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단편) 해혼식 그 후

원평재 2014. 3. 2. 19:26

 

 

 

 

 

 

 

 

계간 <시에> (2005년 11월 창간) 봄호에 단편 "해혼식 그후"가 실렸습니다.

기존의 "해혼식"에 세월이 흘러가며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라는 시간의 흔적,

곧 삶의 변천 변모라는 도랑을 팝니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진화되었다고 믿고 싶군요.

  

 

해혼식 그 후

 

미국 생활 몇년 만에 가족들과 다시 헤어져서 한국으로 들어와 보니 여러 가지 작은 변화들이

눈에 띄었다.

산천이 의구할리야 있겠는가.

다만 내가 먹고 살던 터전, 청계천의 고가도로가 철거되고 그 아래로 인공 실개천이 흐르는

광경은 그렇게 놀랍지 않았다. 원래 그 아래에서 화공약품 제조 및 판매상을 하다가 얼마 되지

않는 보상비를 받고 미국으로 떠났기에 그 전말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변화에 따른 낯선 모습 자체는 잃어버린 가족 관계에서처럼 내 마음을 황량하게 하였다.

아내는 자식들의 조기 유학을 이유로 미리 미국에서 오래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나도 청계천의

가게가 타의에 의해서라도 정리가 되자 잘되었다 싶게 뒤를 좇아 태평양을 건넜었다.

E-2 비자를 들고 LA로 달려간 결과는 끝내 비참하였는데 그 이야기는 조금 뒤로 미루어본다.

어쨌거나 떠날 때처럼 돌아올 때도 나는 홀로였는데 그 사이 세상과 물정은 고향산천이라고

변치 않을 리 없었다. 팔고간 아파트 값은 그 사이 천정부지로 올랐다가 지금은 팔았던 때

보다도 훨씬 아래로 떨어져서 말하기 민망하지만 쓰라린 내 처지에 하나의 위안은 되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랴. 수중에는 집 하나를 다시 장만할 경제적 여유가 전혀 없었으니.

떠나기 전에 아내의 빈자리를 메꾸어 주었던 여인들은 종적을 감추었거나 마음의 문을 닫아

걸어버렸다.

만일을 생각하여서 역세권에 사두었던 오피스텔 두 채가 천만다행하게도 내 존재를 지탱해

줄만하였다.

매달 들어오는 월세가 택택하였으니 모두 일인가정, 싱글로 사는 세태 덕분이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먹고 살 일은 해결된 마당에 당장 급히 할 일은 없다보니 친구들의 근황에나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과거 업계의 인물들과는 아직 거리를 두고 탐색전을 벌일 형편인가 싶었다.

그러던 중에 나와 꽤 가까이 지냈던 초등학교 동기가 큰 교통사고를 당하여서 코마 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마라는 말이 식물인간 같은 상태라는 것도 그렇게 해서 알게

지식이었다.

중년이 막 지나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사내가 식물인간으로 누워있으면 가족 관계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 까.

내 형편도 있고 하여서 위로의 심정과 함께 흥미까지 유발되는 게 인간의 마음이었다.

금방 연락하기도 뭣하여서 무심한 듯 친구들로부터 들은 소식이 상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아내라는 여인은 남편이 이룬 인간관계를 토대로 그나마 보험 설계사를 하고 있었는데 소득은

어찌되었건 생활방식은 매우 다채로운 상태로 변모하고 있었다. 원래는 요조숙녀가 따로 없던

그런 부인이었다.

자식으로는 다행히 아들 하나만을 두고 있어서 군복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식도 그럭저럭

정을 떼고 떠나갈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마침 우연히도 초등학교 동기 하나로부터 그의 근황을 들으며 불현 듯 내 경우를 빗대보게

되었다.

나야말로 코가 석자로 빠진 상태에서 미국에 있는 아내와 자식을 만나러 E-2 비자를 들고

들어가서 견뎌낸 사오년간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서툰 영어로 샌드위치 가게를 열고 가부장

임을 내세우며 내 딴에는 가정에 충실 한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우렸으나 끝내 돌아온 것은

아내로 부터의 이혼소송이었고 자식들은 두말없이 그쪽을 따라나서는 것이었다.

내 편의 이혼 전문 변호사라는 1.5세 교포 작자는 모든 걸 다 이해하고 원만하게 해결 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치더니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내의 변호사와 죽이 맞아서 무슨 타협안을 내

놓았는데 서명을 하고 보니 이건 완전히 아내 위주의 장난에 놀아난 꼴이었다. 살던 집과

자식을 몽땅 빼앗기고 나는 눈물을 머금고 귀국 비행기를 탔던 것이다.

 

부모 자식 간에도 분별과 범절은 없고 얕은 세뇌작용과 현실만이 존재할 따름이었다.

아내의 농간에 남매는 나로부터 눈을 돌리고 모두 아내가 사귄 백인 남자에게로 돌아섰다.

매 학기 초에는 큰 돈을 부치고 또 달마다 작은 돈을 부치기 여러 해, 마침내 한국의 가게 터가

청계천 개발로 수용이 되자 이걸 운명적인 것으로 여기고 미국으로 좇아갔으나 닭 좇던 개가

따로 없었다.

E-2 비자의 조건대로 샌드위치 가게를 열었더니 처음 관심을 갖던 아내와 아이들은 수익도

별반 없이 잔심부름에 동원되는 일에 이내 넌더리를 내고 나를 외면하였다.

 

내게 한국에서의 추억과 남은 기대감이라도 없었더라면 나는 정말 이시대의 흔한 화두, 자살을

결행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지막 희망을 안고 다시 돌아와서 보니 그런 생각도 꿈결같이

지나가 버린 과거사에 다름 아닌 듯도 하지만 절망하기에는 아직 내 나라의 인간관계가 비록

흐릿하나마 역동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국적은 바꾸어도 학적은 바굴 수 없다던가, 초등에서

대학까지의 동창관계가 캐다 만 탄광처럼 남아있었고 빗장을 건듯한 이른바 골드미스 여성들,

예컨대 순종형의 비스 박, 사진작가, 이 기자, 특히 직관이 강한 카피라이터 강 선생 등이

바람만 불면 해원에서 나붓길 손수건같은 존재이리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착각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다 잃어버리고 왔어도 오피스텔 두 곳에서 나오는 생활비와 허상이라도 반영하는

추억의 거울 한 조각이면 당분간은 버티어내지 않을까.

그다음은 또 그다음 일이고.

코마 상태에 빠진 친구는 서울 변두리의 어느 요양원에 장기 입원을 하고 있었다.

내가 그 정도까지 파악을 하고 있는데 그 식물인간, 아니 완전히 식물인간은 아니고 그 직전의

상태에서 오락가락한다는 친구가 나를 꼭 보자는 연락이 왔다.

그는 내가 아직도 미국에 있는 줄로 알기가 십상이었다. 피차 친하기는 하였으나 어쩌다 서로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락이 닿으리라 기대하기도 쉽지 않을 일이었고, 내가 귀국했다는 소문도

아직 별로 내지 않았는데 그가 간절히 나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그가 전부터 정신세계에서 좀 독특한 점은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고 미래 예측도 어지간

하여서 파고다 공원 앞에 돗자리만 깔면 복채는 거저 굴러 들어오리라는 농담도 숱하게 받을

만큼 그에게는 불가사의한 측면이 있었다.

나는 몸이 좀 떨리는 기분으로 그의 아내와 일종의 문병약속을 잡았다.

전부터 안면이 있던 친구의 아내는 나와 시간 약속을 하고는 병실을 지키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향기가 눅진하게 일었다.

“오래만입니다.”

친구 간에 친하던 정황치고는 별로 가깝지 않게 지낸 부인에게 내가 의례적인 인사를 건넸다.

“네. 다들 편안하시지요?”

그녀도 조금 어색하게 내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내 형편을 듣고는 있을 터이지만 그렇게라도

안부를 묻지 않을 수는 없었으리라.

“어쩌다 저렇게 되었나요?”

내가 안부에 대한 답은 피하면서 문병의 말을 하였다. 물론 나도 사고의 원인은 이미 들은 바

있었다.

“술 탓이겠지요 뭐.”

그녀가 망설이지도 않고 답을 하였다.

순간 침대가 조금 요동을 쳤다.

“저 양반이 술 탓이라면 저런 반응을 보여요. 하지만 술 탓이 아니라면 고속도로에서 역주행을

했겠어요?

오토바이를 모는 주제에…. 친구 분이 오신다니까 저 책을 갖다 달라고 하더라고요. 요즘은

많이 호전이 되어서 가끔 말도 하고 그래요.”

“아니, 제 졸작이 있는 저 책을?”

“네, 지금은 저래도 정신이 잠시 들 때는 다시 한 번 읽는 시늉도 하더라고요. 그건 그렇고 제가

지금 업무상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그녀가 나가야겠다는 설명과 향기에 대한 변명을 섞어 놓으며 크게 미안한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위치만 알려주셔도 좋은데 공연히 시간을 빼앗았네요.”

내가 진정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떠난 곳에서는 달콤한 향수냄새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앉았던 원형 의자에 내가

엉덩이를 걸쳤더니 온기가 남아있어서 기분이 묘했다. 침대 쪽으로 의자를 끌어당기며 친구의

손을 잡아보니 체온이 미미하였다.

감았던 눈을 뜨고 그가 나를 쳐다보는데 시선에 푸른빛이 돌며 간절함이 들어있었다.

아까 부인의 말대로 요즘은 가끔 정신도 돌아오고 더듬거리며 말을 잇는 경우도 있다더니 과연

그럴 수는 있겠구나 싶었다.

환자의 침대 머리맡에 있는 낯익은 표지의 책자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여러해 전에 나온 『청계 문예』라는 문학 동호인 회지였다.

청계천이 한창 활기에 차 있을 때에는 그 동네가 공구상이나 화공약품상들만의 전성시대는

아니었다.

가까이에 을지로까지 연장된 문화벨트가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은 마포 출판단지와 경기도 탄현의 헤이리 마을로 많이 옮겨갔지만 아직도 바로 옆에는

을지로의 출판 인쇄 중소기업들이 즐비하지 않은가.

사춘기 문학 취향의 내가 여류문인들과 염문을 피우던 일도 이런 주변 분위기와 무관치는

않았다.

더우기 나는 인생에서 가장 왕성한 생물학적 기간을 독신으로 지내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

시기에 나는 소설을 끄적이기도 하였는데 물론 마지막 윤문 단계에서는 내가 사귀던 방송국

작가선생이나 카피라이터가 손을 보아주었다.

 

거기 한 방에 여섯 명이 들어있는 요양원 병실에는 간병인이나 가족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환자들만 모두 시체처럼 말없이 누워있었다. 내 친구도 아까와는 달리 다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여러해 전의 내 졸작을 다시 읽으며 병실을 지켰다.

제목은 해혼식이었고 내용은 지금 병실에 누워있는 이 친구의 여러해 전 상황이 큰 얼개를

이루고 있었다.

 

 

해혼식

 

충청남도 금산에 있는 초등학교 동기의 초대로 "금오농원"을 찾은 것은 지난 식목일 연휴였다.

청명 한식에 선산을 찾아야 되었지만 금오농원 쪽의 초대를 반년이나 미루어 온 탓에 우선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체면치례를 먼저 하기로 했다.

하긴 세종 시, 대전권으로 수도가 이전한다고 난리법석인데 이 친구의 농원 옆으로 싼값의

포도원이 나와 있다는 귀띔도 속물인 나의 관심을 끈 원인 중의 하나였다.

청계천에서 원래 화공약품상을 하던 나는 컴퓨터 칩에 특수 인쇄를 하는 기술과 약품을 일본

에서 조금 일찍 들여온 덕분에 지난 수년간 업계에서는 꽤 뜨는 장사를 해 온 셈이었는데,

요즈음은 청계천 고가를 뜯고 그 아래 기계 공구상, 화공상, 나 같은 특수 인쇄상 등등을 모두

철거한다는 바람에 솔직히 사업에는 마음이 떴고 어디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나 짓다가 땅값

이나 오르면 팔자나 고쳐볼까---, 그런 생각뿐이었다.

물론 최근에는 새로운 아이템이 하나 나타나기도 했다.

세상이 이제는 일반 현금 출납 카드가 아니라 스마트카드라고 하여서 IC(집적 회로) 칩을 박은

카드로 옮겨 가고 있는데 이 칩을 플라스틱판에 넣고 황금빛으로 프린트해 넣는 기술과 화공

약품은 나 아니면 코스트 다운이 어려운 시장 상황이었다.

이런 유리한 시장 전개에도 불구하고 청계천 고가도로의 철거와 함께 사라지는 이곳 바닥을

보니, 나이 50에 모든 것을 버릴까하는 막된 생각이 울컥 치밀어 올라오는 어제 오늘이기도 한

것이다.

하긴 그간 이 경쟁이 치열한 바닥에서 돈께나 벌었고 현재도 청계천 철거에 따른 반대급부까지

노림수가 있는데도 이런 심란한 상태에 도달한 데에는 오래토록 마누라와 떨어져 살아온

환경이 이제 한계점에 도달한 탓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여러해 전 남매가 중학교 들어갈 때부터 자녀의 위대한 선진교육을 위하여(어쩌면 위대한

영어공부를 위하여) 두 아이를 모두 데리고 미국에 가 있는 마누라는 상기 돌아올 생각도 없고

또 체류 기간과 목적을 어겼다는 이유로 이제 한국에 나오면 다시 미국 들어갈 수가 없다는

핑계 등으로 귀국할 날짜는 새까맣게 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아이들이 모두 대학에 들어가면 무슨 핑계를 또 댈까?

아, 투자 이민이나 소자본 창업 이민으로 50만 불 안팎을 보내라고 성화가 대단하겠지.

청계고가도로를 헐면 시에서 보상금으로 돈이 꽤 나올 것을 어찌 LA에서 나보다 먼저 냄새를

맡았나---.

하여간 주말 휴업기간이 시작되자말자 나는 특수 인쇄, 특수 화공 도장 등의 문구가 빛나는

자랑스러운 기술의 본산, "청계 케미컬 프린팅"의 셔터를 힘차게 내리고 금산을 향하여

BMW를 몰았다.

 

BMW 이야기를 좀 해보자.

군자동 중고차 매매소에 있는 친구의 특별 알선으로 BMW 이 녀석이 뒤 트렁크를 찌그린

모양으로 내 손에 들어온 건 거의 공짜 수준이었다. 압구정동 졸부의 아들이 이 외제차를 산지

며칠도 되지 않아서 젊은 여자를 싣고 가다가 큰 사고를 낸 후 언론에 소문이 날까봐서 지급

으로 팔아치우려는 순간이 포착된 셈이었다.

물론 전액 현금 일시불이라는 조건이었다.

이걸 카 인테리어 허가만 받은 곳에서 수공으로 펴내고 특수 도료로 코팅을 하니 새 차

보다도 더 새 것이 되었다. 청계고가 도로에서 군자동 중고차 매매소까지의 특징과 장끼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너희가 청계천을 아니?"

 

청계 고가도로 입구에 드높이 휘날리는 현수막의 예고처럼 7월 1일에 이 유서 깊은 생활의

터전이 깨부시어진다면 나는 상판 위에 올라가서 웃통을 벗어 재치고 그렇게 소리소리 지를

것이다.

그리고 끌려 내려오면 근처의 용금옥이나 곰보집에 가서 펄펄 끓는 국물과 수육 한 사발 놓고

쐬주 한 병 걸친 후에 청계교각을 부여안고 대성통곡할 것이다.

아마 맨 먼저 쫒아오는 놈들은 내가 회장을 맡고 있는 우리 화공 약품상 조합의 이사들일

것이고 다음은 군자동 무학성 캬바레의 늙은 댄서 박양일 것이고 그 다음은 글쎄, "포토

21세기"의 카메라 우먼 박 기자일까 아니면 광고회사 "날뫼"의 카피라이터, 여류 작가

P일까---.

나르는 양탄자라고 어느 광고에서 멘트가 나왔던 BMW는 고속도로에 나오니 제 실력이

나왔다.

이 녀석은 착 가라앉아서 벌써 목촌을 지나고 있었다. 독립기념관이라는 도로 표지를 보니

유관순 누나가 아니라 이제는 유관순 할머니가 더 옳지 않으냐는 어떤 주장이 생각났고, 문득

마누라의 성씨도 같은 유 씨이고 고향이 저 산 너머 배방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동네도 임시행정 수도 이전설의 덕을 좀 보는 모양인데 이로 인한 처가의 유산 싸움이 눈에

보이는 듯하였다.

아내와 떨어져 살며 알게 된 늙은 댄서 박 양은 무조건 복종 형인데 날 때부터 그랬을까,

아니면 세파에 시달리고 마침내 닳고 닳아서 그리되었는가,

 

카메라 우먼 이 기자는 포커페이스로 유명하다. 약간 슬픈 얼굴에 표정이 없지만 촌철살인

하는 기지로 사람을 순식간에 정신 못 차리도록 웃긴다. 그녀가 찍어대는 사진도 내용상의

명암이 독특하고 짧게 달아놓는 제목이나 설명을 담은 캡션은 더 일품이다. 남자관계로 크게

상처 받은 일이 있고부터 결혼과는 담을 쌓고 사는 여자이며 나 같은 얼치기 중소 상공인들이

그녀의 밥이었다.

한편 카피라이터 작가선생은 항상 에피큐리앙, 즉 쾌락주의자이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차가운 한마리가 있음을 나는 안다.

 

차는 마침내 대전을 지나 통영 쪽으로 나가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대전 인근에서 갓 만드는 통영으로 가는 로드 맵을 읽으니 기분이 묘했다. 연목구어가 이런

건가,

실없는 생각이 입을 움직여 웃음을 만들었다. 그래 작가선생이나 태우고 올 걸---.

내 친구와의 약속에 너무 집착했나, 소문을 경계했던가?

왜 그런 재미나는 생각을 못했을까---.

치밀하지 못했던 일정을 자책하는데 금산 IC가 나타났다.

금산도 이제는 중국 인삼에 눌려서 맥을 못 춘다는 신문 기사 생각이 났지만 지방의 중소도시

치고는 부티가 나는 동네처럼 보였다.

친구의 농원은 이곳에서도 다시 험한 길을 거쳐 20분을 달려가서야 나타났다. 아니 시커먼

얼굴에 밀집 모자를 쓴 내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서 다시 한 5분쯤 차의 밑바닥이

아슬아슬하게 달락 말락 하는 농로를 안내하고서야 "금오 농원"이라는 팻말을 보여주었다.

멀리 금산 지구국이 보였다.

“아니 지국국은 산꼭대기나 중턱에 있는 줄 알았더니 동네 바닥에 있네?"

내가 엉뚱하게 힐난하였다.

"모르면 가만있어. 여기는 전 지역이 해발 300미터 이상이야. 내가 노상 자랑하는 것이

반딧불이 아닌가. 7-8월이면 반딧불이가 하늘을 덮어. 얼마나 청정지역인가 말이야!"

그는 내무부의 국장이 될 때까지 오랫동안 정부에서 일하며 도시 생활을 향유했던 사람이다.

배도 나올 만큼 나왔었고 얼굴에도 살이 많이 붙어있었다. 그러던 그가 체중은 10킬로 이상

빠졌고 온 몸이 근육질로 날씬하게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밀집 모자를 쓴 얼굴 밑으로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잔주름이 수도 없이 많았고 악수를

하며 쥔 손도 거칠다는 표현의 한계를 넘고 있었다. 말하자면 완전히 시골 농투서니가 되어

있었다.

"금오 농원이라니 고향 생각 했구먼?"

내가 물었다.

"그래, 고향의 금오산에서 따왔지. 그래도 난 고향에는 등 돌렸다."

"왜? 국회의원 공천을 못 따서?"

내무부의 경력이 국회의원 같은 그런 지위를 탐하게끔 했을 터였다.

"아니야, 예전에 선친의 농토가 꽤 넓었는데 공단이 들어서며 모두 수용되었잖아. 당시

시가로는 논밭 값을 다 주었는데 그 돈 받아서 대토를 하자니 주변 땅값은 이미 엄청 오른

거야. 땅도 잃고 조금 받은 돈은 경험 없이 이것저것 해보다 다 날렸지. 그래서 이 골짜기에

들어와서 이 모양으로 살지. 이제 고향 근처에도 가기 싫어---."

이야기를 나누는데 앞쪽 밭과 야산 사이로 시골 똥개 정도의 동물이 날렵하게 뛰었다.

"노루다!" 내가 조금 자신 없는 소리를 질렀다.

"아, 고라니구나. 저런 동물이 여긴 지천이야."

내 나라에도 야생 동물이 있구나. 금산 지구국이 있을만한 곳이구나---.

그가 사는 모양은 나와 비슷한데가 있었다. 아파트에 사는 나와 컨테이너 박스 두개를 붙여

놓고 사는 그의 생활터전은 외견상 전혀 닮은 꼴이 없었는데도 무언가 근사점이 있었다.

"부인께서는 자주 오시지 않는가?"

내가 물었다.

"어, 한주에 한번은 오지. 밑반찬을 만들어서---. 자고 가지는 않지만---"

그의 어정쩡한 대답으로 미루어 한주에 한번이라는 빈도수는 믿을만한 수치가 아닌듯하였고

그러니까 마누라가 자고가지는 않는다는 쪽에 믿음이 갔다. 그래, 홀애비 냄새---, 이게 그와

나의 닮은 점이었구나. 그의 농원은 한 만평가량 되었는데 포도원이 천 평, 약간의 논, 그리고

나머지는 밭과 야산이었다. 비닐하우스도 하나 지어놓고 채소를 기르고 있었다.

"수입이 좋아?"

"말말아. 농촌에서 돈 나올 일이 어디 있나. 연금 받아서 이런데 넣으면 마누라 굶겨. 난 현직

비자금 조금 있던 거 마누라 몰래 조금씩 집어넣고 모든 일은 손수하지. 저 비닐하우스

모양 보라구, 순 엉터리 수준이지. 나무들은 예전에 알던 사람들한테서 묘목을 얻어다 심거나

죽는다고 내다버린 것들을 여기 심은 거야. 희한하게도 다 죽어가던 나무들도 여기 오면

힘차게 살아나지. 나는 이런 나무들하고 연애하며 살아, 하하하."

그가 시원하게 웃었고 나도 그저 농담이거니 하며 따라 웃었다.

그의 눈에서 약간의 광채가 났지만 나는 무시하였다. 그가 농원을 하며 가끔 서울에 와서

친구들에게 내세운 자랑은 "청정 유기농"이었다. 유기농 소채를 재배하니 계약을 하고

사먹어라, 주기적으로 배송은 책임지겠다---, 그런 제안도 많이 했었다.

모두들 긍정은 하면서도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값도 문제였지만 주기적으로 채소를

공급 받는다는 그 체계가 도시의 소시민들에게는 부담스러운 틀이었다. 먹고 싶을 때 아무거나

조금 사다먹거나 말거나---, 외식도 해야하고---, 그래 우린 송충이인데 솔잎이나 조금 갉아

먹지---,

분위기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결국 그는 무료로 유기농산물들을 부정기적으로 동기들에게 나누어주며 흡족해 하더니 그나마

최근에는 시들해지고 말았었다.

정작 현지에서 그의 농원을 보니 그가 역점을 두는 것은 죽은 나무 살리는 일 같았다.

별별 수종의 나무들이 봄빛 아래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데, 이건 무슨 장관의 정원수로

있던 거며 이건 아파트 재개발 단지에서 버린 것, 저건 국도를 내며 파헤친 것들---, 나무의

종류만도 100여 가지가 훨씬 넘어섰다고 했다.

아직은 병이 완전히 낳지 않은 상태의 나무들이 잔뜩 허덕거리고 있었으나 이제 해가 가면

모두 힘차게 숨을 쉴 거라며 그는 나무들을 쓰다듬었다. 정말 틀림없이 이 병든 나무들은

마침내 거목으로 성장하리라는 느낌을 문외한인 나도 느낄 수 있었다.

 

"골프 좀 칠까?"

그가 또 엉뚱한 소리를 하였다.

알고 보니 그는 산자락 협곡을 병풍삼아서 비거리가 250야드쯤 되는 훌륭한 자연 골프

연습장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물은 쳐놓지 않았으나 공이 산 계곡에서 어디로 내빼겠는가,

 그 나마 공도 서울에서 연습장하는 곳에서 낡은 것을 교체할 때 무료로 잔뜩 얻어온

것인데---.

나는 아이언 3번을 잡고 그는 5번을 잡았다. 우리는 잡초 위에 공을 놓고 힘차게 스윙을

하였다.

그의 자세는 좀 우스웠으나 비거리는 대단한 장타였다. 한 박스를 나누어 치고 나서 우리는

공을 주우러 계곡을 함께 올랐다. 그는 어디쯤에 공이 숨어있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계란 줍듯이, 혹은 살아있는 새의 알을 줍듯이 바구니에 공을 주워 담았다.

"아, 고사리가 벌써 나왔네!"

그가 탄성을 발하며 고사리를 꺾어서 바구니에 담았다.

한 보름가량 예년에 비해 일찍 나왔다는 것이다.

"올 봄이 유난히 이르네---, 그리고 고사리는 이렇게 꺾이는 부분부터 먹는 거야. 이거 가져

가서 먹어봐."

"홀아비가 무슨 고사리 요리야---."

그러면서도 이건 늙은 댄서 박 양 차지구나, 나는 곧 배송 처를 점찍었다.

"이건 당귀야, 좀 뜯어가자. 서울의 대패 쌈밥집 체인에서 먹는 것 보다는 향이 훨씬 다를

거야."

"고기는 있냐? 내가 참치 캔 한 박스는 사왔다만---"

"족발 삶아놓은 게 있으니 그거면 되잖아."

참치는 그가 독식할 뜻을 분명히 하였다. 우리는 손을 씻고 컨테이너 박스로 들어갔다.

오곡밥과 된장과 김치, 이상하게 삶아놓은 딱딱한 돼지 족발, 그리고 당귀나물이 전부였다.

"농군이 되면 반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지. 술은 뭘루 할까? 맥주를 준비했는데---."

"설마 우리가 맥주 마시러 예까지 왔을까, 막걸리 없어?"

"요즘은 시골도 일하고 나서는 모두 맥주를 마시지."

그가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며 말했다.

"전기 값이 싸지?"

내가 묻자 농가 전기료는 도시의 반값이라고 그가 알려주었다.

"이 김치도 유기농 배추로 담았겠네?"

"물론이지, 유기농 채소는 김치로만 먹어도 양기가 세진다구---."

막걸리가 들어가자 입이 헤퍼진 두 남자의 이야기의 행로는 역시 그 곳이었다.

"내 마누라는 미국 있지만 난 도시 생활을 하잖아. 자네는 유기농 배추 먹고 힘이 불끈

한다지만 어떻게 견디나?"

"내가 본래 농민 운동을 했잖아. 그 때 이름난 분들을 많이 알았지---."

그때 개인적으로 알게 된 모든 사람들이 잘 아는 유명한 "H 옹"도 그때 교분이 생겼는데 이

양반이 정력이 절륜했다는 것이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사고를 많이 쳤지. 어릴 때 황해도 부잣집의 부모님이 늦게 본 이 아드님에게 보신을

많이 시킨 모양인데 그게 이 양반을 여자와 섹스 부분에 대해서만은 처신이 어렵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고 하더군. 난 남자로서 그 양반 이해는 해. 하지만 아픈 부인을 옆방에 두고

소리를 질러가며 방사를 한 것은 좀 심했다싶어. 당시 박 정권의 중앙정보부에서도 이 반체제

인사의 그 약점을 알고 있었지만 배꼽 아래는 문제 삼지 않는다는 박통의 철학으로 겨우 넘어

갔다더군, 하하하."

우리는 유쾌하게 함께 웃었다.

"그 때 함께 일한 P라는 분이 있었는데 이분은 그런 윤리를 이해하지 못했어. 그래서 나이

52세에 자기 부인과 해혼식(解婚式)을 했다는 것 아니겠어."

"해혼식?"

"그렇지. 우리가 섹스를 하는 것은 자손을 낳기 위한 것 아닌가. 그러니까 젊을 때는 그 짓을

열심히 해도 된다, 그러나 이제 자녀가 생기고 어느 정도 장성하면 순 쾌락을 추구하는 그

짓은 그만두어야 한다, 마누라와 남편의 관계도 오누이 수준으로 돌리자. 죽는 날 까지 그

짓은 하지 말자, 돼지를 보라, 닭을 보라, 심지어 나르는 새들도 그 짓을 열심히 하는데 이게

꼴사납다. 인간이 금수와 다른점이 무언가---, H 옹은 섹스에 그렇도록 몰두했지만 난

해혼식이다, 대충 이런 철학이지."

"노익장의 H옹이나 해혼식의 P선생이나 모두 대단한 어른들이셨구만---"

내가 어정쩡하게 입맛을 다셨다.

"참는 쪽이 더 위대하다고 나는 믿어."

한 때 절륜한 정력을 과시했고 한 연애께나 드날렸던 그가 확신을 가진 어조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어찌 자네 같은 절륜의 사나이가 유기농까지 상식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가?"

내가 농담을 가장하고 궁금증을 확대시켰다.

"불가나 유가나 기독교의 금제(禁制)와 극기의 부분들을 뽑아서 매일 일정시간 읽고 묵상을

하지."

"어, 이 친구야 말로 해혼식을 하고 말았네,"

나는 속으로 짐작하였으나 더 이상 말로 확인 할 수는 없었다.

"난 요즘 나무와 연애를 해. 전에는 동물적인 사랑을 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식물적인 사랑을

한단 말이지. 저 아름다운 나무들과 사랑에 빠지고 나니 싱싱하게 물이 오르는 소리와

새순이나 꽃잎이 돋아나는 소리도 내 귀에는 확실히 들려. 인간은 배신도 하고 언약도

어기지만 식물은 정직해. 내가 준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몇 배로 나를 기쁘게 해주지.

나는 새벽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나무들과 사랑을 하고 대화를 해. 저 싱싱한 나무들의

모습을 보고 내 생각을 다시 음미해 보라구---"

서산에는 어느덧 해가 뉘엿거렸으나 나는 취기로 인하여 차를 몰 계제가 못되어서 잠깐

컨테이너 박스에 몸을 눕혔다가 새벽에 출발을 하기로 작정하였다.

그의 농장 옆에 붙어 있는 천여 평 포도원은 그의 농장과 너무 비교가 되어서 구입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임시수도 이전 계획과 함께 투기억제 지역으로 묶여서 매매도 쉽지

않았다.

"가등기 같은걸 쳐도 된다만---"

그가 조금 권유하였다.

"난 현찰 박치기 장사꾼이잖아. 그런 식으로 복잡하게 하지는 않겠어."

나는 농사지을 뜻을 깨끗이 접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나들이는 소득이 있는 셈이었다. 아니 더 큰 선물이 생겼지 않은가.

아내와의 이산가족 상태를 항상 내 인생의 어두운 면, 실패의 국면으로만 여겼는데 "해혼식"

이라고 하는 위대한 생활철학이 있지않은가---. 아이들이 컸으니 이제 부부간의 그 동물적인

의식은 절제, 아니 금제하고 살자. 그것은 위대한 생활철학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유쾌하게 가벼운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오줌이 마려워서 잠이 깼다. 봄이 꽤 깊었는데도 과연 그의

말대로 뼛속까지 냉기가 오싹거렸다. 전기장판이 시골의 온돌처럼 느껴졌다. 옆에 같이 누웠던

친구는 모습이 없었는데 무슨 이상한 물체가 흔들흔들 방안을 오락거리더니 이내 사라졌다.

아마도 헛 게 보였는지도 몰랐다.

나는 이래저래 오싹한 기분을 느끼며 간이 화장실에 가기 위하여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거기 조금 떨어진 곳에 내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김에 헛기침을 하려다가 나는 숨을

죽였다.

그가 싱싱한 나무를 부여안고 몸을 떨고 있는 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참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마르시아스 심이던가,

한국 사람이 정열의 나라에서 쓰는 이름으로 필명을 삼은 그 작가가 썼던 "떨림"이라는 단편

모음집 생각이 문득 났다. 그러나 그 떨림은 여자에 해당되는 그런 묘사가 아니던가.

오르가즘의 순수 한국어---.

하지만 남자인 그가 나무와 부둥켜안고서 떨고 있는 모습도 떨림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에게

안겨있는 병든 나무의 잔가지들도 사시나무 떨듯 앙상한 팔들을 내흔들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보기가 민망해져서 크게 헛기침을 하였다. 그가 몸을 돌렸는데 처음 농장에

들어올 때 보았던 것처럼 눈에서 광채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네 뭘 하고 있나?"

내가 겁이 나서 큰소리로 물었다.

"아니 이 가시나가 어디로 갔지?"

그가 아직도 꿈에서 깨지 않은 듯 한 몽롱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이내 나의 모습을 보고

계면쩍게 웃었다.

"가시나라면 처녀란 말인데 이 바닥에 처녀는 무슨 처녀야?"

내가 그를 흔들어 깨우듯이 또 크게 소릴 질렀다.

멀리 금산 지구국에서 내뿜는 불빛이 그와 나의 그림자를 길게 병풍 같은 산록으로 끌고 갔다.

"내가 이거 가끔 몽유병 같은걸 느껴. 자다 보면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있거든. 나가보면 매번

얼굴이나 몸매가 바뀌는 젊은 여자가 기다리고 있어. 내가 껴안고 한참 재미를 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서 살펴보면 여기 나무 중의 하나를 껴안고 있단 말이야---."

"이 사람아! 나도 조금 전 방안에서 이상한 물체가 흔들거리다가 사라지는걸 보았어. 여기 터가

억세게 센가---? 아니 이곳이 도대체 전에 뭘 하던 곳인지는 알아봤어?"

"무연분묘가 좀 있었지. 개간이 되면서 일부는 읍에서 화장처리를 했고 또 봉분이 아주 미미한

것은 그냥 뒀는데 그 뫼 뿌리 자락에 우리가 잤던 컨테이너를 얹었지. 원래 예로부터 양택이나

음택이나 양지바르고 다들 입지가 좋잖아---."

"아하! 짐작이 가는군. 나무의 정령과 귀신이 한 통속으로 붙었구나."

나는 그가 껴안고 있었던 나무에다가 시원하게 오줌을 누면서 그의 말에 대꾸를 했다.

 

"자네 김시습의 금오신화(金烏神話) 이야기 들어봤지?"

"아, 그 처녀 귀신들이 씨 나락 까먹는 이야기 말이지?"

아이구 이 농사꾼도 고등교육은 제대로 받았네, 나는 속으로 탄식했다.

"하여간 자네 농원도 우리 고향의 명산, 금오산을 따서 금오농원(金烏農園)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이게 금오신화와 또 관련을 맺게 된 것 같아. 자네나 나나 고향은 외면하는 성품의

사람들인데 또 운명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이런 말씀이야. 하여간 이 컨테이너 박스가

처녀귀신 뫼뿌리에 걸렸나보다. 아마도 가랑이 한가운데 일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처녀귀신들이 요동을 치는 거야. 하하하. 하지만 크게 걱정은 말게. 자네가 살려놓은

저 수많은 나무들이 자넬 지킬 거야. 하지만 자네나 나나 섯불리 아까 말했던 해혼식 흉내는

내지 말아야 되겠어. 그건 진짜 도사급이나 하는 짓이지 흉내는 내지 말자구. 자칫 헐벗은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 그 처녀 귀신들이 들어오면 어떡허노. 그런건 다 도인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도끼어려서 하는 짓이고---"

나는 타고 왔던 BMW가 조용히 코를 골고 있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래 해혼식이야 도끼, 신끼어린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고 우리야 사람끼나 짙게 풍기며 살아

가야하나 보다. 그렇지 않으면 저 녀석이나 나 짝이 나지.

어릴 때 산길을 10리나 걸어서 큰집에 가던 생각이 났다.

제사를 지내고 다음날 새벽에 읍내에 있는 집과 학교를 향하여 재빨리 오는데 새벽안개 속에서

대자로 길게 누운 내다버린 디딜방아가 눈에 들어왔다.

 

무슨 연고인지 어제 저녁 들어갈 때에는 눈에 뜨이지 않았었는데 새벽안개 속에서는 가랑이를

활짝 벌리고 넘어져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게 눈에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오금이 저렸다.

내가 몸을 떨며 멈칫하자 같이 가던 사촌 형이 내 어깨를 툭 쳤지.

"무섭지?"

"응, 온 몸이 떨려."

"저게 박첨지 집에서 오래 쓰다 버린다고 얼마 전에 나온 건데 그 집 노처녀가 자기 집 방아간

에 목을 매고 죽었거든."

"어제 큰집에 들어갈 때는 왜 말 안했어?"

"이상하게 저녁에는 눈에 잘 띄지 않고 무섭지도 않아. 그런데 꼭 안개 낀 아침에만 저렇게 잘

보이고 사람을 무섭게 하거든. 그리고 혼자 나가는 길손들이 저걸 부등켜 안고 씨름을 하다가

혼절하는 경우도 생겼고---. 이후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사람도 생겼단다."

"에이, 뻥이다"

"그래? 그런데 너 왜 떨고 있어?"

서낭당이 그 가까이 있었고 우리는 돌을 하나씩 집어서 팽나무 밑으로 집어던지고는 걸음아

살려라 도망을 갔었다.

나는 새벽 공기를 마시며 발에 걸리는 돌 하나를 킥 스텝으로 툭 차며 생각했다.

그래, 여기를 나서면 얼른 서부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부터 해야겠다.

여기서 지금하자니 3일씩 버티던 휴대폰 배터리가 기이하게도 하룻밤 사이에 모두 방전이

되었네. 그래 처녀 귀신한테 나도 에너지를 조금 공양한 모양이네. 나도 이제는 멋대로 아내를

경멸만 할 것이 아니라 오랜만에 빨리 LA 인터네셔널 에어포트로 가서 기하학적으로 세워져

있는 그 추억의 공항 탑 아래로 가야지. 그리고 돈 때문에라도 도망가진 않고 있는 아내를

서양식으로 힘껏 얼싸안고 해혼이 아리라 해후를 해야겠다.

모두 귀신처럼 체온도 없이 불쌍하게 살고 있는 이승에서 그나마 미온의 "사람끼"라도

나누어야하지 않겠는가---. (끝)

내 글은 그렇게 끝이 났다. 희망이 절망을 딛고 일어나는 결말이었다. 아름다운 시절의 이야기

였다.

내가 눈시울을 붉히며 단편을 내려놓는데 누워있던 친구가 눈을 떴다. 그 눈에서 오랜만에

형형한 눈빛, 푸른 안광이 나왔다. 그가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내가 귀를 그의 입에 갖다 대자

그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더듬더듬 무슨 소리를 내려고하였다.

“내가 역주행한 게 아니었어. 나무귀신들이 그 방향으로 달려가서 내가 붙잡으려고 했던 거야.”

그의 낮은 목소리가 만드는 음성의 뜻은 대략 그러하였다.

"알았어. 그러니까 술이 취해서 역주행한 게 아니다. 그런 말이지?”

내말에 그가 눈을 껌벅이며 긍정하였다. 그리고 또 나를 불렀다.

“너는 결국 해혼식도 못하고 이혼이나 당하고 왔다지?”

그의 말에 내가 또 긍정하였다.

“넌 지금 혼자이고 살 집도 없지? 그럼 네가 그 땅에 가서 살아라.”

“그 나무귀신하고 처녀귀신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가서 살라고?”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거야, 내가 오래 못살아. 내가 숨을 멈추거든 화장을 해서 거기에다

뿌려줘. 그럼 내가 다 평정을 해 줄게. 그 대신에 나무들은 잘 키워줘.”

“임마, 싫어. 귀신하나가 더 느는 곳에 나 혼자 어떻게 살아? 나도 역주행이나 하게?”

내가 짐짓 농담처럼 큰 소리로 대꾸하였다.

“아니야! 우린 이미 역주행을 한 인생이야. 내가 저 세상에 가면 자네까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역주행하게는 하지 않을게. 그래서 권하는 거야. 넌 어디 갈 데도 마땅치 않잖아. 거기

컨테이너가 있던 데에 내가 황토방으로 집을 잘 지어놓았어. 저 책의 네 글이 끝난 그 뒷면을

봐라.”

그가 또 조용히 소리쳐서 내가 책장을 넘겨보았다. 거기 여백에는 볼펜으로 매매 계약서가

쓰여 있었다. 값은 써놓지 않았고 지번과 더불어 황토방 지상 물 까지 상세히 적어놓고는 그의

인감도장이 찍혀있었다. 내가 놀라서 그를 다시 보는데 그는 평안히 눈을 감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