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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일주 스케치

원평재 2020. 5. 15. 10:31

 

시칠리아 일주 스케치 (김유조의 여행 꿀팁)

 

시칠리아는 이탈리아의 자치주이다. 로마제국시대이래

이탈리아에 가장 가까운 역사적 관계를 갖고있으나 또한

상당히 독립적인 공동체로 변천해온 섬나라이다.

지금 이탈리아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융단 폭격맞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독감이 처음 발생하고 가장 창궐한 곳은

북부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 지방이고 그 중심부는

밀라노 시이며 그 일대에는 놀랍게도 중국 사람들이

1980년대부터 6-7만 명이 와서 몰려 살고 있다.

물론 병균 오염과의 직접 관계는 모르겠지만 그곳이

이탈리아 직물 섬유공업의 중심지이기에 중국 사람들을

처음 노동력으로 많이 썼는데 그 후 그들이 기업을 이루

어서 집단거주지를 형성하였다고 한다.

반세기전 필자가 프랑스에서 육로로 이탈리아에 처음

들어갔을 때, 금방 만난 포 강을 건너서 발을 디딘 곳이

중학교 지리책에서 배운 롬바르디아 평야지대였으며 첫날

을 그 강변의 밀라노 시에서 묵었기에 지금도 감회가 새롭

고 안타깝기만 하다. 그때 논에서 자라는 벼를 보고 놀란

기억이 나며 중국인들은 없었다.

 

Alitalia(발음상으로는 알리탈리아) 국제선을 타고 이번에

시칠리아로 들어간 것은 금년 1월초였으니 생각해보면

아슬아슬하다. 잘못했으면 감염의 위험은 물론이려니와

발이 묶였을지도 몰랐다.

지금 많은 교민들이 로마에 모여서 전세기로 들어오고 있는

모습이 끔찍하다. 이번 나의 일정은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제공항 입국, 다시 국내선으로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공항 도착이었다. 최신 보도에 따르면 롬바르디아 지역보다

시칠리아는 코로나 감염자 수에 있어서 십분의 일에도 못

미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팔레르모의 공항이름은 팔코네-보르셀리노 공항이다.

이름이 길고 복잡한 사연은 얼마 전에 마피아를 잡으려고

전쟁을 선포하여 싸우다가 살해당한 두 판사를 기리는 것

이라고 한다.

과연 크지 않은 공항의 대형 포스타에 우리는 마피아를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글귀가 이채롭다.

여행자에 따라서는 시칠리아 방문에 유명한 영화의 촬영

원작의 배경 찾기라는 버켓 트레블 목적도 있을 수 있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대부는 삼각형 모양의 시칠리아 섬

오른쪽 끝에 있는 메시나 지방의 사보카에서 그 촬영지를 찾아

있고 대부 3의 끝은 팔레르모의 유명한 마시모

극장의 계단에서 만날 수 있으며 시네마 천국그랑블루

촬영지 체팔루도 이 도시에서 머지않은 곳에서 찾으면 된다.

 

유럽여행에서는 맨 날 성당만 보고 다녔다고 푸념하는

여행객들을 본다. 그런가 하면 두오모 성당이 피렌체에

있다혹은 밀라노에 있다서로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우선 두오모(Duomo)는 이탈리아 각 도시의 대표 성당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대부분 대성당(Cathedrale) 혹은

주 교좌 성당에 다름 아니다. 어원은 하느님의 집을 의미하는

라틴어 Domus이고 영어로는 Dome관계가 있다. 아무튼

비유해보자면 대웅전이 경주에 있는지 속리산에 있는지를

다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한편 규모가 웅장하기로는 피렌체 두오모이고 아름답기

로는 밀라노 두오모라는 평가이다.

 

시칠리아는 한이 많은 나라다. 과거 로마제국이 게르만족에

의해 침략 당한 후 이 곳은 무려 1500이상 애매한 도시

국가의 형태로 살아야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을 많이 받게 된다.

이에 시칠리아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저항단체를

만들었으며 그것이 마피아의 시초다. 팔레르모 대성당을

보면 이런 시칠리아의 침략 받은 역사가 그대로 나타난다.

비잔틴 양식의 최초의 건물은 이슬람(사라센 족)영향,

노르만(바이킹)영향, 다시 프랑스의 영향을 받으면서

많이 바뀌었다. 팔레르모의 노르만 궁전이나 근교 몬레알레

두오모도 마찬가지이다.

유럽의 모든 궁전이나 성당들과 외양이 얼핏 비슷하게 보이

지만 이곳에서는 아랍문양이 곳곳에 선명하다. 특히 모자

이크 기법을 사용하여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전, 터키와

모로코 등 다른 아랍제국에서 보는 문양을 섬세하고도 아름

답게 각인해 놓고 있다. 아랍과 기독교 문명이 관용되어

혼재한 특징이라서 눈을 번쩍 뜨게 한다.

유럽 성당을 볼 때 또 하나 관람 포인트는 주교와 영주가

앉는 의자의 높낮이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주교권이

세거나 반면 영주권이 강한 차이로 그들이 앉는 의자의

높낮이가 다르게 성단의 좌우 쪽에 배치 되어있다. 같은

높이면 좋으련만 차이가 있을 경우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구체적으로 되새겨 보아도 성당 보는 재미가 늘어난다.

시칠리아는 우리나라 제주도의 13배쯤 되고 수많은 역사적

유적이 있어서 여정을 짜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섬 전체

둘러볼 욕심이 있으면 삼각형으로 된 섬의 오른쪽으로

시작해서 해안도로를 일주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시칠리아 자치주의 깃발은 삼각형의 메두사 모양으로

문양은 트리나크리아(Trinacria)라고 부르는데, 이는

시칠리아의 고대 명칭이기도 했고 200014일부터

공식 사용되고 있다. 그 깃발에 나오는 메두사는 세발달린

괴물인데 시칠리아 섬의 모양을 닮아서 지도로 삼아 지역

이름을 써놓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서 여정의 루트로 삼으면

좋다.

 

우선 발걸음은 삼각형 오른쪽 발끝에 있는 메시나를 향한다.

그곳에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야외극장 타오르미나가

있다. 원래는 로마의 원형경기장이었는데 극장으로 바뀌었기

검투사들이 있던 지하실도 남아있다.

특기할 점은 원형경기장이란 원래 무대가 동향인데 여기는

서향이다. 바로 그 서향 쪽에 이오니아 해가 아름답게 펼쳐

지고 에트나 화산의 흰 연기를 뿜는 모습이 그대로 들어

와서 통상의 저녁나절 공연 때에 눈이 부신 불편쯤은 감수

해도 무대와 어울려 하나의 거대한 풍경을 이룬다.

여기에서 예컨대 비극 오이디푸스가 펼쳐진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왕이 자신의 눈을 찌를 때 석양의 해도 일몰이

되며 천지는 암흑으로 변할 것이다.

극적이다.

오늘날도 이 무대는 고전을 현대화하여 끊임없이 공연을

계속하고 있다. 벅찬 감격을 안고 나오면 움베르토 거리

에서 이오니아 바다와 에트나 화산을 거느리며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도 있다.

급한 발길은 메두사의 오른쪽 종아리쯤에 위치한 카타

니아로 향한다. 이곳에는 14세기와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예술이 싹튼 곳으로 시칠리아 최초의 대학도 있고

두오모 광장에는 유명한 코끼리 조각상과 이집트의

아스완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우뚝하다.

이곳 출신의 음악가 벨리니를 기념하는 유명한 벨리니

극장도 빼놓을 수가 없다. 아름다운 건물들은 1693

대지진의 영향으로 검은 도시의 흔적들로 남아있고 그

에트나 화산은 지금도 멀리서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이곳 출신 성녀 아가타의 이야기도 유명한데 고문을 당

하던 중 도려내어진 유방의 모양이 아가타 빵으로도

전해지고 유방암등의 치유를 위한 기원으로도 은유된다.

 

발길은 이제 메두사 무릎 쪽의 시라쿠사(Siracusa)

에 닿는다. 시라쿠사는 시칠리아 섬 남동쪽 이오니아

바다를 접하고 있는 도시다.

이곳은 구 도시 쪽의 고고학 공원으로 유명하다.

아르키메데스 무덤, 히에로 2(아르키메데스 시대

시칠리아 왕)제단, 아테네 신전, 그리스 극장(테아트로

그레코), 요새 등의 유물을 간직하고 있으며, 2005

판탈리카 암석묘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특히 그리스 극장은 하나의 거대한 암석을

쪼아서 무대와 1만 명 수용의 넓은 원형관중석을 만들

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나오다보면 디오니시우스

의 귀(The Ear of Dionysius) 라는 깊은 인공동굴이

나온다. 디오니시우스 1세 황제에 의해 감옥으로 사용

되었는데 작은 소리도 크게 들려서 죄수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시라쿠사는 또, 고대의 대표적인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의 출생지로 유명하며, 고대 헬레니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저술가인 키케로는 시라쿠사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그리스 도시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물론 이 땅이 고대 그리스 시절의 이야기이다.

기독교 박해가 심하던 로마시대에 순교한 성녀 루치아를

기리는 산타 루치아 축제는 아르키메데스 광장에서 벌어

진다.

루치아 성녀는 고문 끝에 눈이 파헤쳐지는 수난을 겪어서

오늘날 안과 의료의 상징이 된다. 이야기를 알고 나면 산타

루치아 노래가 마냥 낭만적으로만 불리어지지는 않는다.

시라쿠사에는 또 성모의 눈물 성당도 유명하고 장엄하다.

미국 뉴욕 주에 있는 시라큐스 대학의 이름도 이곳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하겠다.

시라쿠사에 왔으면 가까운 오르티지아 섬과 작은 연못을

잠시 들를 필요가 있다. 바다 속이지만 희한하게 민물이

흘러 연못을 이루고 이집트의 파피루스가 자생하는 아름

다운 곳이다.

뭍으로 나와 한 시간 쯤 차를 타면 노토라고 하는 오래된

마을이 나온다. 바로크 형식의 건축물들이 도시전체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케 한다.

이제 바쁜 발길은 메두사의 또 하나의 발끝 쪽으로 달려

가서 아그레젠토에 이른다. 아그리젠토는 한때 시칠리아

섬을 지배했던 그리스인들이 자신들의 영광을 자축하며

만든 마을이다.

전체적으로 주황빛이 감도는 신전들이 주를 이루는

이곳은 시칠리아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이다.

 

마침내 바쁜 걸음으로 시칠리아 섬을 모두 둘러보고

다시 팔레르모로 돌아가서 로마행 알리타리아에 몸을

싣는다.

세계가 로마를 중심으로 하여 지중해 문명을 이루었을

때에는 가장 중요한 거점의 하나였던 시칠리아는 지금

경제적으로 낙후되어있는 변방 같기만 하다.

하지만 수많은 문화유적이 증언하듯이 다시 기지개를

켤 날이 분명 있을 것 같다는 예감과 함께 화려한 여정을

닫는다.

(본지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