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스마트 소설

원평재 2014. 5. 5. 06:50

 

 

 

 

 

 

스마트 소설?

 

이전의 꽁트나 장편(掌篇), 엽편(葉篇), 초단편(超短篇) 등을 상기하면 뜻이 그렇게 다른 말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꽁트"나 "엽편"은 끝에가서 "이건 몰랐지?!" 식의 극적 반전을 염두에 두어서 너무 작위적

이었지요.

"초단편"이라는 표현도 한동안 애지중지 되었으나 아주 짧은 단편소설이라는 애초의 의도와

달리 "하이퍼 텍스트" 즉 주제와 기교의 종횡무진 쪽으로 이해되기가 쉬웠나 합니다.

한자로 "손바닥 장(掌)"을 쓴 "장편(掌篇)"은 일본식 표현인데다가 한글 전용 상으로는

장편(長篇)과 혼란이 일어납니다.

그러다보니 아주 짧은 단편 소설의 장르를 표현하는 방식에 고민하던 우리 문단에서

마침내 <스마트 소설>이라는 표현을 찾아낸 모양입니다.

 

요즘 짧은 것을 좋아하는 세태와 맞물려 짧은 단편을 추구하던 문단의 고심이 보이며

개인적으로는 이 표현에 아주 찬성입니다. 김동인 등 신소설의 단편 길이가 대략 30매 내외인

것을 돌이켜 보면 짧은 소설이 파격적인 것도 아니지요~~~.

 

 

 

 

 

 

 

(스마트 소설) 팩션 출판 기념회

                                                                 

"팩션 출판 기념회"의 초대장을 대학에 있는 친구로 부터 받았을 때에는 무슨 의류 패션 행사인줄

알았다. 이 친구가 국문학을 했는데 무슨 패션 행사인가---,

내가 아무리 외국 공관에만 25년간 돌다가 갑자기 대기 발령을 받고 귀국해서 국내 정세나

동기들의 변화에 문외한 일지라도 국문학자가 패션 디자이너로 둔갑할 만큼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았을텐데---. 궁금증을 가득안고서 20여 년 만에 그의 연구실로 전화를 했더니 마침 통화가

되었다.

우리 둘은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절친이었지만 험한 경쟁자이기도 했다. 교내에서는 성적으로,

교외에서는 여친들 사이의 인기 면에서---.

대학에 들어가면서 나는 외교학과에, 그는 국문학과에 진학하여 학교는 같았으나 서로 노는 물은

달라졌다. 그리고 이때부터 우리의 사이는 밀월과 공존과 보완의 시대로 들어섰으며 한동안 술

친구로 젊음을 만끽하다가 나는 고시 공부로, 그는 대학원 진학 준비로 각자 자기의 길에 들어섰다.

 

내가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국 공관을 돌아다닐 때 그는 이 대학 저 대학에 시간강사로 돌아

다녔고 선배 교수의 "가방모찌" 신세라는 푸념을 어느 때이던가, 동기들이 벌인 나의 환송 파티

에서 털어놓은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경쟁의 눈길을 던질 여유조차 없이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으며 결혼에 즈음해서는 그가 독신을 선포함으로써 안팎 연결 고리조차 모두

끊어진 셈이 되었다. 세월은 정말 유수와 같아서 이제 우리는 갑년을 눈앞에 두고 다시 만날

참이었다. 나는 백수의 신세였으나 아쉬울 것은 없었고 그는 아직도 정년이 몇 년 남은 노교수

였다.

"요즈음 출판 기념회 하는 놈이 어디 있나? 만년에 정치판에 나가서 늙은 마누라 고생시킬 꿍꿍

이라도 있는 참이야?"

전화통에 대고 내가 기선을 제압했다.

"날 무뢰한이나 촌놈 취급 마러. 나도 죽겠다. 제자들의 어쩔 수 없는 강청과 강요에 못 이겨 한

50명만 엄선 초청했는데 넌 내 영원한 맞수라서 뽑아준 거야. 자세한건 만나서 이야기 하자."

역시 교수라서 그런 가 그가 지지 않고 내 장군에 멍군을 쳤다. 우리는 기념회 두시간전에 개최

장소인 H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는 주최 측이니 일찍 나와 봐야 할 입장이었고 나는

그날 두 가지 약속이 겹쳐서 그에게는 인사만하고 자리를 옮겨야할 처지였다. 로비에서 반백의

머리털로 우리는 얼싸 안았다.

"이게 무슨 촌놈 짓이야? 그리고 팩션은 또 무슨 소리야? 패션 쇼 하는 거 아니야?"

반가움도 제쳐놓은 나의 공세였다.

"이놈아 팩션도 모르고 무슨 대사 노릇하고 다녔어. 요즈음 새로운 문학, 문화 예술의 트렌드도

모르고서 무슨 국위선양이냐 말이야."

그의 매서운 역공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시대는 정보화의 시대라서 옛날같이 지식이나

정보가 몇 사람에게 독점되는 것이 아니고 모두에게 공유되고 있어서 문학의 세계에도 큰 줄기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현존하는 사실을 너무 많이 알고 있거나 알고 있는 걸로 착각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정보의 대부분은 가공된 것일 수 있는데 대중은 그런 부분을 모르거나

눈을 감고자 하고---. 또한 너무나 엽기적인 사실 혹은 현실이 눈앞에 영상으로 시시각각 전개

되어서 이제는 픽션, 즉 허구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외면을 한다고---.

"소설"이니 "픽션"이니 한때 세상을 주름잡던 문학 장르의 팔자가 급전직하해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그렇지 않아도 영상매체가 기승을 부리는 판에 마침내 사람들의 의식까지 냉엄하게 돌아

섰으니 허구를 리얼리즘, 즉 진실이니 사실주의니 하고 팔아먹던 소설가가 주린 배를 움켜쥐다

마침내 씨가 마를 판이 되었다. "소설 문학의 종언"을 고하는 시대가 된 셈이다. 여기에 탈출구로

등장한 것이 사실 즉 팩트와 허구 즉 픽션을 결합시킨 팩션이라는 장르란다. 사실을 깔고 나서

허구로 조금 가공한 정도가 되어야 눈길이라도 줄 것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기술적으로는

주인공이나 나레이터가 1인칭 즉 "나"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그 바쁜 시간에 그가 짧게

설명해 준 내용이었다. 교수와는 놀아도 무언가 배운 듯하다더니.

"그럼 나 같은 자네 주변인이나 사건을 있는 그대로 막 써 먹는 거야?"

내가 좀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며 물었다.

"그건 아니야. 사실은 모두가 가짜인데 일부 진짜인척 해놓는 거지."

"그럼 옛날 글쟁이들 소설과 무엇이 달라?"

"옛날 소설이 정보를 가르치는 식으로 쓰여졌다면 팩션은 우리 시대의 공유된 정보를 확실한

사실로 바닥에 깔고 사건이나 인물을 설정하는 거야. 옛날 소설에서는 대통령을 다룰 때에도

가공의 인물이거나 윤색된 상태로 사용했다면 지금은 역사적으로 실재된 상태의 대통령을 청와대

어느 방에서 구체적으로 만나는 것처럼 하는 거야. 영화에서 팩션 기법이 많아. 포레스트 검프

에서 주인공은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하고 대통령은 주인공의 이름을 부르며 대화가 진행되지.

이건 고도의 전자 기술로 가능해졌고---. 어떻게 죽은 대통령과 살아있는 영화배우가 악수를 할

수 있겠어? 그걸 가능케 하는 게 요즈음의 테크놀로지야."

"사실을 잘못 써먹다가 고소도 당하겠다."

내가 순간적인 생각으로 반응을 보였더니 그의 얼굴이 좀 어두워졌다.

"팩션이 아니라 픽션일 때에도 작가들은 그런 일을 많이 겪었지. 헤밍웨이는 '해는 또다시 떠

오른다'를 쓰고 나서 당시 파리에 와있던 미국의 젊은 작가 지망생들, 소위 국적 이탈자들로 부터

맹공을 받았고 어떤 친구는 권총을 들고 헤밍웨이를 좇아다녔대요. 비겁한 인간으로 자신을 그

스토리에 투영했다는 거지.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라는 장편을 쓴 사람은 고향의 치부를

들어냈다고 정말 다시는 고향엘 못 간 경우도 있었다네."

"자넨 그런 경우가 없어?"

"나라고 왜 그런 일이 없겠어. 더구나 팩션이라는 장르를 고집하다보니 등장인물들을 가급적 실물

처럼 그리게 되고 이걸 또 작가의 의도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라고 오해하는 거지. 좋은 인간상

으로 등장하면 그나마 문제가 덜 심각하지만 글이라는 게 현실을 고발하기도 하고 희화화하거나

비틀어 패러디하는 것 아닌가. 좋은 일만 PR하는 식이어서는 글이 안 읽히고 의미도 반감되잖아.

그래서 오해를 가끔 받아. 고약한 경우로까지 발전하여 내 신상을 비방하는 경우도 있고---.

장본인은 복수라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그 본인이라는 게 참 우스운 가설이거든---."

"화해하면 되잖아---."

"가상의 것으로 화해라니 그것도 난센스 아닌가. 또 그런 시도를 해봐도 받아주지 않는 사람일

수록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이 깊지. 최근에도 어떤 친구와 그런 비슷한 상황이 있어서

괴로웠지. 결국 내 나름의 화해 시도도 있었고 본인도 나중에는 팩션이라는 의미를 조금 이해해

주기로 한 것인지, 마음이 다소 풀릴 것 같은 예감은 들었어. 오늘 초대를 했는데 올지 안 올지는

반반일세. 오해가 풀리길 바란다라기 보다 마음이 풀렸으면 좋겠어."

"자네가 창작의욕을 불태우는 건 그렇다 치고 교수로서의 무슨 실질적 이득이라도 있나? 미안한

말이지만 자네가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말은 아직 못 들었고---. 베스트셀러야 여자의 몸 틈새

떨림, 하하하, 그런 게 자주 등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하하."

"예끼! 하긴 예끼 할 일도 아니네. 마르시아스 심이라는 우리나라 작가가 쓴 '떨림'이라는 소설이

있었는데 많이 팔렸지. 그런데 순수 창작집도 출판이 되면 우리 같은 대학 교수는 업적 평가에서

100% 점수를 따지. 이 나이에는 논문도 이제 욹워 먹을대로 욹워 먹어서 더 쓰기 힘들고---, 이건

히히히 하고 웃어야겠다."

내 친구는 실제로 히히히 하고 웃었다.

 

"그런데 그 오해가 생겼다는 친구는 자네 글을 어디서 봤다는 건가?"

"아, 인터넷 문학카페라는 데에서였지. 아이러니하게도 그 오해를 한 친구는 내가 그 카페라는

데로 초대한 사람 중의 하나였지. 자네도 좀 한가해지면 초대 할 테니 들어오게."

나는 컴퓨터로 뉴스와 메일 정도는 보지만 카페 같은 건 질색이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이젠 외면

할 수만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둘이 말하는 사이에 사람들이 차츰 기웃거리기 시작

했고 그의 얼굴도 손님들에 따라 근엄했다가 공손해지는 등 표정관리를 시작 하였다. 꽃다발 든

예쁜 젊은 여성들도 눈에 들어왔다.

"쉰 명 만 초대했다더니 저 예쁜 여자들은 무어야?"

내가 좀 힐난조로 말했다.

"아, 대학원생들인데 초대장 없이 다들 모이기로 했나봐. 그 학생들 몫으로는 비싼 호텔 밥도 준비

안했어---. 자넨 바쁘다니까 이거나 받아가게."

내 친구가 책을 주는 게 아니라 예쁜 투명 케이스에 담긴 작은 원형의 판을 건넸다.

"이게 뭐야? 책은 안줘?"

"이게 바로 e-북이야. 전자책이지. 이걸 컴퓨터나 요즘 나오기 시작하는 e-북 리더기라는 도구에

넣으면 글과 함께 그림이나 동영상 그리고 음악도 함께 나오는 거야. 글이 시원찮으니까 그림이나

음악이라도 즐기시라고 머리말로 내숭도 좀 떨었다만 하여간 읽고 보는 재미는 훨씬 더할 거야.

그리고 참, 누드 사진과 그림도 예술을 빙자하여 많이 넣어뒀다. 내가 좋아하는 페이지라는 여가수

도 출렁출렁 춤추고 노래하지."

"페티 페이지가 언제 적 가수인데---?."

"아이구 이 보수꼴통. 페이지는 우리나라 여가수야. 하긴 페티 페이지도 나오긴 하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만 해도 CD에 동영상으로 노래한곡 밖에 못 싣던 기술이 이제는 DVD

롬에 영화 백편이 들어가니 창작집 한권에 영상과 음악 들어가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디스켓도 곧 단순 내려받기로 바뀔 것이라 하였다.

"어차피 요즈음은 책이 많이 나가기 어려워졌어. 그래서 전자책을 만들면 각 공공도서관과 대학

도서관에서 구입해 주거든. 학생들은 이걸 다운로드 받거나 그냥 도서관에서 접속하여 읽어보지.

출판사나 저자의 입장에서 보면 최소한의 출판 비는 건지는 거야."

"책이 아닌 이런 걸로도 업적 평가에서 100%인가 뭔가 하는 인정을 해 주나?"

"이 사람아. 이런 거라니. 이게 바로 전자책이고 당연히 인정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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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야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영원한 맞수 어쩌구 하면서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와 헤어지고 한 서너

걸음 걸었을까, 옷맵시가 아주 뛰어난 노신사가 비싸게 보이는 꽃다발을 들고 나를 건너 내 친구

쪽으로 시선을 주며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직감이랄까, 처음 노신사의 표정은 매우 애매

하였고 몸에서는 찬바람이 도는 듯하였으나 입술로 부터 마침내 잔잔한 미소가 흐르기 시작

하였다. 어떤 화해의 마당인가---. 그러나 나는 뒤돌아 내 친구의 표정을 살피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다른 저녁 행사에서 과음 끝에 나는 그 전자책이든가, e-북인 가를 어디에선가

잊고 잃고 말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