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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창작 희곡집 <황야(荒野)에서>

원평재 2021. 9. 27. 19:15

외우 김동소 박사(효성 가톨릭대학 명예교수)의 부친 김영보님께서는 영남일보을 창간하시고

편집국장으로는 잘 알려져있지만 정작 문필활동과 특히 한국최초의 창작 희곡집을 낸

문학사적인 인물로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 바가 있습니다.

마침 손부 되는 분이 소상하게 쓴 글이 있어서 여기 소개합니다.

아울러 김영보 회곡작가님을 문학사적으로 기리는 바입니다.

 

  

한국 최초의 창작 희곡집 <황야(荒野)에서>

 

제가 시집 왔을 때에는 이미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난 때여서, 저에게는 시아버님에 대한 추억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 머릿속에는 시아버님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고, 이런 이야기들은 그대로 제 시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제 머릿속에 있는 시아버님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남편이나 시누이들을 통해서 온 것이거나, 아니면 집에 있는 시아버님의 적지 않은 유품에서 온 것이겠습니다. (여기서부터 ‘시아버님’을 그냥 ‘아버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아버님의 유품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남편도 저도 가장 아끼는 것은 아버님께서 23세 청년 시절에 발행하셨다는 희곡집 <황야(荒野)에서>라는 책입니다. 1922년 11월에 서울의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발행한 이 자그마한 책은 놀랍게도 한국 최초라는 타이틀을 3개나 갖고 있답니다. 이 3개의 타이틀이 무엇인지는 아래에서 말씀 드리겠고, 우선 저의 아버님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존함이, 순천(順天) 김씨, 헤엄칠 영(泳) 자, 도울 보(俌) 자인데, 호(號)는 소암(蘇岩)이라고 들었습니다. 순천 김씨 절재공(節齋公 = 김종서 장군) 파 후손으로, 중흥조(中興祖) 이래 조선 시대 대대로 경기도 개성(開城)에서 살아 오셨는데, 제 시조부님께서 사업차 부산으로 이주하시고 이 부산에서 1900년 1월 28일에 셋째 아들인 저의 아버님을 낳으셨답니다. 그렇지만 아버님이 태어나시고 얼마 안 되어 저의 아버님께서는 개성에 사시는 당신 숙부님께 양자로 가게 되어서, 다시 조상 대대로 사시던 경기도 개성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합니다. 개성의 양(養)아버님은 인삼과 약용 작물을 크게 재배하셔서 부유한 생활을 하신 것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아버님은 이 양부 밑에서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게 신식 교육기관인 개성의 한영서원(韓英書院)에서 초등ㆍ중등ㆍ고등 교육을 모두 받으시고, 스물두 살인 1921년 2월 개성학당(開城學堂)의 교사로 근무하셨다 합니다. 가르치신 과목은, 자료가 없어서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조선어와 조선 문학, 그리고 조선의 역사였을 것이라고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그 후 25세인 1924년 7월에 서울에 있는 수송(壽松)유치원의 원감(園監)으로 부임하셔서 서울 생활을 하시게 됩니다.

한영서원을 졸업하고 1920년부터 희곡과 시, 논설 등을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기 시작하셨고, 1921년부터는 아버님의 희곡이 전문 극단에 의해 무대(서울 단성사 등)에 올려져 시민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무렵의 신문과 문예지 등에 의하면 아버님은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한 극작가가 되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춘원 이광수 선생이 1925년 발표한 글(‘우리 문예의 향방’, <조선문단> 13호에 실림)을 보면 “염상섭, 김동인, … 하면 소설가로, 김안서, 소월, … 하면 시인으로, 김영보, 김정진 하면 극작가라고 말하게 되었다.”라는 귀절이 있습니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유명해지신 저의 아버님, 소암 김영보 선생께서 1922년 12월에 서울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황야에서>라는 희곡집을 출판하십니다. 이 희곡집은 당시에 아마 500권 정도 발행하였을 것이라 하는데, 지금 남아 있는 것으로는 서울 시립 도서관, 서강대학교 도서관 등 몇몇 공공도서관에 몇 권, 그리고 저희 집에 2권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밖에도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더 있을 수 있겠는데, 몇 년 전 어떤 경매장에서 1,000만 원에 낙찰된 일도 있어서, 대충 10권 이내의 책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제 자랑스러운 아버님의 이 책 <황야에서>의 소개를 해 보겠습니다. 여러 검색 수단을 통해 아실 수 있지만, 이 <황야에서>는 먼저 한국 최초로 발간된 창작 희곡집임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 희곡집에는 저의 아버님이 지으신 희곡 5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제목만 적어보면 ‘나의 세계로’, ‘시인의 가정’, ‘연(戀)의 물결’, ‘정치 삼매(情痴三昧)’, ‘구리 십자가’입니다. 이 중 ‘나의 세계로’와 ‘연의 물결’은 당시로서는 놀라울 만큼 진보적인 남녀 간의 연애와 가정 문제, 여성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학자들을 놀라게 한다고 합니다. ‘시인의 가정’과 ‘정치 삼매’는 간단한 1막짜리 단편극이지만, 당시 사회상을 재치 넘치게 묘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희곡집 표지에는 벌거벗은 여인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놀랍게도 이 그림을 이 희곡집의 작자인 저의 아버님께서 손수 그리셨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장정(裝幀)도 아버님께서 손수 하셨다는데, 그래서 이 책 <황야에서>는 장정가(裝幀家)가 알려진 한국 최초의 단행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황야에서>라는 책은 한국 미술사(美術史)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 책이 한국 최초라는 타이틀을 2개 가지게 되었는데, 또 하나 남은 타이틀은 이 책 속에 나오는 5막 짜리 희곡 ‘구리 십자가’에 관한 것입니다. 이 희곡 ‘구리 십자가’는 순수 창작 희곡이 아니라, 작품 첫머리에 밝혀 두셨듯이 프랑스의 위대한 작가 빅토르 위고의 희곡인 ‘파도바의 폭군 안젤로’(1835년 발표)를 번안(翻案)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유명한 빅토르 위고의 이 작품은 <황야에서>에 이렇게 번안되어 나올 때까지 한국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므로, ‘한국 최초의 빅토르 위고 소개’라는 타이틀을 또 하나 갖게 되는 셈입니다.

이만 하면 제가 이렇게 자랑스럽게 저의 아버님을 소개하는 것이 조금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님을 모두 인정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왕 이야기 나온 김에 제 아버님이신 소암(蘇岩) 김영보(金泳俌) 선생님에 관해 몇 가지 더 말씀 드리자면, 저의 아버님이 1923년, 당시 유명한 월간 종합잡지인 <시사평론(時事評論)>에 5차례 연재하신 ‘웰텔의 비탄(悲歎)’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역시 한국 최초로 번역ㆍ소개하신 것입니다.

또 1930년에 출판하신 <악보 붙은 동요ㆍ동화집, 꽃다운 선물>은 역시 한국 최초로 악보가 붙은 동요와 동화 모음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이만하면 제가 저의 아버님에 대해 자랑스러워 할 만하지요? 아버님은 1926년 6월에 일본으로 가서 도쿄 조선 여자동포원 주간으로 일하시다가 무슨 사정으로 2년 만에 갑자기 귀국하셔서 서울의 <매일신보사>에 들어가셔서, 그 후 돌아가실 때까지 언론인으로 사셨습니다. 일본으로부터 갑자기 귀국하신 사정이 무엇이냐에 대해 여러 의문이 있지만, 1926년 8월 유명한 극작가 김우진과 가수 윤심덕의 동반 자살, 그리고 1928년 조선 여자동포원의 여학생 3명의 자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으리라는 추측이 있습니다. 극작가 김우진은 아버님과 가까운 사이였다고 합니다.

매일신보사에서 통신부장, 문예부장, 지방부장 등의 일을 보신 후 1945년 3월 경북지사장으로 발령 받아 대구로 오시게 됐고, 그 후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대구에서 사셨으며, 1945년 광복이 되자 대구의 언론인들과 함께 영남일보를 창간하시고 초대 편집국장 및 제2대 사장이 되어 1955년 7월까지 계시다가 은퇴하셨습니다. 그 후 남산동과 범어동에서 문방구점 운영, 양계 사업 등을 하시던 중 1962년 9월 28일 대구 범어동에서 별세하셨다고 합니다.

대구광역시에서는 아버님의 이러한 업적을 뒤늦게 알고 2019년 대구 근대문화인물로 선정하여 현창 사업을 벌였으며, 그 일환으로 2019년 9월 아버님의 희곡 ‘나의 세계로’를 한울림 극단 주관으로 무대에 올려 상연을 하였습니다. 그때 우리 문지회 회원님들께서 많이 와서 관람해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그 때 와주셨던 회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왕 이야기 나온 김에, 혹시 회원 선생님들께서 옛날 젊은 시절에 연극을 해보셨다거나, 아니면 연극에 관심과 취미가 있으셔서, 우리들끼리 한번 연극을 해보실 의향이 있으시면, 제 아버님의 연극 ‘연(戀)의 물결’이나, ‘구리 십자가’를 아마추어 동호인 연극으로 공연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물론 제가 적극적으로 후원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