울증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직 충분히 밝혀내지 못했지만

유전적 요인, 신경생화학적 요인, 심리적·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관여한다고 보았을 때에

캐시는 이 모든 요인을 병합한 비극적 여인이었다. Deep South라고 일컫는 남부 아칸소

출신의 이 미녀의 가계에는 우울증 환자가 많았다. 그녀는 서부로 여행을 왔다가 조나단을 

만났다. 남부 침례교파의 기독교 신자인 그녀는 랍비를 아버지로 둔 시댁 식구들의 환영을

받지 못하였고 남편이 유태 커뮤니티의 시나고그를 등한히 하는 책임까지 떠맡았다. 사실

그녀는 이 부분에서는 확실히 면책이었다. 책임은 남편에게 있었다. 조나단은 나처럼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유신론자였다. 캐산드라는 남부 기독교인 특유의 자책감이 강했다. 

불임에 대한 책임소재도 불분명한 가운데 그녀는 너무 일찍 인공수정을 자신의 비용으로

해냈다. 하이틴 때에 친척 오빠에게 유린을 당하였다는 죄책감이 그런 강박관념을 초래

했다고 하지만 이 부분은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사회자님!"

누가 플로어에서 긴급동의라도 하는듯 손을 들었다. 

앵커의 눈빛에 어린 수용의 뜻을 읽고 뚱뚱함을 원피스에 가린 부인이 질문을 했다.

"혹시 그 부분은 죄송하지만 강박사님의 존재하고도 관련이 있지는 않는지요? 질문이 턱

없으면 나중 편집을 하신다니 그때 적당히 하세요. 호호호"

그녀의 웃음소리가 청중들의 호응을 유도하였다.

"우울증이 가학성과 피학성을 초래한다는건 이미 상식이 되엇습니다. 그러니 그녀의

마음이야 주변인으로서는 헤아릴 수가 없겠지요. 그러므로 질문하신 분의 말씀이  결코

무가치한 상상력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히 해 둡니다. 로지 프랭클린도 강조하였습니다.

Science and everyday life cannot and should not be separated.  과학은 일상생활과

분리 되어서도 아니되고 분리될 수도 없다고 말이지요."

 

나는 이제 몸을 일으켰다. 내가 앉아있는 단이 조금 높고 머리 위 플러드 라이트 조명의

휘도가 조금 더 강하다고 해서 계속 스핑크스 행세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나와

조나단의 관계에 대한 캐시와 내 남편의 오해, 혹은 좁은 테두리의 착시가 비극의 큰

씨앗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개연성에서 나는 한시도 해방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걸

누구에게 터놓고 말하랴.

혹시 중학교 시절, 교지 "무궁"을 편집하던 조숙한 문학 소년 소녀들을 만나게나 된다면

털어 놓을 수 있을까. 

"자, 여러분, 여러분들도 홧병 속에 사시지요? 그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유전적 DNA가 아닙니다. 그러나 DNA와 무관하다고 해서 치료를

등한히 해서도 아니될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노년 여성의 약 20퍼센트가 치료를 요하는

우울증 환자라고 합니다. 그냥 두면 자해와 가해를 하고야마는 것은 우리의 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이기도 한 것입니다. 자업자득이라고나 할까요. 평균 여명이 길지 않았던

시절보다 당연히 그 확율은 높아졌지요. 이렇게 되면서 인류사에는 새롭게 변형된 DNA가

생성되고야 말 위험이 닥친 것이지요. 이 위중한 미증유의 상황 전게에 제가 도전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감사합니다."

 

객석에서 여러분들이 스테이지로 올라왔다, 우리는 앵커와 PD와 AD, 작가선생까지 모두

포함하여서 얼싸안았다.

가급적이면 방청한 부인들의 얼굴이 전면을 향하도록 하여 우리는 오래 안고 있었다.

내 등뒤로 길지 않으나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것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긴 여름 해가 지고 한참 지났는지 수퍼문이 하늘에 떠있었다. 엊그제

만월을 보았는데 그 사이 많이 이즈러져 있었다. 세월이 이런 것이구나.

호텔로 돌아오니 객실 전화에 녹음이 남아있었다.

"언니, 세분 모두 찾았습니다. 두분은 내일 만나시고 한분은 좀 힘드실 것 같네요." 

 

<계속>

 

 


Dvorak The Masterworks Edition CD36,37


'O, moon high up in the deep sky' 달에 부치는 노래'
Performed by Zagreb Philharmonic Orchestra
with Ursula Furi-Bernhard, Marcello Rosca, Martina Gojceta, Tiziana K. Sojat,
Vesna Odoran, Tamara Felbinger-Franetovic, Walter Coppola,
Nelly Boschkowa, Martina Zadro, Vitomir Marof, Zeljco Grofelnik
Conducted by Alexander Rahbari

타이틀: Rusalka. 전3막의 서정적 동화 오페라. 체코어 대본은 야로슬라브 크바필(Jaroslav Kvapil)이 프리드리히 드 라 모트 후케(Friedrich de la Motte Fouqué)의 소설 운디네(Undine)를 바탕으로 썼다.

초연: 1901년 프라하 국립극장

사전지식: 드보르작의 오페라는 한스 크리스챤 안델센,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Gerhardt Hauptmann), 그리고 드 라 모트 후케의 체코전래 동화에서 스토리를 가져왔다. 서곡은 호수가 열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음악이다. 왕자의 결혼식 장면에 나오는 폴로네이즈는 화려하다.


루살카 역의 애니 바브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