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서부, 중서부, 플로리다의 여정

"변소 갈랍니다"를 지나며---

원평재 2005. 9. 1. 00:24
 

변소 갈랍니다(시카고 가는 길, 칼라마주에서).


미국으로 떠나면서 로밍한 내 “셀 폰”을 가장 줄기차게 두드려준 음성이 있었다면

아들이나 동생보다도 시카고에 사시는 “금석, 이상옥” 님의 열정적으로 따뜻한

목소리였다.

“잘 도착했느냐”, “불편한 점은 없느냐”, 그리고 끝에 가서는 꼭 “시카고 방문 계획은 잘

추진되고 있느냐”였다.

 


 (미시간 호가 내려다 보이는 시어즈 타워에서---. 오른 쪽 건물 블록과

쇼어 드라이브를 합쳐서 "매그니피션트 마일" 혹은 "매직 원 마일"이라고

한다던가---.)

 

내가 디트로이트 8일간의 여정 중, 화요일 하루쯤 시카고에 가서 자고 올 일정을 동생과

짜두었고,

이미 호텔 예약까지 끝났다니까,

“왜 그랬느냐, 당장 취소하고 집으로 와서 이틀을 묵고 가야한다는 것”이다.

 

로밍 전화라는 것이 알다시피 가끔 통화가 끊어져서, 다시 말이 반복 되어야하고

그러자면 비싼 요금만 피차간에 올라가는 데에도 이 분은 막무가내로 또 전화하고 또

전화하여서 확인을 하신다.


동생이 이런 사정을 알고나서는 하루를 늘려 얼른 이틀간의 호텔 예약을 마쳤고 내가

이런 “행위”를 다시 금석님에게 알렸더니 이 양반은 듣다가 펄쩍 뛰면서 자기 집으로

와야 된다고 재삼 강조하면서, 특별히 시카고의 트래픽에 걸리지 말라고 다시 당부

하였다.

 

이 부분에 대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생의 주장대로 폐를 끼치지 않기로 하고 결국

우리는 호텔에서 이틀을 묵게 된다.

 

전날 동생 부부가 푹 쉬고 일어나시라고 하여서 정말 늦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제수는

벌써 아침 준비에 벼라 별 여행 간식을 다 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맙소사, 함께 휴가도 안가고 일에 빠진 바이오 캄파니의 여성 CEO께서 출근도 못하고

있네---.

 


 

내가 미안해했더니, “걱정 마이소. 늦게 나가면 늦게 집으로 오면 되는기라예”하며

한보따리 간식을 트렁크에 넣어주는 모습이  예전 그대로였다.

 

우리 차가 울창한 숲길을 빠져나오자 익숙했던 이름들이 나타났다.

랜싱으로 가는길, 앤 아버로 가는 길,

그리고 Flint---.

이건 인디언들의 부싯돌과 상관이 있겠네, 하고 전에 내가 생각했던 도시 이름도 나왔다.

 

시카고 가는 길의 승용차 안에서는 두 가지, 아니 세 가지가 큰 화두였다.

모두 나이든 탓에 기인한 것이었다.

 

첫째, 카팔 터널 신드롬---.

“형님, 걱정 마이소. 나도 골프 치다가 3년 전에 그게 왔는데 약 먹어가며 계속 쳤지요.

그러다가 미시간의 겨울이 와서 한 몇 달 쉬니까 났대요, 하하하.”

“나는 이거 컴퓨터 키보드 놓고 쉴 수가 없네. 어제 제수 말 들으니 많은 사람들이

수술도 하고 단번에 회복된다던데---.”

“수술은 최후 수단이고 침 맞는 것도 괜찮아요. 스테로이드 주사 한번이면 직효이긴

한 데, 그건 약 먹어보고 나서 봅시다. 걱정 말아요.”


그 다음이 연금과 주식 이야기.

“미국은 연금도 세금 낸 실적으로 연방 정부에서 나오는 기본적인 것 말고는. 연금 기금

운용을 소속 기관 책임으로 하는 건데, 우리 병원의 몇 억 달러에 해당하는 기금 운영의

책임위원 비슷한 데에 내가 뭘 좀 안다고 관여하고 있지요---. 물론 전문 애널리스트

들을 법적으로 고용하고 있지만요.”

 

“자네 개인 투자로도 이익을 많이 냈겠네?”

자기는 무리하지 않아서 꽤 많이 번 축에 속하지만 또다른 스토리도 주위에는 있다고

하며 어떤 사람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미국에서는 부동산 투자를 한국에서 증권투자 보듯 그동안 위험시했고 증권 투자는

한국에서의 부동산 투자처럼 그래도 더 미덥게 보는 경향이 있어 왔다고 한다.

 

그래서 큰 집을 사려는 한국계 미국인에게 뮤추얼 펀드 정도를 예로 들면서 조심스레

딱 한마디만 권유의 말을 하였더니 이 사람이 몇 년 사이에 대박을 터뜨렸다.

헤지 펀드는 물론이고 신용으로 선물 거래까지 올인으로 넣어서 아마도 천만 불을 번듯

하였다.

직접 자랑도 했다고 한다.

 

“이제는 팔 때가 아닐까요?”

동생은 부담스럽기도 하고 걱정도 되어서 그런 권유를 적절한 시점에 딱 한마디 했는데

그는 듣지 않는 눈치였다.

이윽고 블랙 무슨 요일이던 가---.

그 사람은 큰 손해를 보았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물어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자네도 그 이상 벌었던 것 같네.”

내 말에 동생이 부인하지는 않았다.

“벌었을 때 다 팔지 그랬어?”

동생의 실적도 걱정되어서 내가 슬며시 탐색을 해 보았다.

 

“나는 슬슬 많이 팔았어요. 신용거래같은 것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지요---. 그래도

다 팔지는 않았고 또 그럴 수도 없는게 이곳 시장의 실정이지요. 양도 차익에 대한

세율이 40퍼센트이고 또 거래세가 있고---. 천원을 벌어서 400원 이상을 세금으로

내버리는 상황을 생각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우리 시대는 좋았던 시절이었지요.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중산층들이 본격적으로 주식을 했는데 매크로하게,

거시적으로 보면 15년 이상을 상승 곡선이었다가 몇 년 전부터 하강 곡선이었으니

무리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 벌었지요.

나도 지금까지 실적을 정리해보면 연간 12% 이상은 이익을 냈으니 즐기면서 살아온

셈이랍니다.”

 

주식 성공의 비결은 “겸손”이라고 동생은 덧붙였다.

하버드 나온 아들 녀석을 보니 의과 대학원의 그 험난한 수련 속에서도 조금씩 주식을

하는데 그간 연구와 실전에 자부심을 가졌던 애비 보다 열배나 더 연구하고 더 많이

알고 있는듯하여서 깜짝 놀랐단다.

 

그런데, 그 아들 녀석의 하버드 출신 학부 동기들이 MBA과정을 마치면서 하루 종일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와 딜러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녀석들은 아들녀석의 백배는 더

공부를 하고 있을터이니, 일찍 주식을 좀 공부했다고 취미삼아 하는 구세대가 경쟁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적당히 즐기는 수준에서 만족하고 감사할 제목이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승용차가 Kalamazoo 까지 와서 휴게소에 잠시 들리게

되었다.

여기는 "웨스턴 미시간 대학"이 있는 곳으로 내 기억의 함 속에 기이하게 저장된

이름이었다.

 


 

60년대 후반에 “푸에블로 호”사건이 한반도에 터졌다.

미국의 정보 수집함이 북한의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된 것이다.

80여명가량의 미국 해군이 북한에 약 1년간 억류되었다가 풀려났는데 그들의 술회

가운데에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다.

 

예컨대 생활언어는 모두 한국어로 하라고 하여서 “물주시오”같은 말은 하기가

쉬웠는데,

“변소 갈랍니다.” 같은 것은 하기도 어려웠고 자존심도 상하여서

“Banjo Kalamazoo Michigan"이라고 우물우물 말하였다는 것이다.

다른 정황보다 그 말이 엄혹한 역사의 시련이 담긴 그 사건에서 내 기억에 걸려있다.

역사가 잘 흘러가서 시대의 에피소드, 역사의 해학이 되었으면 좋겠다.

 

“칼라마주”에서 우리는 “벤조”를 다녀온 다음, 일로 “시카고”로 향하였다.

시카고는 내 동생의 사위가 될 앤아버(Ann Arbour)의 "미시간 대학 의대"에 다니는

청년의 부모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사촌들이 마흔 한명이나 살고 있는 곳이지만

이 번 방문에서는 만날 일이 없었다.


가장 큰 방문 목적은 나의 입장에서 보면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생가가 있는

“오크 파크”를 찾는 일이었는데,

사실 그 기반에는 블로그에서 친면이 생긴 “금석 선생, 이상옥” 사장을 만나는 중대사가

버티고 있었다.

 


 

우리는 멀리 시카고의 스카이라인이 보이기 시작하자 먼저 “시어즈 타워”를 올라가

구경부터 하고,

이어 예약한 호텔로 가서 체크인을 하면서 이 사장에게 연락을 취하기로 하였다.

금석 선생의 간곡한 뜻과 호의에는 감사하면서도 특별히 그 분에게 큰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가운데 보이는 것이 시어즈 타워. 80년대 초에 왔을 때만 해도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자랑했으며 시어즈 로벅에는 아마도 '대우' 같은 데에서도 와이셔츠를 납품했었을 것이다.)

 

시어즈 타워는 내가 1983년에 처음 올라가 본 곳이었다. 당시만 해도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때였다.

집사람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참고로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작년에 “재미 동포문학의 민족 정체성”이라는 표제로

“사단법인 한국 소설가 협회”와 “시카고 한인회”에서 주최한 행사가 개최되었던

“시카고 링컨우드 래디슨 호텔”이었다.

마침내 시카고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디트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미국 도시에

진입하는 느낌이었다.

 

이제 그 진면목은 다음으로 미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