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서부, 중서부, 플로리다의 여정

지구는 둥글다

원평재 2005. 9. 2. 20:59
 

지구는 둥글다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를 한번 대 보시겠어요?”

시어즈 타워의 전망대에서 끝이 둥글게 마무리되는 미시간 호를 바라보며 동생이 말했다.

둥근 미시간 호의 끝마무리를 답으로 댔다가는 현문우답이 되겠다.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모범 답을 말해준다.

“신발이 양쪽부터 닳잖아요.”

“하하하”

센스 있는 넌 센스 퀴즈 같아서 셋이 함께 크게 웃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왜 웃었는지

진짜 넌 센스 같다.

 


 

 

과묵한 편인 동생이 정색을 하고 또 사람을 웃겼다.

“여기 예전에 처음 왔을 때 저기 동전을 넣고 보는 망원경에 돈도 넣지 않고 들여다

보았더니 그냥 시커멓더라구요. 아하, 지구가 둥그니까 내 뒤통수가 보이는구나하고

생각했지요.”

다시 웃음바다.

 


 

(앞에 하얗게 보이는 점들은 미국인들의 꿈, 요트이다. 하지만 소유하자 마자

골치덩어리이다. "소유"에 관한 제레미 리프킨의 갈파가 생각난다. 이 곳의

미시간 호가 보이는 펜트 하우스는 값이 얼마인지도 모를 지경이란다.)

 

 

동생은 인턴을 시카고에서 했다.

미국 온 첫해였다.

강보에 쌓인 첫 아이, “에디”를 데리고, 한국에서 군의관 제대할 때 받은 돈 몇 푼만

달랑 들고 온 부부가 고생이 참으로 많았다.

주말 당직이 아닌 때에는 저기 “쇼어 드라이브” 안쪽의 잔디밭에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아무 것도 안하고 푹 쉬었다.

차가 없어서 오리엔탈 마켓까지 30분마다 오는 버스를 타고 쇼핑을 나가서 지금도

역 이름을 모두 기억한다고 했다.

 

그래도 미국에서의 고향 땅이라면 고생이 심했던 이 곳 시카고라고 한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곳에 그가 고생했던 병원이 있었고 그 너머로 시카고 대학,

반대편으로는 노드 웨스턴 대학이 숲 속에서 아스라하게 보였다.

 


 

                    (골치 덩어리 하얀 점들이 여기는 더 많이 보인다.)

 

발밑으로 호반과 접한 마천루의 밀집 지역은 “매그니피선트 마일”, 혹은 “매직 원 마일”

이라고 하여서 그 옆 호반 도로와 합쳐 시카고의 명물을 이루는 호화지대였다.

그 쪽으로는 “워터 플레이스 빌딩” 등과 같은 초고층 오피스 빌딩도 숲을 이루었고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고급 콘도도 꽉 들어차 있어서 나중에 그 밑으로 여러 차례 차를

달려 보지만 기막힌 곳이었다.

 

 


 

 

                                       (시카고 선 타임즈 건물)

 

거기 유명한 “시카고 선 타임즈” 신문사도 보였는데 “내일 뉴스”던가 하는 외화 시리즈

물의 배경이 아니었던가 싶은데 지금 자신은 없다.

멀리 숲과 큰 구조물들로 콤플렉스를 이룬 곳이 시카고 대학인데 오늘 만나고자하는

금석 선생의 자제도 앤아버의 미시간 대학을 나와서 현재 좋은 직장에 출근하면서,

이 대학의 유명한 MBA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겸손한 양반의 마음 속 보물 보따리에는 진품명품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감춘 내용물

들을 내가 앞으로 천천히 끄집어내어 소개하고 싶다.

내 가까운 친구의 아들과 딸도 이 곳 시카고 대학에 있는 줄로 아는데 바쁜 여정에

상봉은 다음 기회를 기약한다.

 

예전에 패키지여행을 왔을 때에는 증명사진 찍고 내려가기 바빴는데 우리는 한동안

절경을 즐기다가 천천히 내려와서 무인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금석 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후 다섯 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한 셈이라, 시카고의 트래픽과 상호간의

거리가 걸려있어서 오늘은 늦은 시간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으나 어쨌든 일곱 시가

넘어서 우리가 묵는 호텔로 오겠다고 금석 선생은 낭패한 듯 말을 하였다.

 


 

       (묵었던 호렐의 풀장, 한국인들의 사교장이었는데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원래 한국인이 경영주이고 인근에 한국 식당도 많다는 정보를

갖고 동생이 예약을 한 곳이었다.

그러나 지도를 갖고 찾아간 호텔은 그 사이에 매매가 되었다가 다시 해약이 되는 등,

곡절이 많아서 이름도 바뀐 상태가 되었으나 어쨌든 덩치는 커서 쉽게 찾았다.

새로운 이름은 여기에 올리지 않는 게 좋을 듯싶다.

 

인근에는 소문과 달리 한식당도 많이 철수한 듯 없어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식으로 저녁을 만끽하고 들어오는데 로비에 키가 크고 맑은 얼굴을 한 신사분이 대뜸

우리를 알아본다.

금석 선생, 이 사장이었다.

우리는 십년지기처럼 손을 잡았다.

꾸밈새도 없이 솔직담백한 어조로 그 분은 우리를 맞았다.

 

짐도 정리할 틈 없이 우리 부부는 그 분의 차를 탔다.

야간 드라이브라도 해서 이 저녁 시간을 활용하자는 제안이었다.

동생은 처리할 밀린 일을 갖고 왔기에 호텔에 남았다.

 

낮에 대충 다 보았던 거대 도시를 우리는 금석님의 설명을 들으며 밤중에 돌고 또

돌았다.

다운타운에는 밤 시간이었는데도 주로 백인 거주자들이 많이 활보하고 있어서 우리의

서울을 연상케 하였다.

시카고에도 이민자들이 많이 쏟아져 들어왔으나 지금의 시장이 도시를 재개발하고

정비하는 바람에 집값과 집세가 올라서 넉넉한 사람들 외에는 모두 시내에서 빠져

나가는 새로운 패턴이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본 20세기 초기의 미국 도시가 눈앞에 재현된 경위를 알만했다.

기득권자들에게는 살기 편한 곳이고 연고가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정을 붙이기가

썰렁한 전형적인 미국적 도시였다.

 

금석 선생도 역시 맨주먹으로 미국에 와서 당대에 아메리칸 드림을 이룩한 케이스였다.

부인께서도 아직 큰 회사에서 데스크 잡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도 다 성장하여 나가

살고 있어서 이제는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분들이었다.

은퇴를 생각하면서 젊은 시절의 꿈이었던 문학 세계에로 옮아가는,

말하자면 이주사(移住史)를 새로 쓰려는 “의지의 사나이”가 이 사장이었다.

 

몇 년 전 “미스 시카고”였던 따님을 포함한 이 가정의 이야기는 다음에 또 계속 됩니다.


예고편

 

다음날 헤밍웨이의 생가를 찾아가서 개관 시간을 기다리며 금석 선생이 농구를 하고

있는 옆집 소년을 불러, 평소의  내부 상황을 미리 알아 보고 있다.